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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138호] 연구/세미나_ 기생충과 전체주의-민주주의

기생충과 전체주의-민주주의

 

 

 정준호 _ 영국 런던대학 위생열대의학대학원 기생충학 석사

 

 

1973년 성의 발생과 진화에 기생충이 중요한 원동력을 제공해왔다는 붉은여왕이론(Red Queen Hypothesis)이 제시된 이래로 외형, 성선택, 행동, 나아가 집단의 조직까지 기생충이 생물의 진화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는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했다. 특히 기생충이 성선택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이론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해밀턴-주크(Hamilton-Zuk) 이론은 건강한 수컷일수록 성선택에 유리한 특성들(화려한 깃털 등)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즉 기생충에 저항성이 높은 수컷이 더 많은 에너지를 성선택에 투자할 수 있으며, 암컷은 이런 특성을 기준으로 짝을 고르게 된다는 이론이다. 더불어 인간적 특성들 또한 진화의 과정에서 나타났음을 지지하는 가설들이 늘어나며(진화심리학, 진화생물학 등) 인간의 문화와 사회성에도 기생충 이론과 진화적 가설을 대입해보려는 시도들이 등장했다.

기생충 압력 이론(parasite stress theory)인간 집단의 문화와 사회성이 과거의 관성으로 지속되고 전파된다는 기존의 시각을 반대하고 있다. 즉 특정 지역에서 나타난 문화는 거주 집단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진화적 전략의 일환이며, 이러한 문제해결에 있어 개인을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선택하거나 거부, 혹은 조정할 수 있는 전략적 개별 행위자로 보고 있다. 물론 개인이 의식적으로 각각의 문화적 특성에 진화적 압력을 계량해 선택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한 사회 전반이나 집단 내 다른 개체(부모, 형제 등)의 영향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넓게 보자면 문화와 사회성 역시 진화의 산물이며, 여전히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가설이다.

감염성 질환의 인간 종의 진화 이후 진화를 주도해온 가장 큰 동력이었으며, 최근까지도 사망과 질병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즉 기생충은 인간의 진화에 있어 주요한 선택 압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기생충-숙주간의 공진화(co-evolution)은 지리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집단 내부인들 끼리는 외부인에 비해 면역학적으로 비슷한 특성을 지니게 됨을 의미한다. 기생충 압력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외부인은 감염원으로서 위험한 존재가 되어가며, 동시에 기생충의 영향을 완화하고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내부인의 중요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기생충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는 보수적 가치가 선호된다. 자민족중심주의가 강해지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며, 안정성을 중시해 새로운 지역으로 진출하지 않고, 타민족 혐오가 심해지며 외부인을 회피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생충과 접촉할 기회가 낮아진다. 이는 대체로 인간의 면역계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생충 위주로 면역계를 활성화시키며, 외부에서 유입된 기생충에 감염되었을 경우 치사율이나 질병 부담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기생충 압력 이론을 정치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는 특히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옛부터 특정 정치체제가 어떻게 나타나 뿌리 내릴 수 있었는지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 주제였다. 초기 연구들은 주로 경제성장이나, 근대화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경제 성장, 혹은 근대화가 일어나면서 민주주의는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는 입장이었다. 기생충 압력 이론의 접근은 기생충의 유병률에 따라 달라지는 내부자와 외부자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기제, 행동, 그리고 상호작용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성향에 대한 기생충 압력 이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기생충 압력은 집단주의를 촉발시킨다. 즉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전체주의적, 인종혐오적, 자문화우월주의적 성향을 가지게 되며, 외부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데 도덕적 역겨움을 느끼기 까지 한다. 이런 외부인들은 권력을 가진 내부인들에게 부적절한 사회 구성원으로 여겨지게 되며,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게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집단주의적 이념은 외부인으로부터 유입될 수 있는 기생충을 차단하고, 내부에서 발생한 기생충 감염의 피해를 최소화 하는 전략이다.

2. 낮은 기생충 압력은 개인주의의 가치를 높이고, 이는 반-전체주의와 외부인에 대한 관용과 믿음으로 이어진다. 진보적 가치들은 외부인과의 상호작용, 교류, 교역 등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둔다. 또한 외부인과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한다.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보면 전지구적으로 민주주의의 정도는 기생충 압력과 음의 상관관계를 가지며, 개인주의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진다. 즉 기생충 압력과 집단주의는 함께 상승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곧 전체주의의 상승과도 이어진다.

3. 기생충 압력과 전체주의/민주주의는 되먹임 고리를 형성하기도 한다. 기생충 압력이 낮아지면 사람들은 개방과 평등 같은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며, 이는 경제적, 사회적 자원이 지역 내에 고르게 퍼지게 해준다. 자원의 분포가 균등해지면서 지역 내 기생충 압력은 추가로 낮아지게 되며, 이는 되먹임 고리를 형성한다. 요약하자면 기생충 압력의 감소는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지며, 민주주의의 확산은 기생충 압력의 추가적 감소로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생충 압력이 상승하면 보수적 가치, 방법, 편견, 불평등이 만연하게 되고, 이는 전체주의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기생충에 의한 사망률과 질병 부담을 더욱 늘리는 쪽으로 이어진다.

기생충 압력 이론에 따르면 한국의 상황은 전체주의가 나타나기에 이상적인 사회였다. 40-60년대까지 한국의 기생충 감염률은 90%를 웃돌았으며, 말라리아, 콜레라 등 다른 감염성 질환도 만연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 ‘기생충’이 질병이 된다는 사실은 대중 사이에서 그렇게 흔한 개념이 아니었다. 회충을 예로 들면, ‘회충을 몽땅 떼어버리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몇 마리 남겨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후 60년대 한국에서 기생충 및 기타 감염성 질환은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으며, 국가적 박멸 대상이 되었다. 대중들은 기생충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사회 구성원 거의 전부가 ‘감염’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면서, 감염의 위협이 인구 집단 내에 퍼져나가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앞서 언급한대로 보수적 가치와 집단주의를 부추기는 되먹임 고리를 형성했을 수 있다. 반면 기생충 박멸 사업이 활발해지고, 보건의료 상황이 개선되며 감염률이 크게 낮아지자 한국은 민주주의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둘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밝혀내기는 쉽지 않겠지만, 분명 흥미로운 상관관계다.

물론 지나친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경계할 필요가 있지만, 기생충이 인간 사회 구조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은 중요한 사실을 전해준다. 바로 인간의 사회와 역사는, 단순히 인간에 의해서만 구성되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은 인간으로만 구성된 닫힌계가 아니라, 수 많은 생물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대한 열린 네트워크다. 우리가 먹고 있는 식량, 우리가 겪고 있는 질병,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구성 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사회 서술에서 무시되고 잊혀져 온 수 많은 생물들 과의 상호작용이다. 인간 중심의 시야에서 벗어난 생태적 역사와 사회의 재구성은, 그래서 우리에게 또 다른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

Thornhill, Randy, and Corey L. Fincher. The parasite-stress theory of values and sociality: Infectious disease, history and human values worldwide. Springer,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