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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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12

 

 

<143호 편집장의 글- 기억, 기록>

 

잊혀졌던 주제를 반복적으로 돌아보며 찍는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촬영하려는 대상이 보여주는 다양한 면모를 포착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대상이나 사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143호는 시간은 흘렀으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기록은 역사적 과거를 다시 현재의 시간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현재 삶의 진정성을 다시 묻기도 합니다.

 

위안부의 역사적 기록,

둔촌주공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 기록되는 추억,

과학이 지배하는 인간의 기억,

영화 화면에 그려지는 화면해설,

그리고 기억을 바탕으로 쓰여진 기억의책까지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로 불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모든 일을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말에는 무엇보다 한 존재의 삶을 지탱하는 무엇이 내재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편집장 양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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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11

30대를 마무리하며

-서강, 우리의 자랑이 되어주세요

 

30대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 _ 김종혁

 

 

안녕하세요 제 30대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 김종혁입니다. 제가 대학원에 들어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학생회 임원을 3학기나 했습니다. 그동안 서강대 대학원 원우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학교에 전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러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최근 대학원생과 관련된 이슈가 미디어에서 자주 출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터넷 게시글에 대학원생의 삶을 묘사하는 글도 많이 올라옵니다. 이는 19622094명에 불과하던 대학원생수가 2014년 기준으로 33872명으로 52년 만에 158배 급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산업이 지식기반으로 변화하면서 전문인력 수요 증가와 청년 취업의 여파로 취업시장으로부터 잠시 도피하기 위한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대학원생의 증가로 인해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대학원생의 경험이 소수의 경험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런 요인들이 대학원의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증가와 사회적 이슈만큼 대학원생의 처지가 그리 좋아지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습니다. 현재 대학원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대학원생의 당연한 권리 인권

아무래도 가장 우선시해야 할 문제는 대학원생의 인권 문제입니다. 인권 문제는 원우분들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평소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설문조사가 100명을 넘기 힘든데 비해서 <연구환경실태조사>200명 이상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원우분들의 인권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인권은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지만 지면의 한계 상 짧게나마 우리가 쉽게 간과하고 넘어가는 대학원의 육아하는 원우들에 대해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원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그들이 육아를 병행하면서 공부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아이의 엄마나 아빠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한명의 연구자입니다. 자신의 자녀로 인해서 그들의 정체성이 부정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 아이를 집에 내팽개치고 학교를 왔냐라고 하기 전에 이들이 연구자로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베이비존, 모유실과 같은 기반시설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렇게 육아를 병행하는 대학원생의 문제뿐만 아니라 조교의 인권 부당 침해 등 여러 고질적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래도 지난 6월에 학교에서 인권권리장전 선포식을 진행하고 학교와 권리장전을 체결했습니다. 최근 대학원사회에서 일어난 변화 중 큰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최근 11월에 진행 중인 <연구환경실태조사>를 보면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전히 학교의 인권실태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인권권리장전 선포식과 함께 인권위원회는 만들어졌지만 문제를 제기할 인권센터의 설립은 아직도 멀어 보입니다. 만들어진다고 해도 학교에서는 인권센터의 역할을 단순히 문제 발생 후 해결하는 것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인권센터의 바른 방향은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인식을 개선하고 방지하는데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예산을 문제로 이야기합니다. 이럴 때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그래도 얼마 전 현직 대학교 총장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검찰에 수사를 받게 된 사건은 한줄기의 빛처럼 여겨집니다.

 

대학원의 조교의 노동자성 그리고 장학금

대학원생의 <연구환경실태조사>를 보면 전업학생이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전업학생의 경우 등록금을 내고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원우분들이 대학원에서 조교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2012년에 일반장학금 지급규정이 개정되면서 학과장 장학금이 폐지되었습니다. 그 후 TA장학금(조교 장학금)으로 전환되면서 조교의 수가 늘어났지만, 이전 장학금의 총액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사실 장학금의 총액이 줄어든 것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TA장학금이 교내 장학금의 비율을 0%로 만든 조치나 다름없다는 사실입니다. TA장학금은 대학원생들이 조교로 일한 대가로 받는 임금입니다. 대학본부는 이 돈을 장학금 예산으로 지급함으로써 마치 장학금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엄연히 TA장학금은 노동에 대한 대가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걱정하듯이 조교가 임금으로 변화면서 장학금이 다시 한 번 줄어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학교는 학업을 독려하기 위한 서강만의 장학금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연구환경실태조사>에서 많은 학생들이 요구하듯이 좋은 장학금 제도가 생긴다면 학생들의 연구 환경 또한 개선될 것입니다. 또한 조교의 임금과 노동자성의 인정을 통해서 그에 합당한 조교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논문심사 역시 교육의 일환

대학원생들의 경제적 여건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한 명의 연구자로서 대학원의 진학하지만 내야 할 등록금은 4학기 동안 거의 2천만 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등록금이 다가 아닙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기 위해 논문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사회과학이나 경영학의 경우 논문을 쓰기 위해서 설문조사 방법을 많이들 사용합니다. 설문조사를 할 때 설문대상자에게 답례품으로 선물을 제공하는데 적게는 몇 십만 원에서 많게는 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됩니다. 대부분이 전업 학생인 대학원생들에게 이러한 금액은 정말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논문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논문 심사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는 대부분 수업을 듣지 않고 논문을 씁니다. 이때 학생은 이미 등록금을 냈는데 또 논문 심사료를 내라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대학원에서 논문 심사료를 부과하는 것은 등록금을 낸 대학원생들에 이중부과나 마찬가지입니다. 외국에 경우 대학원생이 학교에 연구를 신청하면 연구비를 지원합니다. 산학협력과 연결된 수업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지만 이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신청을 통해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많은 대학원이 논문 심사료를 일련의 교육 과정으로서 등록금에 포함시키고 폐지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위 논문은 연구자 개인만 아니라 소속 학교의 재산이기도 합니다. 또한 논문의 수준이 대학의 수준과 직결됩니다. 학위논문을 없애는 것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서 연구의욕을 고취시켜야 합니다.

 

결국은 대학원 졸업이후 진로가 문제

대학원의 진학은 결국 자신의 진로를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대학원의 졸업이 취업을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연구환경실태조사>를 보면 많은 원우분들이 대학원생을 위한 취업시스템 혹은 교육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후 학교에 대학원생을 위한 취업교육이 있는지 확인한 결과, 이미 취업센터에서는 대학원생도 포함해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취업시장에서 석·박사생을 위한 취업의 자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급 연구 인력이 가장 많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대학과 정부출연·기업 연구소인데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교수로 취업할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기업 상황도 여의치 않습니다. 특히 대학 등 연구기관에서 국내 석·박사보다 해외 유학생을 더 선호하는 상황입니다. 서강대 경우, 자대 출신의 교수님이 많지 않습니다. 지난 기획예산팀에 확인한 결과 몇 십 명이 넘지를 않았습니다. 대학원생의 진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자체가 연구중심의 대학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포스트닥(박사 후 과정) 위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한 명의 교수 밑에 조교수, 부교수를 포함해 포닥이 많고 이를 통해 교수는 그들이 만든 연구 결과를 모아 방대한 논문을 쓴다고 합니다. 대학원생들도 연구자로서 생활비를 후원받으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 학교에서 대학원 발전계획으로 세우고 있는 것은 신입생 모집 확대와 인권 개선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이지 발전 방안은 아닙니다. 대학원생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의 진로를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식의 변화가 없다면 대학원생들은 계속 줄어들고, 해외로 나가려고 할 것입니다.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생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원생들이 처해있는 환경, 그리고 학과별 상황이 아직도 학교에 잘 반영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학생자치가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서강대를 포함해서 많은 대학들의 학생 자치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지난 과거에서 학생회가 저지른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학생들이 여유를 가지고 연대해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대학원총학생회는 매 학기 초 과대표자회의를 통해 대학원생들과 개별학과의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류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현재 과대표자는 각과의 조교장이 대부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교장은 과를 대표한다기보다 학과 행정업무 담당자 성격이 강합니다. 대학원생들의 자치권 회복을 위해서는 책임 있게 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도 과대표자들이 운영하는 구조로 개편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원 총학생회가 학교를 대신해서 일하는 행정팀이 아니라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는 자치기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장학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학생회 예산으로 이를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학교에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우분들도 대학원 총학생회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원의 수준은 대학원생들의 연구 의욕에서 시작됩니다. 대학원생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는 아낌없는 지원으로 연구 환경 조성을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서강의 자랑이 될 수 있게, 서강 우리의 자랑이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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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9

우리 학교에는 성평등위원회가 있습니다.

 

20171학기 성평등위원회 위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_ 한나현

 

 

아마 많은 서강대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성평등위원회’(이하 성평등위)의 존재를 모를 것이다. 나 역시 총학생회 집행부로 일하면서 성평등위에 20171학기에 참여하기 전까지 성평등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소개를 위해 성평등위의 존재 이유가 적혀있는 시행세칙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서강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 성평등과 성적자율권 보장을 위한 시행세칙은 제 11조의 총칙에서 이 세칙이 서강대학교 대학원총학생회에서 성평등을 실현하고 특정 성별, 성정체성,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이를 위해 설치된 기구가 과대표자 회의의 인준을 거쳐 매 학기 새롭게 구성되는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산하의 성평등위원회이다.

 

이 시행세칙의 제정일이 무려 2008324일인데, 10여년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 심지어 성평등위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이전의 성평등위가 어떤 이슈를 가지고 논의했고 또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했었는지에 대해 알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옛 문서와 사진들이 쓸쓸하게 나뒹굴고 있는 대학원 총학생회 싸이월드 클럽에서 , 성평등위는 몇 년 전 김조광수 씨를 초청한 행사를 했었구나-‘ 따위의 조각정보만을 알 수 있었을 따름이다. (학생사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자료의 축적과 역사의 전승은 필수적인데, 특히 대학원 사회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그런 것에 무관심하다. 매번 다시 맨땅에 헤딩하기!)

 

그러나 이러쿵 저러쿵 불평해도 사실, 제정된 세칙을 찬찬히 읽다보면 2008년 당시 성평등과 성적 자율권의 보장을 위해 수많은 토의와 자료수집과 여러 절차를 거쳤을, 그때 당시사람들의 고민의 흔적들을 줍게 된다. 가령, 시행세칙 제 2조는 성평등 및 성폭력의 개념을 정의하는 조항인데, 정식화된 개념 2가지에 세부개념 7가지 그리고 거기에 더해 예시를 13가지 종류나 들면서 (세칙에 이런 구체적인 예시를 드는 경우가 있던가? 나는 처음 본다. 예를 들어, ‘ 술자리 벌칙의 일종인 러브샷을 강요하는 행위와 같은 예시들이 일일이 첨언되어 있다.) 무엇이 성폭력인지를 규명하고자 애쓴다. 이 조항들을 읽어 내려 가다보면, “ ‘원래 다 그런 거 아냐? 그게 뭐 어때서?’ 싶은 행동들도 성폭력이거든? 제발 좀 알아들어라!“ 하는 외침이 들린다. , 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런 외침을 듣게 되면 그 사람의 고민과 나의 고민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함께 같은 목표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른 시간에 있어도 서로 만나게 되는 영화 <너의 이름은.> 적인 경험.

 

하지만 물론 이들이 남겨준 유산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세칙이 처음 제정될 당시에 이것은 만든 이들의 최선이 담긴 결과물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개념들은 보다 더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 개정작업을 했다. 20171학기 성평등 위원들이 머리를 맞대어서 1) 성 정체성, 성적 지향에 관한 내용을 추가 하고 2) 남성, 여성', '양성'''으로 수정하고 3) 성폭력의 개념을 성적인 폭력(sexual violence)’ 뿐 아니라 성별화된 폭력 (gender violence)’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서 정의하는 것을 골자로 시행세칙을 고쳐 썼다. 기존의 세칙에 켜가 쌓이는 것을 보면서 다음에 올 성평등위원은 또 어떤 눈으로 이 개정된 세칙을 보게 될까? 또 어떤 개정작업이 이루어질까? 라는 기대를 품었다. 이렇게 과거로부터 전달받은 메시지를 지금에 맞게 읽고 생각하고 고쳐 쓰는 일이야말로 (대학원 신문의 이번 호의 주제인) ‘기억, 기록행위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이런 기억, 기록행위를 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러나 이렇게 달콤한 기대에 부푼 마음과는 달리 개정은 과대표자 회의에서 아무런 지적 없이 간단히 통과했다. 분명히 부족한 것이 많을 텐데 아무도 토론을 걸어오지 않았다. .지적받고 싶다. 귀찮은 일이 줄어서 기뻤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방금은 마치 학생사회가 성평등에 대해 아주 무관심한 것처럼 묘사했지만, 사실 성평등위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성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에 처음 시행세칙과 성평등위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사람이 그랬고, 성평등위의 활동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나에게 기고를 제안해준 대학원 신문사 편집위원이 그랬으며, 실태조사에서 자신의 피해경험을 자세히 기술해주었던 익명의 응답자가 그랬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을 막고, 보다 평등한 관계맺음의 방식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20171학기에 성평등위에서 실시한 <성평등 실태조사> 문항에 대한 사람들의 길고 긴 답변들은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가 폭력에 무방비하며, 피해자에게 희생을 감수하도록 함으로써 멀쩡한 척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러한 실상을 자세히 써 보내주는 마음에는 무언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져야만 한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나는 사실 이 답변들이 버거웠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고 혹은 내가 잘 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사를 한 이상, 답변을 받은 이상, 이 무게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래서 지난 학기 동안 실태조사 결과를 홍보하고, ‘인권권리장전에 조사결과를 반영하고, ‘인권위원회를 설치하는 데에 이를 근거자료로 사용했다. 뚜렷한 성과가 있었는가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첫 번째, 홍보가 잘 되었다면 문의가 많이 들어올 텐데 그것도 아니고, 두 번째, ‘인권권리장전은 애초에 규범적인 이어서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하고, 특히 세 번째, ‘인권위원회는 학교와 논의한 지 한참 되었지만 더디게 진전되고 있다. 또한 현재의 인권위원회의 설치 구상이 얼마나 피해자를 고려한 것인지, 문화적인 측면은 간과하고 오로지 사건의 후처리만을 맡게 되는 것은 아닌지 등등 의문스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기억기록만 남는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가 각자의 몫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서로 적극적으로 알리고 공유해서 많은 사람들이 학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과정에 접근할 수 있고, 관심을 기울이고, 관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참고로, 이번 학기에 성평등위에서 주력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은 부모원생의 학업권과 육아권 보장 프로젝트(가제)’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 역시 지난 학기 실태조사에서의 요구를 반영하여 선정한 것이다. 학교 내에 육아에 필요한 서비스와 공간을 마련하고, 홍보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다. 수유실 공간을 늘리고 환경 개선하기, 학내 혹은 학교와 연계된 보육시설 요구하기, 부모원생 커뮤니티 만들기 등등을 떠올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대학원생의 육아가 학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대학원 사회가 함께 노력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일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마침 총학생회에서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니 이를 통해서 상상력을 나누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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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7

기억을 나누는 기쁨

 

기억의책 편집자 _ 박범준

 

 

기억의책을 만들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났다. 70여권 기억의책을 만드는 동안 꿈틀 직원 수는열 다섯을 넘었고, 바다 건너 대만에서도 첫 번째 기억의책이 인생서책(人生書冊)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처음 시작할 때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즐겁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기억의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단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와 불화를 거듭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제법 당당하고 어른스러운 나였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늘 위축됐다. 나를 철없고 답답한 막내아들로 보는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버지 앞에 서면 긴장했다. 조리 있게 내 뜻을 설명하지 못했고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강변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일로 바빠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아버지와의 관계는 내 마음 속에 깊은 상처였다. 늘 힘들었고, 자주 불화했고, 그 속에서 깊은 좌절과 수치심을 느꼈다. 막연하게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 무렵 내 생에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1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와의 결별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제법 당당하고 어른스러웠다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특히 아내와 감정싸움을 할 때면 마치 아버지와 관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철없고 답답한 사람으로 돌변했다. 그때마다 어렴풋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내 삶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실수가 쌓이면서 아내와의 관계는 점점 나빠져 갔고,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아픈 이별을 맞이했다.

살다보면 잘 맞지 않아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리석고 성숙하지 못한 나는 너무나도 아프게 헤어져야 했다. 그 뒤에 찾아온 것은 깊은 좌절의 시간이었다. 다행히도 좌절을 딛고 일어서던 무렵에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반드시 회복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더 이상 유치하고 미성숙한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했다. 너무나도 다른 세월을 살아오면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와 나는 사사건건 부딪혔다. 차라리 멀리 떨어져 지내는 것이 관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느끼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제사를 마치고 식사를 하다가 오랜만에 아버지가 말문을 여셨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있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당시에 쓰기 시작한 책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아버지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너는 대체 언제 정신을 차릴 거냐? 그런 책을 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어디 취직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나에게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철없는 짓이라고 비난하시는 것에 마음이 상한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욱하고 성질을 냈겠지만 차분하게 내 감정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아버지, 저 이제 나이가 마흔이 넘었어요. 아버지가 제 삶을 인정해주지 않으셔서 답답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아버지가 조금은 내 뜻을 이해해 주시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내셨고, 나는 다시 한번 좌절하면서 자리를 떠야 했다.

혼자 방에 누워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대체 나의 삶을 인정해달라는 말이 뭐가 그렇게 화가 날 말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서운 생각 하나가 내 머리를 스쳤다.

마흔이 넘은 아들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말하던 그 순간까지 내가 일흔을 넘긴 아버지의 삶을 인정한 적이 있었던가?’

철이 들면서 아버지의 삶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적은 없었다. 마흔이 넘도록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마음이 답답했다면, 일흔이 넘도록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제서야 아버지가 보인 분노를 이해하면서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무렵 한 책에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한 대화를 나누라는 조언을 들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가치관의 차이로 부딪히기 쉽지만, 아버지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버린 내 기억 속 아버지 모습이 아니라 천진난만하고 꿈이 많던 미래를 고민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년은 나처럼 생각이 많고 겁이 많았다. 미래는 불안했고 기댈 곳은 많지 않았다. 기억 속 나의 어린시절 혹은 내 주변 가까이 지내는 친구나 후배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제서야 거짓말처럼 아버지의 모습이 편안하게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내 꿈 중에 하나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었다. 운 좋게도 나는 30대에 그 꿈을 이뤘지만, 혹시 아버지에게도 그런 꿈이 있지 않았을까? 굳이 많은 독자를 만날 수는 없어도 상관없다. 누구에게나 자신 삶의 이야기는 그 무엇보다 의미 있을테니 말이다. 적어도 아들, 딸과 손주들은 그 책을 읽고 자신의 뿌리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이면 사회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기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책이니 생애사라고 부를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이니 자서전이라고 부를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기억의책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다. 대단할 것 없고 특별할 것 없어도 한 사람의 기억을 그대로 담은 책이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책을 만들자는 말씀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왜 또 쓸데없는 짓을 하냐고 꾸짖지 않을지..... 여전히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먼저 제주해녀 할머니의 기억의책을 만들었다. 경험 없이 의욕만 앞선 책이었지만 함께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소중한 경험과 큰 용기를 준 책이다. 딸을 여섯 낳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얻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책이 한권 나오니 기억의책을 더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아버지도 흔쾌히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 기억의책을 만들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큰 선물을 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가 용기를 내주지 않으셨다면 사라져버렸을 이야기들이 빛바랜 사진과 함께 책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아버지 책을 만들어서 처음 보여드리는 날 무척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찬찬히 살펴보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야 막내아들이 아버지 삶을 그대로 인정해드려요.’

기억의책을 만들기 위해 꿈틀이라는 이름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꿈틀에 참여한 분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실향민이신 아버지의 이야기가 궁금한 원성철 대표님, 어머니에게서 늘 너는 늘 남의 이야기만 쓰지 말고 네 엄마 이야기도 한번 써봐라. 엄마 이야기가 책 한권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권민진 부편집장님, 젊어서 아버지를 잃은 강민수 부편집장님, 인류학 석사로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논문을 쓴 오주해 작가님, 홍보영상을 촬영해준 인연으로 시작해 회사에 들어온 영상담당 김동언씨, 일인창조기업으로 어르신들의 옛 사진을 모아 전시회를 여는 일을 했던 박미혜 이사님 등등. 이제는 열다섯 명이 넘은 꿈틀 식구들은 책을 가장 잘 만들거나, 글을 제일 잘 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삶은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믿음으로 삶의 의미를 가장 잘 존중하고 삶의 이야기를 제일 잘 경청하는사람들이다. 그 힘으로 우리는 세상에 없던 부모님의 삶을 책으로 엮어서 남기는 일을 만들어왔다.

20179월에는 대만에서 만든 첫 번째 기억의책이 세상에 나왔다. 여행 중에 만난 대만 젊은이들에게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나도 우리 할아버지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 소개로 알게 된 대만의 젊은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들에게 꿈틀이 추구하는 가치와 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대만에서도 이런 일을 해보자고 설득한 지 1년여만의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첫 번째 기억의책이 나오면서 회사의 꼴을 갖추고 일이 시작되었다. 책을 만들 수 있는 팀이 짜여지고, 보여줄 수 있는 시제품이 나왔으니 대만에서도 곧 기억의책들이 하나 둘 세상에 나오리라 기대한다. 마침 11월에는 대만에서 첫 번째 기억의책 주문이 들어왔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가족의 기억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가장 한국적인 문화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인데, 어쩌면 인류에게 가장 보편적인 욕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하나 뿐인 자신의 기억은 소중하다. 어르신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무척 행복해하신다. 한 나절 동안의 인터뷰에 지칠 법도 하지만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동안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경우가 많다. 그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오는 순간보다도 그렇게 누군가 앞에서 자신의 기억을 토로하는 순간 더 행복해하시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는 동안 스스로 자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많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들은 한 뇌인지언어학자는 그렇게 오래된 경험을 더듬고 언어로 구성하여 표현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뇌인지언어활동이며, 그런 활동이 어르신들의 치매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의견을 주셨다. 2018년에는 어르신들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과 나눔으로써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는 기억활동 교육프로그램을 산학협력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기억의책을 통해 가족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깊이 있는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것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은 나 스스로가 아버지와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이다. 더 나아가서 장례식장에서 고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고인의 기일에 가족들도 제사준비에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고인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추모하는 가족문화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017년 꿈틀은 제주도 서귀포서 남원읍 하례리의 어르신 열 분의 기억의책을 만들었다. 한 마을에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열 분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라면 마을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기획한 프로젝트다. 2018년에는 제주도 4.3사건 70주년을 맞아 4.3 생존자 약 백 분의 어르신 기억의책을 제작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재일제주인등의 재외동포, 특정지역이나 직업의 경험을 공유하는 어르신들의 기억의책을 만드는 작업은 공동체의 역사를 개인 삶의 기억들로부터 구성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라 되리라 기대한다.

 

미국 드라마 왕좌의게임(The game of throne)를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다.

아무도 너를 노래하지 않을 거야!”

중세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이 드라마의 원작소설 제목은 불과 얼음의 노래(The song of ice and fire). 그 세계관 속에서 노래란 이야기고 역사이며 곧 기억이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을 거야. 너는 어떤 역사에도 한 줄 이름을 남기지 못할 거야라는 말이 귀족에게 또 기사에게 커다란 저주 혹은 욕설처럼 쓰이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굳이 영웅이야기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기억 받고 싶어 한다. 혹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기억의책을 만들면서 자신의 기억에 귀기울이는 사람이 있고, 자신의 기록이 세상에 남는다 사실에 행복해하는 많은 평범한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뜻을 같이 하는 좋은 동료들과 더 큰 꿈을 꾸고 있는 꿈틀은 더 많은 행복한 기억들을 함께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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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7

기억과 불멸 사이 인공지능의 기억, 인간의 기억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저자,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_ 김재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에는 자아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이 나온다.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은 상당히 철학적인 유명한 화두를 던진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위해 많은 부품이 필요하듯이, 자신이 자신답게 살려면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지. 타인을 대하는 얼굴, 자연스러운 목소리, 눈뜰 때 응시하는 손, 어린 시절 기억, 미래의 예감. 그것만이 아냐. 전뇌(電腦)가 접속할 정보와 네트워크.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부이며 나라는 의식을 낳고 동시에 계속해서나를 어떤 한계로 제약하지.” 나는 이 대사를 출발점으로 삼아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기억의 자리를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은 최근에 출간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에서 다뤘던 주제 하나를 풀어 보완하고 확장한 것이다.

 

정체성 또는 동일성과 관련해서 테세우스의 역설이라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다. 고대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는 굉장히 오랜 기간 보존되었는데, 낡은 부분을 교체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부분이 교체된 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배는 동일성을 유지한 걸까 아닐까? 이 역설이 문제가 되는 건 우리의 몸을 이루는 기관들도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때문이다. 심장, , 눈을 이루는 세포를 제외하면, 가령 가장 오래 유지되는 뼈도 10년이면 완전히 바뀌는데, 나의 정체성은 어떻게 유지된다고 할 수 있을까? 아장아장 기어 다니던 나와 지금의 나가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 근거를 기억에서 찾곤 한다. 비록 몸은 바뀔지라도 기억의 동일성이 우리를 똑같은 존재로 보존해 준다는 것이다. 앞서 본 쿠사나기의 말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사실 기억은 둘로 구별해볼 수 있다. 하나는 나의 내적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기억이다. 쿠사나기는 이 두 종류의 기억과 그 기억이 이루는 네트워크가 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억의 문제는 정신 차리고 잘 살펴야 한다. 자신의 내적 기억만을 기억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금세 난관에 봉착하게 되니 말이다. 인간의 기억은 부단히 망각되고 왜곡되고 편집되고 변형되고 갱신된다. 따라서 본성상 변하게 마련인 기억이 자기 정체성의 기초가 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주목할 것은 외부 기억일 것이다. 타인의 증언을 포함한 외부 기억과 관계가 나를 확인해주어야 나는 나일 수 있다. 내가 분명히 기억한다고 믿는 걸 남들 모두가 부정한다면, 나의 기억이 진짜인지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제 내적 기억과 외부 기억을 비교·검토해 보자. 나는 내적 기억이란 용어 대신 인간 기억이라는 말을, ‘외부 기억이라는 포괄적 용어 대신 컴퓨터 메모리 같은 걸 가리키기 위해 외장 기억이라는 말을 쓸 것이다. 외장 기억은 USBSD 메모리, 하드디스크, SSD 같은 유형을 말한다. 그런데 이때 외장 기억과 인간 기억은 과연 기억이라는 같은 유() 아래에 있는 걸까? 그 둘은 기억이라는 명칭만 공유할 뿐 본성은 전혀 다른 게 아닐까? 최소한 입력(코드화), 보존, 출력(해독)’이라는 과정만 보더라도 외장 기억과 인간 기억은 너무도 다르다.

 

아마도 외장 기억을 인간 기억의 유비로서 기억이라고 지칭한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인 것 같다. 이미 2500년 전에 플라톤은 문자를 외장 기억으로 여기면서 비판한 바 있다. 외장기억이 인간의 기억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실은 인간 기억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바로 외장 기억이다. 오히려 인간 기억은 변화무쌍하고 휘발성도 강하다. 인간 기억이 왜 이런 특성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진화의 역사만이 알려줄 수 있으리라.

진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억은 본성상 현재가 과거를 포함한다. 현재에 과거가 다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인간 기억의 경우 과거가 현재에 끊임없이 삼투되면서 존속하는 반면, 외장 기억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완전히 덮어쓰고 대체한다. 인간 기억은 회상이라는 심리 활동을 통해 현재로 소환되며, 이 과정에서 기억 내용이 변한다. 반면 외장 기억은 내용이 저장될 때 따른 규칙을 따라 역순으로 해독된다. 입력과 출력 사이의 내용은 똑같이 유지된다. 이는 마치 도서관과도 같다. 서가에 꽂아놓았던 책을 그대로 꺼내는 것이다. 물론 저장 매체가 훼손되면 내용이 손실된다. 망각은 외장 기억에서는 치명적이지만, 인간 기억에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한편, 󰡔특이점이 온다󰡕(2005)의 저자이자 구글의 엔지니어링 이사인 레이 커즈와일은 2030년이면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2045년경이면 인간 뇌와 결합한 인공지능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해질 것이란 구체적 예측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타고난 생물학적 사고 장치와 우리가 만들어낸 비생물학적 지능이 융합됨으로써 인간의 지능은 엄청나게 확장된다. 학습은 일단 온라인을 통해 이뤄지겠으나, 뇌 자체를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게 되면 거추장스런 과정 없이 곧바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다운로드받게 될 것이다. (...) 지구 상의, 그리고 지구를 둘러싼 지능은 줄곧 기하급수적 확장을 거듭하여 결국에는 지능적 연산을 뒷받침할 물질과 에너지가 모자라는 순간에 다다를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은하의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나면 인간 문명의 지능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최고의 속도로 더 먼 우주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413) 커즈와일의 이런 주장은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다. 바로 인간의 기억과 컴퓨터의 기억이 같은 본성을 가졌다는 전제 말이다.

 

커즈와일의 주장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괴델, 에셔, 바흐󰡕(1979)에서 뇌와 컴퓨터, 마음과 프로그램의 동일성을 주장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2015)에서 같은 주장을 했다. 이들의 공통된 논점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자연에 존재하는 다른 물질과 다를 바 없는 물리적 하드웨어다. 그 안에는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뭔가가 작동하고 있다. 그게 마음이다. 하드웨어가 똑같이 물리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성격에 관계없이 소프트웨어의 구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실리콘 기반인 컴퓨터를 통해 탄소 기반인 뇌 안에 든 마음의 구현도 가능하다.’ 이를 논거로 삼으면 인간을 닮은(human-like) 인공지능의 출현이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가능해진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이지만 큰 허점이 숨어 있다. 인간이 마음을 갖고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마음이 생겨났는지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거의 없다. 그저 38~40억 년에 걸친 기나긴 생명의 진화 과정 중에서 생겨났다는 것만 알 뿐이다. 논리적으로 구현 가능하다는 것만 가지고, 생성 원리나 작동 프로세스를 모르면서 똑같이 만들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기술적, 공학적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논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실제 엄청난 시간이 걸릴 테니까. 박물관에 가면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고려청자를 만들지 못한다. 물론 언젠가는 똑같이 구현해낼지도 모른다. 가까운 시일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 확신하지 못할 뿐. 인공지능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아니, 사정이 훨씬 나쁘다고 해야 옳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은 지능을 갖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정확히 충족시킬 수 있는 논리 또는 알고리즘이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형 인공지능이 실현되려면 두 층이 동시에 있어야 한다. 정보의 입력과 출력을 통해 특정 활동 내지 기능이 이뤄지는 층과 그런 활동이 고장 났을 때 이를 스스로 자각하는 층이 그것이다. 마음의 특징은 이 2개의 서로 다른 층이 하나의 통일체로 작동한다는 데 있다. 생물 또는 마음은 자기가 고장 난 것을 스스로 고치는 자가수선(自家修繕)이 가능하다. 내가 보기에 그게 가능한 것은 생물뿐이고 컴퓨터는 불가능하다. 버그를 잡는 디버깅 프로그램의 예를 드는 사람이 있는데, 디버깅 프로그램도 버그에 걸리면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한 고칠 방도가 없다. 결국 가장 상층(meta-layer)에서는 인간이 개입해야만 한다.

 

생명체만이 가진 지능의 이런 특징은 진화의 산물이다. 문제가 발견됐을 때 스스로 문제를 자각해 빠르고 정확하게 보정(補整)하는 개체가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체군 차원에서는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자라는 지혜의 터득이 중요해진다. 최강이 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는 다양성을 최대화하는 것이 진화에서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능은 그런 진화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생성되었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차별되는 마음의 능력이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성찰 능력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인간 몸과 마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이미 폐기됐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컴퓨터와 뇌의 작동 방식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알파고에 적용된 신경망 학습이니 심층학습이니 하는 것도 유비적 표현일 뿐, 인간의 신경망과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은 전혀 다르다. 신경망 학습마저도 통계학적이며, 그 결과물인 인공지능은 결정론적 계산기이다. 무수한 사칙연산 과정에서 중간에 하나만 틀려도 답이 안 나오는 수학 문제를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컴퓨터의 메모리는 중간에 바뀌지 않아야 하며, 고정성과 안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반면 인간의 신경망은 손실과 추가의 과정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의 기억은 계속 변한다. , 인간의 기억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순간부터 기억은 정지한다. 컴퓨터 메모리는 고정불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찍어놓은 것과 같다. 하지만 현실 속 인간의 기억은 늘 변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컴퓨터의 기억과 현실 속 나의 기억은 전혀 다른 게 될 수밖에 없다. 내 안에선 변하는데 저장된 그곳에선 멈춰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는 늙어 가는데 사진 속 나는 예전 모습 그대로인 것과 같다.

이번엔 반대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 두 편에 나오는 것처럼, 인간의 신경망과 똑같이 작동하는 레플리컨트(복제인간) 제조 기술을 발명했다고 치자. 내 기억을 열 명의 레플리컨트에 이식하면 현실의 내가 지닌 기억과 레플리컨트들이 지닌 기억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대로, 레플리컨트는 레플리컨트대로 열한 명 모두 기억이 바뀌어 갈 텐데?

 

인간과 컴퓨터에게 기억이라는 같은 낱말은 전혀 다른 뜻을 지닌다는 것을 확인했다. 본래 유비(analogy, 비유)는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사용하는 수단이지만, 더 큰 오해로 이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유비는 ‘A : B = C : D’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방식이다. 가령 : 컴퓨터 = 마음 : 인공지능같은 식이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인간과 컴퓨터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채, 계속 유비적 용어를 쓴다면 오해는 커질 수밖에 없으리라. 잘못된 유비의 예로는 기계학습, 신경망 학습, 진화 알고리즘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기억, 학습, 진화, 알고리즘 각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만 어렵다는 이유로 기피하기 때문에 유비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불멸을 꿈꿔왔다. 하지만 실제로 바랐던 건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젊음과 건강이었으리라. 자기 기억이 화석처럼 기록되어 남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우리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다행인 건 우리가 죽으면 이미 아무 문제도 없고 살아있는 한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삶의 순간마다 성실하게 임하는 방도 말고 다른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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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5

일본군위안부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한 기록물 관리기관의 운영

 

영남대 역사학과 강사 _ 남영주

 

1. 기록물 관리 실태와 기록관 운영

20151228일 한일 외교장관은 회담을 통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항구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 사항을 발표하였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합의는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는 한일 정부 간의 정치적 문제로 다루기 어렵게 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민간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기에 일본군위안부관련 단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단체들이 수집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위안부의 실체를 증언하는 결정적인 역사 자료이다. 위안부 기록물의 가치를 인식한 국가기록원은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을 관리하는 공공기록물관리기관이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이나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명문화된 법률이나 규정이 있는 것에 비해 위안부 관련 기록물 관리기관은 사립박물관으로 분류되어 규정의 적용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기관으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공간에 건립된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대구·경북지역의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건립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운동사의 현재를 담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부산지역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이끈 김문숙 씨가 중심이 되어 건립한 <민족과 여성 역사관> 등이다.

<나눔의 집 일본군위안부역사관>1930년대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에 의하여 자행된 일본군 성노예제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1998년 개관하였는데, 일본군 성 노예제를 주제로 세계 최초로 세워진 역사관이다. 2015년 개관한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1997년 발족한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일본군위안부역사관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다양한 방식의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통해 형성된 기금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표적인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1994년 정대협이 사료관 건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한 것을 계기로 2012년 개관하였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수집과 전시를 통해 위안부 교육과 문제해결,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기관과 연대하며 노력하는 행동하는 박물관이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1990년 윤정옥 교수가 한겨레신문에 󰡒󰡐정신대󰡑원혼의 발자취 취재기󰡓를 연재하여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부산여성의 전화󰡑의 운영위원장이었던 김문숙 씨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한 것이 오늘날 역사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이다. 김씨는 1991년 사)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부산 정대협을 분리하고,󰡐정신대 전화󰡑를 개통하는 등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위안부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최초로 일본 정부로부터 위안부 배상 책임을 이끌어낸 시모노세키 재판을 주도하였다. 현재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모임의 한국대표를 맡고 있다. 앞서 언급한 기관들은 여러 단체들의 협력과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비해, 이 역사관은 김 관장의 私財를 기반으로 발족한 후 지금까지도 운영의 대부분을 김 관장이 담당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은 범죄행위’, ‘피해사실’, ‘해결을 위한 노력으로 분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위안부 관련단체들이 제공하고 있는 전시 콘텐츠는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의 구술 즉 피해사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본 역사관은 해결을 위한 노력과 관련된 기록물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데, 시모노세키 재판과 국민기금 반대운동 결과 생산된 기록물이 대표적이다. 시모노세키 재판에 참여한 2명의 위안부 할머니와 2명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의 증언 기록과 재판에 관련된 모든 기록은 향후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김 관장은 역사관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며, 이를 위해 역사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민족과 여성 역사관은>1이 운영하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인데, 인력 부족으로 인해 기록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90세의 고령인 김 관장은 향후 역사관의 존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으며 본인의 여력이 다할 경우 기록물은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하였다.(201612월 인터뷰)

 

2. 연대와 좌절

위와 같이 민간단체들이 설립한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은 이 문제를 피해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201741일 제1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 회의를 東京에서 개최하는 성과를 낳았다. 1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회의 실행위원회는 “201512월 한일 정부가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합의를 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된 듯 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위안부 피해 실태와 역사를 전하는 박물관의 역할은 차세대평화와 인권 교육이라는 목적 뿐 아니라 피해여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지극히 중요해졌다고 이번 회의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 일본군위안부박물관 7개와 위안부 관련 기억 활동을 전개하는 4개의 NGO 단체가 참가하여, 위안부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기억을 계승하고 전쟁이 없고 여성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연대하여 활동해 나갈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201710월 말,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9개국이 공동으로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되었다는 소식은 그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모든 단체와 관련자들을 절망하게 하였다. 위안부 기록물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상세히 알려주는 피해자의 증언 기록을 비롯해 위안부 운영 사실을 증명할 사료 등 2744건으로 구성되었다.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서 발언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상 규명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 거부를 무기로 내세워 유네스코를 압박한 일본 정부의 저지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인 이기정 할머니가 1111일 별세하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33명으로 줄었다. 생존 피해 할머니들은 평균 85세 이상의 고령이며 언제 세상을 떠나지 알 수 없다.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제 우리는 위안부 문제의 증거로 활동하는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 이 문제의 해결과 기억화를 어떠한 방향으로 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들이 역사증거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운영 가능한 역사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록관 운영방안에 대해 모색해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3. 기억의 재현과 확장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 ·물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기록물 관리가 공공기록물관리기관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법률 제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국가지정기록물>을 확대 지정할 필요가 있다. <국가기정기록물>에 대해서는 국가기록원에서 기록 관리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20179월 기준 총 12(15)<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되었는데, 그 중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이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된 사례는 3건이다. 8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3, 나눔의 집, 3060), 8-1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4,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940), 8-2호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2014, 나눔의 집, 125) 뿐이다.

둘째, 소장기록물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의 경우 인적 자원의 부족으로 인해 소장 기록물에 대한 목록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서 소장 기록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록물의 소실이 우려되고 있다. 목록화 작업이 끝난 기록물에 대해서는 기록물 DB를 구축하여 이용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나아가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모든 일본군위안부관련 기록물들을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중 범죄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을 수집하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물 관리기관이 수집하고 있는 기록물은 대부분 피해사실과 관련된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 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 대만, 필리핀 등 국외 위안부 관련기관 특히 가해국 일본의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기록물 발굴과 확보가 필요하다.

넷째, 기록물 관리기관은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을 활용하여 일본군위안부의 기억을 확장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견학, 전시, 출판, 강좌, 강연, 세미나, 홍보(소식지) 등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특히 소장기록물을 교육용 콘텐츠로 개발하여 역사교육에 활용할 수 있게 하여 후세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국가기록원 및 전공자들과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섯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의 활동을 기록화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 기관의 활동 또한 중요한 역사기록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92년에 시작된 수요집회는 25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개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생산된 기록물은 향후 위안부의 실체를 입증하는 중요한 기록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일본군위안부기록물 관리기관은 각기 다른 설립 주체로 인해 기관마다 집중하고 있는 활동이 다르다. 따라서 각 기관의 특성이 반영된 기록물 또한 향후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구성하는 역사기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진|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내 희움 스토어

 

여섯째, 피해 할머니들이 모두 사망한 후에도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후원기관 및 후원자를 확보해야 한다.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의 경우 대구·경북지역에서 결성된 사)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이 중심이 되어 건립된 커뮤니티 아카이브이다. 시민모임은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기록물을 수집하고 각 종 행사를 개최하여 역사관을 홍보하고 있다. 또한 시민모임의 브랜드 희움’(희망을 모아 꽃 피움)의 물품 판매를 통한 수익금을 역사관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이 역사관은 시민단체 활동과 비즈니스가 만나서 탄생한 결과물로써 시민의 힘으로 역사관을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시민모임의 활동은 지속가능한 역사관 운영을 모색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제안이 실행되어 피해 할머니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국가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20171124일 국회에서는 매년 814일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간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한 관계자들의 땀이 결실을 맺은 결과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이 문제를 미루기에는 우리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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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4:02

사라짐의 과정을 지켜보는 일

 

<안녕,둔촌주공아파트> 발행인, <마을에숨어> 대표 _ 이인규

 

 

 

사라질 고향을 기록하기로 했다.

사회생활에 치이던 20, 힘들 때면 나는 늘 나의 고향, 둔촌주공아파트를 그리워했다. 이곳은 나에게 언제 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길에서도 이렇게 흔들리는 일들은 많을 텐데, 재건축으로 이곳이 사라지면 나는 어디에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이곳을 떠나면 그리울 것이 분명한데 다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는 걸까? 이곳이 사라지고 나면 이렇게 아름다운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아마 믿지 않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둔촌 주공아파트가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 옮겨 담기로 했다.

 

아파트를 기록한다고 하면 건축물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내가 둔촌주공아파트의 건물 형태를 매우 좋아하는 것은 맞다. 아주 어릴 적에 잠시 있었던 낯선 외국 생활 이후에 내가 다시 아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준 것이 바로 둔촌주공아파트의 새하얀 타워형 아파트 형태였다. 지금도 빛에 따라 달라지는 둔촌 주공아파트 건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기록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것은 단지 건축물에 대한 기록은 아니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

기록을 통해 남기고 싶던 것은 내가 이곳에서 경험한 모든 환경과 모든 관계였다.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원래 있던 작은 동산 두 개와 완만한 구릉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만들었다. 그 덕에 미세한 오르막을 걸을 때 다리에 힘이 들어갔지만, 땅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매일 느꼈다. 아파트 동과 동이 연결된 관계, 그 사이에 놓인 작은 오솔길과 푸른 잔디밭, 놀이터와 쉬어갈 수 있는 정자의 배치 등 섬세한 고민과 배려로 만들어진 멋진 부분들이 단지 안에 가득했다. 많은 시설이 있었지만 불필요하고 인위적인 것은 거의 없었다.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이 적절히 놓여 오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안에서 살면서 맺은 관계들도 모두 귀하다. 어릴 적에 동네를 오가면 아는 사람을 늘 만났다.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인사를 나눴고, 서로의 안부를 전하는 짧은 대화도 오갔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사람도 시간이 가고 자주 보면서 더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자율적이고 자유롭되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배려하는 선을 지켰다. 9시 이후에는 청소기를 돌리거나 피아노를 치지 않는다는 서로 지켜야 할 생활의 규칙이 있었고,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다 같이 모여 논의하던 협의 과정이 있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어르신들의 자원봉사를 많이 보며 자랐다.

우리에게 주어진 녹지와 나무가 넉넉했기에 단지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에게도 자리를 내어주는데 인색하지 않을 수 있었다. 베란다에 새가 둥지를 틀면 아기 새가 다 자랄 때까지 어미 새를 도와 먹이를 주기도 하고,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오가는 고양이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키우다 너무 커버려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경비아저씨가 닭장을 만들어 돌봐주시기도 했다. 매일 아침 들리는 새 소리가 좋았고, 새를 위해 작은 집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내가 말하는 고향이라는 것은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의 방식, 특유의 정서에 가까운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배웠고 그렇게 믿고 살아왔던 삶의 가치관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일들이 둔촌 주공아파트를 떠나고부터 너무 많이 사라졌다. 더는 내 방 창문으로 푸른 나무를 볼 수 없었고, 집 밖을 나서서 거닐 수 있는 오솔길도 없었다. 이웃과 인사를 나눠본 적도 없었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웃들만 늘어갔다.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살면서 만들어진 나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고 싶었지만 환경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둔촌으로 돌아갈 수 있길 계속 열망했다.

 

기록

<안녕,둔촌주공아파트>를 시작한 2년쯤 되던 지난 201412월에 다시 둔촌 주공아파트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꼭 한번 다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나는 많이 아프고 지친 상태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곳에서 다시 치유되었고 힘을 얻었다. 하루 일과에는 짧은 산책과 창밖을 보며 잠시 쉬는 시간이 더해졌고, 이웃과 자연스러운 인사를 나누며 지냈다. 다시 내가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고 가치를 두고 싶은 것들을 지키며 살 수 있었다.

 

둔촌으로 다시 돌아와서 기뻤던 것은 내가 기억하는 그 삶이 '미화된 기억'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던 과거의 기억이 거짓이 아니고, 아직도 이곳에는 실재한다는 안도감이 나를 다음 단계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동안 믿고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흔들릴 때 우리가 고향을 찾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의 고향을 기록으로 담는 것도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고, 새로운 생각과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기록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기록은 단지 수장고에 잘 보관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되어야 한다.

 

사라짐의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지난여름부터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많은 것이 사라지고 있다. 사라짐은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무너지는 모래성을 손으로 붙잡고 있는 기분이다. 그나마 모든 것이 온전했던 지난봄, 가장 반짝거리던 마지막 시간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안녕,둔촌X가정방문>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128일 나의 집 이사를 마지막으로 그 기록에 담긴 모든 집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시절 각자의 이야기와 고민, 온기가 담겨진 집의 모습은 기록에 그대로 박제되어 기록에 참여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원점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그로부터 얼마나 자신의 삶이 더 나아갔는지 다시 되돌아가 생각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상실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겨우 견디고 있는 상실의 당사자인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너무 힘든 작업이다. 결국 사랑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는 이 과정을 기록으로 옮기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시점에서 내가 더 집중해야 하는 것은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는 것 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하나라도 해결해보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애도하며 슬퍼하기 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된 나와 같은 처지의 고양이, 나무들에 마음이 갔다.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라다가 처음 낯선 환경에 도달했을 때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나를 떠올리며, 둔촌 주공아파트를 벗어나서는 살아본 적이 없을 존재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뜻이 맞는 분들과 모여 우리 동네에 함께 살던 동네 고양이들의 이사를 준비하는 모임 둔촌냥이의 활동에 함께 하고 있다. 3만 그루에 달하는 나무로 가득찬 둔촌 주공아파트에서 단 한 그루라도 더 살릴 수 있는 방법도 고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이 땅에 지어지게 될 새로운 아파트 단지에 둔촌 주공아파트의 기억을 심어두고 싶다. 완전히 다른 모습의 공간이 되겠지만, 다시 찾아와볼 사람들이 옛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작은 단서들을 새로운 공간에서도 발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렇게 기억이 이어지고 지역과 공간에 대한 애정도 이어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다시 이 지역에서 새롭게 둥지를 틀 많은 사람이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목소리를 통해 자연을 벗 삼고, 이웃 간 마음의 벽을 허물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삶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우리의 둔촌 주공아파트는 비록 사라지지만, 이 터전을 사랑해온 사람들의 마음만은 다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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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3:55

장애의 장벽을 없앤 영화를 만나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인터뷰

 

일상에 안 보이던 것이 보일 수 있는 배리어프리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배리어프리 영화는 노약자나 장애인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영상을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화면해설을 하고, 소리를 듣지 못해도 대사와 모든 사운드를 표기한 한글자막을 볼 수 있습니다. ‘장벽을 허물고 모두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곳,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김수정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및 정리

양계영 urstar2016@sogang.ac.kr

김명회 sggkmh@sogang.ac.kr

손윤선 baroomy@sogang.ac.kr

 

 

서강> 얼마 전 제7회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무사히 개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떠셨는지, 작년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김수정(이하 김)> 올해는 작년과 비교해서 자연스러웠지 않았나 해요. 그전에는 모실 수 있는 분을 찾아 영화제에 초대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올해는 사람들이 얼마나 올까?’를 보고 싶어서 푸시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작년보다 관객이 조금 더 늘었어요. ‘늘 하던 대로 하면 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죠. 좀 단순하게 가면서, 앞으로 어떻게 10년을 바라볼까 고민을 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패턴이 비슷했다면 내년에는 어떻게 할까?’의 고민도 있습니다.

 

 

사진1 | 2017119일부터 열린 제7회 서울 배리어프리영화제(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강> 배리어프리영화를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이은경 전 대표님이 저랑 같이 동국대학교 대학원 영화과를 나온 선후배에요. 당시 저는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실무적인 것들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그때가 마흔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앞으로 우리가 뭔가를 길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그러다 일본에서 열린 배리어프리영화제에 방문했는데, 왠지 그냥 해야 될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홍시를 생각하면 그 홍시 맛이 생각나는 것처럼 없는 거니까 우리가 해야 되는 거다라는 생각이 당연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영화제에서 받았던 느낌이 되게 좋았나봐요.

 

서강>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군요.

> 화면해설과 한글자막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한국영화들이나 시각장애인연합회, 농아인협회에서 만들었던 것들을 중심으로 찾아가서 물어보기 시작했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하고 있는 사업들도 가서 물어보니, ‘배리어프리영화라는 개념에 대해서 기존의 틀들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장애인 위주의 영화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사실 틀이 커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인들이 참여한 배리어프리영화를 그럼 우리가 만들지 뭐,’ 해서 저희가 개인 돈을 들여서 영화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는 배리어프리영화제가 아니라 배리어프리포럼이라고 해서 행사를 통해 많이 알렸죠.

 

사진2 | 영화 <반짝반짝 두근두근>의 배리어프리영화 버전은 영화가 시작되면 화면해설이 나오고 한국어 자막이 뜬다.

(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강> 화면해설에 있어서 배리어프리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제작되나요?

> 청각장애인들의 경우에는 굉장히 니즈가 다양해요. 물론 시각장애인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만 하더라도 그 자막을 볼 때 번역자막이 온전히 모두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잖아요. 게다가 청각 장애인은 난청부터 완전 농인까지 매우 다양해요. 이때 농인들은 수화와 한글이 달라서 힘들어해요. 수화는 조사가 없고, 한글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구조로 되어 있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어순과 굉장히 다르죠. 그래서 복잡한 문장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농인들을 위해서는 굉장히 단순화된 자막이 필요한데, 난청의 경우는 또 다르거든요. 이미 듣다가 난청이 되신 분들도 있고, 그 정도도 각각 달라서 심한 분들도 있고요. 그래서 또 이분들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자막들을 원하세요. 그래서 우리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 가느냐가 중요하죠. 화면해설의 경우도 각자의 기준이 있어요. 넷플렉스 같은 경우에는 주관적인 단어나 사전 설명이 있으면 안되고, 타이밍도 다 맞아야 하고요.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인물 위주로 진행되고 미장셴도 다양하지 않은데, 영화는 다층적인 구조에다가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연출가와 같이 진행해요.

 

서강>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에 따라 제작에 고민도 있으실 것 같아요.

> 방송과 영화는 퀄리티면에서 다른 부분이 있어요. 방송은 내가 직접 돈을 안내기 때문에 퀄리티가 조금 떨어진다고 해서 불평을 안하지만, 영화는 내가 돈을 내고 만족스럽지 못할 때 환불이라는 제도가 있잖아요. 그 시스템을 통해서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때문에 그 퀄리티가 굉장히 높아야 하는 거예요. 이러한 환경에서 영화의 자막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을 하게 되죠.

 

서강> 배리어프리영화를 보러 오시는 관객 분 중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었나요?

> 저희가 하는 영화들은 무료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어르신 분들이 많으시죠. 저희가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우리마을소극장이라는 사업이 있어요. 22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은 배리어프리영화를 상영하고 있어요. 그러면 한 달에 총 22번의 상영이 있는데, 한 지역에서 한 작품을 보고 다른 지역에서 상영할 때 또 보러 오시는 분들이 있어요. 배리어프리 영화들은 자주 볼 수 없기도 하고, 이런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 이 스케줄을 따라 관람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죠.

결국 배리어프리영화를 통해 그분의 삶에 들어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 거죠. 배리어프리영화 상영관이 좀 더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와서 영화를 볼 수 있는 거고요. 영화 보는 것 자체가 내 집에서 보는 게 아니라 어디 가서 같이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게 뭔가를 소통을 할 수 있는 거리가 생기는 거죠. 극장에 가서 본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서강> 우리나라 장애인 영화관의 환경은 어떤가요?

>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개인장비를 가지고 들어가서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 많죠. 반면에 우리나라는 2007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발표되었는데, 빠르게 관련 법안을 발표한 것에 비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많지는 않아요. 법을 만들었다고 해서 별도의 관심을 두지는 않는 거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구체적으로 벌금을 물고 그런 것이 아니라, 상해법으로 소송을 걸 수가 있는 거예요. 상벌구조가 없는 거죠. 그 부분에 있어 장애인 분들이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고 소송을 걸고 해야 뭔가 바뀌는 구조가 되죠. 그래서 강제하는 법량이 필요하다고 많이들 말씀하시죠.

 

서강> 그렇게 관심을 보일수록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수도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요?

> 더 많아지겠죠. 지금은 그냥 소비자에게 던져주는 그런 구조잖아요. 장애인영화관람데이라고 해서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같은 영화관에 상영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지금 한 22~30개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해요. 2012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장애인 영화 관람 환경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해서 장애인차별철폐연대랑 농아인협회, 시각장애인연합회, CGV 그리고 저희가 모여요. 계속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업 중에 하나죠. 관련하여 저희가 연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조만간 한국도 갖고 들어올 거예요. 지금은 그런 극장에서 정규적으로는 일주일에 3, 화목토 이런 식으로 상영하는데 사실은 너무 적은 횟수죠. 그것도 영화관에서 한 영화 정도로요. 그러면 영화를 고를 수가 없는 거잖아요. 만약 앞으로 상영관이 많아지게 된다면 고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죠.

 

 

서강> 배리어프리영화 제작 관련 천명의 기부자를 확보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시던데, 이게 꾸준하게 기부를 할 수 있는 건가요?

> 사실 지원금이 없으면 영화를 많이 만들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사실 외화를 만드는 경우는 대략 실비가 2500만 원 정도 들어요. 저희가 사단법인이라 애초에 이윤을 만드는 데도 아니고,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은 사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약간 후순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고, 기부에서 그런 것들이 더 우선시 되니까요. 영화제를 할 때나 행사를 할 때 홍보를 하고, 기부자 수도 조금 조금씩 늘고 있어요. 생소한 거니까 어쩔 수 없이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언젠가 천명의 기부자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서강> 현 사회에서 배리어프리영화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 서울대 치대 학생회 선거 나온 사람 보셨죠? ‘우리는 장애 없습니다.’ 그거랑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요. 제가 아는 청각장애인 대학생 친구가 있는데, 난청이라서 강의실 앞에 앉아요. 뒤에 앉을 경우, 여러 소리가 많이 들려 힘들거든요. 그래서 앞에 앉으려고 해도 다른 친구들이 먼저 앞에 앉고 해서 만든 스티커가 있대요. ‘여기는 장애인 좌석이니까 앉지 말아주세요라는 의미의 스티커죠.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받아서 강의실에 붙였는데, 어느 날 봤더니 그게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더라는 거예요.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는 간혹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며 여러 장 줬는데, 진짜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으니까 얘가 상처를 많이 받은 거예요. 그런데 일단 그 스티커가 뭔지 아이들은 모를 수도 있죠. “, 이건 뭐지? 맡아놓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런 스티커나 장애인 친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배리어프리영화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느냐라는 것을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주변에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있고, 같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종로에 가면 맹학교랑 농학교가 두 개가 붙어 있어요. 그런데 교문에 학생들이 잘 찾아 올 수 있도록, 벨소리가 나게끔 되어 있대요. 벨소리가 나면 애들이 , 여기가 교문이구나!’하고 안지나치는 거죠. 그런데 그걸 주변의 주민들의 민원으로 벨이 없어져 버렸다는 거예요.

 

서강>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차별 중 하나네요. 학교 종소리는 이해하고 넘어가면서요.

> 그렇죠. 학교 측에서는 아이들한테 뭐가 중요한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보다 없애버리는 게 더 편한 거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알리는 게 필요한데요. 우리의 영화를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배리어프리영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요?

 

서강> 편견이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배리어프리 영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시죠?

> , 사실 영화뿐만 아니라 보이는 게 너무나 많고, 해야 할 게 너무나 많은데요. 장애인분들이 우리의 관심에서 다 벗어나 있는 거예요. 대학원생 분들이 그들을 같은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같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개발 및 연구를 진행했을 때 적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거죠.

얼마 전 MS(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솔루션 발표가 있다고 신청하라고 연락이 왔는데요. 신청서에 당신은 불편한 부분이 있느냐? 예를 들어 휠체어를 쓰느냐?’ 등 어떤 종류의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게 거의 없잖아요. 관심을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포항에서 지진이 났는데, ‘과연 그곳에 만약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들이 있었으면 잘 대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고민들도 함께 있어야 된다는 거죠. 지체장애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기본적으로 모든 정보에 포함되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이게 한, 두 번만 신경을 쓰게 되면, 몸에 익게 되는 거죠. 이거를 본다고 인생이 바뀌거나 그러는 건 아니지만, 안 보이던 것이 보일 수는 있을 거라는 거죠. 이 부분은 다분히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다 포함되는 것 같아요.

 

 

사진3 | 배리어프리영화 야외 상영 모습.(사진 제공: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서강> 앞으로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의 계획을 알려 주세요.

> 2018년은 폐쇄시스템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시범서비스 정도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폐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지속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런 사업을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지역에서 하는 배리어프리영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아직까지 많지 않아요. 지역 상영들을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파트너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지만, 결국 누군가 계속 틀어줘야 되는 거거든요. 누군가가 돈을 벌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이런 사업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참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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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2.18 13:50

[가장 소중한 그리고 가장 소중해야 하는 ”]

-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김명회 기자 sggkmh@sogang.ac.kr

 

 

<그해 겨울 나무>

 

처음엔 혼자였다

 

모든 것이 풍족했던

푸르렀던 그때는

자연이 나와 함께했다

 

모두가 우러러보던

붉고 찬란했던 그때는

사람이 나와 함께했다

 

그렇게 함께했던

시간이 지나고

 

하얀 눈이 왔을 때

 

다시 자유롭고 고독한

혼자가 되었다

 

시가 갖는 일반적인 특징은 무연한 것들을 인연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위 시를 통해 나무와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전혀 무연한 관계가 인연이 되었다. 나무는 처음에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풍족한 자양분과 햇빛을 받으며 계절이 바뀜에 따라 초록색의 옷을 입게 된다. 이때 나무에 새도 찾아오고, 매미도 찾아오고 자연의 많은 것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계절이 변해 가을이 되면 나무는 울긋불긋한 색깔을 갖게 되고, 아름다운 자태에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나무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런데 이 시기는 나무에게 자유의 시간이기도 하고 동시에 고독의 시간이기도 하다.

나무의 이런 모습이 지금 우리 시대의 1인 가구와 닮아있다. 지금 혼자인 것처럼 그들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역시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나무처럼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최선을 다해 살아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누군가는 너무 지쳐서 자발적으로 자유로운 혼자의 삶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비자발적으로 고독한 혼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1인 가구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익숙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익숙함이 우리가 이들을 잊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1인 가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던져야 할 명제가 있다. 바로 “1인 가구는 좋은 삶인가?”에 대한 것이다. 1인 가구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성별에 따라, 연령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20대에는 1인 가구의 삶이 자유와 독립으로 인한 동경의 대상일 수 있겠으나, 50대 이후의 남성들에게 1인 가구의 삶은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어느 한 시점에서의 만족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인생 주기 전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 누구도 쉽게 정답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사회가 1인 가구가 좋은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이 개인으로서 있어도 그 개인이 유일적(唯一的)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용어로서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표사유피 인사류명 [豹死留皮 人死留名]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이 그토록 속하고 싶은 사회에서 인간이 가장 바라는 바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억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사회에서 기억되는 삶은 궁극적인 욕구이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들이 많다. 매슬로는 인간의 동기가 작용하는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기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중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 욕구 총 5단계로 동기이론을 제시했다. 매슬로에 따르면 각 욕구는 우성 계층(hierarchy of prepotency)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욕구 피라미드의 하단부에 위치한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상위 계층의 욕구가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1인 가구가 더 나은 삶, 기억되는 삶을(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이들의 삶에 대한 단계적이고 다각도적인 접근과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본 글에서는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이론을 1인 가구의 삶과 관련한 개념으로 연결시켜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잘 먹고 잘사는 1인 가구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사진2> 매슬로 5단계 욕구 이론을 재해석한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지난 11월 평소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꿔왔던 한 여대생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학교 졸업을 1년 앞두고 경력을 쌓기 위해 공연기획 인턴을 하는 친구는 지금 하는 일이 힘들지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나 결혼에 긍정적이었던 친구가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것 같다고 말하며, 결혼 및 육아를 병행할 시 겪어야 할 경력 단절에 관한 고민을 이야기했다.

이처럼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 젊은 세대 결혼관 변화에 따른 비혼과 만혼의 증가, 또한 장년 세대가 잃어버린 각자의 삶을 찾기 위해 떠나는 졸혼, YOLO 족 증가 등 개인 선택에 의한 1인 가구의 증가 원인은 다양하다.

또한, 주거 문제, 가계 곤란, 기러기 가족, 이혼, 별거, 사별 등 가족해체, 고령화 등의 외부적인 증가 요인들도 다양하다. 이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들도 해소하기 어려운 집단이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관심과 정책들이 필요하다.

 

- 1단계: ‘Plate’ 충족 욕구 (생리적 욕구)

생리적 욕구는 음식, , , 수면, 항상성, 배설, 호흡 등과 같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인 신체적 기능에 대한 욕구이다. 이 단계를 Plate(하나의 접시에 나오는 요리) 정한 이유는 1인 가구를 위한 생리적 욕구에 대해 특별히 그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논의하기 위함이다. 1인 가구의 식문화는 자유로움과 간편함의 확대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자유로운 메뉴 및 시간 선택, 효율적인 시간 사용이라는 장점과 동시에 끼니 거르기, 영양 결핍 등의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건강 챙기는 자유롭고 간편한 밥

1인 가구의 건강한 식사를 위해 시장과 정부의 노력이 부단하다. 편의점은 맛과 가격 그리고 영양까지 챙긴 다양한 도시락을 출시하고 있다. GS25 편의점의 경우, 1인 가구의 식사량을 고려하여 추가 증정 식품을 나만의 냉장고라는 애플리케이션에 담아 두었다가 원할 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모바일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대형마트에서는 1인 가구를 위해 소량포장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외식업체들은 1인 가구를 위한 좌석과 메뉴들을 확대하고 있으며, 식품 업체들은 1인 가구의 편의성을 고려하여 식재료를 손질한 채로 제공하는 반조리식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혼자서라도 돈만 지불하면 무엇이든 합리적으로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혼밥의 일반화에 따른 영양 불균형을 해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2020년부터 편의점 도시락, 즉석밥에 나트륨 등 영양 성분 표시를 볼 수 있게 하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또한 시민건강관리센터에서는 영양 검사 및 상담 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하여 건강한 식사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지자체의 움직임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지난 1130일부터 괴산군 보건소는 '독거노인과 함께하는 집밥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집밥 프로젝트'는 지역 기관 및 단체들이 독거노인 가정을 주 1회 방문하여 도시락을 전달하고 그분들과 함께 식사하며 끼니도 제공하고 사회관계망을 형성을 통해 고독감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날 함께한 독거노인은 "평소에는 혼자라서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못했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반찬의 식사를 제공해주고 여러 사람과 함께 먹으니 매우 즐겁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나은 밥을 위한 제언

 

<사진3>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캐서롤 클럽프로젝트

 

유럽의 경우 우리보다 1인 가구 현상을 더 일찍 접했으며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르다. 벨기에의 경우 2000년에 전체 인구 비율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일 가장 높았으며 2060년이 되면 그 수가 절반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에서는 2011년도부터 캐서롤 클럽(Casserole Club)’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오고 있다. 이는 요리를 좋아하는 이들과 스스로 요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나이 많은 이들을 연결해주어 음식을 공유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가정에서 음식을 많이 했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직접 요리한 음식을 공유하고 싶다면 온라인을 통해 요리를 등록하면 된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기관, NGO와 긴밀히 협력해서 더 많은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현재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 걸쳐 7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6년부터 빨간냄비 캠페인을 통해 한국판 캐서롤 클럽이 확산되고 있는데 앞으로 전국으로 지속 확대되길 기대한다.

1인 가구에 대해 정부랑 단체에서 관심을 기울여 해결하고 있다는 건 바람직하다. 지역별로 1인 가구 분포 유형이 상이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볼 때, 다양한 정책 대상을 고려한 보다 더 섬세한 정책이 요구된다.

 

- 2단계: ‘Economy & Real estate’ 충족 욕구 (안전 및 안정의 욕구)

안전과 안정의 욕구는 개인적인 안정, 재정적인 안정, 건강과 안녕, 사고나 병으로부터의 안전망에 대한 욕구이다. 1인 가구의 안전의 욕구에 대해 주거 및 경제를 중점으로 논의하기 위해 이 단계를 Economy & Real estate로 정했다.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주거 복지 로드맵

주거는 인간의 안정 및 안정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주거 문제는 1인 가구 급증의 직접적 원인이자 가장 큰 문제이다. 이런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는 지난 1129일 관계부처 합동으로사회통합형 주거 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했다. 이 로드맵을 통해 정부는 청년들에게 맞춤형 청년 주택 총 25만 실, 기숙사 5만 명을 입주시켜 총 30만 호를 공급할 예정이다. 무주택 청년층에게 도심 내 우수 입지를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하고, 일자리 연계, 셰어하우스 등 청년 맞춤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입주자격도 완화해 소득 활동 여부도 입주기준에서 제외하고 소재지 기준도 완화시켜 19~39세 이하 광역권 청년 모두에게 입주기회를 준다. 본인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80% 이하 이거나 본인 소득이 없는 경우 부모 소득이 평균소득 이하면 누구나 신청 가능하다. 또한 이는 기존의 주거 정책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대학원생 및 프리랜서 1인 가구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또한, 독거노인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및 보유주택을 활용한 지원도 강화된다. 무장애 설계, 지역자원을 활용한 복지서비스 연계 등을 활용해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총 5만 호가 공급된다. 독거노인 거주용 주택에는 홀몸노인 안심 센터를 설치하고, 임대료가 저렴한 영구임대, 매입임대를 차상위 고령자에게 확대한다. 자가 점유율이 높은 점도 고려해 보유주택을 활용, 연금 형 매입임대 등 생활자금 마련을 지원하고, 주택 개보수도 지원한다.

화려한 싱글들을 위한 경제 지원 정책

통계청에 따르면 20174분기 연속 1인 가구 소득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1인 가구의 소득감소는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는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9월 부산지역에서 열린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종합 대응전략 포럼에서 발표한 종합보고서의 1인 가구 경제 지원 정책은 그런 측면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201인 가구 옥탑방 청년의 특징은 취업 준비를 위해 열악한 주거 환경과 저소득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301인 가구는 오피스 싱글로 사회에 정착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면서 혼자 사는 삶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대출금 등 주거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 종합보고서에서는 이들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긴급생활안정자금 우선 지원, 맞춤형 일자리 정보 제공, 주거 바우처제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401인 가구 홀로 꽃중년은 경제적인 소득, 주거환경, 가족 및 친구 관계 등에서 원만한 생활을 유지하지만, 이웃과의 교류는 거의 없고 성인병 등 건강 걱정을 시작하는 시기다.

장년 돌싱으로 표현되는 501인 가구는 이혼으로 1인 가구가 되면서, 건강 걱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동반하게 된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특히 남성은 친구 관계가 단절되고 건강이 나쁘며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했다. 중장년 1인 가구는 일자리 재생 사업과 근로자 직장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경제적 문제를 지원하고 50+ 돌봄 매니저 배치, 중장년 상담소 등으로 생활 분야에서 안정을 얻도록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601인 가구는 액티브 실버라 불리며, 사별로 혼자 살면서 주로 연금 생활을 하는 여성이 많다. 친척이나 자녀, 이웃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한다. 무엇보다 은퇴 이후에도 경제권을 쥐고 있어 구매력도 갖추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사별로 혼자 살게 된 70홀몸 노인은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 보니 친척, 친구 관계가 위축되고 노후 주택으로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파악했다. 노년층 1인 가구에 대해서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확대해 일자리를 우선 배치하고 공동실버주택 등 주거환경 개선사업과 일상생활 서비스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3단계: ‘Social family’ 충족 욕구 (애정과 공감의 욕구)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규모가 크든 작든 사회 집단에 소속되어 수용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사람은 사랑하고 다른 이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한다. 많은 사람은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결핍되었을 때 외로움이나 사회적 고통을 느끼며, 스트레스나 임상적인 우울증 등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1인 가구를 위한 애정과 공감의 욕구를 위한 제도가 필요한데 그들을 위한 제도가 바로 사회적 가족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가족의 유형에는 소셜 다이닝, 셰어하우스, 소셜팸 등이 있다.

 

정서적 허기와 건강한 식사를 위한 사회적 가족 소셜 다이닝

소셜 다이닝이란 SNS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식사를 즐기며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말한다. 1인 가구로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나 혼자 인스턴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사람들이 건강한 식생활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뭉치는 것이다. 소셜 다이닝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집밥(zipbob.net)’이 바로 대표적인 소셜 다이닝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의 예이다. 집밥은 공통의 관심사를 두고 같이 식사할 수 있도록 중개 역할을 하고 있는데, 밥 친구가 필요한 사람이 같이 밥 먹을 사람 찾아요라는 글을 올리면 희망자들이 댓글을 다는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SNS를 매개로 한 소셜 다이닝은 신세대들에게 맞춰져 있어 노년층에게는 진입장벽이 높다. 그러나 정부 기관 및 지자체의 노력들이 그러한 진입장벽을 낮춰 소셜 다이닝의 또 다른 동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동구에서는 2015년부터 공유부엌이라는 1인 가구 식사 공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강동구의 공유촉진 사업 중 하나로 1인 가구가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하며 소통하도록 장려하는 지역 주민 네트워크 프로그램이다. 건강과 끼니를 때우기 위한 이유로 참석한 사람들도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가족의 따뜻함을 경험하고 있다.

 

함께 사는 1인 가구 셰어 하우스

셰어하우스(share house)는 하나의 주거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다. 주거 비용 부담 감소, 취미나 공통된 관심사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입주하여 외로움을 타파할 수 있다는 장점들이 있다. 벌써 민간에서는 우주, 허그 등 셰어하우스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지자체들도 셰어하우스 공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서울에서는 동작구가 지난 8월 임대주택을 리모델링해 청년 1인 가구를 대상으로 셰어하우스를 공급하고 있다. 부산에서도 노인보유 가구를 청년에 공유해주는 셰어하우스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같은 집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거주자들이 서로에게 상당한 가족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1인 가구의 애정과 공감의 욕구를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외국과 달리 한국에서 셰어하우스는 아직 보편적인 문화가 아니다.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하는 1인 가구들에게, 주거공간을 공유하는 방식이 아직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셰어하우스가 사회적 가족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반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안전, 복지,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현재 변화하는 주거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가족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가족 소셜 팸

소셜 팸은 시니어희망공동체가 운영하는 노인층 1인 가구 고독사 예방과 청소년들의 가족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한 활동이다. 성년 후견 제도에 대한 법률자문과 공공후견을 지원하고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를 하나의 사회적 가족으로 묶어 끈끈한 정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소셜 팸은 대표적으로 농촌 독거어르신 웰다잉 봉사활동, 저소득 치매 독거노인을 위한 공공후견 지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사회적 가족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있다. 그러나 소셜 팸 활동은 자원봉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다보니 단발성으로 끝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래서 소셜 팸의 지속성을 위한 우리 사회 전체의 후원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 나은 1인 가구의 미래를 바라며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1인 가구 증가로 인해 다양한 사회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래서 마지막 4, 5단계에서는 더 나은 1인 가구의 삶을 위해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이번 단계들에서는 정책적인 부분들보다 정책에 근간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삶에 태도 기억하고 함께하는 삶에 대해 논하려 한다.

 

- 4, 5단계: “One another” & “Navigator” 충족 욕구

(존중, 존경 & 자아실현의 욕구)

존경의 욕구는 타인들로부터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이다. 존중은 타인으로부터 수용되고자 하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욕구를 나타낸다. 모든 제도가 갖추어지더라도 사회적 존중이 없다면 1인 가구는 또 다른 욕구 결핍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4단계는 서로를 의미하는 ‘One another’로 정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존중은 무엇으로부터 나올까.

그 해답은 인간성에서 찾을 수 있겠다. 인간성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됨됨이이다. 인간의 됨됨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고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됨’, 즉 인간의 완성이라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인간의 됨, 이것으로부터 사회적 존중이 나올 것이다.

그다음에서야 우리는 5단계인 진정한 를 발견하는 자아실현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 드디어 모든 것이 갖춰졌고 우리는 우리 삶의 항해사 ‘Navigator’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저마다의 가치관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아가는 삶의 방향이 또 다른 누군가가 자아실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덕()스러운 자아실현을 하는 1인 가구가 되기를 바란다.

1인 가구 욕구 위계론 표를 통해 눈치챘겠지만(이니셜을 조합하면 PERSON이 됨) 더 나은 1인 가구의 핵심은 결국 ‘PERSON’, 즉 사람이다. 1인 가구의 모든 정책도, 인간성도, 자아실현도 사람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더 나은 1인 가구를 위한 모든 것은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듯이 익숙함 때문에 잊히는 누군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올겨울은 모두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당연한 사회 현상의 하나로서 1인 가구, 독거노인이 잊히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떠는 겨울이 아니라, 그들 손에 따뜻한 커피나 고구마가 쥐어져 있어 미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번 연말은 집에서 혼자 쉬는 것 대신, 1인 가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언가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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