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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사랑, 어디까지 가봤니? 24기 영식과 옥순이 보여준 우리 연애의 민낯

thxzomarch 2025. 4. 21. 09:00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상담심리학과 박사과정 김현주

 

논문과 세미나에 치여 숨 가쁜 하루를 보내는 대학원생이라면 나는 솔로’ 24기를 잠시 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영식이 옥순에게 너랑 있으면 바보가 된다며 눈물로 고백한 장면, 그리고 옥순이 말은 많았는데 진심이 안 느껴졌다며 선을 그은 대답. 영식과 옥순의 극적인 로맨스는 갈등과 설렘, 미련이 얽히며 우리를 화면 속으로 끌어당긴다. 예능 속 한 장면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에피소드는 대학원생인 우리에게도 묘하게 와 닿는다. 그래서,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의 사랑에 대한 고찰과 정신역동적 렌즈를 통해 영식과 옥순, 그리고 2025년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사랑, 어디까지 가봤니?

 

<나는 솔로> 24기 영식과 옥순. 출처=<나는 솔로> 유튜브 갈무리

 

오토 컨버그의 사랑 이론: 사랑에 빠지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

정신분석가 오토 컨버그는 사랑을 빠지는 능력(falling in love)’유지하는 능력(maintaining love)’으로 나눈다. 영식은 빠지는 데 탁월하다. “너랑 있으면 바보가 된다며 옥순에게 올인하는 용기는 순정 그 자체다. 그의 눈물은 사랑에 뛰어드는 순간의 강렬한 감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지하는 단계에선 흔들린다. 옥순이 광수를 선택하자 네가 부담스럽다면 거리를 둘게라며 물러섰다가 금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다가간다. 그의 사랑은 열정적이지만 불완전하다.

 

옥순은 반대다. 그녀는 빠지는 데 신중하다. 여러 남성들의 구애에도 최종 선택에서 누구도 택하지 않았다. 이 신중함은 망설임이 아니라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자신을 지키려는 의지로 읽힌다. 영식과 옥순은 사랑의 두 축에서 엇갈린다. 한쪽은 열정으로 뛰어들고 다른 쪽은 현실을 가늠하며 물러선다.

 

대학원생인 우리는 이 엇갈림을 잘 안다. 새벽까지 논문을 붙잡고 이걸 언제 끝내냐는 한숨과 그래도 해냈어라는 뿌듯함 사이를 오가듯 연애에서도 설렘과 안정의 균형을 고민한다. “왜 이렇게 바빠?”라는 연인의 말에 부담이 앞서고 연락이 뜸해질수록 불안이 커진다. “주말에 데이트할까?”라는 제안에도 과제 끝내고 생각해볼게라며 망설이는 모습은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우리다운 것 같다. 영식과 옥순은 화면 속에서 그 인간적인 고민을 비춘다.

 

Love-Hate 관계: 설렘과 좌절 사이

영식과 옥순의 관계는 Love-Hate의 양가성(ambivalence)을 드러낸다. 영식은 난 너만 바라봤잖아라며 순정을 드러냈지만 옥순이 광수를 선택하자 그 애정이 좌절로 뒤바뀐다. 그의 눈물은 사랑과 실망이 뒤섞인 순간을 보여준다. 옥순 역시 영식의 구애에도 진심이 안 느껴졌다며 거리를 둔다. 이 미묘한 밀당은 기대와 긴장을 오가게 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감정이다. 교수님의 좀 더 고민해보면 좋겠네라는 말에 불안해졌다가 이 방향으로 가면 괜찮을 거야라는 피드백에 안도한다. 연애에서도 널 좋아해라는 고백에 심장이 뛰다가 근데 요즘 정신없어서라는 말이 나오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연인과 맛집에서 밥을 먹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과제와 마감에 불안이 스며든다. 영식과 옥순의 불완전한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닮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투사적 동일시: 나의 불안을 너에게로,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영식과 옥순의 상호작용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를 잘 보여준다. 이는 자신의 억압된 감정을 상대에게 투사해 그 감정을 느끼게 하고 그 반응을 통해 다시 자신의 감정을 경험하는 방어기제다. 영식은 난 더 적극적이었고, 너만 바라봤잖아라며 헌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옥순이 진심이 안 느껴졌다고 거리를 두자 네가 날 택하겠다고 했잖아라며 불안을 그녀에게 전가한다. 옥순의 반응은 그 불안을 증폭시키고 영식은 자신을 조연으로 규정하며 피해자 서사에 빠진다.

 

옥순도 이 역동에 참여한다. 영식의 열정이 부담스러웠던 그녀는 진심이 없다는 말로 그 감정을 돌려줌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 하지만 영식의 상처는 그녀에게 미묘한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이 순환은 양방향으로 작동하며 두 사람 모두 상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재경험한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넌 왜 날 이해 못 해?”라며 연인에게 불안을 떠넘기고 나도 바빠라는 답에 더 불안해진다. 세미나 발표 전 너 도와줄 거지?”라며 동료에게 기대지만 나도 준비하느라 정신없어라는 반응에 더 초조해진다. 교수님께 이 주제로 괜찮을까요?” 물으며 불안을 떠넘겼다가 글쎄, 고민해보라는 답에 혼자 끙끙댄다. 영식과 옥순은 이 불완전한 인간관계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세대적 맥락 속 우리: 이제 둘째를 가집시다 vs. 에어프라이어 짱!

오늘날 연애 예능이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SNS에서 큰 공감을 받은 밈 하나를 보자. 부모님 세대는 26세에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고 30대에는 집을 사고 아이들의 교육과 인프라를 고민했다. 반면, 오늘의 30대는 에어프라이어와 같은 소소한 즐거움과, 라면만 먹더라도 하고싶은 걸 누리겠다며 자유와 경제적 제약 사이에서 줄타기 한다.

세대별 가치관 변화를 보여주는 밈(meme).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부모님 세대의 결혼과 출산은 20대 중반의 보편적 경로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2-30대는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고용 시장,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가치관 속에서 살아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3.7, 여성 31.3세로 부모님 세대보다 늦다. 1인 가구 비율도 34.6%로 증가하며, 결혼과 가정이 더 이상 필수가 아닌 시대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결혼을 필수로 보는 이는 18%, 2083%3081%선택이라 답했다.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과 ‘202312월 인구동향

* 한국리서치. 20245월 발표, https://hrcopinion.co.kr/archives/29975

 

이 변화는 연애에도 스며든다. 사랑은 가정을 위한 전제가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탐색하는 선택지다. 대학원생인 우리에겐 더 뼈저리다. 조교비와 알바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연애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로 밀린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결혼? 집값 생각하면 어지러워라며 웃고 연애라도 하고 싶다며 한숨 쉰다. 영식의 직진은 부모님 세대의 책임지는 연애를 떠올리지만 그의 눈물은 오늘날의 불확실성을 담는다. 옥순의 거리두기는 결혼 압박이 줄어든 여성의 선택을 보여준다. 그녀가 아무도 택하지 않은 건 나 좀 더 고민해볼게요라는 우리의 망설임과 닮았다.

 

2025년 우리에겐 연애가 논문, 취업, 경제적 안정과 경쟁한다. 누군가는 사랑이 필요해라며 뛰어들고 누군가는 지금은 때가 아니야라며 물러선다. “연애하면 논문 쓸 시간이 줄어들 텐데라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조차 완벽하지 않아 더 우리답다. 영식과 옥순은 그 두 갈래를 상징한다. 우리는 어디쯤 서 있을까?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컨버그의 렌즈: 성숙함을 향하여

컨버그는 사랑을 단순한 열정이나 이상화로 보지 않았다. 그는 초기 단계의 사랑(immature love)과 성숙한 사랑(mature love)을 구분하며, 진정한 사랑은 상호 존중과 현실적 애착, 상대의 결점까지 수용하는 능력에서 피어난다고 봤다. 영식의 사랑은 열정과 이상화로 가득하다. “난 너만 바라봤잖아라는 고백은 강렬하지만 옥순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은 사랑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감정이 틀린 건 아니다. 그저 사랑의 한 모습일 뿐이다.

 

옥순의 신중함은 다르게 보인다. 영식의 구애를 설렘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점검하며 거리를 둔다. “진심이 안 느껴졌다는 말은 상대를 이상화하기보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암시한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을 회피한 건 상대의 결점을 수용하며 관계를 가꿀 준비가 덜 된 탓일 수도 있다. 영식과 옥순은 성숙한 사랑으로 가는 과정의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대학원생인 우리도 이 과정에 있다. “널 좋아해라는 말에 심장이 뛰다가도 상대가 바빠서 정신없어라고 하면 너만 바쁜 거 아니야. 나도 바빠라며 물러선다. 상대의 결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내가 왜 이걸 참아야 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반대로, 누군가를 너무 이상화한 나머지 실망에 무너지기도 한다. 컨버그의 렌즈로 보면 우리는 사랑의 초기 단계와 성숙함 사이를 오간다.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현실은 녹록치 않다. 현생에 치여 정신없는 와중에도 연애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누굴 만날 여유가 있나?” 자문하며 소개팅 제안을 망설인다. “가볍게 만나도 되지 않을까?” 싶어 영식처럼 뛰어들고 싶다가도 옥순처럼 신중해진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고민이 드러난다. “연애하고 싶긴 한데 돈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라는 푸념, “결혼은 모르겠고 그냥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싶다는 소소한 바람, “사랑하려면 내가 먼저 안정돼야 할 것 같아라는 고백까지. 사랑은 우리 곁에 있지만 그 속도는 시시각각 달라진다.

 

사랑,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여정

2025년 봄, 캠퍼스는 벚꽃으로 시끌벅적하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를 주제로 떠든다. “영식처럼 불타오르고 싶다는 이도 옥순처럼 신중하고 싶다는 이도 있다. “대학원생이 연애하려면 시간 관리, 체력 관리부터 잘해야지라는 농담에 웃지만 그 속엔 진심이 담겼다. “사랑하려면 내가 먼저 괜찮아져야 할 것 같아라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Love-Hate의 양가성, 투사적 동일시, 세대적 변화, 그리고 컨버그의 사랑 이론은 우리의 내면과 현실을 비춘다. 부모님 세대에 연애는 가정을 위한 준비였지만 지금은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탐색하는 여정이다. 영식과 옥순을 보며 학업, 경제적 압박, 연애의 균형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설렘을 공감한다. 그들은 각자의 속도로 관계와 성장을 탐색하며 우리에게 사랑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다음 에피소드를 기다리는 마음처럼 사랑은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다. 벚꽃 아래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사랑, 서로를 통해 무엇을 배울까? 그 불완전한 순간들이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빚어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