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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호] 기후위기, 자연은 타협하지 않는다. _김지은 본문

기획

[154호] 기후위기, 자연은 타협하지 않는다. _김지은

dreaming marionette 2020. 10. 16. 09:00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생전 이런 비는 처음 봐. 전에는 비도 알맞게 왔고, 눈도 알맞게 왔고, 뭐든 알맞게 왔어.” 54일이라는 역대 최장의 장마기간을 기록한 폭우로 올 여름 큰 침수 피해를 입은 남원 주민의 이야기이다. 10일 동안에 연달아 세 번의 태풍이 한국을 강타했고, 지난 겨울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자라는 구상나무는 지리산과 한라산에서 집단 고사하고 있고, 제주의 산호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1,200년을 살아온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들도 돌연 쓰러졌다. 중국에선 두 달 넘게 지속된 폭우로 한국의 인구보다 많은 기후난민이 발생했고, 지구에서 가장 춥다는 시베리아는 관측사상 최고 기온인 38도를 기록하여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80년 빠르게 기온이 변하고 있다. 호주의 대규모 산불은 7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고, 시베리아 산불에 이어 계속된 미국 서부 해안의 산불은 남한 면적의 20%에 해당하는 면적을 불태우고 있다. 지구 최대의 습지인 브라질 판타나우는 1년 째 불타고 있다. 서유럽은 40도가 넘는 폭염에 시달렸고, 미국과 중동의 일부 지역은 50도가 넘는 기온을 기록했다. 영구히 녹지 않는다는 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이산화탄소 보다 온실효과가 30배 이상인 메탄가스가 방출되고 있고, 알래스카의 빙하는 예측보다 100배 빨리 녹고 있다. 불과 며칠 전에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시달리던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지역이 하루 만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폭설이 내리는 믿지 못할 기상이변이 발생했다.

 

인간과 다른 생물종들이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뭐든 알맞게 오던 기후는 이제 인간과 다른 생물종들이 적응할 수 있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면서 점점 생존할 수 없는 조건으로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병까지 겹쳐 전 세계는 다중의 재난 상황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지구 온도 상승으로 인한 기후재난의 극히 일부분이며 시작에 불과하다. 지구 평균 온도가 단 1도 상승한 것만으로도 이미 수많은 생명들이 죽었고, 생태계는 연쇄적으로 급격히 붕괴되고 있으며 이 연쇄적인 고리의 끝은 인간을 향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100년 후에나 일어날 미래의 위험도, 먼 나라 북극곰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류와 다른 생물종들에게 현재 진행중인 재앙이다.

 

지난 9일 세계자연기금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5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전세계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70% 가까이 급감했다. 화석기록을 보면 지난 6억년 동안 지구에는 총 다섯 번의 생물 대멸종이 있었다고 한다. 5번의 대멸종은 대규모 화산폭발, 소행성 충돌 등 모두 자연적인 현상에 기인하였다. 대멸종 시기에 생물종의 60% 이상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돌이켜본다면 과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듯, 우리는 지금 6번째 대멸종에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자연적인 원인이 아니라 오롯이 인위적인 산업자본주의 체제가 원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절멸 위기이다.

출처: https://www.jatinverma.org/what-is-the-ongoing-sixth-massextinction

흔히들 기후위기의 원인을 인간 활동과 탐욕이라 말하고, 코로나 감염병을 중국의 탓으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코로나의 뿌리는 동일하다. 산업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자연과 인간, 생물종에 대한 착취가 원인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을 단순히 인간의 무한한 욕망 때문이라 말하고 코로나의 원흉을 중국이라고 말하는 순간 기후위기와 코로나가 가진 계급적·착취적 속성은 숨겨지고, 그 책임의 당사자와 해결 방안은 모호해지고 무의미해진다. 세 시간을 맨발로 걸어 학교에 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아이와 비싼 자동차를 소유하고, 비행기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북반구 부자어른은 기후위기에 같은 부채를 가진 동일한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중국은 감염병의 발생지일 뿐이지, 감염병의 원인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없다면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은 계속 등장할 수 밖에 없고, 기후위기로 인해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인류가 대응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더 빈번하게 출현하게 될 것이다.

 

지구 온도를 상승시킨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지난 80만년 동안 300ppm 이하를 유지해왔는데 산업혁명 이후 단 100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무려 100ppm 이상이 증가했다. 1만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는 약 5도가 올랐지만, 인류는 산업화로 불과 100년만에 지구 온도를 1도 가까이 상승시키고 말았다. 2018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총회에서 지구 온도 2도 상승도 위험하다며, 상승 제한폭을 1.5도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세계 각국은 올해 안에 유엔에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을 제출해야 한다. 2020년은 인류 문명과 지구 생물종의 운명에 결정적인 해이다. 세계 각국과 지방정부는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시작했고,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제도와 정책들을 마련하며 탈탄소 사회를 위한 전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트럼프와 같이 여전히 기후위기를 부정하거나 새로운 이윤 창출 수단으로 악용하는 자본가와 기득계층 또한 득실하다.

 

출처: https://climate.nasa.gov/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지 못한다면 극한적인 기후 재난과 생물 대멸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나아가 2도를 넘기게 된다면 인간이 모든 활동을 멈추고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후시스템은 회복력을 상실하여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IPCC2018년 특별보고서를 통해 66%의 확률로 지구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데 남아있는 탄소배출총량(탄소예산)420기가톤으로 추정하였다. 이 남아있는 탄소예산을 기준으로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산화탄소를 감소시키고, 2050년경에 넷제로에 도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추가적으로 배출될 탄소와 습지에서 배출될 메탄으로 배출할 탄소량은 100기가톤까지 줄어들고, 또한 이산화탄소 이외의 온실가스의 감축 수준에 따라 잔여탄소배출총량은 250기가톤까지 추정되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남아있는 탄소예산을 250기가톤으로 추정한다면, 2020년 현재,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4년도 남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1.5도 이내로 제한할 가능성을 66%가 아닌 100%로 고려한다면 과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더군다나 IPCC의 권고 사항은 지구 스스로 온도 상승을 일으키게 되는 임계점에 대한 예측이 빠져있는 매우 보수적인 기준이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상 손실, 영구동토층에서의 탄소 방출, 열대우림과 산호초 서식지의 붕괴 등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기후 급변요소들을 고려한다면, 1.5도 상승은 IPCC의 예측처럼 몇 십년 후가 아니라 급격하게 일어날 가능성도 농후하다. 세계기상기구가 최근에 발표한 기후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전 지구적으로 향후 5년 동안 한 달 이상 산업화 이전보다 최소 1.5상승을 경험할 가능성이 70%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됐고, 향후 5년 안에 1.5상승 확률이 20%에 이를것으로 예측됐다. 한 번 배출되면 수 백년에서 수 천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대기중에 머무르는 온실가스의 속성 때문에 그야말로 지금 당장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긴급하고, 위중한 비상 사태이다. 심지어 2018년 극지연구소 북측해빙예측사업단의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탄소 배출 제로만으로도 부족하고, 오히려 마이너스 배출로 대기중의 탄소를 땅속으로 포집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1.5도 상승은 생태계에 결코 안전한 목표가 아닌 것이다. 또한 과연 1.5도라는 온도가 우리가 목표로 삼고 수용해야 할 온도인지도 의문이다. 0.5도 온도가 상승되는 동안 희생될 생명들을 누가, 무슨 권리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뜨거워진 지구 속에서 극한적인 기상현상과 기상이변은 더 빈번해지고 강해질 것이며 일상화 된 폭우와 폭염, 가뭄과 기근, 태풍, 산불의 연쇄 고리 속에 인간 뿐 아니라 수많은 생물종들이 생존기반과 목숨을 잃을 것이다. 곳곳에서 분쟁과 폭력,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 정부와 정치권, 기업들은 비상사태에 걸맞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과감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서 발표한 그린뉴딜에는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배출제로 목표설정이 빠져있다. 더군다나 기후 위기가 많은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된 농업부문에서 가장 먼저 심각한 피해와 희생을 불러옴에도 불구하고, 농업부문의 대책이라는 것이 고작 디지털 인프라 구축작업에 태양광 설치, 공공와이파이 공급이 전부이다. 기후위기는 곧 농업의 위기이자, 먹을거리의 부족과 직결되는 생존의 위기이다. 한국은 OECD 34개국 중 식량자급률이 32위로 최하위에 속한다. 쌀을 제외한 식량자급률 8.9%,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이 3.1% 밖에 되지 않아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 부족에 가장 먼저 심각한 충격을 받을 국가 중 하나이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산업과 일자리를 어떻게 정의로웁게 전환시킬 것인지, 교통부문과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 고민도 제대로 된 계획도 없다. 공기업인 한전은 해외 석탄발전 투자를 강행하고 있다. 여전히 경제성장이 제일 중요한 목표인 그린뉴딜은 대기업과 기득 계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의롭지 못한 정책일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를 진짜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안일함과 절망만을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연과 인간을 끊임없이 착취해 온 산업자본주의체제, 인간중심주의, 원자론적세계관, 성장중심주의, 개발주의, 우월주의이다. 문제의 원인에 대한 절실한 성찰과 전환 없이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바꾸고, 내연차를 전기차로 바꾸는 등의 기술적인 수단만으로는 기후위기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기술적 처방은 또 다른 배제와 차별, 위험을 가져올 뿐이며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생산 규모와 소비 규모를 유지하는 걸 전제하고, 경제성장도 지속하면서 기후위기도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그런 건 이제 불가능하다. 유한한 자연적 수용성 안에서 성장은 이제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윤리적인 한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기후위기를 막으면서 불평등과 경제위기 등도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그린뉴딜은 사기 정책이다. 이제 그만 성장할 수도, 성장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성장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자.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 역시 그저 마스크를 쓰고 방역을 철저히 하고, 지원금 몇 만원 등의 일시적인 대응 수단만으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를 불러오고 확산시킨 산업자본주의의 자연 착취, 야생동물의 거래와 서식지 침범, 자본주의 축산업, 세계화, 신자유주의 무역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감염병은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에게 돌아가 희생과 불평등을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출처: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세계은행 (https://newsroom.posco.com/kr 2019년 11월 29일 포스코 에코 리포트에서 재인용)  

 

우리는 기후위기를 불러온 산업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용기를 내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계급차별, 종차별, 성차별, 세대차별, 지역차별을 넘어 더 좋은 세상을 요청한다. 생산수단과 자본을 독점한 자본가의 이윤증식을 위한 자연과 인간, 생물종에 대한 모든 착취와 지배를 끝내야 한다. 기후위기가 가진 계급적 속성을 외면하고, 성찰하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다면 제일 약하고 가난한 생명들부터 희생당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개발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고 지구상의 많은 생명들과 새로이 관계 맺으며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찾아야 한다.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고 폐기하는 단절된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에너지 생산과 물질 생산이 남긴 쓰레기와 위험, 부담을 약자와 지역, 비인간 생물종, 미래 세대에게 끊임 없이 외부화시키고 전가하는 무책임한 구조를 바로 잡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규정하는 것처럼 무한한 욕망을 가진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무한 경쟁과 욕망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며 자본가가 필요로 하는 허상이다.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만물의 영장이 아니며, 우리에겐 어떤 생물종도 지배하고 착취할 권리가 없다.

 

석탄발전소와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어야 한다. 제주도·새만금 신공항 사업, 대규모 간척사업,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 등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의 모든 국가 폭력과 개발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전혀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지역주민을 무시하고 대규모 생태계 파괴를 가져올 대규모 중앙집중식 에너지사업을 멈추어야 한다. 자동차 이용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도록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할 대중교통 체계를 급직적으로 확대하고, 자동차 도로를 과감하게 줄여 누구나 안전하고 보편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길로 전환해야 한다. 전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업이라는 단일 산업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동물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온실가스를 내뿜는 공장식 축산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고기중독 한국의 식생활이 채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촉구해야 한다. 생산수단과 생산규모를 자본가와 권력가가 아닌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민주적으로 조절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산업과 일자리가 정의롭게 전환될 수 있도록 소규모 지역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생산하고 나누며 자급하고 자족하고 순환될 수 있도록 농업과 물질 생산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구조를 창발해야 한다. 먹을거리, 주거, 의료, 에너지, 교통, 교육 등을 시장의 상품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평등하고 안전하게 보장되고 나눌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하기 위해 자본주의 이윤체제에 저당잡혀야 했던 우리의 노동과 존엄, 자연의 가치를 되살려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본주의체제를 선택한 것이 아니며 이 체제는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면 바꿔야 하고,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생존을 위협하고, 더구나 잘못과 책임이 거의 없이 가난한 이들과 지역, 어린이, 청소년, 태어날 미래세대, 비인간 생물종들의 생존을 위협하며 부담과 희생을 전가하는 잘못된 체제라면 더더욱 바꿔야 한다. 그것은 단지 생존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선 자본주의 체제에게 박탈당한 사랑과 공감의 복원이다.

 

끊임없는 성장과 개발, 발전 이데올로기에 지배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수용성 안에서 생명과 기쁨, 관계, 우애, 평화, 정의가 중심 가치가 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경제성장도 지속하면서 기후붕괴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기후위기에 중간은 없다. 자연은 타협하지 않다. 대기 과학자인 조천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지구에 의존적이지만, 지구는 우리에게 의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는 대규모 생물종의 절멸위기를 가져온 기존의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엄청난 도전과 역사적인 기로에 서있다. 우리에겐 절망과 포기, 부정 대신 새로운 세상을 디딜 용기와 연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