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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152호] 잔인한 섬에서 고통의 연대로 - 전염증 시대에 ‘부활’을 성찰한다._주낙현 “사월은 잔인한 달.”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봄날에 관한 말일까? 20세기의 빼어난 시인 T.S. 엘리엇은 에서 이렇게 읊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 무딘 뿌리를 봄비로 휘젓느니. 겨울은 따뜻했었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말라빠진 뿌리로 가녀린 목숨을 먹여 주었으니” 화사한 봄날이 왜 시인에게는 그토록 잔인했을까? 시인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 가운데 하나였던 1차 세계 대전(1914-1918)을 생각했다. 군인 9백만 명, 민간인 1천 9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세월은 그 역사를 망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렀다. 시인은 그 망각 위에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기 어려웠다. 금세 잊고 아무런 일.. 더보기
[135호]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헌법에 위반된다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헌법에 위반된다1) 임지봉 _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교육과 법률유보의 원칙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기본권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즉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할 의무를 지지만 중요한 공익을 위해 필요부득이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데, 그 경우에도 기본권의 제한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법률’에 의한 기본권 제한이라는 의미에서 이 원칙은‘법률유보의 원칙’이라고 불린다. 법률유보의 원칙은 대단히 중요한 헌법상의 원칙이다. 첫째, 법률유보의 원칙은‘.. 더보기
[135호]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 역사 국정화와 ‘중세 대한민국’ 학술적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사 국정화와 ‘중세 대한민국’ 계승범 _ 사학과 교수 교과서 국정화: 국가주의 강화 선언의 결정판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헌정질서’니‘국론통일’이니‘자유민주체제’니 ‘태극기’니 하는 단어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에 엄정히 대처할 것을 선언했으며, 검찰총장도 자유민주 체제의 수호를 검찰의 사명으로 강조했다. 대통령의 국론통일 강조는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얼마 전에는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국론을 분열시키려는 세력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런가 하면 행정자치부에서는 국경일에 일반 가정(아파트)의 태극기 게양을 강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언행은 바로‘국가주의’를 강화하겠다는 .. 더보기
[133호]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이종걸_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 아이다호(IDAHO)의 의미와 목적 5월 17일은 국제성소수자혐오 반대의 날입니다. ‘International Day Against of HOmophobia’ 란 영문명에서 머리글자를 따서 ‘IDAHO(아이다호)’ 로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연출하고 세상을 떠난 배우 리버 피닉스가 출연한 영화 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퀴어 영화로도 사랑받은 영화를 떠올리며 이 날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2004년부터 ‘IDAHO’를 논의해온 아이다호 위원회(http://dayagainsthomophobia.org/)에서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날인 1990년 5월 17일을 기.. 더보기
[130호] 모르는 편이 좋았던 야오이의 역사 모르는 편이 좋았던 「야오이」의 역사 김상하_ 게임 프로듀서 2000년대 들어와서는 BL(‘보이스 러브’를 줄인말)이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보편화된 장르가 되었지만, 남성들만이 등장하는 남성간의 성적 판타지를 그린 작품들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일본에서는 그러한 장르를 한때 ‘야오이(やおい)’라고 불렀는데, 야오이는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여성 서브컬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다. 그러한 야오이의 시대를 리얼타임으로 살았던 남성 오타쿠의 입장에서 써보는 야오이론 정도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야오이의 탄생과 발전 그런데 애당초 야오이란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 말일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여성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남성동성애(호모) 만화와 소설」이라고 .. 더보기
[128호]공부는 사랑의 정치다 / Corée Spécial 공부란 무엇인가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24호에 처음 게재되었던 것으로, 잡지사 측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 발췌, 수록한 것임을 밝혀 둔다. [칼럼] 공부는 사랑의 정치다 Corée Spécial 공부란 무엇인가 조정환 _ 도서출판 갈무리 공동 대표 우리에게 '공부'만큼 분열적 의미를 갖는 단어도 드물다. 대개의 사람들이 공부에 대해 갖는 일차적 이미지는 '끔찍함'이다. 어째서 이런 이미지가 공부라는 단어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공부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강제의 과정은 태내에서 시작해 유치원·초등학교·중등학교로, 대학교에서 직장 교육으로, 다시 재교육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마치 빚을 갚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빚쟁이처럼 .. 더보기
[124호]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 당신의 OK사인을 기다리며 [칼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 우리들의 영웅, 뫼르소 2013년은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까뮈의 그림자, 뫼르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항한 대가로 결국 죽음을 맞은 주인공에 대한 각종 서평과 감상문이 넘쳐 나지만 그의 죽음을 부조리에 대한 투쟁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까지도 타인과 타협하지 않는 그의 자아가 극단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세포를 자극하는 건, 사소한 결정에도 타인을 의식하는 우리의 빈약한 자의식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타인이 정해 놓은 신념이나 구조를 의심 없이 신봉하고 그것을 위해 내 목숨까지 버리를 영웅주의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 더보기
[123호] 내면의 교류에 목마른 우리에게 내려진 단비 내면의 교류에 목마른 우리에게 내려진 단비 김하늘 기자 혁명가 트로츠키는 스탈린에 쫓기는 신세에서도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로 말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감독 로베르토 베니니는 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는데, 그것이 영화의 제작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혁명이나 좌익과는 거리가 먼, 아쉬울 것 전혀 없이 잘 나가는 영화감독인 그에게 트로츠키의 말이 그의 마음에 어떤 혁명의 불씨를 당겼던 것일까. # 가벼움과 무거움 요즘 세상은 가벼움에 지배당하고 있는 듯하다. 무거움 혹은 진중함과 양립하지 않는 가벼움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연약하고 무의미하다. 문화적인 자극을 위해 개봉 영화들의 이국적이고 화려한 배경과 현란한 그래픽에 눈을 뺏기다 보면 어느새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이 끝나있다. 어느 .. 더보기
[122호] PIETA 자비를 베푸소서... PIETA 자비를 베푸소서... *영화 ‘피에타’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 김하늘 기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부인 ‘돈’과 인간존중의 보편적 가치, 우리 사회는 무엇을 우위에 두고 있는가. 중국의 사상가 양계초는 백성의 의무로써 ‘공덕’을 요구했다. 공덕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사회에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도록 하는 덕을 말한다. ‘내 것 지키기’에 바쁜 세상에서 양계초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제공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개인으로서 이루는 것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사회를 위해 하는 일들이 과연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한 최선인가. 진정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조차 드러낼 여력도 없이 이 사회의 구석에 매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더보기
[121호] 아, 삼민광장 칼럼 아, 삼민광장 박승일 기자 한 때 우리에게도 광장이 있었다. 돈이 없어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던 곳, 때로 공부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던 그곳, 선생이 거닐던 그 자리에 다시 제자가 머무르던 그곳, 광장은 마침 그 이름이 삼민이었다. 아담한 풀밭을 한 쪽은 벚꽃 나무가 다른 한 쪽은 플라타너스 나무가 빙 둘러치고 그 사이를 투박한 나무 벤치가 기다리고 서 있었다. 밀린 독후감을 쓰다가 하늘이 파랗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냥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눈웃음 자아내는 행복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신입생이었을 때 대학은 그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주위에서 뛰어다니던 학생들은 운동장의 먼지를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그 경사진 풀밭에서, 자장면 먹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