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

[156호]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 속 학교 폭력 보도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 속 학교 폭력 보도

박우승 기자

 2020년 교육부 통계 조사에 의하면 초, 중, 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약 2만 7천 명이며 학교 폭력을 목격한 경험은 무려 6만 7천여 명에 달한다. 학교급별로 학교 폭력 피해, 목격률이 2019년도에 비해 떨어졌다고는 하나 이것은 단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생긴 감소율이라고 볼 수 있다. 지속되는 코로나19 상황 속 미디어 환경에서 학교 폭력은 온라인 상으로 번져 나가며 사이버 학교 폭력은 2019년도 대비 3.4% 증가하였고, 집단 따돌림 또한 2.8%로 증가하였다. 특히 집단 따돌림과 언어폭력이 중학교, 고등학교보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높았다는 부분에서 학교 폭력은 점점 더 어린 연령대에서 발생하고 있고 여전히 그 수준이 심각하여 많은 학생들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최근 유명 쌍둥이 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의 학교폭력 사건 보도 이후 스포츠 선수, 배우, 가수 등 다양한 분야의 셀러브리티들에 대한 학폭(학교 폭력) 폭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개인의 문제를 사회 전반에 공론화시켜 알리는 형태인 2016년 ‘미투’ 운동과 2018년 ‘빚투’ 운동과 비슷한 양상의 학폭 폭로는 일종의 시대적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바라보고 있다.

 

 사실 학폭 폭로는 과거에도 존재했었다. 주로 그 대상은 연예인 지망생,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 등 인기와 관심몰이를 얻기 시작한 출연자들 정도였으나 2019년도에는 ‘프로듀스X101’에 출연 중이던 윤서빈, 밴드 ‘잔나비’의 건반인 유영현, 걸그룹 ‘씨스타’ 출신 가수 효린 등의 기성 셀러브리티로 폭로의 범위가 점점 넓혀졌다. 2021년 2월 초에는 유명 쌍둥이 배구선수 이다영 이재영에 대한 학교 폭력 논란 이후 ‘학폭 미투’는 걷잡을 수 없는 불처럼 체육계에서 연예계로 번지게 되었다.

 

치열한 입장 대치 속 혼란

 

 학폭 폭로 사례는 주로 크게 3가지 사례 행태로 나뉜다. 첫째는 셀러브리티가 학폭에 대해 인정한 사례, 둘째로 치열하게 공방을 펼치는 사례, 마지막으로는 허위 루머로 판명 난 사례이다. 먼저 첫 번째 사례인 학폭 논란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는 입장을 발표한 셀러브리티들은 ‘미스트롯 2’의 준결승 진출자 진달래, JYP 소속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현진, ‘달이 뜨는 강’의 주연으로 출연 중이던 배우 지수 등이 있다. 두 번째 사례인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양 측이 치열하게 맞서며 법적 공방을 예고한 셀러브리티들은 배우 조병규, 그룹 ‘(여자)아이들’의 수진, 배우 박혜수, ‘I.O.I(아이오아이)’ 출신 김소혜, 축구선수 기성용 등이 있다. 마지막 사례의 셀러브리티들은 개그우먼 홍현희, 그룹 ‘세븐틴’의 민규, 배우 서신애, 가수 현아 등 학교 폭력에 대한 폭로가 허위 사실 혹은 루머로 판명난 경우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보았듯이, 각 입장들이 치열하게 뒤엉키며 쏟아지는 보도들 속에 대중들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이 어떤 부분 때문에 일어났는지에 대해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성이 있다.

 

서사 주체의 변화와 밈적인 유행

 

 2021년, 밈처럼 유행하고 있는 학폭 폭로는 주로 언론 보도에 의해 일차적으로 보도되는 것이 아닌 개인에 의해 먼저 보도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현 보도 환경은 과거의 보도 환경과 사뭇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오로지 작가, 기자 등을 비롯한 ‘선택된 자’들만이 이야기와 보도를 생산할 수 있었다. 대중들은 과거에는 ‘선택된 자’들을 통해 자신들의 창작에 대한 욕망을 대리 만족하며 일종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러나 현재에는 디지털 시대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즉 대중들은 자신들의 욕망의 직접 해소가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규칙과 제약이 없는 공개적인 온라인 플랫폼에 필터링과 팩트 체크가 되어있지 않은 글들이 온라인상에 마구잡이로 던져지고 있다. 

 

 대부분의 학폭 보도는 주로 네이트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커뮤니티, 소셜 플랫폼에서 일차적으로 폭로된다. 공유재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미디어의 특성상 폭로 글은 순식간에 각종 플랫폼과 연동, 실시간으로 퍼져 나가며 이슈화가 된다. 언론 매체들은 이슈화가 된 이야기들 앞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살피며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2차 기사 보도를 내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

 

‘살라미식 보도’를 통한 이슈몰이식 공개 재판

 

 특히 이슈몰이식 학폭 보도를 통해 페이지 뷰 장사를 하는 언론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연옥 속에서 서로 진흙탕 보도 싸움을 하며 자신들의 기업 가치 올리기에 급급해 있다.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적극적으로 얻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언론은 ‘살라미식 보도’를 하고 있다. 살라미식 보도란, 마치 딱딱해서 얇게 썰어 먹는 소시지인 살라미(salami)처럼 폭로 글을 단편적으로 쪼개어 핵심적인 내용보다 쓸데없고 불필요한 보도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살라미식 보도’는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양의 보도를 양산해내며 이슈를 증폭시키고 있다. 또한 언론은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최소한의 인권 보호는 안중에도 없는 대중들의 공개식 재판을 제공하며 사건 당사자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제공하고 있다.

 

 사회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주장한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AIE) 중 하나인 커뮤니케이션 AIE(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언론 등)는 대중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치이자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언론 보도를 장치이자 도구로 보았을 때, 언론 보도 자체의 존재나 행위가 문제시되거나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로서의 언론 보도에 자본주의적 행위가 밑받침되거나 주가 된다면, 언론 보도는 근본적인 사회의 문제를 짚어내지 못할뿐더러 되려 오염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언론을 어떤 사유로 사용함에 따라 언론이 흉기가 될 수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단순 개인 폭로 글이 아닌 언론은 중립성과 공공성을 지키며 이슈 몰이식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보도가 아닌 ‘학교 폭력’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대해 앞장서서 보도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언론이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단순 연예 가십거리가 아닌 학교 폭력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트라우마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폭로에 대해 확실한 정황과 사실 검증 등의 적절한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함과 동시에 공정하고 올바른 사회를 위해 사적 이윤을 최소화하고 사회의 어두운 문제점들을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대중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