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6.08 12:30

서강대 대학원생 여러분은 어떤 논문을 쓰고 계신가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구도 있을 것이고, 앞서 걸어간 사람들을 만나는 연구도 있을 것입니다. 생사와 연결된 내용의 연구가 있는가 하면, 한 시대의 통념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연구들이 존재하지만, 이 모든 연구들이 개인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회와 맞닥뜨릴 때 생겨나는 물음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속에서 이미 정해져 있는 질서와 법칙에서 종종 무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다수와 소수로 구분되는 체제에서 갈등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의 논문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의 달리기가 떠올랐습니다. 러닝머신은 기계가 작동하는 대로 내 몸을 맡기지만, 마라톤의 경우 각자에게 맞는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달리는 과정에서 타자와의 교감이 가능하기도 하고, 거리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도 보입니다.

이번 141호에서는 여러분과 함께 마라톤을 해보려 합니다. 그 출발은 우리의 주체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로 나누고 싶습니다. 일상 속 당연하게 생각하며 걸어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 거리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 고민이 연구에서 어떻게 이어지면 좋을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장 양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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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4.08 20:07

 

 

하나. 대학원 수업 중이었습니다. 학생부모’(아이를 둔 대학원생)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생 아들이 치마를 입어도 되냐고 물어봤어요.” 마침 그 수업은 여성학 수업이었습니다. 그 학생 부모는 질문을 받고, “그래도 된다고 쉽게 대답할 수 없던 자신이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했습니다. 남자인 아이가 치마를 입고 유치원에 갔을 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 했습니다. 배움과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어쩐지 저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고향집에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곧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려와 읽고 있던 책을 덮었습니다. 밀란 쿤데라 장편소설무의미의 축제. 마침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차였습니다.

 

다르델로, 오래전부터 말해 주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서죠. (중략)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중략)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 “꼭 의미가 있어야 하나?” 세상은 자꾸만 무언가 의미있는 것들을 해내라고 강요하고, 무언가에 의미부여하길 강조하며, 또 그를 해내기 위한최선의 노오력을 쏟아내길 강요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 의미들이 각자가 부여한 의미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내고 강요한 의미들일 때가 있습니다(아니 많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모두가 이 의미들을 따라가야 하는 걸까요?

 

 

이번 신문 140호의 기획에 대한 단상들은 많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서 묻고 생각해보는 시간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여전히, 세상이 요구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통해서 모두의 의미가 다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모두 다 의미 있기에- 오히려 무의미한 세상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무의미해야만 누구에게도 의미를 강요하지 않을것 같아서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내가 배운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 걸까요?” 이번 140호는 이 질문으로 시작해서 이 질문으로 끝을 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140호에 실린 필진에게 던진 질문이고, 두 번째는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부디 이 신문이 여러분에게도 삶의 의미에 대해 묻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래어봅니다.

 

 

편집장 신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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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3.06 15:39

 

 

 

“사람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해.”


 감자탕을 먹다 말고 선배가 말했다. 요는 아주 사소한 일이더라도, 불의와 불합리에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는 말이었다. 선배는 그러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순간에 목소리를 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꽤나 소심한 성정으로, ‘굳이 그렇게 불편한 이야기들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나만 꾹- 참으면 조용히 넘어가게 될 텐데’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며칠 후다. 친구랑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꽤나 유명한 ‘맛집’이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 줄의 맨 뒤에 서서 5분 정도를 기다렸을 때다. 뒤이어 온 손님 무리가 우리를 지나쳐, 가게로 들어가더니 ‘waiting list’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떡볶이 집에 나름의‘룰’이 있었던 것이다!) 친구와 나는 억울했지만 ‘룰’을 몰랐던 우리 탓이라 여기며 참고 있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룰’을 모두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라면 더 이상 ‘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다. 사장님은 기꺼이 순서를 변경해주셨다. 그때 어렴풋이 선배가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던 말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무엇도 변하지 않기에, 할 말을 다 하라는 이야기였을 터다.


 지난 7주 간, 나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끝마치고 광화문에 나갔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을 대면한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처음엔‘촛불’을 들고 나갔는데, 바람이 점점 강해지면서는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을 들고 나갔다. 어떤 날에는 혼자이기도, 또 어떤 날에는 누군가와 함께이기도 했다. 그렇게 1주, 2주, 3주 나가다보니 어느새 당연한 ‘알바 후’의 일정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날 중, 함께 광화문에 갔던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일상’이 안 돼. 만약 주말에 거리로 나와서 ‘분노’하지 않으면 나는 일주일을 망치고 말거야.”


 어느새 습관적으로 광화문에 나오고 있던 내게 그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왔던 이유가 새삼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때 불현 듯‘분노해야 한다’던 앞선 선배의 이야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모두가 거리로 나서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 비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각자의 일상을 살아내야 했기에, 대신 맡겨 놓은 우리의 권력, 그리고 대의정치. 그러나 그곳에는 그 대의가 고장 나고 망가지는 바람에 덩달아 망가져 버린 우리의 ‘일상’만이 남아 있었다.

 

 이번 139호의 기획은 그래서 ‘대의(代議)와 재현(再現)’이다. 누군가 나(혹은 우리)를 대신하여 의논한다는 ‘대의’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나를 대신하여 의논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보여주는 ‘재현’ 또한 가능한 것일까.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는 ‘재현과 대의’에 언제나 왜곡될 가능성이 내재 되어 있음을 확인한 것은 아닐까. 만약 정말 그러하다면, 우리는 무언가 잘못(재현)되었을 때,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분노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분노하며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내가 누구인지’ 말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긍정하면서 포용했다. 나를 둘러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삶 전반에 이르는 정치에까지, 우리는 우리가 제대로 재현되고, 대의되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지 못 하였을 때,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는 이제-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내가 원하는 세상을 외치기위해서 광화문에 나간다.

 

 


편집장 신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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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02.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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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6.08 12:23

1. 3년 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보냈던 하루하루를 생각해봅니다. 그곳은 시간을 수치로 매겨 나타내는 시계가 없었기에 무언가 다급하거나 촉박할 이유가 없는 공간입니다. 가리지 않고 모든 걸 품는 하늘과 거기에 덧대어 흘러가던 구름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길 위를 어슬렁거리던 까만 개의 눈동자와 지긋이 마주해봅니다.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죽음을 맞이하고 있던 반쯤 말라버린 나뭇잎 하나를 발견합니다. 작은 것들이 주는 아름다운 정동을 느낍니다.

 

 

2. 돌아온 세상은 빠른 속도로 하나의 방향으로만 내리닫기만 합니다.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새도 없습니다. 삼천포로 빠지고 싶은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괜한 죄책감이 듭니다. 눈앞에 닥친 것에 급급해져 주위를 둘러볼 수가 없습니다. 다들 자신의 고통에, 누군가의 고통에 점점 무뎌져 갑니다. 죽음을 타자화합니다. 서로서로 잡아먹습니다. 애석하고 슬픈 움직임들입니다.

 

 

3.‘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이성복 시인의 언어를 곱씹어 봅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단단해져 버린 일상들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주어진 삶에 순응하면서 그저 자조(自嘲)하기에는 저 자신과 연결된 무수히 많은 삶과 삶, 죽음이 떠오릅니다. 너와 나,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에 대한 책임을 느껴봅니다. 신명나게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 대안을 상상해봅니다. 결과로서 정체한 대안이 아닌, 연쇄적인 대안에 대한 대안을 (계속해서) 질문해 봅니다.

 

 

편집장 황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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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65983958 2016.06.15 18:46 신고  Addr  Edit/Del  Reply

      알찬 정보 좋네요~

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6.04.21 22:09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근황을 물으면서 신문편집회의를 시작했다.‘다들 어떻게 지냈어요?’
최근 주말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편집위원 한 명이 아르바이트하면서 느꼈던, 전혀 시시콜콜하지 않은 한풀이를 늘어놓았다. 나의 언어로 대신 전하는 것보다 당사자의 언어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편집위원에게 카페 아르바이트하면서 겪었던 일과 느낀 점에 관한 글을 부탁하였다.

“나는 왼손잡이다. 반면 우리 사회에는 오른손잡이가 많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느낀 점은 이 불균형이 가지고 오는 파급이 생각보다 만연하다는 것이었다. 커피 원두를 가는‘그라인더’에서 원두 가루를 뽑아내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전에 이 분쇄된 가루를 다지는 과정을‘탬핑(tamping)’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라인더에서 탬핑까지 모든 과정은‘오른손’위주이다. (심지어 교본에도 오른손으로 하라고 쓰여 있었다!) 습관처럼 왼손을 쓰던 나는 사장님께‘작업 효율성’을 문제로 한 소리 들었다. 문제는 카페의 모든 시스템과 동선이 그렇게 오른손잡이 위주였다는 것이었다.

내게 하나하나 일을 가르쳐주시던 사장님은 왼손이 먼저 나가는 나를 보며 종국에는‘왼손잡이랑 일 같이 못하겠다’고 하셨다. 정말 진심으로 답답해서였거나 사실 대수롭지 않은 농담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했던 나에게 그 일은 일종의 폭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오른손으로 탬핑을 하고 있었다.”

이번 신문 기획은 노동에서 소외당한 왼손에 관한 이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기획을 준비하는 내내 자문해보았다. 노동환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 놓이는 내 몸은 과연 나만의 것인가? 


편집장 황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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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12.08 02:46

2015년 12월. 국가란 무엇인가?

 

 

1.
 오쿠다 히데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임순례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쪽으로 튀어>는 주인공 최해갑과 그의 가족들이 국가가 요구하는 불합리한 의무를 피해 저 먼 남쪽 섬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본지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뇌리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자신의 뒤를 캐는 사복 경찰의 주민등록증을 최해갑이 과감하게 종잇장처럼 구겨서 강으로 던져버리는 장면이다. 항상 지갑에 넣어서 지니고 있는 내 주민등록증이 뜨끔 떠올랐다. 어쩌면 주민등록증은 국가가 국민에게 강요하는 존재 증명서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주민등록증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미리 정해져서 당연하게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국가라는 시공간은 나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일까?’ ‘나를 국민으로 명명한 것은 무엇인가?’ 곧바로 영화 속 주인공 최해갑의 대사가 떠오른다. “멋대로 정해놓고 국민의 의무다? 좋소. 그럼 난 오늘부터 국민 안 합니다.”


2.
국가에 대한 사유와 의문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자들,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로 곧 이어진다. 얼마 전 민중 총궐기에서 경찰의 국가폭력이 행사한 냉철한 물줄기로 인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 유신정권이 억압한 기지촌 여성들, 자식들과 가족의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을 바라는 세월호 유가족들, 점점 사라져 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기억되지 않은 채 소외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많은 사람.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고통을 생각하면 답답함과 분노가 언저리로부터 치밀어 오른다. 나를 직시하고 있는 송곳과도 같은 날카로운 감정을 품고 이번 신문을 기획하였다. 기획 내내 국가의 자격에 대한 질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꽤 불편한 질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면들을 통해 국가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필요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장 황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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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10.11 23:27

화폐에 가려진 가치


돈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의식주는 물론 사람의 마음까지도 돈을 기준으로 가치를 매기곤 합니다. 모든 기준에 돈을 대입하다보니 돈이 아닌 것으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입니다.


하지만 분명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사물함이나 연구실에 붙어 있는 친구의 쪽지, 지친 친구에게 내미는 한 잔의 커피, 뜬금없는 한 통의문자나 전화, 힘든 하루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 말없이 잡은 손 등등.. 이 지면을 빼곡하게 채우고도 남을 만큼 생각이 납니다.


어쩌면 우리는 돈에 짓눌려 마비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마비시킨 돈의 메커니즘은 무엇인지 알아야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번 호 기획을 통해 여러분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장 채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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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6.22 16:31

안전을 가장한 감시



얼마 전 노트북에 있는 카메라를 종이로 가렸다. 작동하지 않는 카메라이지만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문득 카메라와 눈을 맞추는 느낌이 들면서 ‘파놉티콘’을 떠올렸다. 


어느 때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요즘이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 수많은 정보를 ‘누군가’에게 제공한다. 심지어 나도 모르게 사적 정보가 제공되기도 한다. 이것이 안전을 위해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인지 안전으로 포장된 교묘한 감시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안전한 세상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는 것을 안전이라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전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안전이라는 이름을 이용하여 ‘누군가’가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편집장 채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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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5.05.05 14:58



배제된 청년 세대

요즘만큼 청년 세대가 화두가 된 적이 있을까

이 글을 읽는 대다수는 청년일 것이고, 나머지는 ‘청년이었던’ 누군가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함께 청년을 논할 수 있다.

언제부턴가 청년은 회색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그들의 위치 또한 비슷하다. 청년은 꼭 회색 집단이 된 것 같다. 어디에나 속할 것 같고 쉽게 언급되지만 그 누구도 진정 관심을 갖지 않는다.

색을 잃은 청년 세대가 사회적 배제의 결과라는 생각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이번 호를 통해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적 배제와 관련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왜 사회는 청년을 배제의 대상으로 선택했는지, 사회적 배제가 청년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과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배제된 현 상황을 극복하고 회복할 수 있다.

이 신문을 읽게 될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신문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당신이 그 답을 찾기 바란다.

편집장 채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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