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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55호] Subnautica - 광활한 바다의 끝을 향해 작은 방에서 떠나는 외계 행성 탐사 본문
안보민
1. 방 안에 갇히다
올해 초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아직 코로나가 본격화되기 전이라 새로운 바이러스가 도는데, 메르스 같은 건가? 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게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으레 머릿속에 좀비 게임 몇 가지를 떠올린다. 다잉 라이트의 하란 바이러스, 바이오하자드의 T바이러스 등…. 웃으며 ‘이러다가 진짜 좀비 아포칼립스 열리는 거 아냐?’하고 농담을 던진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포칼립스는 반쯤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큰 변화를 하나 꼽자면 사람을 못 만나게 됐다. 사회적인 동물인 우리 인간들에게 덜컥 주어진 고독 앞에서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는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코로나가 2020년을 어둠 속에 다 묻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 외롭다. 작은 방이 갑갑하다. 카페에서 친구와 공부를 하는 둥 수다를 떠는 둥 하던 일상이, 술집에서 소맥을 한가득 말아 건배하던 시절이 그립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고독을 더 견뎌야 한다.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될 거라는 소식에도 웃을 수가 없다. 미국 백악관 코로나 TF 수장인 앤서니 파우치 NIAID 소장은 세계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2021년 말 이후에나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가량 남은 2020년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를 판에 1년은 더 버텨야 하는 셈이다.
만약 당신이 이미 영화, 드라마, 유튜브에 물릴 만큼 시간을 쏟았다면 당신에게 게임을 해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이미 게임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상반기에 모바일 게임앱 설치 건수가 전년보다 2배쯤 늘었다고 하니 말이다. 다른 수많은 재밌는 게임이 있지만, 만약 시간이 남는다면, 그리고 약간 배짱이 있다면 Subnautica를 플레이해 볼 것을 권한다.
2. 낯선 행성에 혼자
아니 인제 와서 2018년 초에 발매된 게임을? 굳이?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세계관과 스토리, 아름다운 그래픽,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지만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게임성, Subnautica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작이라 불리는 게임은 대부분 다 그렇다. 그런데도 지금 이 시기에 Subnautica를 추천하는 이유는 행성에 갇힌 플레이어 캐릭터의 상황이 방에 갇힌 우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27세기, 우주를 개발하기 위해 떠난 우주선 오로라 호가 행성 4546B에 추락한다. 당신은 간신히 구명 포드를 타고 탈출하지만, 탈출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기절한다. 정신이 들었을 때 당신은 완전히 혼자다. 사방으로는 끝없이 파도가 철썩인다. 저 멀리서 당신을 태웠던 우주선이 불타고 있다. 어안이 벙벙한 당신에게 PDA는 담담하게 말한다.
‘Zero human life signs detected.’
당신은 이 광활한 바다에 혼자 남았다.
3.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처음에는 일단 헤매 봐야 한다. Subnautica가 자랑하는 바다를 봐야 하지 않겠는가. 햇빛이 비치는 얕은 바다를 숨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헤엄치다가, 돌도 줍고 산호 구경도 하다가 정체 모를 괴물에게 습격도 받아보다 보면 대충 이 게임의 정체를 알게 된다. ‘이거, 오픈월드 생존ㆍ제작 게임이구나!’
워낙에 인기 많은 장르인지라 게임을 좀 해본 사람 중엔 이 장르를 안 해본 사람보다 해본 사람이 많다. 많은 생존 게임은 가이드 없이 황야에 플레이어를 던져두고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고 말한다. Subnautica도 얼핏 보면 그런 게임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나 행성 4546B에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있고, Subnautica의 제작진들은 당신이 그 이야기를 알아내기를 바란다.
넓은 바다에서 당신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라디오를 준비했다. 제작진의 의도가 얼마나 투명한지 제대로 된 설비가 거의 없는 구명포드에도 고쳐 쓸 수 있는 라디오가 있다. 라디오의 신호를 부지런히 따라가 구명 포드를 찾아내기를 수없이 반복하겠지만, PDA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호는 감지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자면 당신은 이 바다에 있는 유일한 살아있는 인간이다.
이 행성에 있다 보면 문득 생각이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순간들이 닥쳐온다. 특히 살아있었던 인간들이 남긴 기록들을 확인할 때면, 그래서 이 사람들은 어딨지? 난 언제까지 혼자서 이 바다를 헤매야 하지? 뭔가 열심히 하고 있긴 한데 언젠간 이 행성을 탈출할 수 있을까? 내가 얼마나 온 거지? 얼마나 더 가야 하지? 바다는 이미 질릴 만큼 본 것 같은데 이 게임을 계속해야 하나? 온갖 상념이 찾아온다.
4. 그래도 멈출 수 없어
당신이 그럴 때마다 Subnautica 제작진들은 놀라운 경험들로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다. 일단 스케일이 크다. 큰 것들은 그저 크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갖춘다.
행성의 바다에는 레비아탄으로 분류되는 거대 생물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 거대함에 기가 질려 다가가지도 못한다. 그 거대함 앞에서 플레이어는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 코즈믹 호러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런데도 뒤돌면 공포는 온데간데없고 그게 무엇이었을까 어른어른 생각이 난다. 다시 한번 보고 싶고, 가까이서 보고 싶고, 자세히 보고 싶다. 호기심이 공포를 이기는 순간이 오면 당신은 정체 모를 거대 생명체에게 목숨을 걸고 다가간다. 그들에게 무사히 접근해 스캔에 성공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또 제작진이 안배한 길을 굽이굽이 따라가며 알게 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행성 곳곳에 숨겨져 있지만, 주인공이 행성을 탈출하는데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이 행성에 숨겨진 비밀이다. 이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무엇을 말하던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굳이 한 마디 얹자면 이 행성은 ‘극단적 자기격리’의 행성이다. 어째서 행성이 코로나 시대의 미덕을 갖추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꼭 직접 플레이해보기를 권한다.
Subnautica는 크래프팅 게임으로서는 드물게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미덕을 갖췄다. 충실히 제작진이 의도한 길을 따라왔다면 행성을 떠날 때 당신은 이미 이 외로운 행성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된 후다. 한 점 의구심도 남기지 않고 웃으면서 행성이 보내는 작별 인사에 손을 흔들어 줄 수 있다. 쏘아 올려지는 로켓과,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자. 크레딧은 꼭 마지막까지 보길 바란다. 영화의 쿠키 영상 같은 것이 있다.
엔딩의 여운을 즐기고 싶다면 Subnautica의 시네마틱 트레일러를 보는걸 추천한다. 트레일러를 왜 게임을 하기 전이 아니라 한 후에 보느냐고? 해보면 알게 된다. 트레일러의 모든 장면에서 ‘어, 저거!’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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