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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109호] 이명박 정권의 정체 ‘언론 독재’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무릇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가장 중요한 공론장이다. 공론장이 닫혀있을 때, 민주주의는 질식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소통 부재’를 드러내는 상징이 바로 서울 광화문의 ‘명박산성’이다.

물론, 대한민국 한 복판의 네거리를 가로막아 섰던 명박산성은 촛불항쟁이 수그러든 뒤 사라졌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서울 용산 철거민들의 참사 앞에, 화물노동자들의 절규 앞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행렬 앞에 명박산성은 견고하게 서있다. 더구나 ‘공권력’이 그들을 ‘로마병정’처럼 지키고 있다.    

문제는 권력과 민중의 소통 공간이어야 할 언론이 되레 명박산성을 옹호하는 데 있다. 아니, 공권력을 부추기며 명박산성을 함께 지키는 데 있다. 청와대와 국회를 장악한 한나라당과 여론시장을 장악한 언론권력이 손잡고 아래로부터의 민중 요구를 철저히 억압하고 있는 게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다. 

당장 언론권력이 정치경제 현상을 다루는 보도를 짚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누가 보더라도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한나라당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심지어 보수적 언론학자들이 탄핵방송에 대해 ‘편파방송’이라며 참으로 편파적으로 분석한 보고서에서도 세 신문과 한나라당의 연관성을 적시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언론학회가 낸 ‘대통령 탄핵 관련 TV 방송 내용분석 보고서’(2004)가 그것이다. 보고서는 “언론 매체들은 그들이 대리하는 권력과의 공조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정파적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이른바 빅3으로 불리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는 한나라당의 후원자”라고 서술했다.

한나라당의 계보학


그렇다면 왜 한나라당과 세 신문은 ‘동맹관계’를 맺었을까. 한국 민주주의 전개과정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알다시피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 중심의 신한국당을 이회창 후보 중심으로 이름을 바꿔 ‘신장개업’한 정당이다. 신한국당의 뿌리는 깊숙이 뻗어 있다. 김영삼 정권의 실정과 부패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 이름으로는 대선에 나서기 어려웠던 게 당명을 바꾼 가장 큰 이유다. 신한국당의 전신인 민자당은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기존의 민정당을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자민당과 합당해 만든 정당이다. 본류가 민정당에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렇다면 민정당은 어떤 정당인가. 1980년 쿠데타와 오월학살로 집권한 전두환이 만든 당이다. 민정당이 민주정의당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에 이르면 ‘정치언어’의 기만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물론, 민정당 또한 갑자기 나타난 정당은 아니다. 그 모태는 박정희가 만든 공화당이다.  더 거슬러 가면 공화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잇닿아있다. 결국 당명이 그 시대 권력자에 맞춰 계속 재구성되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승만의 자유당,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이 그것이다.

그런데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은 후보시절부터 당명을 바꾸는 ‘수고’를 했는데도 김대중 에게 패배했다. 한나라당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단 한 번도 야당 경험을 해보지 못한 정당이어서 곧 공중분해 될 정당이라는 전망까지 거침없이 나오기도 했다. 집권자를 중심으로 ‘양지’를 찾던 무리가 야당에 계속 몸담을 가능성이 적을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한나라당과 언론권력의 밀월관계

하지만 한나라당의 해체 전망은 성급한 진단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한국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변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무엇일까? 바로 언론이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비록 김종필과의 연합(DJP)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헌정 사상 첫 평화적 정권 교체였다. 

그래서다. 김대중 정권의 등장은 정당성 없는 권력 주변에 들꾀던 정상배들에게는 정치적 위기였다. 권력과 오랜 세월에 걸쳐 ‘밀월 관계’로 온갖 특혜를 받으며 성장해온 언론들로서도 위기였다. 언론이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 집요하게 ‘지역감정’ 조장은 물론 ‘색깔’을 덧칠해왔기에 더 그랬다. 이미 언론 개혁의 사회적 요구도 언론계 안팎에서 거세게 일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한나라당과 언론권력이 손잡는 것은 필연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해관계가 같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살아나는 과정에서 언론권력은 튼튼한 동반자였다. 동시에 언론개혁의 사회적 압력에 몰리고 있던 언론사에게도 정치권의 한나라당은 기댈 ‘언덕’이었다. 게다가 한나라당과 언론권력 모두 정치활동과 언론활동을 통해 영남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지역정서를 교묘하게 부추기며 ‘악용’해갔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신문사 사주들의 천문학적 탈세 규모가 드러나 대법원 판결까지 났으면서도 그 신문들이 ‘건재’할 수 있었던 까닭도 탈세라는 엄연한 불법 범죄행위를 생뚱맞게 ‘언론 탄압’의 문제로 몰아간 한나라당과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실 언론권력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신문사 진입장벽으로 인한 광고 독과점, 차관 특혜, 세제 혜택, 세무조사 성역과 같은 온갖 특혜를 받으며 대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언론권력은 박정희의 3선 개헌과 유신체제를 적극 찬양하고 나섰으며, 전두환 일당의 오월학살극마저 비호하고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추어올렸다. 다시 대통령 직선제로 바뀌었을 때 도 노태우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그들에게 김대중 정권의 등장이 얼마나 불편했을까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김대중 정권 말기에 불거진 아들들의 비리에 한나라당과 언론권력이 ‘환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언론 개혁에 대해 발언한 노무현 후보가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 더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언론권력과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내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언론은 철저하게 정파 대변기관으로 전락해갔다. 여론시장을 독과점한 언론권력의 도움으로 한나라당은 마침내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장악했다.

언론독재 체제에 저항할 주권혁명의 필요성

문제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한나라당이 국회까지 장악했는데도 언론권력의 정파성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데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해관계가 같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제 위기로 부익부빈익빈이 가속화되는 나라에서 이명박 정권이 극소수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정책을 무람없이 펴나가는 데는 바로 그 소수의 이익을 ‘국민 이익’으로 포장하고 있는 신문권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KBS에 이어 MBC까지 장악하려고 온갖 무리수를 두는 이유도, 신문권력과 재벌에 지상파 방송진출을 허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손잡고 대다수 민중의 이익을 배제해나가는 한국의 정치현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한낱 투표로 이뤄지는 게 아님을 여실히 입증해준다. 기실 언론권력과 갈등을 빚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조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추진한 사실에 주목하면, 그들 또한 언론권력이 설정해놓은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노무현이 걸어간 신자유주의 틀이 세계적으로 파산선고를 받았음에도 되레 더 노골적이고 폭력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자칫 국가적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과 언론권력은 지난 10년 동안 진전되어 온 남북관계마저 파탄을 내는 데도 손잡았다. 

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민중의 자기 통치’라면, 단언하거니와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해가는 데 최대 걸림돌은 공론장을 뒤틀고 있는 언론권력이다. 언론권력이 공권력 사용을 독촉하며 이명박 정권을 사실상 ‘통제’해가는 오늘의 현실을 ‘언론독재 체제’로 개념화할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이 언론권력을 중심으로 ‘집결’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언론독재 체제에 맞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 나오는 민주공화국’을 구현하려면 주권자인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직접 나서야 옳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촛불항쟁에서 확인한 ‘직접 정치’와 주권혁명의 고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