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12.07 17:03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헌법에 위반된다1)


 

임지봉 _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교육과 법률유보의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기본권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즉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를 지지만 중요한 공익을 위해 필요부득이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도 기본권의 제한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라는 의미에서 이 원칙은‘법률유보의 원칙’이라고 불린다. 법률유보의 원칙은 대단히 중요한 헌법상의 원칙이다. 첫째, 법률유보의 원칙은‘국민에 의한 국민의 지배’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민주주의원리와 연결된다. 임명된 권력인 행정부 공무원들이 만든 행정명령이나 행정규칙 등이 아니라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률, 즉 ‘국민이 만든 법률’에 의해서만 국민 스스로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법률유보의 원칙은 법치주의원리와도 닿아 있다. ‘법률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 기본권도 ‘법률’에 의해서만 제한가능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부가 만든 행정명령이나 행정규칙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법률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행정부에 의한 지배’가 되어 위헌이 된다. 특히 우리 헌법은 제31조 제6항을 통해 ‘교육의 영역’에서 이러한 법률유보의 원칙을 한번 더 강조하고 있다.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교과서 제도를 포함한 ‘교육제도 법률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지니는 위헌성

 지난 3일, 국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고시’를 통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의 국정화가 단행되었다. 이에 대해 아직 국정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현 상황에서 이를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가 높은 위헌성을 가진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국민의 여러 기본권들을 제한한다. 첫째,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제한된다. ‘ 교육받을 권리’로 인해 중∙고등학생을 포함해 모든 국민은 나면서부터 교육을 받아 학습하고 인간적으로 발달∙성장해 나갈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받을 권리’의 효율적 보장을 위해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제도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단일화된 국정교과서에 의한 역사교육은 이 중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되어 중∙고등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한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란 교육이 국가권력이나 정치세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의미하는데, 단일화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가가 만든 단 하나의 교과서에 의한 역사교육이 이루어짐을 말하므로성장과정에 있는 어린 학생들에게 특정한 사상 주입을 강제하는 교육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1992년 11월 12일의 교육법 제157조에 대한 결정에서 교과서가 국정화된다면 학생들의 사고력이 획일화될 수 있고 필요 이상으로 국가의 입장이 강하게 반영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면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면서 국사 과목은 국정화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미 선언한 바도 있다. 둘째, 중∙고등학생의 교육받을 권리의 제한은 동시에 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 제한도 된다.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바에 의하면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천부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셋째, 역사 교사들의 ‘교육의 자유’도 제한된다. 이것은 헌법 제31조제4항의 ‘교육의자주성’과 관련되는데, ‘ 교육의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육내용과 교육기구가 교육자에 의해 자주적으로 결정될 것이 요구된다. 어떤 역사교과서를 교과서로 선택해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야말로 중요한‘교육내용’의 결정사항이므로, 하나의 국정 역사교과서만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교사들의‘교육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글을 맺으며


 다시 법률유보의 원칙으로 돌아가자. 국정 역사교과서가 합헌이기 위해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 부모의 ‘교육권’, 역사 교사의 ‘교육의 자유’등 여러 기본권들을 제한하는 조치가 ‘법률’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행정부의 행정규칙에 해당하는 ‘고시’로 단행되었다. 국민 기본권을 제한하는 중요한 조치를 ‘법률’이 아니라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 행정부 내의 ‘고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완성된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보기 이전에, 국정 역사교과서 시도 자체가 높은 위헌성을 지니는 이유다. 더욱이 고시 확정 하루 후인 4일에 국사편찬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정신에 입각한 교과서 만들겠다고 공언한 것은 아이러니다. 이미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자체가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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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필자가 11월 12일자 석간 내일신문에 실은 컬럼인 “국민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의 위헌성”을 수정∙보완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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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12.07 16:55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사 국정화와 ‘중세 대한민국’

 

계승범 _ 사학과 교수

 

 

교과서 국정화: 국가주의 강화 선언의 결정판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헌정질서’니‘국론통일’이니‘자유민주체제’니 ‘태극기’니 하는 단어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에 엄정히 대처할 것을 선언했으며, 검찰총장도 자유민주 체제의 수호를 검찰의 사명으로 강조했다. 대통령의 국론통일 강조는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얼마 전에는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세력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행정자치부에서는 국경일에 일반 가정(아파트)의 태극기 게양을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언행은 바로‘국가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국가주의는 국가중심주의 내지는 국가우선주의로 풀이할 수 있는데, 여기서 국가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헌법을 갖고 있으니 그런 헌정질서를 수호해야 하며, 따라서 헌법의 가치를 부정하거나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공권력을 투입해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현 정부의 이런 취지를 국민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태극기 게양을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책동은 이런 추세의 한 결정판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저런 일련의 움직임이 전혀 자유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국론통일과 국기 게양 강제는 자유민주주의 가치와 본질적으로 상충한다. 상식으로만 보아도, 국가가 국민에게 어떤 일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 국론이 다양한 것을 부정적 의미의 분열로 범죄시하고, 국론통일을 강요하는 행위도 자유민주주의와는 배치된다. 심지어 역사를 국정화하겠다는 발상은 자유민주주의와는 상극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다양해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요체의 하나는 자유주의다. 또한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는 완전한 독립체로서 개인이 갖는 선택의 자유를 이른다. 단순히 반공의 의미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역사상 개인의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과 충돌한 대상은 대개 국가권력 내지는 관습적 권위체계였다. 요컨대 자유주의와 국가주의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현재 지구상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모두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적어도 개인보다 국가를 우위에 두지는 않는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르익은 선진국에서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매우 공평하게 중시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개인의 이해와국가의 이해가 충돌할 때 개인의 자유선택을 최대한 인정해 주는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이다. 이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을, 일방적 통제가 아닌 상호 조화를 추구한다. 요즘 권력의 중심부에서 벌어지는 역사의 국정화 기도를 접하며 오히려‘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역사 기억은 하나일 수 없으며 하나여서도 안 된다. 특히 국가가 독점하는 역사 기억은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사실상 정치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유신의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역사 국정화 움직임은 국민의 머릿속 기억까지 일개 정권이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특정 관점을 독점적으로 주입시키려는 것으로 심각한 시대착오이자 폭력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일을 추진하는 과정도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기 마련이다. 현행 교과서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면 검인정 교과서 집필기준을 수정하면 될 일이지 국정화를 시도할 일은 아니다. 교과서의 내용 문제와 국정화 전환 문제는 격이 전혀 다른 별개의 사안이므로, 이 둘을 인과관계로 묶은 현 정권의 논리 수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또한 현행 검인정 교과서가 정녕 죄다 좌편향이라면, 이명박 정권을 포함하여 지난 10년간 그런 교과서를 승인한 교육부장관 및 그 이하 관련 공무원들을 모두 고발하는 조치를 먼저 선행해야 일의 순리에 맞고 그나마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교과서 검인정제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헌법이념에 부합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이 정권에게는 우이독경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중세로 회귀하는 대한민국


 시대에 역행하는 역사 국정화 파동은 글로벌시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품격마저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글로벌시대 국가의 품격은 글로벌 추세에 발맞추거나 그것을 얼마나 선도하는가에 달려있다. 선진국 가운데 역사교과서 가지고 이런 소모적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한반도만 벗어나면 이런 사안은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는 우스갯거리일 뿐인데, 이런 유치하고도 창피한 일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며 강요하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함인가? 현재 한국사회가 당면한 현안이 안팎으로 얼마나 산적해 있는데, 시대에 역행하는 이런 국정화 문제로 온 나라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인물을 과연 한 나라의 참 리더요, 진정한 대통령이라 할 수 있을까?

 중세가 불투명한 인치(人治)의 시대였다면 근현대는 투명한 법치(法治)와 합리적 상식의 시대이다. 그런데 법치와 상식은커녕 인치마저 내던진 채 중세로 회귀하는 대한민국이 어디로 갈지 갑갑하다.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려 한 권력치고 장수한 예는 역사상 거의 없으며, 궁극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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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6.22 15:40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이종걸_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아이다호(IDAHO)의 의미와 목적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ophobia’ 란 영문명에서 머리글자를 따서 ‘IDAHO(아이다호)’ 로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고 세상을 떠난 배우 리버 피닉스가 출연한 영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퀴어 영화로도 사랑받은 영화<아이다호>를 떠올리며 이 날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2004년부터 ‘IDAHO’를 논의해온 아이다호 위원회(http://dayagainsthomophobia.org/)에서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인 1990년 5월 17일을 기념하는 의미로 지정하였습니다. 




 2014년 여름 아이다호 전언 (사진_저자제공)


이 날의 목적은 이렇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 억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시민사회와 언론 그리고 주요 정책입안자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를 알려 공론화할 수 있도록 대화하고 행동하는 날입니다. 매년 5월 17일만큼은 가족, 직장, 학교 등에서 존재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일상적인 차별과 혐오, 그리고 사회적인 테두리 안에서 존재하는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인 차별과 혐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각국의 현실에 맞게 주도적이면서 집단적인 대응을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014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총 130여 개국, 1280여 개 단체의 1600개의 관련 행사가 5월 17날 동시에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성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혐오


한국 사회에서의 혐오의 양상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보수 기독교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세력들은 집단적으로 혐오와 차별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결국 동성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러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요 활동을 보면 동성애만을 문제시 하는 것이 아닌 인권문제와 차별금지라는 논의 자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2007년 10월 31일 참여정부시절 법무부는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최초의 기본법이라며 강하게 추진하려던 차별금지법안 중 성적 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등이 포함된 원안에서 이 7가지 항목을 삭제하고 국무회의에 제출했습니다. 이유는 보수기독교 단체, 경총을 비롯한 재계와 보수 언론의 강력한 반대 의견 때문이었습니다. 2001년에 통과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 포함된 차별금지 사유임에도 말입니다. 그 이후 인권기본법이자 포괄적인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차별금지법 제정과정에서 이들 보수 기독교 세력은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차별금지법이라고 축소시켜놓고 이 법안들이 동성애를 조장할 것이라고 잘못된 주장을 하면서 이후 국회를 통해 입법 발의된 제정안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재계는 멀찌감치 팔짱을 끼며 이 상황을 바라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2013년 아이다호 레인보우 액션 (사진_ 저자제공)

2011년 3월 31일 헌법재판소는 남성동성애자들의 성행위를 계간이라는 혐오적인 언어로 차별하고, 형벌로 처벌하며, 성폭력이라고 할 수 없는 개인 가장 내밀한 영역인 성적 접촉까지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보수 기독교계들은 이 법안이 없으면 군대에 동성애가 합법화될 것이라는 사실과는 다른 주장을 하여 기독교인들을 호도하였으며 국가인권위가 위헌 결정을 내야한다는 의견을 발표하자 국가인권위 앞에서 국가인권위를 마치 동성애를 조장하는 기관인 것처럼 매도했습니다. 이들은 그 이후에도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거나 차별하는 법조항 폐지 운동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2014년 11월부터 보수 기독계는 성적 지향이 포함된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 부분을 삭제해야한다고 주장하며 개정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 11월과 올해 3월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로 복귀할 수 있다고 단정하며 동성애 전환치료를 위한 <탈동성애인권포럼> 행사를 국회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버젓이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동성애자들은 사랑하지만, 동성애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죄이기 때문에 법으로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일방적인 관점에서 보편적 인권의 가치는 무시하며,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의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실 보수기독교 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3월 교육부는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교육지침을 각 교육청에 하달하면서 성교육 중에 '동성애' 및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도록 지시했습니다. 보수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정부 안에서도 성소수자의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들을 버젓이 벌이고 있습니다. 


혐오와 맞서 싸우기 위한 노력


한국에서 진행한 동성애 혐오 반대를 위한 첫 번째 행동은 2007년 5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후보의 동성애 비정상 발언에 대한 규탄 사이버 시위였습니다. 그 후 2009년에는 시민들의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캠페인, 게이 프리허그, 게이 코러스의 공연, 커밍아웃 캠페인, 플래시몹 등 가시적인 활동을 통해 아이다호를 알리고 기사화하였으며 SNS와 해외 뉴스를 통해 한국에서의 활동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행사들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양상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이겨내고 있는지를 알리고자 기획된 것입니다.  


지난 12월 서울시청을 점거한 무지개 농성장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혐오세력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할 서울시가 정작 시민인권헌장을 폐기한다고 하자 그에 비롯된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농성 현장에는 수많은 시민 사회 단체들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다양한 노동자들이 함께 하였으며,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함께 모여 권리와 변화와 사랑을 원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올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이 열린 5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그 농성에 함께 한 힘들이 다시 결의하는 마음으로 모여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함께 맞서 싸울 것인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천여 명이 서울역광장에 모인 지난 5월 17일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단지 성소수자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이며 노동, 여성, 빈곤, 평화, 이주, 장애 등 다양한 인권의 현장에서 느끼고 고민했던 서로의 힘을 모아 연대해야 하는 문제임을 인식하고 함께 투쟁해야하다는 결의를 맺었습니다. 그 결의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세력에 대한 엄중한 경고였으며 이를 방관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 언론들에게는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요구였습니다. 또한 연대의 힘을 통해 앞으로도 함께 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5월 16일 서울역광장에는 전국의 무지개가 함께 모였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광주, 전주, 대구에서 혐오와 맞서 싸우기 위해 희망을 담은 무지개버스들이 서울역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우리는 그 무지개가 우리 사회의 희망임을 확인했습니다. 다양성과 인권의 광장이 열리는 순간에 모인 무지개들이 인간의 존엄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희망임을 확인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인권이 후퇴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더 이상은 혐오가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게 할 수 없습니다. 내년 아이다호 때 다시 만나 인간의 존엄을 위해 각각의 현장에서 함께 싸운 이야기를 다시 나누면 좋겠습니다.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2015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문화제 (사진_ 저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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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4.10.24 14:45

 

 

모르는 편이 좋았던 야오이의 역사

 

김상하_ 게임 프로듀서

 

2000년대 들어와서는 BL(‘보이스 러브를 줄인말)이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장르가 되었지만, 남성들만이 등장하는 남성간의 성적 판타지를 그린 작품들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일본에서는 그러한 장르를 한때 야오이(やおい)’라고 불렀는데, 야오이는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여성 서브컬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러한 야오이의 시대를 리얼타임으로 살았던 남성 오타쿠의 입장에서 써보는 야오이론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야오이의 탄생과 발전

그런데 애당초 야오이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 말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성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남성동성애(호모) 만화와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등의 캐릭터나 역사상의 인물, 연예인, 가수, 스포츠 선수 등의 실존 인물, 그리고 가끔 오리지널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자기 취향에 맞춘 남성 커플을 쵸이스하여 동성애관계로 가정하는 패러디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성들은 야오이라는 문화 그 자체를 경원시할 수밖에 없다.

야오이라고 일컬어 지는 그 무엇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일반적으로는 동인지 활동이 개시되었던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야오이와 비슷한 형태의 문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19751221, 도쿄 토라노몬 소방회관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던 제1회 코믹마켓(당시에는 일반참가자가 약 700명 정도되는 소규모 행사였다)에서 소녀만화 계열의 만화연구회를 대표하는 QUEEN의 기관지를 보면 남성동성애 묘사를 찾아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미적인 문맥으로 묘사된 남성의 나체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 시절에는 주로 레드 제플린, 데빗 보이 등의 서양 뮤지션이나 캡틴 하록등의 작품을 패러디한 만화가 만들어졌다. 이 시절의 작품의 대부분은 바람과 나무의 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탐미적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남성 캐릭터에 심취해, 그때까지 금기시되었던 성적 묘사를 많이 추구하고 있었다.

 

 동인지, ‘랏보리

 

그렇다면, 남성동성애 동인지는 언제부터 야오이 책이라고 불리게 된 것일까? 실은 여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확한 기록들이 남아 있다. 야오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동인지 랏보리らっぽり)19791220일호 지면에서 이루어진 좌담회에서다. 이 때에 참가자이자 국내에서는 세상이 가르쳐준 비밀이라는 만화로 유명한 만화가 하츠 아키코(波津彬子)’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하다.

 

우선,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은 약 15년 전 러브리라는 만화연구회로서, 자신의 작품과 타인의 작품을 평가할 때에(이 모임에서는 비평 노트나 자유전언 노트를 회람하곤 했다) 갈등도 없고(야마나시 なし), 결말도 없고(오치나시 ちなし), 주제도 없다(이미나시 意味なし)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 삼박자를 갖춘 만화는 그다지 칭찬할만한 구석이 없다는 자조직인 의미를 포함해서 야오이라고 불렀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이 시절에 야오이라고 불렸던 만화는 남성동성애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런 야오이라는 말 자체가 친구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한 말장난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절의 동성애 패러디는 호모네타(호모 클리셰)’ 등의 이름으로 불렸었다. 야오이는 당초에 동인지 문화를 주도하던 세대에 의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이러한 야오이의 개념의 등장으로 동인 세계는 일변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동인지 문화는 상당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쉽게 주류 서클에 들어갈 수 없는 엘리트 문화에 가까웠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가벼운 동인지를 만든다고 해도 그러한 작품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야오이는 동인지 서클의 엘리트 그룹들로부터 고정관념을 깨고 나온 것이었기에 그 파급력은 매우 큰 것이었다. 다시 말해, 세상의 많은 일반인들이 그렇구나, 그냥 갈등이 없어도, 결말이 없어도, 주제가 없어도 좋은 거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 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패러디 장르의 폭발적인 붐이 오다

1980년대 초엽은 동인지 세계의 대전환점이었다. 1979년부터에 코미케의 대표가 요네자와 요시히로(米沢嘉博, 2006년에 세상을 떠나 현재는 유한회사 코미켓이 코미케를 운영하고 있다)로 바뀌며, 코미케 개최 회장도 이동하여 입장자도 7000명을 넘어섰다. 코미케의 상징처럼 알려진 코스튬플레이도 이 시절에 시작되었다.

 

코미케 내부 사진

 

그 견인차가 된 것이 애니메이션 패러디였다. 기존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패러디 동인지를 만들어서 유통하는 행위가 성립된 것은 1976~1977년경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기존 작품이나 작가의 팬클럽 등에서는 작품을 패러디화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한 동인지에 바다의 왕자 트리톤의 팬이 트리톤은 색기가 있다니까라는 문장을 쓴 것만으로도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사례가 있을 만큼 1970년대에는 동인 활동에 대한 순혈주의가 지배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978년경에 되면, 이런 상황이 변하여 애니메이션 패러디가 주류가 되기 시작한다. 그런 시절에 야오이계를 크게 변화시킨 애니메이션투장 다이모스가 방영을 시작한다. 투장 다이모스는 선라이즈가 제작한 로봇 애니메이션으로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가라테를 사용해 싸운다. 주인공이 적인 우주인 사령관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 때문에, 로봇 애니메이션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불렸던 작품이다. 그럼 대체 그런 작품의 어디에 야오이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걸까? 그것은 주인공의 연인의 오빠, 적사령관인 리히텔의 존재에 있다.

이 시절의 야오이계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호모 패러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서양 뮤지션을 소재로 한 호모만화가 주류였다. 그런 와중에 이전부터 서양 락 음악계 탐미동인지를 제작해왔던, 타케다 야요이(竹田やよい, 현재도 활동중인 유명한 BL작가)의 서클 DMC가 리히텔을 소재로 한 야오이 책을 제작했던 것이다. 리히텔은 금발에 찢어진 긴 눈의 미형 캐릭터였으며, 이것이 서양 음악계의 호모 패러디를 그려오던 사람들에게는 취향에 맞았던 것이다.

투장 다이모스의 야오이 책에 등장으로 그러한 호모 동인 만화를 추구하는 층이 발굴되고, 그들이 이후 상업적인 활동을 하게 됨으로써 애니메이션 패러디 야오이 책은 성장하게 된다. 이미 그들의 세계에서는 리히텔을 가지고 노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계의 카테고리 중에는 리히텔은 미형 라이벌로 분류 된다. 애니메이션 계에는 거인의 별의 하나카타 미츠루, 로봇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용자 라이딘의 프린스 샤킨을 시조로 하는 유서 깊은 미형 라이벌 캐릭터들이 리히텔의 야오이 데뷔를 계기로 일제히 동인소녀들의 먹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데온의 기제자랄, 육신합체 갓마즈의 마그, 던바인의 반바닝스, 보톰즈의 입실론 등이 차례로 야오이 소녀들의 먹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건담과 같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고 해도 야오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샤아와 그의 절친이자 원수인 가르마 자비 단 2명뿐이었다. 최근에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작품 안에서 자유자재로 커플을 고르는 그러한 문화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란바랄과 스렛거를 커플로 만들어 야오이 소녀들이 불타오르는 일은 아직은 없었던 것이다.

 

 투장 다이모스

 

야오이의 분화

1979~1983년에 걸쳐서 코미케는 규모에 있어서도 내용적으로도 크게 변화하였다. 고교생 정도였던 초대 야오이 세대도 사회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동인지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게다가 그녀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세대가 참여하면서 세대별 집단이 형성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기에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이쥬가 호모 성향을 지닌 애니메이션 패러디 동인지의 정보를 게재하지 않기로 한다. 이 시절에는 페니스나 남자들끼리 항문성교를 하는 장면이 명확하게 묘사된 야오이책이 유통되고 있어서,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이 주요 독자였던 아니메이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성적인 동인지의 범람은 동인지 문화 그 자체가 주류 매스미디어로부터 추방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니메이쥬

 

야오이 동인지가 매스미디어부터 추방됨으로 인해 지금까지 주로 통신판매로 동인지를 구해오던 지방 독자들은 동인지 그 자체와 그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녀들의 욕구는 코믹마켓에 실제로 참여하는 방법으로 집약되게 되며, 코미케에서의 동인지 직판이라는 유통 시스템의 중요성은 더욱 더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코믹마켓에 참가할 수 있었던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야오이 소녀들 사이에서는 코미케의 신성화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확대되어간 야오이 동인지의 코미케에서의 총수는 1983년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급격히 규모가 커지는 시기에 야오이 소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 캐릭터에 관련된 야오이 동인지만을 체크하는 행동이 일반화 되기 시작한다. 베이스가 되는 작품(현재 동인지계에서는 이것을 장르라고 부른다)마다 구분화가 시작되며, 동시에 그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애호하는 것에 대한 감정의 첨예화도 이때부터 나타난다. 그리고 1984년에 캡틴 츠바사의 붐으로 인해 야오이는 본격적인 커플링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캡틴 츠바사는 소년 점프 식 스포츠 만화의 3대원칙인 우정노력승리에 야오이 소녀들 특유의 시점인사랑을 첨가한 우정노력승리=동성애라는 야오이의 법칙이 성립된 작품이다. 이것은 이어서 대히트를 기록하는 성투사성시로 이어지며, 이것이 발전과 분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BL물까지 이어지게 된다.

 

 캡틴 츠바사

 

다시 말해서 야오이=BL’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오이란 어디까지나 작품으로서 성립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지 못한 형태소만 존재하는 2차 창작물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AB의 원작에 그려지지 않은 어느 순간의 상황을 직접 창조해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과정과 그 결과물이 야오이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야오이란 여성향 서브 컬쳐 속에서의 여성들 특유의 2차 창작문화 전반을 일컫는 용어고, BL이란 엄밀하게 말해서 그러한 야오이의 한 분파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야오이의 거의 대부분이 섹슈얼한 요소를 갖춘 BL에 잠식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구분되어서 이야기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지널로 창작된 탐미 계열의 소설들을 야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런 것은 그야말로 동성애물로 불린다. 일본의 유명 여성향 잡지인 쥬네(JUNE)가 한번도 야오이를 표방하지 않고 탐미주의를 표방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야오이 동인지 문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본문에서 이야기하듯이 주류 잡지들에서 동인지 판매 광고의 게재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련의 조치들로 인해 음성화 되어버린 것이 오히려 다양성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과 동인지의 대형 유통업체가 등장하면서 정보 공유가 쉬워지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는 서클이나 작가가 등장하게 된다.

과거에는 동인지 작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기 위해 활동하거나,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주류 잡지에 프로 작가로 데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인지 그 자체로도 큰 돈을 버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동인지 작가들의 목표는 점차 자신의 동인지를 더 많이 파는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점차 팔리는 것만 그리는 카테고리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다양성이 사라진 것이 지금의 야오이 문화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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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4.04.15 18:48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4호에 처음 게재되었던 것으로, 잡지사 측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발췌, 수록한 것임을 밝혀 둔다.

 

[칼럼] 공부는 사랑의 정치다

Corée Spécial 공부란 무엇인가

 

조정환 _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 대표

 

 

우리에게 '공부'만큼 분열적 의미를 갖는 단어도 드물다. 대개의 사람들이 공부에 대해 갖는 일차적 이미지는 '끔찍함'이다. 어째서 이런 이미지가 공부라는 단어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공부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강제의 과정은 태내에서 시작해 유치원·초등학교·중등학교로, 대학교에서 직장 교육으로, 다시 재교육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빚쟁이처럼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공부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억지다. 그래서 지겹고 끔찍하고 싫다.

그런데 이 끔찍함의 이미지에 이상하게도 '부러움'의 이미지가 뒤따른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그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끊임없이 나의 비교 대상이 되고 따라야 할 모범이 된다. 그에게 주어지는 영광·권위·보상이 클수록 공부하기는 내게 더욱 절박한 것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애써 공부를 해보려 하지만 그것이 절박할수록 그 끔찍함은 더욱 커진다. 우리는 공부와 관련해 부러움과 끔찍함 사이에서 찢어져 있다. 그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정말로 하기 싫은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이 공부다.

 

대체 누가 우리에게 이 끔찍한 공부를 강제하는가? 우리는 왜 공부 잘하는 이를 부러워하는가? 공부를 해야만 '좋은' 성적을 얻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스펙을 쌓아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공부를 해야 실패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경쟁은 저 끔찍함을 받아들이게 하는 사회적 조건이다. 부러움은 우리 자신을 자발적으로 강제하도록 만드는 심리다. 각자는 한편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다른 한편에서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공부를 한다. 비록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게 아닐지라도 생존과 안정을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공부를 한다. 책에 쓰인 것을 두뇌에 강제로 주입하고, 교사의 가르침을 신체에 강제로 기입한다. 그리하여 책, 교사, 부모, 성직자, 지식인, 최고경영자(CEO)가 말한 것에 순응한다. 공부를 통해 나는 사회에 적응한다. 나는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 주지하다시피, 그 사회는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하는 사람들을 복종시키는 자본주의 사회다. 나는 자본주의가 왕성하게 돌아갈 수 있는 노동의 생피를 나날이 제공함으로써만 성공한 사람 '위너'가 된다.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 사람 '루저'가 되어 사회의 밑바닥으로 밀려났다가 삶의 세계 바깥으로 추방당한다. 공부하라! 그러면 보상받겠지만 끔찍할 것이다. 공부하지 말라! 그러면 덜 힘들겠지만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사교육과 공교육으로 이뤄지는 제도화된 공부는 본질적으로 자본의 이익을 위해,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 이윤과 이자와 지대의 취득을 위해 구축되고 또 그것들을 위해 가동되는 공정이다. 양계장의 닭들이 양계업자에게 알과 살코기를 제공하기 위해 모이를 먹고 호흡하고 배설하는 등 생명활동을 하듯이, 제도화된 공부 공정에서 사람들은 오직 자본가에게 잉여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읽고 듣고 말하고 쓴다. 양계장의 닭이 느끼는 허기와 포만, 맛과 향내가 모두 양계업자의 이윤을 위한 장치이듯이, 사람들이 공부의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슬픔·희망·낙담은 모두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을 위한 장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이전의 자본주의와 차이가 있다면, 훈육적 공부 과정을 마친 사람들의 노동력을 이용한 이전의 자본주의와 달리, 공부 과정 그 자체까지 잉여가치 창출의 메커니즘 속에 끌어들였다는 점일 것이다. 대학은 이제 노동자를 생산하는 공장일 뿐만 아니라 채무노예, 즉 빚쟁이를 생산하는 공장이기도 하다.

 

자본을 위해 강제되는 공부이고, 결국 강제노동을 위해 사용될 공부라는 점이 공부의 저 끔찍함을 생산한다. 자본주의적 강제노동이 중층의 위계를, 보상의 사다리를 갖는다는 점이 공부에 대한 부러움을 생산한다. 사회연대성을 파괴하고 스펙에 따라 이뤄지는 신자유주의적 임금체제는 이 부러움과 끔찍함을, 그 분열을 극단화한다. 자본주의적 공부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들 각자에게는 공포스럽고 공허한 것이다. 우리의 학교들이 양계장이나 양돈장처럼 살풍경한 폭력 현장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부는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없을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해야 하고, 숨겨진 장소를 찾아야 한다. 한자에서 '工夫'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그 노력은 도구()를 사용해 막힌 것을 뚫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공부는 주어진 것에 대항하면서 그것을 뚫고 넘어서는 투쟁이다. 공부를 의미하는 라틴어 'Studiare''열심'을 의미하는데, 그 열심은 밀고 찌르고 두드리고 때리는(Steup) 열심을 의미한다. 한자에서와 유사하게 그것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해나가는 투쟁의 강렬함을 가리킨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공부는 주어진 현실을 타개하면서 자신을 새로운 존재로 정립해나가는 인간 진화의 내적 추동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본주의는 인간 내재적인 이 열심의 노력으로서 공부를 '노동'으로, '학업'(學業)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에 강제노동의 굴레를 채우고 공부의 진화적이고 혁명적인 에너지를 억압한다. 학업에는 외부에서 주어진 목적과 답이 있다. 그것은 잉여가치를 증식시킨다. '잉여가치를 증식시키는 데 더 크게 기여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학업으로서의 공부에 이미 주어진 문제다.

 

공부의 이런 구조 속에서 인간은 자본의 노예일 것을 지속적으로 강요받는다. 이 구조에서 벗어나 공부의 숨겨진 의미를 회복하려면 이것과는 '다른 공부'가 필요하다. 자본주의가 억압하고 숨기는 것을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강제하는 잉여가치화의 틀을 뒤집어 그 포획망을 뚫고 도주하는 것이다. '잉여가치화'의 문제틀을 '자유화'의 문제틀로 역전시키는 것이다. 자본되기의 반복 과정을 인간되기의 영구 과정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책과 언어는 공부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잉여가치화의 제도는 우리 사회 속에 편재하는 그물망이다. 그것은 교과서나 신문·방송, 법률 등으로 나타날 때는 언어 속에 새겨지지만, 일상의 습관으로, 몸의 자세로, (공장·학교·군대·관공서·병원·교회·백화점·법원·은행·증권거래소 등과 같은) 기관들과 조직으로 육화돼 있다. 이 다양하고 다층적인 제도를 바꾸는 것으로서의 공부는 언어와 책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 다른 언어를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다른 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며 '우리'를 다르게 조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요컨대, 사회적 삶 전체를 다르게 조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공부는 인류학적 변형의 노동이다.

 

나의 공부 과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잘 훈육된 '모범생'으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부터 제도공부와의 불화가 시작됐다. 대학 교육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실로 아무것도 없다. 삶의 원기를 준 것은 연이은 학사경고로 복종을 강요하는 대학이 아니라, 그 밖에서의 우정·사랑·글쓰기였다. 공식 대학원 과정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공부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도록 만든 것은, 그 대학원 건물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진 금지된 공부, 즉 헤겔·루카치·마르크스 읽기였다. 그 즐거움은 '민중미학연구회' 구성 혐의로 구속수감되며 '처벌'받았다. 역설적인 것은, '처벌'이 나를 진정한 공부로 더욱 깊이 이끌었다는 것이다.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항의로 감옥에서 인권투쟁을 벌이던 젊은 동료들과 그들의 불굴의 저항이야말로 내가 분과학문의 저 좁은 형틀을 깨고 나오도록 도와준 스승이었다. '학술단체협의회' 구성에의 참여와 <노동해방문학> 창간 과정에의 참여는 학문과 문학이 어떻게 주어진 사회의 모순을 타개하는 실천적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을지 집단적으로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낡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낡은 나 자신의 변형을 요구했는데, 그 변형에는 아픔만이 아니라 큰 기쁨이 따랐다. 이 기쁨은 10년간의 수배로 다시 '처벌'받았지만, 이 기간에 내가 서울 갈현동·불광동·북가좌동·구로동·화곡동과 인천 간석동의 골방을 돌며 마르크스·레닌·하먼·캘리니코스·네그리·하트·홀러웨이·푸코·들뢰즈를 공부하며 느꼈던 깨달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으로 남아 있다. 수배 기간에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의 후미진 나무 그늘 아래를 만남과 공부의 장소로 이용해야 했지만, '다중문화공간 WAB'을 만든 뒤에는 도심에서 집단적 공부를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중네트워크센터''다중지성의 정원'으로 이어진 제도 밖 집단공부의 성과는 '도서출판 갈무리'의 출판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었다.

 

책을 중심으로 돌아보면, 나의 공부에는 크게 세 가지 계열이 있다. 하나는 <아우또노미아>에서 <인지자본주의>로 이어지는 계열로, 주로 책·저자들과의 만남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이론적 성찰을 기록한다. 전체로서의 삶과 사회에 대한 이론적 관심은 주로 여기에서 표현된다. 또 하나는 현실의 사건이나 역사적 사건과의 만남을 통한 각성을 기록하는 계열이다. 2008년 촛불봉기가 거리에서 내게 준 깨달음을 기록한 <미네르바의 촛불>, 그리고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건이 준 충격과 각성을 기록한 공동 저작 <후쿠시마에서 부는 바람>은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과의 만남을 기록했다. 5·18 민중항쟁이 준 역사적 깨달음을 기록한 <공통도시>20세기 운동에 대한 탐구를 기록한 <21세기 스파르타쿠스>는 역사와의 만남에서 얻은 성찰을 기록한다. 세 번째 계열이 있다. 그것은 번역이다. <디오니소스의 노동>처럼 고독하게, <다중>처럼 소수 사람의 협력을 통해,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처럼 집단적 세미나를 통해 이루어진 번역 작업은 나의 사유를 장인적으로 가다듬는 데 중요한 기능을 했다.

 

<유체도시를 구축하라>의 저자 사부 코소는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당신의 이력에는 별다른 학력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이토록 학술적인 작업을 해냈는가? 당신은 어떻게 공부를 했는가?"라는 한 청중의 질문에 "나의 공부는 연애편지, 정치활동, 그리고 번역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답했다. 나의 경우도 그랬다. 대학은 공부를 혐오하게 만들었지만, 연애·투쟁·번역은 성적·성과와는 무관한 독서와 글쓰기의 길로 나를 이끌면서 다른 공부에의 열정을 키워주었다. 연애는 개체적 분리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번역은 타자되기에 대한 사랑이다. 정치는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한 사랑이다. 공부는 주어진 것을 타개해나가는 사랑의 노동이다. 이처럼 사랑으로서의 공부는 제도로서의 공부에 대항하며 그것을 변형시키고 넘어서는 정치적 열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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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04.15 17:27

 

 

[칼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우리들의 영웅, 뫼르소

2013년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까뮈의 그림자, 뫼르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항한 대가로 결국 죽음을 맞은 주인공에 대한 각종 서평과 감상문이 넘쳐 나지만 그의 죽음을 부조리에 대한 투쟁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도 타인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자아가 극단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세포를 자극하는 건, 사소한 결정에도 타인을 의식하는 우리의 빈약한 자의식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타인이 정해 놓은 신념이나 구조를 의심 없이 신봉하고 그것을 위해 내 목숨까지 버리를 영웅주의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욕망-불안, 순환하는 삼각의 굴레

현재인의 고질병으로 여겨지는 불안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만의 것은 아니다. 인류가 생겨난 이래로 계속 되어왔던 음식을 저장하고, 자손을 호세 뮤노스가 그린 일러스트 이방인의 한 장면. 사진: 책세상낳으며 기록을 남기는 행위도 인간이자신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행위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를 꺼려왔던 불안이라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열렬한 관심을 쏟았던 적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불안을 다룬 가벼운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가 연일 가장 높은 자리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현대인들의 불안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거싱기에 이렇게도 사업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불안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으레 마주치게 되는 우리의 욕망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타인이 부재한 욕망은 존재할 수 있을까. 불안, 욕망 그리고 타인은 영원히 순환하는 트라이앵글 구조를 형성하는 듯하다. 마치 신 앞에 죄를 지어 해갈되지 않는 갈증을 형벌로 받은 탄탈로스처럼 불안을 잠식하기 위한 우리의 욕망이 죽는 순간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욕구불만으로 남는 것을 보면.

 

 

타인이라는 지옥

사르트르가 각본을 맡았던 연극 <비상구는 없다>지옥은 결국 타인들이지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우리의 지옥은 결국 타인의 시선에 나의 인생을 저당 잡힌 순간부터 시작된다. 뉴스에서 자주 다루는 스펙 전쟁만 해도 그렇다. 재능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같은 것을 두고 싸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나를 깎고 붙이고 재단해 타인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아야 일단 안심이 된다. 겨우겨우 기준치에 닿으면 다른 사람들도 나 정도의 스펙은 가지고 있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 모든 스펙이 상향평준화 되어 있다. 그러면 또 우리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스펙을 쌓는 데에 시간을 바치지 않으면 또 다시 불안의 상태에 잠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스펙 전쟁의 원인 또한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한다는 것에서 삶의 비극은 지속된다.

최근 뉴스에서 대학원생을 다룬 기사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고생 끝에 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진로가 불투명한 대학원생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기사들이다.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아도 대학원은 쓸데없이 긴 가방 끈을 생산하는 공장이 아닌 여전히 공부를 갈망하는 학생들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나름의 이상과 꿈을 안고 대학원에 진학했음에도 학기가 더해질수록 동기들과 선후배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어둡다. 하는 말마다 탄성을 자아낼 만큼 명석한 두뇌의 선배들조차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 문제에 억눌려 있다고 토로한다. 경제활동을 해야 할 나이에 오히려 돈을 들여 학문의 길을 택했던 것에 대한 회한, 결혼적령기임에도 한 가정을 책임지기 힘든 얄팍한 통장잔고, 점점 나이가 드시는 부모님께 용돈을 고사하고 여전히 의지하는 불효 등 대학원생들에게는 너무나 보편적인 근심들이지만 우리가 괴로운 것은 당장의 현실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또래들과의 상대적 간극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불안케 하는 직접적 원인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택한 학문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지금의 선택에 물음표를 던지는 거은 결국 타인의 욕망과 기대를 채우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닐까.

 

낯선 나로의 이행

우리가 대학원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제 넘는 장광설을 늘어놓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노력의 대가를 보장 받지 못하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는 당장은 어쩔 수 없다 쳐도, 타인의 기준으로 세워진 기준 앞에 좀 더 힘을 빼고 내 삶의 이유만을 추구한다면 우리의 하루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의식해야 할 타인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주관하는 자아와 분리된 낯선 나이다. ‘낯선 나로의 이행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의 삶을 살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끊임없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내 선택이 타인의 시선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 아닌지 살피는 것이야말로 불안에 정면으로 마주한 우리의 유일한 대처법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달이냐 6펜스냐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지만 그나마 한줄기 위안이 되는 것은 타인의 모든 계명을 조롱한 영웅적인 사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외친다.

 

붓다, 하느님, 조국, 이상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김하늘 기자

 

 

 

 

[기자수첩] 당신의 OK사인을 기다리며

 

 

 

지난 322, 인터뷰를 위해 부산 동아대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처음 활짝 핀 벚꽃과 개나리꽃을 보고는 문득 사진에 담아 누군가에게 보냅니다. 말로만 듣던 낙동강 줄기를 캠퍼스에서 내려다보니 지친 심신에 생기가 도는 듯했습니다. 동아리 방마다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새어나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당당했습니다. 자기계발이다 취업이다 바쁜 생활로 동아리 활동은 뒷전이라는 요즘 대학생들의 이야기는 틀렸지 싶습니다.

사실 인터뷰는 여러 취재방식 중 가장 맨 윗자리에 두어야 하는 심리적 게임입니다. 그렇기에 인터뷰이의 눈빛과 표정을 주시하는 게 중요하지요. 권명아 선생님의 눈빛에서 더없는 진실함을 느꼈습니다. 특정 이슈가 아닌 한 사람의 연구 인생과 삶, 그리고 체험에 대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자리에 서기 위해 끈기 있게 달려온 리얼 스토리였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훗날 지식의 씨앗을 뿌리는 채무자가 되어 그 빚을 갚아야겠습니다.

성숙한 인격도, 뛰어난 재능과 실력도 뚱보 앞에선 무용지물인 계절, 봄입니다. 예쁜 여자가 되는 일은 거의 모든 여성들의 숙명이자 굴레 같은 것이지요. 20세기 직전만 해도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실루엣을 아름다운 몸으로 여겼다는데, 세기를 잘못 타고 태어났나봅니다. 봄은 스치듯 지나갈 것이고, 여름은 속히 다가올진대, 남은 건 겨우내 찐 살들뿐이니 겁이 날 수밖에요. 오늘은 이래서 운동을 못 하고, 내일은 저래서 먹어야 한다는 데. 줄넘기의 장인 김수열씨의 가훈이 떠오르네요. “오늘 넘지 않으면 내일은 두 배로 넘어야 하리.” 공부도 마찬가지겠지요. “오늘 (논문) 보지 않으면 내일은 곱절로 봐야 하리.” 생업과 연루시키니 일견 명문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무슨 일이든지 꾸준한 실천의 최대 복병은 핑계거리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계간지 서강대학원신문사는 일간지 언론사처럼 치열한 승부의 세계는 아닙니다. 교내의 이슈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싶지만, 계절이 바뀔 때에야 만날 수 있으니 웬만한 이야기들은 모두 옛날 일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대학원신문사에도 집념과 펀치력, 생생한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진정으로 필요하지요. 미국 CBS 앵커맨 1호 월터 크롱카이트 역시 가죽구두가 닳도록 발로 뒤는 끈질김(shoe-leather reporter)의 소유자였다고 하거든요. 공부를 시작하면서 ‘arm chair social scientist’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신문 만드는데도 엉덩이가 너무 무거웠던 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여러분의 OK사인이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김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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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3.01.08 14:50

내면의 교류에 목마른 우리에게 내려진 단비

 

김하늘 기자

혁명가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쫓기는 신세에서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로 말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데, 그것이 영화의 제작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혁명이나 좌익과는 거리가 먼, 아쉬울 것 전혀 없이 잘 나가는 영화감독인 그에게 트로츠키의 말이 그의 마음에 어떤 혁명의 불씨를 당겼던 것일까.

 

# 가벼움과 무거움

 

요즘 세상은 가벼움에 지배당하고 있는 듯하다. 무거움 혹은 진중함과 양립하지 않는 가벼움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연약하고 무의미하다. 문화적인 자극을 위해 개봉 영화들의 이국적이고 화려한 배경과 현란한 그래픽에 눈을 뺏기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이 끝나있다.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영상을 뽐내는 영화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는 갈증을 떨치기 힘들다.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아무 생각 없이 취하는 휴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차고 넘치지만, 문화적인 자극을 바라는 영화팬들에게 생기는 갈증은 고질병이 되어 버렸다.

 

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쌍은 모든 대립들 중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타의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세상이 양분법적 대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반대하여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완벽한 분류는 무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은 그 두 가지를 다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보았다. 베니니의 영화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비율을 알맞게 버무린 영화이다. 극대화된 슬픔을 보여주는 것은 눈물도, 오열도 아닌 웃음이었다. 그는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한지 벌써 10년도 넘은 영화이다. 그 세월이면 잊혀질만도 한데 몇 번을 보아도 새로운 대사를 음미하게 되는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이다. 유쾌함의 극치를 보이는 주옥같은 대사의 향연과 대조되는 시대적 배경은 비극적이고 암울하다. 베니니는 이탈리아인들에게도 가슴 아픈 역사인 홀로코스트를 자신의 필름에 담아냈다.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원래 그리스어로 ‘번제’를 뜻하지만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은 이 말을 ‘유태인 대학살’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만들어 버렸다. ‘민족의 수난’으로 치자면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지만 유태인에 비견할 만큼은 아니었다. 유태인은 숫자가 적고 그들의 나라조차 갖고 있지 않음에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태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다. ‘베니스의 상인’의 악랄한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으로 대변되기도 하고, 세계인의 책장에서 여전히 지혜의 상징으로 꼽히는 ‘탈무드’의 지혜를 가진 민족이기도 하다가,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답답하고 이기적인 민족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마르크스,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등의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민족이기도 하다. 현재는 시오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세계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언론과 재계를 좌지우지하고 있기도 한 엄청난 저력을 가진 민족이기도 하다. 그들의 존재감 때문일까. 우리 역사에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악랄한 범죄는 유태인을 대상으로 일어났다. 홀로코스트는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었다.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로부터 시작해 가장 최근 개봉작인 '사라의 열쇠', '소피의 선택' 등 유태인 말살정책을 다룬 영화는 많지만 베니니가 그린 홀로코스트의 비극에는 단지 슬픔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들과는 다르다.

 

이탈리아식 유머를 통해 베니니의 개성을 한껏 뽐낸 ‘인생은 아름다워’는 193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한창일 때이지만 따뜻하고 푸르른 시골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평화로운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주인공의 등장은 처음부터 어수선하기만 하다. 어떤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본다면 이러한 어수선함에 적응이 되지 않아 자리를 박차고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내심을 조금만 가지면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아껴 두었던 마시멜로를 맛보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 Buon giorno, principessa! (안녕하세요, 공주님!)

 

홀로코스트에 의해 희생된 한 가족의 이야기는 “Buon giorno, principessa! (안녕하세요, 공주님!)이라는 한 마디로 시작된다. 레스토랑 웨이터인 귀도와 초등학교 선생님인 도라는 언뜻 보기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지만 귀도는 적극적이고 끈질긴 구애 끝에 도라의 관심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여러 번의 우연한 만남에서 귀도는 도라와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공주님!” 을 외친다. 그의 진실한 마음을 느낀 도라는 귀도의 마음을 받아 들여 조수아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초반부를 귀도와 도라의 사랑 이야기로만 알고 넘어가면 섭섭하다. 가진 것은 없지만 당당하고 위트가 넘치는 귀도라는 인물에 주목해 본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의 생활양식과 파시스트에 대한 베니니의 풍자는 귀도라는 인물을 통해 재현된다. 귀도는 상류층들을 자기 마음대로 비웃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그는 그런데는 관심조차 없는 순박하고 유쾌한 인물이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지금까지 거의 드러내지 않았던 베니니식의 정치관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례를 보자면 도시로 상경해 숙부를 찾은 귀도는 숙부가 젊은이 몇의 행패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쫓아버리지 그랬냐는 귀도의 말에 숙부는 "침묵만큼 큰 저항은 없다"고 조용히 대답한다. 베니니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이런 방식으로 나타냈을지 모를 일이다. 귀도가 도라를 만나기 위해 학교에 찾아가 로마에서 온 장학사 흉내를 내는 장면은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흥미롭다. 이탈리아인의 우월함을 아이들 앞에서 설명하라는 교장 선생의 다소 파쇼적 발언에 귀도는 천연덕스럽게 웃통을 벗고 순수 혈통 아리아인의 '배꼽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 중간중간 펼쳐지는 언어유희와 역설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이 영화의 깨알 같은 재미를 더해준다. 또한 베니니는 영화 곳곳에서 민족적 ‘우월감’을 갖는 것을 경계하고 있지만 이탈리아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을 드러내는데는 주저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탈리아인으로서'로 시작하는 수 많은 대사들과 관공서나 학교 등 어디를 가나 가장 훌륭한 장식처럼 걸려진 삼색기(Tri colore)가 그렇다.

 

# 유태인과 개는 출입금지

 

운명의 여신은 행복한 자를 질투한다 했던가. 도라가 다른 남자와 약혼식을 하는 날 누군가 숙부의 말에 ‘유태인의 말’이라고 써 놓은 것에서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그러나 귀도는 그런 일에 전혀 개의치 않고 ‘유태인의 말’을 타고 개선장군처럼 도라를 원치 않는 삶으로부터 구해낸다. 우여곡절 끝에 아들 조수아를 낳고 조그만 서점도 차려 꿈을 현실로 실현시켰지만 그 행복도 잠시, 이탈리아에도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치기 시작한다. ‘유태인과 개는 출입금지’ 표시가 붙은 상점이 점점 늘어나고, 귀도가 차린 조그만 서점에도 ‘유태인의 가게’라는 글귀가 붙어 모든 책을 반값에 팔아도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도라의 어머니로부터 결혼을 인정받고 조수아의 생일이기도 한 날, 어머니와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온 도라는 남편과 아들이 수용소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도라는 유태인이 아님에도 남편과 아들을 따라 같은 기차에 몸을 싣는다.


한편 수용소에 도착한 귀도는 조수아에게 생일 이벤트로 오랫동안 계획한 게임이라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호기심 어린 조수아의 눈과 아들에게 끊임없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귀도 주위로 비통함과 절망에 잠긴 사람들의 얼굴이 교차된다. 결국 귀도는 죽는 순간까지도 아들이 이 비극적인 현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수아를 즐겁게 해줘 조수아는 끝까지 이 상황이 진짜 게임을 하는 상황이라 믿는다. 독일이 패망하고 수용소에 정적만 남았을 때, 조수아가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오자 진짜 탱크가 조수아를 향해 다가온다. 조수아는 탱크를 타고 1등의 기쁨을 누리고 엄마와 재회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조수아의 '이것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는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도 우연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베니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 일상의 특징들을 이용한다. 도라 역시 이런 에피소드를 겪으며 이 우연들이 마치 귀도와의 필연이라 여기게 된다.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에피소드들은 영화의 동화 같은 면을 부각시킨다. 혹자는 홀로코스트라는 무거운 주제를 너무 희화화한 것이 아니냐고 말 할지 모른다. 하지만 베니니는 그만의 스타일로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충분히 상기시켜주고 있으며,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극단의 상황에 처해있는 인간을 ‘절망’이라는 시각만으로 조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부분일 것이다.

 

 # 베니니식 혁명

 

지난 2011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원작자 루비노 로미오 살모니가 세상을 떠났다.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살아남은 유태인은 극소수에 불과한데, 역사의 증인들은 이제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혀져 가고 있다.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의 아픔을 잊기 보다는 자주 끄집어 내 상기시켜야 할 것이다.


빠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잊혀져 간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인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는 측면에서 베니니의 영화는 가히 혁명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극을 희극적으로 연출하겠다던 야심찬 시도, 어둡고 암울한 블랙유머가 아닌 유쾌한 농담처럼 파시스트들을 조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블랙 유머는 인간 존재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전제로 해 어둡고 무거운 어조를 지녔다는 특징이 있지만 그의 유머는 어둡지 않다. 오히려 아무런 악의가 없어 보이는 농담들처럼 느껴져 조소나 풍자한 장면을 보려면 영화를 다시 한 번 돌려 보며 일일이 찾아봐야 할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뼈가 없어 보이는 유머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이나 세태에 좌절하지 않고 절대 굴하지 않는, 심각한 일도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 강인한 인간을 나타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는 깐느 영화제에서 특별대상 수상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극장에 개봉했을 당시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입소문만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고,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가슴으로 함께 느꼈다.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탈리아 영화 천재의 역작이라는 찬사와 채플린의 아류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판단은 잠시 미뤄두고 웃다가 울다가 정신없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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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11.05 14:27

PIETA 자비를 베푸소서...

*영화 ‘피에타’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

 

 

김하늘 기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부인 ‘돈’과 인간존중의 보편적 가치, 

우리 사회는 무엇을 우위에 두고 있는가.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는 백성의 의무로써 ‘공덕’을 요구했다. 공덕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덕을 말한다. ‘내 것 지키기’에 바쁜 세상에서 양계초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개인으로서 이루는 것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사회를 위해 하는 일들이 과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최선인가. 진정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여력도 없이 이 사회의 구석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밤으로의 긴 여로’의 작가 유진 오닐은 아내에게 보내는 헌사에 자신의 작품을 ‘내 묵은 슬픔을 눈물로, 피로 쓴 극’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의 묵직한 여운을 잊지 못한다. 장르와 시대를 불문하고 그 가치를 인정할 만한 작품은 인간이든 사회든 본연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허영과 착각에서 벗어나 세상의 잔혹함과 자신의 한계를 똑바로 마주해야만 나올 수 있는 일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작가의 고통이 그대로 녹아있는 자전적 작품은 보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김기덕 감독의 그것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모티브로 여러 영화를 만들어 냈고,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사회의 현실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요즘 들어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김기덕 감독은 영화로써 '사회적인 것'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우리가 외면하고 싶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사회가 어떤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이성적인 이해를 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영화인지도 모른다. 감정노동이 어찌나 심했던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도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는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렵다. 마치 네오레알리즘 기법의 영화들이 단 한 컷의 미화도 없이, 너무도 사실적인 나머지 그 먹먹함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의 거친 영상과 감정 흐름의 방식은 그 어떤 비교도 거부하며 그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영화는 처음부터 철저히 ‘돈’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단 한번도 ‘돈’이라는 소재를 소홀히 하지 않은 채 모든 이야기를 풀어간다. “돈이 뭐예요?”라는 물음에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지.”라고 대답하는 미선과 강도의 대화는 이 영화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개발 전의 청계 상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어 장면 중간 중간 지속적으로 흐르는 기계음은 ‘돈’이라는 소재와 어우러져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그 어떤 감정도 없이 목적만을 위해 가동되는 기계의 무자비함은 인간을 불구로 만들기 위한 행위에도 어김없이 작동하고, 한 때 사람들의 생계 수단이던 기계는 그들의 피와 살점을 집어 삼키고 나서야 가동을 멈춘다. 돈 때문에 불구가 된 채무자들, 빚을 갚지 못하는 영세 상인들을 불구로 만들어 보험금을 갈취하는 사채추심업자 강도의 인생은 이것이 단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님을 잔인하리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단 한번이라도 맘껏 돈을 써보려고 빌린 거라며 스스로 죽음을 택하려는 남자와 “죽으면 보험처리가 복잡해집니다.”라고 말하는 강도의 대사는 지금 누구나 편히 쉬고 즐기는 공간인 청계천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존재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이 사회가 중요시해야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인생이 돈 300만원의 가치를 넘어서지 못하는 영화 속 현실과 자본주의 혜택을 받는 화려하고 편리한 생활 간의 극명한 차이는 우리가 잊고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이 작품이 더욱 절망적이고 안타까웠던 이유는 강도는 단 한순간도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희망도, 절망도 없다. 당장의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한과 분노만 남은 그의 모습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저주조차 하지 않는다. 악마 같던 강도는 처음에는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게 분노하지만 곧 연약한 아이처럼 어머니에게 집착한다.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던 자’에서 ‘지킬 것이 생긴 자’가 된 후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어머니에게 보복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미선이 강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기 전 강도가 너무 불쌍하다고 오열하는 장면과 어머니만은 살려달라며 자기가 대신 죽겠다고 무릎을 꿇고 울부짖는 모습은 관객에게 이것이 단순히 개인의 비극으로 축소될 수 있는 일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그러나 자기가 어머니라고 믿고 있던 사람이 복수를 위해 나타났음을 알고 나서도 죽은 자가 입고 있던 스웨터를 입고 함께 누워있는 강도의 평온해 보이는 모습은 차라리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장면은 처절하지만 절망적인 세상에 ‘사랑’이라는 희망이 존재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아가페적인 모성을 보여주지만 모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그것을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닌 반전과 함께 비틀어 표현한 김기덕의 연출법도 놀랍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철갑을 두른 사람은 없다. 아무리 악한 인간도 사랑을 알게 되면 아이처럼 유순한 사람이 된다. 자신이 불구로 만든 사람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고 끔찍할 정도로 참회의 죽음을 택하는 그의 모습은 이것이 단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닌, 돈이 깡패인 세상에서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피에타’는 김기덕 혼자만의 소재가 아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각각 다른 스타일의 피에타를 표현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예수와 성모마리아 얼굴이 아닌, 마치 엄마의 품에서 잠든 아이 같은 표정으로 죽은 예수의 얼굴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과 다르다. 이런 면에서 김기덕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그것과 많이 닮았다. 영화 포스터에서 조민수(엄마 역)의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듯한 이정진(강도 역)의 얼굴도 이러한 모티브를 받은 듯 보인다. 그의 얼굴에서는 고통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으로써 이 모든 고통과 절망을 끝냈다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작품의 사연이 궁금해야 하는 것은 모든 예술가들이 가져야 할 지향점이라는 점에서 김기덕은 멋지게 성공했다. 역사 속 예술가들과 함께 시대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피에타를 창조해낸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 손꼽히는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국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천재성을 인정받는 영화감독이 되었다. 이전에도 김기덕 감독의 천재성은 알려졌지만, 흥행영화를 만들어야만 인정을 받는 세상에서 관객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듯한 거친 영화는 조금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의 영화를 ‘훌륭하다’, 혹은 ‘형편 없다’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의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제의 최고상을 받아서가 아니다. 그의 영화는 관객의 입장에서 한 순간도 편한 장면이 없을 정도로 보기 불편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엔터테인먼트적 성격 없이, 관객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흥행을 유도하기에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과, 비극적이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단편을 이렇게 용기 있게 그려낼 수 있는 영화감독이 또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답할 자신이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흥행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거장이 되었다. 그가 또 어떤 영화로 이 시대의 아픔을 끄집어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내오레알리즘: 네오리얼리즘이라고도 말하는 네오레알리즘은 2차 세계대전 전후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이탈리아 영화의 경향이다. 파시스트 정권 하 예술적인 억압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영화 운동으로 전문 배우와 아울러 비전문 배우들이 연기하는 보통 사람들, 일상적인 사회 문제와 에피소드 등을 담담한 영상과 편집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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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7.02 14:38

칼럼

 

, 삼민광장

박승일 기자

 

한 때 우리에게도 광장이 있었다. 돈이 없어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던 곳, 때로 공부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던 그곳, 선생이 거닐던 그 자리에 다시 제자가 머무르던 그곳, 광장은 마침 그 이름이 삼민이었다. 아담한 풀밭을 한 쪽은 벚꽃 나무가 다른 한 쪽은 플라타너스 나무가 빙 둘러치고 그 사이를 투박한 나무 벤치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밀린 독후감을 쓰다가 하늘이 파랗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냥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눈웃음 자아내는 행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신입생이었을 때 대학은 그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주위에서 뛰어다니던 학생들은 운동장의 먼지를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그 경사진 풀밭에서, 자장면 먹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잘도 축구를 해댔다. 고학번 복학생이 광장 구석에 앉아 치는 기타는 모두가 듣는 라이브 공연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광장이었던 삼민은 놀랍게도 자기 이름 안에 민족과 민권과 민생을 모두 보듬고 있었다. 대학 광장이, 그것도 후문 옆에 초라하게 자리 잡은 광장의 이름이 삼민이었다는 사실은 도서관 옆 공터의 이름이 의기촌이라는 사실만큼이나 우리에게 낯설고 잊혀진지 오래다.

어느 새 삼민광장의 그 자리에는 곤자가 플라자가 들어섰다. 벚꽃과 플라타너스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하게 발기된 기숙사가, 경사졌던 그 풀밭에는 온갖 장사꾼들이, 누워서 뒹굴던 그 땅에는 주차장이 버티고 서있다. 이제 쉬려면 돈을 내야한다. 노래를 부르던 그 선배도, 동그랗게 둘러앉아 토론을 하던 그 모습도, 더 거슬러 올라가서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앞선 이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다. 더 슬픈 것은 삼민광장의 이름이 없어진 것과 함께 우리의 기억도, 그 기억을 공유할 사람들도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거의 10년 만에 학교에 온 선배는 기숙사 앞에 남아있는 한줌의 동그란 잔디밭을 바라보고 담배만 펴댔다. 한 뙤기 구색 맞추기로 남아있는 잔디밭에서는 자장면을 먹지도 노래를 부를 수도 누워서 뒹굴 거릴 수도 없다. 모두의 광장이었던 그 자리는 BTL(임대형민자사업)으로 지어진 찬란한 건물과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에서 배려한 온갖 상업시설들로 가득 차있다.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호주머니를 털어 학교 땅에 건물을 지어준 사업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그리고 학교는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학생들이 낸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펀드에 투자하고 그렇게 이익을 계산한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기숙사를 짓고 학생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은 학교의 중차대한 임무임이 분명하다. 돈이 없기에 빌려서라도 교육 조건을 완성하는 자세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백번 양보해서 수익이 극대화되어야 학교 운영과 학생 복지 그리고 교육 개선까지 이룰 수 있다는 그 말이 설령 맞다 하더라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해서 완성된 공간이 학생들의 공간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발전이고 성장이라기에 재개발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니 내 살던 집은 온데간데없고 부동산 업자들만 배부르게 된 그런 흔한 상황에 빗댄다면 지나친 오해일까.

얼마 전까지 우리의 광장이었던 삼민은 민족과 민권과 민생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리를 이제는 민영화라는 다른 이 서강대 후문 한 쪽 귀퉁이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광장을 몰아내고, 포악스럽고 흉물스럽게 그러면서도 동시에 세련되고 번듯한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그렇게 광장은 사라지고 플라자만 남아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삼민광장의 모습 (사진출처 서강학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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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2.04.10 21:38

교직원은 인가?

 

박승일 기자

 

   교직원(校職員)들의 불친절한 대응, 고압적인 태도, 학생 무시, 업무 태만, 무사 안일주의, 행정 편의주의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서강사랑방에서 키워드로 교직원을 검색해보면, 교직원의 불친절한 태도를 문제 삼는 글을 여럿 확인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올라온 글의 내용이 최근의 글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볼 때, 단지 몇몇 사건만으로 국한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잠깐 제목이라도 살펴보자. “교직원분 일을 왜 그렇게 처리합니까?”, “학교교직원 정말 배째라인듯”, “학교직원들 왜이리 불친절하나요?”, “학생 역시 교직원을 평가할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등등. 부서명이 명시된 글은 제외했음을 감안한다면 적은 수의 글이 아니다. 게시된 글의 내용을 살펴보니, 학생들을 학교의 주체이자 소비자로 이해하기 보다는 단지 행정적 처리 대상으로 보는 교직원의 태도를 문제 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연령주의 구도가 학생-교직원 사이에도 어김없이 개입되어, 마치 어른께 부탁을 드리듯이 그리고 어른이 학생을 지도하듯 업무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게 빈번하다. 그 밖에도 신경질적인 반응, 성의 없는 태도 등에 대한 비판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불만 글에 달린 책임자의 사과 글에도 불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종류의 글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면, 문제의 원인이 개선되지 않았거나 혹은 다른 부서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학생들이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는 낯간지러우면서도 기계적인 대응을 바라는 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학생을 대하는 과정에서의 피곤함을 억누른 채 육체노동에 더해 감정노동까지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바람은 생각보다 소박한데, 아마도 조금만 더 친절하거나 조금만 더 배려해주길 원하는 게 아닐까. 여기저기서 서비스 정신을 외치고 있는 마당에,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학생을 하대하는 지금보다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학생들의 무례함과 비례한 정도의 불친절함이 아니라 무례함이 머쓱해지는 친절함은 기대할 수 없을까. 우리 학교라는 공동체감이, 학교가 발전되길 바라는 마음이, 서비스만족도 1위라는 자랑이, 순간 실망과 불쾌함으로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학생들의 염려어린 비판이야말로 학교를 지탱하는 힘임은 명백한 진실이다.

   교직원도 사람이기에 학생들의 무례함에 화가 날 수 있고 반복되는 질문에 짜증이 날 수도 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게다가 업무가 많은 건 물론이고 학생들이 모르는 위로부터의 압박감 또한 무시 못 할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교직원들이 철밥통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받는 대우가 부당하다고만 여긴다. 괴리다. 문제는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누구보다 함께 연대했던 학생들이 교직원들에게도 과연 그만큼의 지지와 협력을 약속할 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대학에도 예외가 없어, 교직원 자리마저도 점차 비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교직원들이 학생들과 어떤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략의 답이 나온다. 그것은 지금의 불친절한 태도도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고객 관리도 아닌 학생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상호 인정의 모습이어야 함이 분명하다. 교직원들이여, 학생들을 적으로 돌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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