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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헌 옷을 버릴 때 먼 나라의 아픔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

thxzomarch 2025. 4. 21. 09:00

한겨레21 박준용 기자

 

동네 헌 옷 수거함은 항상 투입구까지 옷이 꽉 들어차 있다. 낡은 옷을 버리러 갈 때마다 의문이 들었다. ‘이 옷들은 다시 입는 걸까, 아니면 버려지는 걸까.’ 의문이 강화된 건 오스트레일리아 언론 에이비시(ABC)와 영국 비비시(BBC), 케이비에스(KBS) 환경스페셜 등에서 가나의 아크라 해변에 거대한 헌 옷 쓰레기 산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본 뒤부터다. 기부 또는 수출하는 형태로 가나로 옷이 향하는데, 40%는 중고 시장에 가지도 못하고 버려진다. 옷을 보낸 나라는 미국 등 선진국이다.

 

박준용 한겨레21 기자가 헌 옷을 서울 마포구의 한 의류 수거함에 넣는 모습. 한겨레 제공

 

헌 옷의 최후는 밝혀진 적이 없다

한국의 옷도 마찬가지 운명인 걸까. 통계는 이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 국내 통계에서는 연간 버려지는 옷들이 대부분 재활용되는 것으로 나온다. 이는 헌 옷 수출이 재활용으로 집계되어서다. 헌 옷은 공식통계에서 해마다 30t 정도 수출된다. 이는 미국, 중국, 영국,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에 해당한다. (2022BACI 국제 무역 통계) 옷은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캄보디아(2023년 한국무역협회 자료) 등으로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나라에서 어떻게 재활용되는지는 밝혀진 적이 없다.

 

그래서 취재팀은 옷의 최후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추적기를 부착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플라스틱 등 폐기물에 추적기를 부착한 해외 언론과 연구 등을 참고삼아 아이디어를 짰다. 전국의 곳곳의 헌 옷 수거함에 추적기를 단 헌 옷을 넣고, 수개월 간 이동 경로를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았다. 먼저 알맞은 추적기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해외에서 작동하는 GPS 장비는 개당 수백만원이었다. 절망 속에서 우연히 갤럭시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작동하는 스마트 태그가 국외에서도 잘 작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마트태그는 GPS를 쓰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스마트폰 사용자가 있으면 이 휴대폰을 타고 국외에서도 위치 추적이 된다. 가격도 개당 2만 원대로 저렴하다. 이 추적기를 기반으로 저렴한 GPS 일부를 임대해 총 153의 추적기를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에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을 넘으니 또 다른 산과 마주했다. 추적기를 옷에 부착해야 했는데, 접착제로는 잘 붙지 않았다. 머리를 맞댄 취재팀은 옷마다 올을 뜯어 추적기를 넣고, 다시 박음질하는 방법을 택했다. 20247월부터 9월까지 전국 곳곳의 수거함에 옷을 넣고, 4개월을 추적했다.

 

스마트 태그로 의류 위치추적을 하는 모습. 한겨레 제공
추적기를 옷에 넣고 바느질하고 있는 취재팀. 한겨레 제공

 

 

규제 피해 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미로 이동한 헌 옷

의류 수거함에 넣었던 헌 옷에 달린 추적기는 국외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2025210일 기준으로는 말레이시아 11, 인도 9, 필리핀 6, 인도네시아·볼리비아·타이 각 2, 일본·우간다·나이지리아·가나·페루 각 1개 순이다. 11개국에 37벌이 발견됐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 옷이 향한 셈이다.

 

특히 옷들은 헌 옷 수입 금지 국가로도 이동했다. 개발도상국은 자국의 제조업 성장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헌 옷 수입을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 20248월 서울 도봉구의 수거함에 넣은 티셔츠 한 벌이 3개월 뒤 헌 옷 수입 금지국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됐다. 6벌이 이동한 필리핀, 신발 한 켤레와 셔츠 한 벌이 이동한 볼리비아, 모자 하나가 이동한 페루도 모두 헌 옷 수입 규제 국가다. 이 결과를 보면, 공식 자료만 집계되는 국내 헌 옷 수출 통계는 실제와 거리가 있는 셈이다. 옷들은 말레이시아와 칠레 등 헌 옷 수입 허용 국가를 거쳐 수입 금지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헌 옷의 국내외 이동 경로. 한겨레21 갈무리

 

 

추적기가 향한 곳의 상황을 국내에서 쉽게 알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취재팀은 직접 추적기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먼저 찾은 곳은 헌 옷의 수도라고 불리는 인도 파니파트. 단일 도시로는 가장 많은 5벌이 향한 곳이다. 파니파트는 세계 각국에서 하루 250t 이상의 헌 옷이 수입해 재활용하는 산업이 발달해 있는 도시다.

 

 

인도 파니파트의 공터에서 불타는 의류들. 이 중에 한국 헌 옷도 있다. 한겨레 제공

 

 

우리가 보낸 헌 옷으로 인도·타이 주민이 아프다

이 도시에서 수입한 옷은 원칙적으로 실로 만들어 카펫이나 커튼 등을 만든다. 하지만 20241025일 이 도시를 찾은 취재팀은 이런 재활용 과정을 따라가지 않는 옷도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인구 60만 명 규모 도시 곳곳의 하늘은 낮에 자주 컴컴해졌다. 취재팀이 찾은 300남짓 공터에서는 200은 넘어 보이는 옷더미가 불타고 있었다. 공터에 아무렇게나 파묻힌 옷을 지나가던 소 떼가 뜯어 먹기도 했다. 이곳은 매립지도 소각장도 아니다. 공장주들은 재활용하지 않는 헌 옷을 불법적으로 불태우고 매립하는 셈이다. 지역 주민은 이런 공터가 10개 이상 더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취재팀은 타고 남은 한국 옷 상표들을 찾아냈다.

 

인도 파니파트의 표백공장. 한겨레 제공

 

이 뿐 아니다. 한국이 보낸 의류를 포함해 도시 헌 옷의 재활용 공정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헌 옷을 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옷의 색깔을 빼는 작업이 필요하다. 표백공장은 이 작업에 독성 물질이 든 화학 용수를 쓴다. 공장주들은 시 당국의 단속을 피해 폐수를 대량으로 인근 하천에 흘려보낸다. 방류지점 인근 심라구지란 마을은 이 폐수로 인해 폐허가 됐다. 취재팀이 만난 크리산 랄 샤르마(75)는 이 폐수가 흘러온 탓에 혈액암을 앓고 있었다. 이 마을의 의사는 마비 증세, 폐 질환, 호흡기 질환, 심각한 피부병을 겪는 이들이 400여 명이라고 했다. 전체 마을 인구의 10%가 질병을 겪는다는 얘기다.

 

파니파트 헌 옷 표백 공장 노동자 또한 독성 물질에 노출돼 있는데, 아무런 보호장구도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취재팀이 찾은 표백 공장에는 독성 물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노동자 할림(25)약을 먹으면서 일한다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표백 노동자는 공장 안에 오두막을 짓고 가족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할림의 세 살배기 딸 하마라는 독성 물질이 묻은 헌 옷 위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한국의 헌 옷은 파니파트의 환경과 사람을 망가뜨리는 데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헌 신발 두 켤레가 향한 타이 아라냐쁘라텟에서도 환경오염이 일어나고 있었다. 헌 신발들은 타이-캄보디아 국경시장인 롱끌르아로 이동했고, 절반 가까이 팔리지 않고 버려진다. 취재팀이 찾은 인근 쓰레기장은 나날이 규모가 커지고 있다. 특히 헌 옷과 헌 신발들이 매일 1t씩 밀려들어온다. 쓰레기장은 침출수가 흐르고 있었다. 쓰레기들이 발생시키는 유독가스로 인해 인근에는 화재가 자주 난다. 매립지 화재는 이산화황을 유발해 인근 주민의 암 발병률을 높인다.

 

한국에서 버린 헌 신발이 이동한 타이 아란야쁘라텟의 매립지. 한겨레 제공

 

대량생산 책임’ H&M이 수거한다던 옷은 우간다로

이렇게 우리가 입은 많은 헌 옷이 개발도상국으로 향하는 데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자라(ZARA)와 에이치앤엠(H&M)으로 대표되는 패스트패션’, 중국 이커머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울트라 패스트패션은 압도적인 규모의 옷을 저가에 생산한다. 트렌드를 위해 품질이 낮은 옷이 생산되고, 재고와 헌 옷이 개발도상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일부 패스트패션 기업은 이런 논란을 인식해 자체적으로 옷을 수거하는 친환경 정책을 편다. H&M수거된 물품 중 다수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팀은 이런 H&M 친환경 정책 일부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취재팀은 서울에 한 H&M 매장 내 수거함에 추적기를 단 헌 옷을 넣었는데, 5개월 만에 아프리카 우간다로 향한 것으로 확인됐다. H&M은 이 의류를 두고 글로벌 모기업의 규정에 따라 재활용한다고 해명했으나 매립·소각될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린워싱’(친환경과 거리가 있음에도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행위) 논란이 있는 행위인 셈이다. 해당 옷을 포함해 H&M 매장의 수거함에 넣은 의류 6벌을 중 3벌이 개발도상국으로 향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 국가 도입 중인 재활용 책임제’, 갈 길 먼 한국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먼저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의류 제조사가 생산한 의류의 폐기와 재활용 비용을 내는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EPR) 도입이 시급하다. 정부는 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을 맡았지만, 더는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반면 유럽 국가는 이 제도를 도입했거나 도입 논의를 진행 중이다. 특히 프랑스는 2007년 의류 EPR 제도를 시작해 의류 회사가 의류폐기물 처리와 재활용에 관한 비용을 부담하도록 제도화했다. 중고 섬유의 경우 재활용률을 2028년까지 90%로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발생한 헌 옷을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한 통계와 디지털 관리 체계 도입도 필요하다. 헌 옷이 민간 회사 등을 거쳐 처리되다 보니, 어떤 경로로 어떻게 이동하는지 관리되지 않는다. ‘폐의류 처리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한국기계연구원)정확한 폐기물 발생량 통계는 폐기물관리 정책수립의 기본 자료이므로 폐의류 발생량이 정확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의류 폐기물 관리 체계가 확립되면, 의류 제조사에 쓰레기 문제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길도 열릴 수 있다. 아울러 헌 옷을 모아 친환경적 방법으로 재생산하거나 건설자재로 활용하는 등 연구에 지원도 필요하다.

 

옷 소비문화도 바뀔 필요가 있다. 한국 패션 시장 규모는 496천억 원(트랜드리서치, 2024)에 달한다. 옷을 쉽게 사다 보니, 버리는 일도 많다. 옷을 많이 사기보다는 다시입다연구소의 ‘21%파티처럼 입지 않는 옷장 속의 옷을 교환해서 입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망가진 옷은 수선해 입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와 연결된 먼 나라의 아픔

취재팀의 헌 옷 추적 프로젝트는 우리가 버린 옷이 곧 먼 나라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나간 과정이었다. 특히 세계 헌 옷 수출 5위 국가 한국은 그 아픔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패션 강국한국은 이 문제에 이토록 무심해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