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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이해를 포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뇌썩음 밈의 세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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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이해를 포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뇌썩음 밈의 세계

thxzomarch 2025. 6. 12. 16:00

영화평론가·<한국 인터넷 밈의 계보학> 저자 김경수

 

이탈리아 브레인롯 밈 모음 / 출처: 브레인롯 밈은 저작권이 A.I에게 있다

 

뇌썩음Brainrot2024년에 옥스퍼드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다. 숏폼과 인터넷 밈 등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에 중독되어서 지적인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 단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1854년에 쓴 에세이 월든에서 유래했다. 소로가 책의 맺음말에서 틀에 박힌 사고에 갇힌 현대인을 비판할 때 쓰인다. 책에 한 번 등장했을 뿐이지만 뇌썩음은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치적인 상황과 공명하는 단어다. 소로는 뇌썩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때때로 우리는 우리보다 1.5배쯤 똑똑한 사람들을 반편이같이 취급한다라며 그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진단한다. 현대인이 비판적이고 복잡한 사고를 하지 않아서 모든 현상을 단순히 생각하는 사고를 상식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식인을 비하하는 반지성주의의 풍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본 것이다. “영국이 감자역병(Potato Rot) 치료법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데 어째서 훨씬 넓게 퍼지고 치명적인 뇌 썩는 병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¹라는 그의 꾸짖음이 시대를 초월해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기계화된 문명과 인간을 욕망의 굴레에 가두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소로의 반골 기질이 아직 통하는 것일까. 이 단어는 170년 만에 부활했다. 2023년부터 2024년 사이에 이 단어의 사용은 230%가량 증가했다. 나아가 도파민(어떤 행위에 대한 보상을 통해 행복감을 자아내는 신경 물질을 뜻하며, 미디어에서 이 단어는 숏폼 등 곧바로 자극을 줌으로 도파민을 샘솟게 하는 콘텐츠, 혹은 콘텐츠의 자극적인 정도를 이야기할 때 쓰인다)과 더불어 스마트폰 세대의 가속화된 문화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었다.

 

도대체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가 무엇이기에 우리의 뇌가 썩는다고 말하는 것일까. 옥스퍼드에서는 브레인롯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의 성격으로 사소하거나 도전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이라고 설명했다. 콘텐츠는 정보나 (기승전결을 가진) 내용물을 뜻한다.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² 등 옥스퍼드에서 뇌썩음의 사례로 드는 인터넷 밈과 숏폼 콘텐츠는 도저히 기존 관점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나의 작품은 그 안에 합리적인 논리를 지녀야 하는데 이런 콘텐츠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왜 제작되어야 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본격적으로 뇌썩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의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그 징후로 볼 수 있는 여러 콘텐츠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콘텐츠는 주로 귀벌레 효과를 통해서 틱톡에서 챌린지가 되기를 의도적으로 노린다. 서이브의 마라탕후루, ASMRZ잘자요 아가씨는 틱톡 챌린지에 어울리는 춤과 중독적인 훅을 위해서 가사의 논리적 개연성을 포기한다. 여기까지는 후크송으로 봐줄 만하다. SNS에서 유행했던 괜찮아 딩딩딩, 소피 파워즈의 STFU, 벡 마틴의 Friday Night등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노래는 여러 유튜버가 리믹스를 만드는 땔감이 되어 인터넷 밈으로 등극했다. 노래 속 의성어나 비논리적인 흐름은 멜로디와 리듬이 더해져서 흥겨움을 만든다. 이런 원초적 재미를 우리가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후크송의 억지 유행은 반길 일이 아니다. 코미디언 이재규의 미룬이는 중독적인 후렴구로 유행을 노린 노래다. 이재규는 이 노래를 무대에서 부를 때 누구도 호응하지 않는 민망한 상황을 자학적인 개그로 승화하면서 밈의 경지로 만들었다. 이처럼 억지 유행에 대한 반감은 언제나 있다. 브레인롯 밈은 하나의 콘텐츠가 틱톡 챌린지로 소비되기를 자처하거나, 틱톡 챌린지가 되어버리는 시대적 맥락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구조적인 완결성보다는 따라할 수 있는 순간이 작품의 의미에 선행하는 것이다.

 

브레인롯 밈이 탄생하는 또 하나의 토양은 A.I 생성 이미지의 발전이다. A.I 생성 이미지는 초반만 해도 명령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을 때 어설픈 이미지를 제작했다. 또 그 이미지의 인공성은 항상 언캐니 밸리, 사실적이지만 딱 한끝 모자라게 인공적인 이미지에 가지는 거부감에 부딪혀 왔다. 쌀국수에 고수를 넣어달라는 명령어에 배우인 고수가 들어가는 기이한 이미지가 인터넷 밈으로 돌기도 했다. A.I 생성 이미지에 대한 인터넷 밈은 아직 A.I 생성 이미지가 예술이나 진짜로 촬영된 사진과 비교했을 때 아직은 어설프다는 무의식에 기반해 탄생했다. 이윽고 A.I 생성 이미지로 제작된 밈이 서서히 그럴 듯한 꼴을 지니기 시작했다. 2024년 초에는 유튜브에서 노래에 가수 Dean의 목소리를 덧입히는 A.I 커버가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비현실적인 상황을 두고 A.I가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A.I의 기술적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반응이 주로 나왔다. A.I가 허구에 얼마나 근접하느냐가 A.I 생성 이미지를 보는 기준이 된 셈이다. 이처럼 A.I 생성 이미지는 기술에 대한 혐오와 숭배를 증명하는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A.I가 생성하는 허구적 이미지를 놀이로 소비하는 흐름이 생겼다. 이는 기존의 인터넷 밈과 차별화된 개성을 지닌다. 인터넷 밈이 여러 이미지를 잘라다가 접합하는 콜라주에 가까운 이미지라면, A.I 생성 이미지는 여러 이미지를 매끄럽게 연결하므로 초현실주의의 회화에 가까운 이미지다. 인터넷 밈은 원본이 있는 여러 이미지를 합성할 때 원본의 흔적을 남기지만 A.I 생성 이미지는 원본의 존재감과 원본이 변형되는 과정이 사라진다. 거기에 A.I 음성으로 정체를 가리는 유튜브 채널이 수두룩하게 생길 만큼 TTS(Text-to-Speech·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시스템)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들리기 시작했다. A.I는 이렇게 여러모로 놀이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브레인롯 밈의 당혹스러움은 여기서부터 온다. 지금껏 인터넷 밈은 어떤 커뮤니티의 개성, 무의식적인 욕망과 정동을 드러내는 단서로 해석되었다. 디시인사이드와 일베(일간베스트), 남초와 여초 등 어느 커뮤니티에서 밈이 출발했느냐가 그 밈에 숨겨진 이데올로기와 정념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었다. A.I 생성 이미지는 작가의 손길 없이 명령어로 생성된다. 자동으로 생성되므로 저자성도, 실수도, 특정 집단의 이념과 무의식을 반영하지 않고, 원본을 특정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탄생한 셈이다. 일례로 A.I로 만든 영상을 가공한 인터넷 밈 사랑했나봐가 유행했다. 곰돌이 푸가 빠른 템포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춤을 추는 영상에 윤도현의 사랑했나봐를 더한 영상이다. 곰돌이 푸와 발라드 사이에는 그 어떠한 연결점도 없다. SNS를 중심으로 생긴 트랄랄렐로 트랄랄라, 봄바르딜로 크로코딜로³,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 등 캐릭터가 나오는 이탈리안 브레인롯 밈도 이탈리아어 의성어와 신발을 신은 상어 이미지 사이에 그 어떤 연관성도 발견하기가 힘들다. 이탈리안 브레인롯은 수많은 캐릭터가 서로 경쟁한다는, 포켓몬스터를 보는 듯한 세계관이 생성되었음에도 세계관 속 각 캐릭터가 가지는 힘의 크기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세계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셈이다.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는 인도네시아 설화에서 가져온 건데 이 캐릭터가 세계관에 유입된 경로와 이유를 모르겠다. 이해를 포기해야만 즐길 수 있는 밈이 생긴 셈이다. 심지어 이 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뜻도 모르는 채로 암기하는 풍경이 인터넷 밈이 되기도 했다. 왜인지 이런 흐름은 A.I의 유행이 윤리적인 논의를 앞지르는 흐름을 보는 듯하다. (웃기게 이 글을 퇴고하는 날, 스키비디 토일렛Skibidi Toilet 밈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곰돌이 푸 사랑했나봐 밈 사진 / 출처: <유튜브 ‘미친 안경’> 갈무리

 

퉁퉁퉁퉁퉁퉁퉁퉁퉁 사후르 밈 사진 / 출처: <나무위키>

 

 

솔직히 말하면 뇌썩음이라는 단어의 유행이 그다지 달갑진 않다. 뇌썩음이 객관적이어도 이 단어는 새롭게 발명된 매체로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만드는 신세대를 비하하는 단어로 쓰일 위험이 크다. 고대 문명에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는 농담에서 드러나듯 이런 세대론은 쭉 반복되었다. 뇌썩음도 숏폼과 인터넷 밈 등 스마트폰 이후에 생긴 대중문화의 형식에 대한 기성세대의 거부감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 이 단어가 문제적인 이유는 썩음이라는 말 때문이다. 바보상자까지만 해도 매체는 정신을 지배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제 미디어는 신체를 침투하고 파괴하는 존재로 설명된다. 도파민과 뇌썩음은 미디어가 이성이라는 거름망을 통과해 신체에 곧바로 투과되고 있으며 정보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비판적 사고로 이길 수 없는 절대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는 패배 선언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스마트폰 세대에게 뇌썩음과 도파민은 탈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서 자학개그처럼 쓰이기도 한다. 또 이를 콘텐츠의 재미를 판가름하는 척도로 쓴다. 24시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과잉 연결 사회에서 숲에 숨어서 문명과 절연한 헨리 데이빗 소로의 일침이 과연 유효할까? 도파민 디톡스와 템플스테이, 마음챙김 등 뇌썩음을 벗어날 수 있는 행동마저 자기계발로 편입된 지금, 뇌썩음을 탈출하자는 말은 일종의 기만이 아닐까? 무엇보다 뇌썩음 밈을 규제하고, 사용자를 계몽하는 일은 아직 섣부르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뇌썩음보다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 중이므로 당분간은 이 흐름을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¹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정회성 역, 민음사, 2023, p.466

² 먼 미래에 인간이 화장실 변기가 된다는 설정을 공유하는 숏폼 시리즈물. “Dafuq!?Boom”이라는 러시아 유저가 제작하고 있으며, 하프라이프 2와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그래픽을 빌려와 제작되었다. 처음엔 화장실 변기에서 한 남자가 머리를 내미는 기괴한 이미지로 등장했으나 이제는 카메라맨이라는 적대 세력과 전투를 벌이는 대규모 세계관이 형성되었다. 최근 마이클 베이가 이 세계관을 영화화하겠다고 발표했다.

³ 이탈리안 브레인롯 밈에 윤리적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봄바르딜로 크로코딜로가 유행할 당시 특정 커뮤니티에서 캐릭터의 기본 설정에 가자 지구 폭격을 취미로 한다라는 반-팔레스타인 설정을 더했다. 은연중에 정치적 구호로 유통되었으나 이 밈을 쓰는 많은 유저는 이 설정의 존재감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