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7.05 17:29

한국인의 대표 감정

 

박권일 _ 사회비평가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대표성이 약하다 보니, 시민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희망을 품지 못한다. 사람들은 결국 내 몫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를 배제하거나, 내 노력을 ‘무효처리’하는 세계에 좌절해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

 

오늘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을 둘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하나는 ‘혐오’, 또 하나는 ‘울분’이 아닐까 한다. 혐오는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알게 된 반면, 울분은 좀 생소할 수 있겠다. 물론 ‘답답하고 분한 마음’이라는, 울분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런데 이것이 공중보건의 테마로 부상한 건 그리 오래지 않았다.

 

통일 후 동독 사람들이 겪은 심리 문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울분’(embitterment)과 ‘외상 후 울분장애’(PTED) 등의 개념이 정립됐다. 이후 세월호 참사 직후 집중상담을 진행한 고려대 한창수 교수, 2018년 ‘한국인의 울분’ 조사를 기획한 서울대 유명순 교수 등의 연구를 통해 울분은 한국 사회에도 점차 알려졌다. 유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4%가 울분 상태에 있고, 중증도 이상의 울분을 겪는 이들이 독일보다 6배 정도 높다고 한다. 혐오 못지않게 울분 또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울분은 단순한 분노와 다르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 혹은 ‘나의 노력과 기여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지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한 상태다. 요컨대 공정성에 대한 인식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다. 반복되는 실직, 직장의 부당한 대우 등이 울분을 일으키는 흔한 사례다. 한창수 교수는 ‘울분을 통해 본 한국인의 정신건강 세미나’에서 “우울증은 약으로 상당한 효과를 보지만, 울분장애는 약으로 치료가 잘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혐오와 울분은 표출 양상이 다르지만 사회적 배경은 같다. 비유하자면 ‘의자놀이’다. 엄청난 특권을 보장하는 ‘소파’가 있고, 최저한의 존엄을 보장하는 ‘의자’가 있다. 소파에 앉지 못하면 적어도 의자에라도 앉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물을 뒤집어쓰며 평생 바닥을 기어 다녀야 한다. 문제는 소파와 의자의 수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무리 단속하고 감시해도, 소파·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반칙은 필연적으로 양산된다.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친다. 연대와 협력은 예외 상태가 된 반면, 각자도생의 지옥이 정상 상태가 된다. ‘성장’이나 ‘진보’는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었다. 오직 생존이 지상목표이기에 사람들은 남을 깎아내리거나 자신의 피해자성을 증명하는 데 몰두한다.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대표성이 약하다 보니, 시민들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갈 희망을 품지 못한다. 자기계발에 몰두해 보기도 했지만 자기계발서가 설파하는 성공에서 나는 늘 예외다. 집단해법도 개별해법도 모두 실패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결국 내 몫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를 배제하거나(혐오), 내 노력을 ‘무효처리’하는 세계에 좌절해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울분).

 

한국은 오래전부터 ‘소용돌이’ 사회라 불릴 정도로 중앙 쏠림 현상이 심했다. 위계서열에 대한 집착과 우열비교 문화도 어떤 나라보다 강했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 이후의 격변은 사회 전체의 경쟁 압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만연한 혐오와 울분은 그 과정이 오랜 기간 축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혐오와 울분에는 또 하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인지부조화, 쉽게 말해 기대와 현실의 괴리다. 이를테면 혐오는 ‘내가 저들보다 우월하다’는 기대와 ‘인간은 평등하다’는 근대적 상식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한편 울분은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대와 ‘실제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 사이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은 기대를 현실에 부합하게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기대에 부합하게 바꾸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소위 ‘태극기 부대’는 ‘박근혜 무죄’라는 기대와 ‘박근혜 탄핵 및 수감’이라는 현실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엉뚱한 방식으로 해결했다. ‘박근혜 무죄’라는 기대에 맞춰 현실을 재구성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의 범죄는 모두 ‘촛불 든 빨갱이들의 사악한 음모’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고 혐오와 울분이라는 인지부조화를 해결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혐오의 경우, 기대를 바꿔야 한다. 즉, 내가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울분의 경우, 기대에 부합하도록 현실을 바꿔야 한다. 즉, 지금보다 더 공정한 세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막막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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