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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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원142호 최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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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23

서강에 없는 것 


대학원에 들어와 해가 흐를수록 관심이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전달하려 애쓰는 분들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분들

말로 할 수 없는 마음들을 전달해주시는 분들 

이 모든 분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로 142호를 기획하였습니다. 


그런데‘서강에 없는 것’이라니요,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학과, 사진학과, 음악학과, 미술학과, 무용학과, 영화학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없는’ 것을 돌아볼 때,

발견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서강에 없는 나무 한 그루를

나의 단칸방으로 가져와 심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편집장 양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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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8

AI, 예술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정준모_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미술비평

 

 

인공지능예술의 현재

최근 뉴욕의 사진전문갤러리 메트로픽처스에서 미국작가 트레버 파글렌(Trevor Paglen, 1974~ )의 전시회가 열렸다. 컴퓨터와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스스로 학습하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내는, 아니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보이지 않는 변화를 추적하는 전시다. 전시된 작품들은 인공지능이 스스로 공부하는(Deep Leaning) 과정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이미지들을 추적하고 연구한 결과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과 컴퓨터 과학자들이 수 년 동안 스탠포드대학의 레지던시에서 협업을 통해 얻은 성과물이다. 이 성과물들은 컴퓨터가 학습과정에서 급증하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을 스스로 생성해내면서 예상할 수 없거나 감지할 수 없는 것들을 채록(?),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되는데 우선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되는 부분 프로그램들을 모은 이미지와 컴퓨터가 판독 가능한 풍경, 그리고 컴퓨터가 스스로 만든 이미지들로 구성되었다. 그중에서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이미지들은 독일의 예술가 히토 스테이얼(Hito Steyerl, 1966~ )의 이미지 백여 개를 가져다가 다양한 얼굴 인식 알고리즘을 적용시킨 이미지와 함께 나이, 성별, 감정 상태 및 기타 특징을 읽고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함께 전시했다. 또 한편에는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동시에 정신과 의사이기도한 프란츠 파농(Franz Fanon, 1925~1961)이나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 1909~1943)의 사진을 읽기위해 안면인식프로그램을 사용했다. 파농의 얼굴에서 파생된 또 다른 다양한 파농의 얼굴 표정은 컴퓨터에 탑재된 생체 인식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그 결과물들은 그 소프트웨어에 의해 결정된 고유의 특성을 보여준다. 같은 이미지에서 각각 대립되는 환각적인 형상들을 만들기 위해 파글렌은 이미지들을 전조와 관념, 괴물, 꿈 등으로 분류하고 다시 이를 인식해 조합하도록 인공지능을 훈련시켰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인공지능은 점점 더 자기 혼자 스스로 으스스하고 섬뜩하지만 아름다운 새로운 이미지들을 첫 번째 인공지능과 함께 협업을 통해 생산해냈다. 이 전시에 출품된 비디오 설치작업은 일반적인 컴퓨터 속의 인공지능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수 십 만개의 교육용 이미지들을 훈련을 통해 어떻게 사물과 얼굴, 표정과 행동을 익히는지 보여준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

늘 새로운 것에 목마른 예술가들에게 과학과 신기술은 충실한 동반자인 동시에 조력자였다.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1519)가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것도 실은 그가 새로운 과학적 기법과 원리를 그림에 도입해 인간의 눈에 보이는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원근법 특히 선원근법과 명암원근법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 해부학을 통해 인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던 그는 피부만 그린 것이 아니라 뼈대를 세우고 근육을 더해 인체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1879~1955)의 상대성이론은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꾸어놓았다. 예를 들면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유리의 집>(1939)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길이가 짧아진다는 특수상대성의 원리에 의한 길이수축의 원리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초현실주의자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의 작품 <기억의 지속>(1931)에는 움직임이 없는 쥐죽은 듯 고요한 해변에 시계가 나무에 늘어진 채 걸려 있다. 상대성이론의 정지된 시간의 개념이 보인다.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시공간이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입체파회화(Cubism)도 마찬가지이다. 백남준(1932~2006)의 작품도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1969년 일본 공학자 슈야 야베(Shuya Abe, 1932~ )의 도움을 받아 비디오 합성기를 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야베와 함께 만든 비디오 신시사이저는 여러 비디오 영상 제작에 사용되었다. 비디오카메라나 다른 소스로 부터 최대 7개의 영상을 받아들여 실시간으로 편집이 가능했던 다재다능한 도구였다. 스캐닝, 색채변화, 녹화의 주요기능은 신시사이저의 건반처럼 빠르게 깜빡이는 화소단위 정보의 집합 영상을 전자적 메카니즘으로 직접 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적 업적은 이런 기술적인 발명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인 시간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도록 비디오라는 매체, 형식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다.

이후에도 많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과학을 이용해서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곧 인공지능이 많은 전문직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판사나 증권투자자들의 자리는 물론 의사들의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많은 예술가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예술을 시도하고 있다.

하긴 하나를 가르치면 스스로 열을 아는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을 까지 갖춘 인공지능이 못 할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인다. 영국의 화가 헤롤드 코헨(Harold Cohen, 1928~ )은 이미 1973년 소위 아론’(Aaron)이라는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을 내 놓았다. 그 후 아론은 진화를 거듭해 1980년대에는 3D 공간에서 물체나 사람을 배치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스스로 그림을 그릴 정도로 발전했다. 아론의 그림은 1986년 코헨의 영국 테이트미술관에 기증되어 어엿한 미술관 작품이 되었고 1995년에는 경매를 통해 소장되기도 했다. 벤자민 그로서(Benjamin Grosser)는 쌍방향 대화형 그림 그리는 도구로 작업을 한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익숙해지도록 상호 작용적인 경험, 기계 및 시스템을 구성하여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을 알려주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그림에 영향을 주는 대화, 배경음악등 프로그램자체가 소리에 따라 반응하면서 캔버스위에 흔적을 남기도록 하고 있다.

음악에서도 작곡과 연주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야마하는 자동연주피아노 디스크라비에’(Disklavier)를 만들었고, 2012년에는 캐나다의 한 작곡가는 협업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는데 그 당시 관객들은 사람과 인공지능이 작곡한 음악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예일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하는 도냐 퀵(Donya Quick)쿨리타’(Kulitta)라는 작곡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운드 클라우드로 공개해 사람이 만든 음악과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을 가려보라고 했다.

 

도구냐 예술이냐

인공지능이 인간이 만든 음악과 구분 할 수 없을 정도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것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실 작곡하는 인공지능 쿨리타의 경우 저장된 자료에서 규칙들을 분석하고 음계를 조합해 작곡을 하는데 이는 일종의 자기학습 방식으로 이 방식을 이용하면 클래식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기계시대 원본개념의 상실이 아니라 예술의 기본구조를 깨는 결과를 초래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컴퓨터 즉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은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끼고’, ‘이해해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한 작업이다. 인공지능이 좋은 음악을 만들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창조하기보다는 분석해서 조합하는 것이라는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젊은 새로운 음악가들은 쿨리타같은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아론같은 그림 그리는 인공지능도 사람이, 미술가가 애초에 만들고 창작해놓은 작품들로부터 학습이 시작되고 비롯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시각으로는 예술이라기보다는 모방또는 복제의 하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실 요즘 상업적인 영화나 음악의 경우 빅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토대로 대중들이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들을 매우 정교하게 배치해 흥행과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것과 어쩌면 닮아있다. 관객이나 청중들의 감상패턴이나 반응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분석해서 영화나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작 하우스 오브 카드BBC 원작을 토대로 관객들이 원하는 감독과 배우를 기용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초단위로 분석해 흥행요소를 이어 붙인 것이다. 장면과 상황 즉 이야기를 엮었다. 소비자 성향 분석을 위해 기존 작품의 장면을 초단위로 분석할 정도로 치밀하다.

하지만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원칙적으로 음악의 경우 작곡 방식과 코드의 진행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라면 이 다른 장르상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어붙이고 잘라 새로운 음악을 만들거나 편곡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창조가 가능하지만 컴퓨터와 프로그램은 다르다. 왜냐하면 사람은 비선형구조로 생각하지만, 프로그램은 선형구조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화가와 소설가, 음악가를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하지만 절대적으로 인간의 감성의 영역인 동시에 비선형적인 예술의 영역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는 미지수다. 사실 사전적 의미로 본다면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라고 정의할 때 인공지능이 창작해낸 예술품들이 과연 종래의 미학적 관점과 태도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간의 경우, 삶의 주변과 자연 등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는 등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그 과정과 과정마다 변화와 대응을 해나간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오직 완성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작동하거나 아니면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판단을 하기 보다는 계속해서 학습을 해야 하는 과정이라면 결코 완성작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작업을 하는 중간에 나타날 수 있는 새로운 변수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며, 영감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백남준에게 TVVCR 기술이 붓을 대신하는 도구였던 것처럼 인공지능은 예술의 도구 또는 조력자는 가능하겠지만 예술가를 대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과 외형이나 형식이 다를 바 없다고 하더라도 작품이라면 필히 갖추어야할 창조성과 예술성과 내면의 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넉넉하게 봐서 현대미술에서 사용되는 오마주(Hommage), 패러디(Parody), 차용(Appropriation), 키치(Kitsch)등의 하나로 정의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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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5

예술이란 시간과 공간속에서 자신의 존재로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

- 꽃처럼 나답게 피어나는 것.


손은정_ 플라워 아티스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공대를 나왔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굳이 꽃을 배우러 가고. 그러한 과정은 어쩌면 남들에게는 너무 생뚱맞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내겐 공학을 하든, 글을 쓰든 ,예술을 하든, 이 모든 것들이 시간을 걸쳐가는 좌표점을 찍어가는 방식과 프로세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표를 좋아한다. 내가 서 있는 공간과 시간에 ‘존재’를 표현하는 것.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무엇인가, 어떠한 존재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인간은 끊임없이 증명해내고자 한다. 비록 한 점일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관계속에서든 시간 속에서든 밝혀내고자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유인지도 모른다.

 딱 작년 이맘때 세운상가에서  ‘꽃, 시간의 강을 건너 시간과 만나다’ 라는 전시를 했다. 세운상가라는 우리나라 건축, 산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공간’ 에서 그 ‘시간’을 꽃으로 표현해내는 작품이었다. 세운상가는 1968년에 완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이다. 당시의 타워팰리스였던 그 세운 상가는 전후의 빈민촌을 밀어버린 한국의 토지개발과 건축의 상징이라 할만큼 의미있는 곳이다. 산업적으로 보자면 세운상가는 우리나라의 IT와 기술 산업의 메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이 곳에서 전시를 한다는 것은 ‘시간’ 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는 것이다. 5층 중정에 장소를 잡았다. 햇빛이 들어오는 세운상가 5층 중정에 8층부터 5층까지 낚시줄을 이어 꽃들을 엮어 드리우고 시간의 흔적으로 탑을 만들었다. 세탁기, 텔레비전, 카세트 오디오 등의 80년대의 상징이던 가전들을 맨 아래에 버팀 삼아 그 위에 90년대 등장한 데스크 탑들과 뚱뚱이 모니터들 그리고 다이어트를 한 듯한 LCD 모니터들. 그리고는 그 위에는 나의 자랑이었던 1세대 아이팟, 폴더 폰, 시스코의 IP Phone 및 무선 Access Point 와 같은 2000년대 이후의 IT 장비들이 마치 탑처럼, 성처럼 그리고 무덤처럼 쌓여있고 그 군데군데, 부분부분을 각종  꽃으로 장식했다.  사실 그 꽃들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역시 ‘시간’ 이었다. 이제는 쓰지도 않을 그러한 기술의 흔적들은 그렇게 남는다 할지라도 ‘생명’ 과 사람의 흔적인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지고, 피고, 시들고를 반복하는 것을 전시 기간 1주일 동안 보여주고자 했다. 결국 시간의 한 시점에서 본다면 ‘기술’ 이란 것은 결국 정지해 있는 죽은 것이지만 생명은 매 순간 단 한번의 쉼도 없이 끊임없이 ‘살아 있는 것’ 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삶이란 것이 지극히 보잘것없고 무미해 보일지라도 얼마나 위대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또한, 꽃을 보이지 않는 낚싯줄로 꿰어 공중에 달아 늘어뜨린 것은 또 다른 기술로 인한 ‘공간’의 도래를 의미한다. 가상화와 클라우드를 통해 사이버 공간은 이제 또 다른 하나의 ‘공간’ 으로서 각자의 인격과 삶을 가진 공간이 되어버렸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개인은 각각의 얼굴을 가지고 서로 공중에서 연결된 듯 연결되지 않은 듯 ‘소통’ 하고 있다.

사진1 | 세운상가에 전시된 작품 ‘Cross Time with Flowers (2016)’


 즉 꽃을 통해 기술과 사람, 사람과 기술이 뒤얶혀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아우리는 ‘시간’ 이라는 것을 ‘세운 상가’ 라는 공간 자체가 무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녹여내고자 했다. 그러나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내가 전혀 계산에 넣지 않았던 그 공간의 ‘사람들’ 그들이  작품안으로 녹아들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세운상가는 우리같은 외부인들에게는 ‘특별한’  공간일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삶을 영위하고 생계를 이어오는 기술자분들, 상인분들에게는 ‘생활’의 공간이다. 그곳에 외부인들이 들어와서 어떤 행위를 하는 일들이 반복되면 그들은 피로감과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막상 작품 하단의 기계들을 설치하는 동안에는 시큰둥하던 상가분들 그리고 기술자분들이 꽃이 등장하자마자 무언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향기를 맡으며 다가와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람’ 이 작품속으로 걸어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꽃! 아무짝에도 효용없고 관심도 없는 ‘꽃’ 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왜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가? 사람이 태어나도, 사람이 죽어도, 결혼이나 승진처럼 축하할 일이 있어도 반면 테러나 슬픈 일을 애도할때도 꽃을 준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다른 감정을 하나의 어떤 ‘것’ 이 표현할 수 있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것도 그러한 복합적인 의미가 한 나라, 문화권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것도 아주 먼 과거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러한 삶과 죽음, 기쁨과 슬픔의 감정을 함께 전달하는 유일한 것이 꽃이라는 생각에 그 의미를 알아내고 싶었고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인간의 무의식에는 ‘꽃’ 이 어떤 식으로든 각인 되어 있고, 그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무관심하던, 무뚝뚝하던, 오히려 조금은 성가셔하던 세운상가 입주자 혹은 각 상가/회사에서 일하시던 분들은 꽃이 들어오면서 너무나 달라졌다. 그들은 미소와, 관심과 격려를 보내기 시작했고 과자를 사먹으라며 간식으로 주시는 분, 화장실을 쓰게 해주시는 분, 꽃을 설치하는 과정을 구경하시는 분, 질문하시는 분들로 갑작스럽게 부산스러워졌다. 24시간의 설치작업은 말 그대로 꽃처럼 마음들이 피어난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설치가 끝나고 오픈식이 끝났는데 어느 한 70대 어르신 한 분이 한참을 내 작품 앞에 서 계시는 것이다. 감사하기도 하고 혹시 마음에 안 드시나 싶기도 해서 다가가서 말을 건넸더니 이 작품의 작가냐 물으신다. 그렇다고 대답을 드리니

 “아 여기 말이야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오래된 게 하나 딱 있으면 딱 좋을 텐데. 나한테 1940년대 진공관 라디오가 있는데 말이야. 그게 여기 중간에 딱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처음에는 이분께서 내게 진공관 라디오를 파시거나 대여하시려나 하고 오해를 했었다. 그러나 그 분은 정말 자신의 오디오가 그 자리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게 공짜로 그 80여년된 진공관 오디오를 빌려주셨다. 작품 중앙에 아이팟과 나란히 배치를 하니 ‘화룡점정’ 이 따로 없었다.

내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신 그 분. 그렇기에 그 자리에 IT의 시작이자 오늘날 자신을 여기 세운상가로 오게 한 진공관라디오가 ‘기술과 시간과 사람’ 을 이어주는 오브제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승근 오디오 기술장인. 그 분이야 말로 세운상가와 함께 한 사람 그 자체였다. 10대 시절, 진공관 라디오가 좋아서 배운 기술. 그때부터 지금까지 5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세운상가의 기술장인 . 나의 작품은 결국 그의 ‘시간’을 만나 완성 되었다.

 나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는 ‘사람과 시간과 기술’ 을 꽃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사실은 세운상가의 ‘시간’ 의 강을 ‘기술(Technology)’이 엮어가는 과정을 꽃으로 표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세운상가’라는 건물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중심으로 담으려 했었다. 그러나 이 살아있는 공간에서 ‘시간’은 결국 그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 들로 인해 녹아나고 그들의 직간접적인 참여로 이 작품은 완성이 되었다. 작품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오래된 가전들을 내게 보낸 이들의 사연. 그리고 세운상가의 상인들과 기술자들의 이야기 소리, 미소 그리고 심지어는 진공관 라디오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과정 중에 그대로 꽃처럼 녹아 들어갔다. 

  ‘꽃, 시간의 강을 건너 시간과 만나다’ 는 그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태어나고, 사라지고,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과 기술을 담아내는 전시가 되었다. 아직도 긴 여운이 남는 이 전시는 아마 내 작품 생활에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임은 틀림없다. 장소의 시간성이 그대로 무대가 되고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꽃으로 표현되는 과정이 녹아 함께 설치가 된 이 작품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시간과 공간이라는 어떤 좌표 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그것이 스스로에게이든, 사회를 향한 것이든, 자발적인 것이든 억지로 강요된 것이든 어떤 행위를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나는 모든 ‘인간’ 은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내는’ 행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이왕 해야 하는 것이라면 아름답게 해내고 싶다. 결국은 그것이 삶이고 , 삶은 그 하나하나가 예술 활동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 언젠가 질 꽃이라면, 피는 그 순간은 내가 최고인양 피어낼 수 있는 그런 꽃처럼 여한 없이 아름답게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면 그게 예술이지 다른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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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11

기업예술의 탄생

 

 

심상용_ 미술사학 박사,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교수

 

 

기업들에게 민주주의에서의 표현의 자유, 정당한 법의 절차, 혹은 정치적 대표성 등의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은 일단의 계약서에 그런 권리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허용하는 의원들이나 판사들은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하거나 혹은 수퍼자본주의의 영향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들만이 그런 권리를 소유해야 한다.

 

 

기업국가한국

 

1997· 98년의 환란과 IMF 사태, 2008년의 글로벌 금융대란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기업은 국가운명에 상응하는 지위로 격상된 듯하다. 기업이 국가비전이요, 사회적 토대요, 민중의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선전이었다. 정부와 기업, 기업과 정부의 협력이 공공연하게 미화되고 도덕적인 것으로 포장되었다. 국세청 자료에 의하면, 2012년 전체 기업 영업이익의 24.9%(39조원)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두 기업이 낸 것이다. 2009년의 16.9%에 비하자면 비약적인 증가세가 아닐 수 없다. 같은 기간 개별기업으로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이익 비중은 2009년 이후 두 배로 뛰었다. 이렇듯 짧은 기간에 국가의 경제 집중도가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이명박 정부의 고환율 정책이었다.

기업 프랜들리 정부기업하기 좋은 나라등의 구호가 매일 저녁 뉴스를 타던 5년을 포함해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급격하게 기업국가로 재구조화되어왔다. 이 기간 동안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이윤창출을 내기 어려울 것으로 간주되는 공공영역의 기업이나 조직, 활동들은 급속하게 위축되거나 폐기되었다. 기업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실행의 목록은 이렇다. 경영진단이나 경영화의 이름으로 효율성과 민영화의 날을 갈고, 그 벼려진 것으로 공공영역과 활동들을 회복불가의 상태에 이를 때까지 들쑤시고, 그것들을 사적 수익의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Robert B. Reich에 의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승리를 위해 민주주의를 쪼그라들게 하고, 소비자와 투자자의 근력을 키워 시민의 운동력을 박탈하는 국가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의하면 기업국가는 지난 30년 동안 우파가 최소정부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온 것인데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가는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최소국가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국가)는 지나친 제약에 쫓겨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공공재(기간시설 및 과학기술, 교육에 대한 투자)조차 공급하지 못하는 국가, 지나치게 허약하여 공정한 사회구축의 전제조건인 소득재분배조차 시행하지 못하는 국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정부의 규모는 전혀 줄지 않았으며, 기능적으로 심각하게 왜곡되어 부유층에게 푸짐한 선물을 내어주고 있다.”

기업국가 한국의 상황도 이에 못지않다. 오슬로 대학의 박노자는 한국에서 특권층·중상층이 아닌 사람으로 늙어가는 것은 처벌에 가까운 것이라 했다. 10대 그룹 대주주 10명에게 돌아간 주식 배당금이 70만 명 이상이 되는 공식실업자들이 받을 돈의 약 30%에 해당되는 이 사회에서 현대판 귀족사회의 부활을 본다고도 했다. 주로 현대미술의 V.I.P. 핵심 고객이기도 한 상위 1%의 평균 소득은 중위소득에 비해서도 22.6배나 된다. 반면 빈곤격차(poverty gap)는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나라다. 기업국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공성의 부재며 공공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이다. 기업의 치열한 경쟁체계가 사회의 모든 기관과 조직, 개인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교육, 예술, 문화, 심지어 가정에조차 수익창출논리가 침투하고, 각 영역의 공공성과 자발성의 기반은 심각하게 훼손된다. 기업국가에서 기업의 이익사냥을 벗어날 수 있는 땅은 단 한 평도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 공공영역은 준비된 경쟁자가 부재하다시피 하는 금싸라기 땅과 진배없다. 진출이 허용되는 순간, 막대한 이익이 기업의 차지로 돌아갈 것이다. 이들 기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내는 일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오늘날 대기업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특혜를 통해 차지한 돈의 일부를 공공영역을 수호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꺾는데 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탁으로 한국의 교육과 문화는 분야는 이미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담보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하게 사유지화 되어버렸다.

정부는 교육을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소수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도록 시장화 하는 사교육관련 기업들을 감시하는 일을 일찍이 포기해버렸다. 그 결과 공교육은 토대마저 흔들리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교육이 기업의 쓸 만한 부품을 생산해내는 비인간적인 공정이 되도록 하는데 오히려 앞장서왔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이 기업국가, 교육방임정부에 의해 살인적 경쟁에 내던져지고 일찌감치 심신의 황폐화를 경험하게 된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불행을 떠안기는 것이 한국 공교육의 실체인 것이다.

대중문화는 몇 개 기업에 이익이 집중되는 독점구조로 급속히 이행되어 생태계의 교란은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예술도 자본기계의 부속으로 급속하게 편입되어, 공공미술관은 민영화되고, 이론과 비평은 시장의 병참기지로 전락하고, 예술가는 브랜드화된 스타로 대체되었다. 작가건, 이론가건, 관장이건, 큐레이터건 심지어 감상자들조차 이익 지향적으로 인식하고 기업적으로 판단한다. 기업화된 개인이나 기업의 소장품 목록에 들고, 유능한 시장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 외의 다른 활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시장에서 성공한 예술이 진정한 예술로 선전되고, 구성원들은 이익과 효율성에 의해 서열화 된다. 이들 모두는 창작하는 빈곤층creating poor으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않은 채 경쟁 속으로 투입된다.

한국은 복수의 비엔날레를, 그것도 성대하게 치른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가 되었는데, 이는 비엔날레를 의사 기업쯤 되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인식이 한 몫 한 결과다. 비엔날레를 먹거리 산업의 전초기지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비엔날레의 이면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려는 시도는 매우 부족하다. 오늘날 글로벌 비엔날레들은 반자본주의 이념을 표방하는 듯하면서, 실은 자본의 구동력으로 돌아가는 진정한 자본주의 벤처venture’로서 기능한다. 글로벌 거대 비엔날레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거나 앞으로 거래될 것들이 매우 특별한 가치 있는 것들이라고 믿게 만들기 위한 시장의 보조 추진 장치로 작동한다. 글로벌 비엔날레의 또 하나의 기능은 지구촌의 지역들에 예술의 글로벌 스텐다드를 유포시킴으로써 글로벌 시장으로의 편입을 용이하게 하는, 일종의 중앙화폐의 그것이다. 중앙은행 시스템이 중앙화폐 이외의 것들을 정크화폐로 낙인찍듯이, 지역의 예술과 미학에 불량 낙인을 찍는 기능인 것이다. 글로벌화가 지역 검열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로 인해 글로벌 미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소수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오래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농담을 빗대어, 오늘날 경쟁적으로 치러지고 있는 글로벌 비엔날레들의, 현 시장 질서를 영속화하려는 위선적인 속셈을 폭로 한다. “그들- 글로벌 비엔날레들- 는 오늘날의 예술계가 자본주의 기계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말로 자본주의 기계의 일부이다!”

한국이 비엔날레라는 자본주의 기계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되는 일은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글로벌 비엔날레 체계가 미래에 큰 수익을 올릴 지도 모를 지역의 예술적 잠재력의 싹을 사전에 잘라내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예술의 탄생

 

최근 대기업들이 예술의 전면으로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류韓流의 성공, 미술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예술의 투자수익모델화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기업과 예술의 다양한 협력이 전례 없이 고무되고 있다. 국내의 영향력 있는 전시와 학술행사, 수상제도 등은 갈수록 소수 거대기업이나 대기업의 직·간접적 운영이나 후원, 기부등과 긴밀하게 결부되고 있다. 공공미술관 생태계 전반에서 비중이 큰 사립미술관들의 대다수가 재벌이나 거대기업 소속인 상황에서 예술에 미치는 이들 기업의 막대한 영향력이 그리 새로운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미술관에 뿌리내린 대기업 안주인들의 손길이 힘으로 작동하는, 이를테면 재벌가의 미술관을 살펴보면 요즘 가장 잘나가는 작가의 답이 나온다는 작금의 상황은 이전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특히 재벌 소유 미술관들의 활동이 발휘하는 영향력은 이전에도 남달랐지만, 그 힘의 작동방식에 있어 오늘날처럼 절대적이거나 포괄적이지는 않았다.

재벌가 사모님은 리히텐슈타인을 좋아한다같은 냉소 섞인 풍자에는 생각보다 함의가 담겨 있다. 기업예술의 전형적인 속성이 그 가운데 하나로, 예컨대 기업예술은 리히텐슈타인 같은 스타작가를 일관되게 선호한다. 분명 보편적 의미의 취향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이 탈세나 비자금조성 같은 직접기여일 수도, 기업 이미지 개선이나 광고 같은 간접기여일 수도 있지만, 어떻든 기업이익에 부응하려면 스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익이 담보되지 않는 취향을 위해서는 결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기업의 자발적 선행은 불가능한 개념으로, 기업은 좋은 일을 위해 좋은 일을 하지 않는다. 취향에 대한 존중과 자발적인 예술애호라는 요인이 전무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것이 돈을 벌어주는 예술보다 상위의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므로 예술투자 기업은 블루칩 작가를 차지하거나 생산해내는 경쟁을 선동하고, 그들이 주류를 차지하도록, 그리고 안정적인 투자대상으로 자리잡는 시장이 조성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시장이 이미 안정적으로 구축된 작가들은 값이 오를 대로 오른 주식처럼 수익성이 떨어지므로, 기업은 갈수록 투자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신진작가들을 키우는데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블루칩 작가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미래의 스타-블루칩 작가들에 대한 집중은 투자의 변동성을 더욱 증가시키고, 그것은 다시 집중성을 높이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경기가 자주 불황국면을 들락거리게 되면 기업들은 집중성을 더욱 높여 스스로 위험성이 낮은 활동만을 찾아나서는 회피효과를 강화한다. 절대다수의 작가들이 이 범주 밖으로 밀려나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예술투자기업은 이미 브랜드화되었거나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는, 사실상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돈을 쓰는 것은 문화경쟁력을 떨어트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취향이라는 상쟁재로 인해 고도의 수익성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재가 있을 뿐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20117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이우환>전이 열렸다. 구겐하임의 아시아예술 담당 삼성 시니어 큐레이터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unroe에 의하면, 전시의 취지는 한국작가 이우환을 세계적 인물이자 현대의 거장으로 조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삼성이 구겐하임에 제공해온 아시아관련 예술펀드가 아니었더라도, 한 아시아 작가의 세계미술에 대한 영향력이 구겐하임의 관심사가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돈이 아시아현대미술에 대한 미술관의 관대함의 급수를 갑자기 높게 올렸을 거라는 것이 단지 추론만은 아니다. 이 사실이 전시의 보도자료에 명시되어 있다 : “이 전시는 삼성의 선도적인 후원으로 성사되었다.” 이는 그에 상응하는 선도적 후원이 가능하다면, 구겐하임의 큐레이터십이 여타의 작가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소신이나 평가를 조정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미다.

20146월 알프레드 파크망Alfred Pacquemen 전 퐁피두센터 관장의 기획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박물관에서 개최되었던 이우환의 초대전에도 같은 맥락의 개입이 있었다. 기획자는 철과 돌이라는 두 물질이 충돌하는 효과가 이우환 조각의 핵심이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전시만을 놓고 보자면, 이우환이 전시를 위해 직접 구입한 알프스 지역과 스칸디나비아 산 돌 만큼이나 베르사유의 중앙 홀에 삼성전자가 설치한 대형 초고화질UHD TV도 상징적인 요인이 아니었을까. 201388일자 <리베라시옹Libération>의 기사에서 베르사유의 까뜨린느 뻬갸르Catherine Pégard관장도 이와 관련한 베르사유의 확고한 입장을 밝힌다. "우리의 모든 행사에는 메세나가 같이 합니다.”

미디어들은 이우환이 베르사유에 초대된 두 번째 아시아 작가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세 번째다. 지난해 6월에서 9월 사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진전이 베르사유의 부속건물인 오랑주리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유병언의 사진들의 베르사유 초대와 그가 베르사유에서 진행되는 물의 궁전의 숲행사의 유일한 메세나로서 기부한 14십만 유로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을 수 없다. 지난 2014612일 베르사유 박물관에서 진행된 뻬캬르 관장과 <연합뉴스>의 인터뷰에서 이 전시를 위한 유병언의 기부금은 5백만 유로로 언급되었다. 프랑스 외무장관 로랑 파비우스Laurent Fabius의 권유로 취소되긴 했지만, 또 다른 후원의 대가로 그의 사진들이 콩피에뉴 나폴레옹 3세 극장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 전시될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기부에도 품격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그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오늘날 돈으로 살 수 없는 품격은 존재하지 않으며 돈이 품격을 가리는 것도 아니다. 전술한 인터뷰에서 "베르사유에 낸 유병언의 후원금이 공금횡령으로 조성된 것이라면 베르사유에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빼캬르 관장은 후원금이 문제가 있다면 베르사유는 책임자가 아니라 제1의 피해자"라고 펄쩍 뛰었다. 전시를 열 당시만 해도, 그 돈이 그토록 검은색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병언의 사진을 "평범함 속의 비범함"으로 극찬한 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당시만 해도 그 작품이 아마추어 수준이라는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품격 있는 후원이 주는 명예와 로비로 사들이는 명예를 구분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병언의 루브르 전시에 글을 쓴 사람은 박사학위 소지자로 1993년부터 파리 국립미술학교의 사진 큐레이터였으며 2010년부터 사진 분야의 전시를 책임지고 있는 안-마리 가르시아Anne-Marie Garcia. 아마도 유병언이 기부한 11십만 유로가 그렇게 하도록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베르사유의 뻬갸르 관장도 전직 기자로서의 필력을 살려 영원과도 같은 순간같은 시적인 표현을 동원해 이 훌륭한 사진작가를 찬양했다. 2012<꼬내상스 데 자르Connaissances des Arts>2013<보자르 Beaux-Arts>에서도 유병언의 사진을 테크닉이 뛰어난 걸작으로 평하는 뻬갸르 관장과 편집자 또마 슐레세르의 글들이 실렸다. 이 사태에 대해 베르나르 아스케노Bernard Hasquenoph는 탄식한다. “모두들 그의 케이크 조각을 원한다. 냉소만 나올 뿐이다.” 사실은 유병언의 케이크가 아니라 돈의 케이크일 것이다.

재력으로 인식을 조정하고, 로비로 예술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이 글로벌 현대미술의 판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어디든 공공연하게 확인된다. 한 때 명망을 누렸던 기관들조차 앞장서서 면죄부를 발행했던 중세 교회의 관례라도 따르듯, 후원이나 기부의 관행 안에서 액면가에 따라 구분되는 예술적 인정의 쿠폰을 주고받는다. 오늘날 예술투자 기업은 기부나 후원의 명목으로 포장된 로비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싸움에서 우위를 장악하고 있다. 베르사유 박물관이 제프 쿤스나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상업적 키치작가를 끌어들였던 것도 이 맥락인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아스케노는 일갈한다. “() 소득원에 불과한 사람을 위대한 아티스트로 포장하는 데서, 우리는 현재 우리의 대표적인 미술관들이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모든 종류의 타협을 허용하는 윤리적 일탈의 기미를 본다.” 그럼에도 이를 단지 몇몇 기관이나 그 관련자들의 박약한 윤리성의 문제로만 다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정부와 기업, 공공선과 자본, 공공영역과 사유지 사이의 필수적인 균형 틀이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다. 한국에서 여전히 구겐하임의 전시가, 모마의 컬렉션이, 테이트 모던과의 계약체결이, 베르사유 미술관의 초대가 우상화되고, 위대한 예술성을 가름하는 결정적인 심급으로 작용한다는 것 역시 단지 한국예술의 낙후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균형틀이 깨져 심각한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문제다.

지난 20141, 한국의 또 다른 거대기업이 거액의 후원금의 힘으로 유럽의 또 다른 미술관과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자동차는 영국의 테이트 모던Tate Modern 미술관과 11년이란 최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한 첫 번째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계약의 첫 사업으로 비디오 작가 고백남준의 작품전을 열기로 계약을 체결했고, 전시의 원활한 개최를 위해 미술관 측이 작가의 작품 9점을 구입하는 것도 후원하기로 했다. 선구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과의 관계가 현대자동차로선 손해보지 않는 비즈니스 전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적인 것으로 자주 오인되곤 하는 비즈니스적 성과에 의해 가려져서는 안 될 측면들이 있다. 후원금 계약체결이 테이트 모던의 학예팀을 움직여 백남준이 세계 미술사에 끼친 영향을 재조명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비즈니스적 성과에 의해 미술관이나 큐레이터의 우선적인 관심사를 조정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언제든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형성되는 의미를 여과 없이 가치화하는 한국예술 장의 관행을 내부적으로 채우는 자기기만과 허세 가 그것이다. 기업의 푸짐한 후원금 계약으로부터 오는 것은 진정한 예술의 성과와는 관련이 없는 기업예술의 장황한 레토릭일 개연성이 그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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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9

해결하지 않는다. 함께 헤맬 뿐이다.

 

장현정_ 사회학자, 도서출판 호밀밭 대표

 

10대 후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약 10년 정도 록 밴드 활동을 했다. 음악을 그만둔 뒤로 어쩌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문화연구, 철학, 미학 같은 학문도 기웃거렸지만 늘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딴따라라고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어떤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보다 자유롭고 엉망진창(?)으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에게 학문이나 일은 낮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고 딴따라나 삶은 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크 라이프 밸런스 work-life balance'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낮과 밤도 균형을 이루면 좋은데 우리들 대부분은 밤에도 환하게 형광등을 밝혀놓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삶의 영역에서 밤을 밀어내 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낮의 영역에서는 물론 답이 아주 중요하고, 그 답은 숫자 하나만 틀려도 사람이 죽거나 건물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이라 아주 엄밀해야 했다. 하지만 밤의 영역에서는 반대로 답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의 영역에서는 답이 처음부터 없거나 혹은 아주 많은 답이 가능했다. 그리고 나는 밤을 더 사랑했다.

물론 한편으로는,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키우면서 삶 자체가 우리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부여하는 엄중함도 경험했다. 나날이 늙어가는 부모와 나날이 커가는 아이들의 중간에 끼어서, 아마도 나에게 삶의 엄중함은 앞으로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삶의 엄중함이란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내 직업이 무엇이고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따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자연처럼 냉정하고 차분하게 다가오고 흘러갈 뿐이었다. 그렇게 낮과 밤이 혼재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렴풋이 어떤 깨달음 같은 걸 하나 얻게 되었다. 그것은 눈이나 뇌로 확인하고 명료하게 전달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서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게 함으로써 우리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 마침내 고요한 삶으로 이끄는 요가처럼, 나 역시 어떤 이데올로기에 마취돼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고 다그치지 않았나 하는 서늘한 느낌.

요컨대, 시시각각 세계가 보내는 신호에 반응하며 삶을 충실하게 산다는 것은 답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느낌이다.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지만,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히 삶을 긍정하고 이 세계를 사랑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만 자신의 일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은 소수다. 돈을 벌기 위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 사람 자체가 좋아서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어서라면 사랑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새로운 걸 알게 될 때마다 가슴 설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충만함을 느끼는 공부가 아니라 그저 좋은 대학에 가거나 출세를 위해 하는 공부라면 그런 공부가 사랑스러울 리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비쩍비쩍 말라갈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어려운 이치도 아닌데 왜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싶다.

도구화된 것들, 지금 여기 내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늘 그 다음, 혹은 미래의 어떤 답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삶이란 우리를 우리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언젠가부터 인문학이 유행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에 단 하나의 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아주 수많은 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이에서 기쁘게 헤맬 수 있는 용기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인문학에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오직 그것뿐이다. 단 하나의 답을 가진 사람이 모두를 향해 일방적으로 떠드는 독백 (mono-logue)’ 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답이며 그렇게 다양한 답 사이를 관통하고 가로지르며 서로가 기쁘게 헤맬 수 있는 이른바 대화 (dia-logue)' 의 세계로 향하기 위함이다. 주어진 틀에서 끊임없이 일탈하며 적극적이고 나아가 공격적으로 헤매되 각각의 악기가 모두 답이고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무대 위에서의 한순간 한순간에 집중하는 록 음악처럼 말이다.

학자든 예술가든 기업가든, 자신의 일을 그 무언가를 위한 도구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교수가 되기 위해공부하는 삶, 명성을 얻고 유명해지기 위해만든 작품, 돈을 벌기 위해하는 사업..... 이런 삶들은 가치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다지 인문학적인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혼자 있는 시간에 더 바랄 것 없는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그 무엇을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우선 살아있다. 우선 살아있고, 그렇게 살아있는 자신을 의식하면서 시시각각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곱씹는다. 이들에게 삶이란, 주어진 규칙에 따라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이나 해답을 찾아야하는 시험 같은 게 아니다. 놀이다. 놀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호기심을 거두지 않고 묻는다. 묻고 헤매고 기분 좋게 갈팡질팡한다. 묻고 헤매고 기분 좋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삶의 근육과 뼈가 단단해지지만 그 자신은 그러거나 말거나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것을 위해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 시험에서 주어진 답은 하나일 테지만 학교 바깥에서 그런 일은 거의 없다. 하늘이나 바다, 일출이나 노을, 혹은 아이들의 웃음이나 어르신들의 주름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고 모두 똑같은 느낌을 받거나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끔찍한 일이다. 독재나 폭력은 특별한 개념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일상적인 말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모두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독재고 폭력이다. ()인문학적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에 밴 습관이나 익숙한 사고방식이란 얼마나 완강한가.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니 이런저런 기관에서 가끔 특강을 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 자주 받는 질문들도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인문학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인가요?”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꼭 이런 인문학 같은 것이 필요한가요?”

시간이 별로 없는데 인문학을 빠르게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사실 나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처럼 들린다. 밤에 어울리지 않는, ()인문학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질문이라기보다 독백이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답이 있는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지 자신의 필요나 입장만 중심에 놓고 도구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문학이라는 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이 오염됐기도 했지만 사실 검도를 배우든, 야구를 배우든, 최소한 나름의 분야마다 기본적인 태도와 룰은 있는 법이다. 답을 찾으려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돈을 벌겠다고 음악을 하는 뮤지션을 보고 있는 것처럼 뭔가 어긋나 있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간다. 모놀로그의 삶 말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다이얼로그의 삶에 관한 것임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자기 안의 욕망을 자기증식 시키다가 마침내 자멸을 향해 나아가는 폭탄 같은 삶은, 인문학적 삶과는 상극이다. 몇 줄 좋은 문장을 읽는다고 삶에 윤기가 돌 수는 없는 일이다. 먼저 삶 자체를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내가 어릴 때 록 음악을 사랑했던 이유는 음악 자체도 좋아했지만 무엇보다 그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태도가 멋있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록 음악과는 별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음에도 스스로 딴따라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역시 바로 그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인문학이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니저러니 떠드는 것처럼 우리에게 실제로 무슨 큰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 역시 그저 가장 자기다운 삶을 살고 싶고, 혼자 있는 시간에 충만하고 싶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태도일 뿐이다. 삶을 제대로 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흔히 삶은 여행 같은 것이라고들 말한다. 좋은 표현이지만 어떤 여행을 말하는 건지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여행은 일이 아니라 삶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만 빠듯하게 일정을 짜고 사진촬영을 끝내면 또 바쁘게 동선에 따라 이동하는 식의 여행이라면 그것은 이미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라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이때의 여행은 삶을 위한 것, 질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욕망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일에 불과하다. 진정한 여행은 나름 준비를 하더라도 결국은 가서 헤매고, 헤매는 과정에서 한 뼘쯤 기존의 자신을 넘어서는 계기가 된다. 우리의 삶이 여행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목적지가 어디가 될지,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시각각 긴장하고 또 그래서 한편으로는 설레는, 말 그대로의 여행에 가까운 걸까 아니면 스테이지마다 정해진 미션들을 수행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 출장 같은 여행에 가까운 걸까.

나 스스로는 여전히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생각이나 습관도 10대 후반의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어느새 나이를 먹어 가족, 학생들, 직원들 등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압축적 성장을 비롯해 여러 중층적 이유로 구조적 모순이나 불평등도 심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한방에 무언가가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런 세상은 역사 속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안 올 것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정답 없는 세상에서 마음껏 찧고 까부는 딴따라의 심정으로 더욱 자주 이렇게 되새겨본다.

해결하지 않는다. 함께 헤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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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9

소통이 힘든가요. 거울을 보세요.

 

임성민_ <지식인의 옷장> 저자, 경희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타타타

 

니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1992년 가수 김국환이 발매한 타타타란 노래의 가사이다. 산스크리트어인 타타타는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말한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무엇일까.

 

그걸 의미한 게 아닌데.” 자신의 의도가 전달되지 못해서 마음 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없다. 느낌을 통해 추론할 뿐이다. 말이나 표정, 행동 등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예측하고 이러한 예측으로 서로를 대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법에 항상 화가 나 있다면 상대방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에 문제가 있을 확률은 1에 가깝다.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는 방법의 시작은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직접적이며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패션이다. 보이는 것은 쉽고 힘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들 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패션이란 단어에 럭셔리한 브랜드들만 생각난다면 패션의 부분을 패션 전체로 보는 모순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패션은 자신을 알고 표현하는 것으로 애티튜드까지를 포함한다. 청순함을 드러내기 위해 흘러내리는 긴 머리를 조신하게 귀 뒤에 꽂는 것이 패션이며 터프함을 강조하기 위해 겉옷을 벗어 한쪽 어깨에 올리고 당당하게 걷는 것도 패션이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초창기에 패션관련 수업을 개설할 때 수업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전공이 아닌 학생들에게 패션을 알아야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기 때문에 수업 제목을 패션과 나로 지었다. 이 수업에는 학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오고 다른 학생들은 그 학생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하는 패션 크리틱시간이 있다.

처음에는 앞에 나온 학생이나 앉아 있는 학생들 양쪽이 어색해하고 패션에 대해 말을 해주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 주저했지만, 서로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되니 서로 말해주라고 독려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패션에 대한 지적은 활기를 띤다. 예를 들어 차가워 보이는 인상의 남학생에게 안경대신 콘택트렌즈를 권하기도 하고 검정머리를 옅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가볍게 파마를 하는 것도 어울릴 것이라고 말한다. 또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여학생에게 백팩 대신 크로스 백을 추천하기도 한다. 작은 패션 아이템이 착용자의 예상보다 더 크게 타인들의 눈에 크게 띄기도 한다. 줄무늬 양말하나로 교실에서 패셔니스타로 등극되는 학생도 있었다.

 

패션 크리틱을 하다보면 교실 안이 떠들썩해지면서 학생들의 장난기가 발동되기도 한다. 유명인 누구를 닮았다느니 혹은 쉽게 할 수 없는 독특하고 과감한 스타일을 언급하며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오는 차례였다. 살집이 있는 몸매의 덩치가 큰 여학생이었는데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우렁찼다. 뱅헤어의 앞머리와 레이스가 달린 옅은 핑크색 원피스에 발목까지 오는 흰색 양말, 귀여운 핸드백을 맨 그녀는 일본의 하라주쿠에서 볼 법한 일본 스타일의 여학생이었다. 패션과 더불어 목소리와 말투의 애티튜드는 그녀가 독특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보이게 했다. 학생들은 어울리는 패션스타일을 말해주면서 다소 장난기 있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여학생은 재미있게 받아넘겼다. 그녀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다시 수업을 이어서 진행하는 도중 그녀의 어두워진 표정이 보였다. 수업용 ppt를 보기 위해 조명을 어둡게 했지만 스크린의 빛이 학생들을 비추면서 교단에 있는 나에게는 앞을 향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향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했지만 내심 기분이 상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시간에 그녀가 원하는 이미지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바라는 이미지를 형용사나 명사 등 간략한 단어 20개 정도로 나타내고 컬러와 이미지를 조합하는 것이다. 그녀가 가장 먼저 썼던 단어는 여성스러운이었다. 유명인으로는 여배우 손예진을 기재했고 컬러들은 분홍색과 화이트, 노란색 등 파스텔 풍의 연한 컬러들이었다. 조합한 이미지를 보니 그 여학생이 바라는 이미지는 그녀가 좋아하리라 예상했던 독특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아닌 여성스러운 이미지였다. 게다가 자신이 현재 추구하고 있는 이미지도 비슷하다고 기재했다. 그녀가 스타일링한 패션 아이템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레이스가 달린 옅은 핑크색 원피스는 과한 스타일은 아닌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다소 덩치가 큰 그녀가 사용하다 보니 특징이 부각되어 나온 것이었다.

타인들은 그녀의 패션을 통해 그녀가 자신들이 예상한 성격이라 생각하고 그에 맞추어 대했던 것뿐이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 순간을 참아야 했고 마음 상해했다. 상대방은 그녀가 싫어서 했던 행동이 아니다. 사실 수업을 하다보면 학생들에게 호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럴 경우 패션 크리틱 시간에 지적이 많은 것이 아니라 거의 없다. , 상대방은 악의도 잘못도 없다. 사실 피해도 없다.

이것저것 이야기 해니 여성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점이 많았다. 자신의 외모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패션 스타일링을 한다면 그녀가 바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네이버에 검색해서 그에 따른 패션 아이템인 하늘거리는 레이스’, ‘원피스’, ‘핑크색 플랫슈즈’, ‘작은 핸드백등 이런 식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고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녀의 장점이 부각되고 바라는 방향으로 표출되면서 타인과의 생활에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학생들에게 레포트 표지에 자신이 예쁘게 나온 사진을 붙여서 내라고 한 적이 있다. 대부분 위에서 45도 정도의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뿌옇게 나온 사진이었다. 위에서 찍은 사진이어서 치켜떠진 눈은 실제보다 동그랗고 컸으며 턱은 갸름하게 나왔으며 뿌옇다 보니 피부는 하얗고 모난 곳 없었다. 학생들에게 이런 각도로 뿌옇게 처리한 자신의 사진이 왜 이쁘게 보이냐고 물어보니 자신처럼 나오지 않아서 마음에 든단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나오면 그 사진은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색하고 불편한 사진이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색한 모습을 타인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자신을 알고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꾸미라는 것은 단순히 멋을 내라는 것이 아니다. 가끔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좋아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자신이 바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자신을 알고 이를 표현해야 한다.

 

 

가식과 컨셉

 

거짓으로 꾸민다는 의미의 가식(假飾)과 보여짐의 의도적인 컨셉을 동일시하거나 비슷하다고 오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가식이 무엇을 숨기려하는 행위라면, 컨셉은 드러냄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상반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에서 컨셉이란 단어는 여타의 다른 단어들보다 특히 많이 사용된다. 컨셉이 무엇이냐란 질문은 무엇을 의도하고 나타냈냐는 질문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패션에서 내추럴이란 단어를 사용한 내추럴 컨셉은 내추럴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진한 화장을 하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화장을 하고 강렬한 컬러의 립스틱이 아닌 립글로스를 바르고 머리는 자연스럽게 포니테일로 묶는다. 사실 내추럴이란 단어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다 깨서 부스스한 모습에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입은 모습이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방향이 드러나지 않으며 게다가 매력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컨셉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타인이 자신의 원하는 방향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의도하는지의 방향을 타인이 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2000년대 이후의 패션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은 스티브잡스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고 자신을 드러내는 컨셉을 고찰했다. 그가 즐겨 입는 일본 패션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색 터틀넥은 수십 벌을 입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와 크기를 찾은 것이다. 이 검정색 터틀넥과 함께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스니커즈는 대중에게 그를 나타내는 컨셉이었다. 그의 패션은 그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대중은 그의 패션을 통해 그를 이해하고 소통했다. 편안하면서 전문적이며 또한 적극적인 스티브 잡스를 드러냈고, 이는 애플사의 수장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을 강조했으며 결과적으로 회사 전체의 이미지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로 인해 애플사의 이미지는 한 입 베어 문 사과 로고뿐만 아니라 터틀넥과 청바지, 스니커즈의 열정적이며 전문적인 스티브잡스의 이미지가 함께 하면서 회사의 이미지를 끌어올렸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것은 자신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시작이다.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 필요는 없다. 시대는 변화하며 자신 또한 변화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나와 이미 한참 멀어져 있던 나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의 방법으로 자신을 대하면서 타인에게 드러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소통에 문제가 있었거나 혹은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정 유명인의 패션 스타일은 줄줄 나열하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어울리고 무엇이 어울리지 않는지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없다면, 자신을 매력적으로 상대방과 소통하고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그 어떤 게으름보다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적을 모른 채 나를 알면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무조 패한다(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란 말이 나온다. 나를 알면 적어도 피해는 안 본다.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면 자신에게 좋은 향이 난다는 것을 알아서 자신감이 올라간다. 이 자신감의 애티튜드는 상대방에게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나를 알고 나에게 어울리는 패션을 취한 자! 천하무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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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7

<프로파간다> 최지웅, 박동우, 이동형 인터뷰

 

훔치고 싶은 포스터를 만드는 것,

프로파간다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죠

 

 

영화에 대한 관심을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확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프로파간다만의 감성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 신사동 작업실에서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인터뷰 양계영(urstar2016@sogang.ac.kr), 정재원(agnes1026@sogang.ac.kr)

정리 김명회(sggkmh@sogang.ac.kr)

 


 

서강대학원신문(이하 서강)> 스튜디오 이름은 스튜디오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성을 담고 있다 생각합니다. 본 이름을 지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지웅(이하 최)> 프로파간다 이름은 원래 공산 국가에서 사용하던 대중을 선동한다는 의미인데, 이 이름을 중학교 때 잡지에서 처음 듣고 어감이 좋아서 나중에 써먹으려고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회사를 오픈하면서 다시 떠올리고, 사용하기로 한 거죠. 프로파간다가 대중을 선동한다는 부정적 어감이 있지만, 우리는 영화 포스터로 대중을 설득한다는 좋은 의미로 사용하기로 했어요. ‘디자인으로 관객을 홀려서 극장으로 오게 만들자라는 뜻으로 긍정적인 의미의 프로파간다인 셈이죠.

 

서강> 프로파간다 안에서도 세 분의 전공에 따라 작업 방식이 나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박동우(이하 박)> 큰 상업 영화는 같이 아이디어를 준비하죠. 각자 시안을 짜 와서 같이 선택하고, 선택되는 시안을 메인으로 결정해요. 그럼 나머지 인원들은 서포트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독립영화 같은 경우에는 각자 맡아서 하고요. 큰 상업 영화 같은 경우에는 촬영도 하고 시안도 짜고 할 일들이 많아서 다 같이 일을 하는 방식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희가 포스터 디자인만 하는 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포스터 디자인만 하는 건 아니고,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고 기획부터 아이디어를 다 짜는 거예요. 배우들이 어떤 옷, 어떤 공간, 어떤 포즈, 표정을 할지 정확히 짜요. 그리고 그대로 찍는 거예요. 해당 장면의 촬영을 위해서 스텝들도 우리가 다 정해야 해요. 메이크업, 스타일리스트, 포토그래퍼 등 섭외를 통해서 촬영을 하고요. 시나리오부터 포스터 광고 전단지까지 비주얼적인 부분은 다 한다고 보시면 돼요.

 

서강> 그럼 전체적인 컨셉을 잡기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독립영화 같은 경우에는 영화가 완성된 후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작업을 하고, 큰 상업영화 같은 경우에는 촬영 전부터 일을 시작해요. 시나리오를 읽고 책 디자인을 해야 해요. 그게 저희가 제일 처음에 하는 일이에요. 그래픽 디자인도 여러 분야가 있잖아요. 제 생각에는 영화포스터가 그런 모든 디자인의 집합체인 것 같아요.

 

서강> <라우더 댄 밤즈(Louder than Bombs)> 포스터를 보고 홀려서 영화를 봤는데, 핵심 내용과 상관없어도 저렇게 만드시나요?

 

> 저희의 목적은 재미없는 영화도 재미있어 보이게 만들어서 대중들을 홀리는 것이에요. 어쨌든 홀리셨잖아요. (웃음) 잠깐 나온 컷이라도 매력으로 어필 할 수 있다면 활용하죠.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기획하기가 제일 힘들어요.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분위기에, 어떤 컨셉이다 이런 걸 짜놔야 스텝들과 공유도 되고 배우들도 이걸 보고 이렇게 연기를 해야겠다!” 하죠.

사진1 | 라우더 댄 밤즈(Louder than Bombs)포스터

 

사진2 | 영화 <해적> 포스터 촬영 시 콘티

 

영화 <해적> 같은 경우, 사전 미팅 당시 배우들의 얼굴이 포스터에 다 나와야 한데요. 이런 경우, 사전에 배우들의 포즈도 일일이 정해야 해요. 디자인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죠.

> 디자인만 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짜고 준비하고 그런 단계가 제일 어려운거죠. 그 때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죠.

 

서강> 영화 <족구왕>처럼 홍보물을 카드화하여 제작하시는 것을 보았어요. 이처럼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작업하신 것들을 소개해주세요.

 

> 정몽준이 족구를 하는 웃긴 사진이 있었어요. 영화 <족구왕>은 그 사진을 모며 영감을 얻은 거예요. 영화 <꿈보다 해몽>같은 경우 꿈과 현실을 나타낸 영화인데, 포스터에 그 특징을 연결되게 만든 작품이죠. 평소에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그래퍼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학생 때는 그런 분들을 알고 지내고 싶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제는 그분들과 일하게 된 거죠.




사진3 | 영화 족구왕카드 포스터

 

이동형(이하 이)> 맞아요. 함께 작업하면서 또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작업하시는지 볼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재미있죠.

사진4 | 평소 좋아하던 윤예지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영화 꿈보다 해몽포스터.

 

서강> 프로파간다를 검색해 보면, 흔히 프로파간다만의 색깔이 있다고 정의내리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러한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것 같은데, 너무 똑같다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장르에 국한되어 있는 톤 같은 게 있기도 한데, 저희처럼 다양한 장르를 하는 회사는 많이 없다고 생각해요.

> 저희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죠. 어떤 분들은 자기 복제라고 욕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관심 있게 봐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땐뽀걸즈> 포스터 작업 같은 경우, 거제도에 가서 땐뽀걸즈 팀원들을 직접 찍어왔어요. 포스터에 바다가 나왔으면 해서 서울과 제일 가까운 인천에서 찍고 싶었는데 이 친구들이 취업하고 알바를 하는 학생들이여서 직접 올라 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거제도에 가서 예쁘게 찍었거든요. 작품을 보시고 어떤 분들은 핑크색 치마 입혔다고 성적 대상화한다고 욕하시는 분들도 있고.. 로리타 사진 같다고 싫다는 (반응도 있었죠.)

 

서강> 댓글을 통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활발하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경우도 있으실 것 같아요.

 

> 저는 처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제는 아예 SNS를 끊었어요. (웃음) 예를 들어 명절에 친척들이 한 곳에 다 모였어요. <부산행>처럼 잘된 영화에 대해서 다 같이 얘기 할 수 있는 그런 부분은 좋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을 만한 작품들을 하는 것은 되게 좋지만 부담도 생기고 그래서 SNS를 끊었어요.

> 저는 다 찾아봐요. (웃음) 이게 재밌는 게 오늘 작업한 게 내일 대중들에게 공개되고 반응들이 바로 오니까 그게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회사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면 대중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잖아요. 근데 우리는 대중들이 다 보는 거잖아요? 남녀노소, 전 국민이 다 보는 작업이라 재밌는 것 같아요. 트위터 검색해서 다 보는 데, 짜증나고 그렇진 않고 재밌어요. 좋은 반응은 기분이 좋고, 욕하는 글들이 있으면 상처도 받고 그래도 다 봐요.

> 저도 다 찾아보는데요. 열심히 작업했는데 반응이 없어서 상처에요. 나는 열심히 작업했는데 댓글들이 없으니까 언급이 없어서.. 짜증나요. (웃음)

> 작업 물에 대해 무플인 것들도 간혹 있어요. 나는 열심히 했는데 무플인 것을 보면 마음이 더 아프죠.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 포스터 같은 경우는 막 좋아요1000개 되고 반응이 오는데, 어떤 작품들은 댓글이 없어요. 그런 건 이제 사람들이 관심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좋아요개수 보면서 사람들의 취향을 파악하는 것 같아요. 반응이 딱딱 나뉘어져요.

 

서강> 작업 시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 전국 극장에 영화 현수막이 걸려 있잖아요. 포스터가 나오면 전국에 있는 걸 다 해야 해요. 사이즈도 다 다르게요. (그 작업을) 이틀 만에 다 해야 해요. 각각의 사이즈에 맞게 다르게 제작하는 게 좀 힘들어요. (규모가) 큰 상업영화는 100개 정도 하죠. 혼자서 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라서 큰 영화는 다 나눠서 같이 해야 할 수 있어요.

 

서강> 자체 프로젝트인 미니 아카이브 북 <필름 타이포그래피 Vol.1 레터링>, <필름 타이포그래피 Vol.2 캘리그래피>를 보면서 프로파간다가 한국 사회 안에서 특정 역할을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이 같은 작업을 기획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 클라이언트 잡(job)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잖아요. 그래서 수정도 필요 없는 우리만의 컨텐츠로 재밌는 거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판업을 하게 된 거예요. 회사 이름은 프로파간다, 출판사 이름은 프로파간다 시네마 그래픽스에요. 우리가 내는 책은 아카이브 종류의 책이 있고, 디자인 북이 있어요.

 

서강> 주 콘텐츠는 관심사에서 비롯된 내용들이 많겠어요.

 

> 그렇죠. 일본 같은 경우에는 아카이브 북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나라는 아카이브가 잘 안 돼 있어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런 책들이 작업물들이고, 포트폴리오인 셈이죠.

 

서강> 따로 판매도 하시는 건가요?

 

> 네 각종 서점에서도 많이 팔아요. 플립북 형태의 <PP(Propaganda Posters)> 제일 많이 팔렸어요.

 

서강> PP북이 반응이 가장 좋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일단 작고 선물하기가 좋잖아요.

 

사진7 | 1970~1980년대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딱지를 수집, 선별해 실은 아카이브 북 <딱지 도감>(2015)

 

사실 제가 어려서부터 수집을 많이 했어요. 딱지들만 모아서 만든 책이 <딱지 도감>(2015)이에요. 딱지만 보여주면 지루하니까, 서울에 있는 옛날 문방구들 찾아가서 화보 촬영도 했어요. <영화 선전 도감>(2016)은 제가 어려서부터 모은 영화 전단지들을 바탕으로 50~60년대 한국에 개봉했던 영화 전단과 함께 영화 도감 형식으로 제작한 아카이브 북이에요. 여기 보시면 <레베카>도 있죠? 지금 봐도 로고 타이틀 디자인이 굉장히 예쁘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작업하는 것도 옛날 작업들을 많이 참고해요. 옛날에 자주 쓰였던 철자법을 보는 것도 재밌어요.

 

사진8 | 1950~1960년대 국내 개봉한 외국 영화의 광고 선전물만 모아 아카이브 북으로 엮은 <영화 선전 도감>(2016) 중 일부.

 

서강> 앞으로도 기획하고 계시는 시리즈가 있나요?

 

> 올해는 서울올림픽과 관련한 자료들을 모아 책을 내려고 합니다.

 

서강> 주로 사라지는 것들의 역사성에 주목하시는 건가요?

 

> , 그런 거 좋아해요.

> 저는 육아에 관심이..(웃음)

> 저도 이것저것 사서 모으는 거 좋아해요. 슈프림에서 나온 빨간 벽돌도 샀어요. 신기하죠? 거기서 신기한 거 많이 만들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사는 편이에요.

서강> 인터뷰를 통해서 봤는데, 의뢰가 들어와서 작업하시기도 하지만 먼저 연락을 드려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하신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 저희가 부산국제영화제 때 매번 부산에 가거든요. 가서 한국 독립영화들을 미리 봐요. 보고, 좋은 거 있으면 먼저 연락을 하는 거죠. 뭔가 선점하려는 (심리도) 있어요. 부산영화제 같은 경우는 하나의 마켓이에요. 외국 바이어들한테 이런 영화가 있다라고 선보이는 자리니까 눈에 띄는 거 뭐라도 하나 만들어가고 싶죠.

> 부산국제영화제를 위해 준비하는 게 2가지에요. 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들은 포스터가 필요하니까 영화사에서 미리 의뢰해서 만드는 경우가 있고요. AFM(Asian Film market)이 있어요. 주로 외국 바이어들을 상대로 1년 동안 만들었던 작품들을 모아 영문으로 만드는 거에요. 그리고 5월 달에는 칸 영화제가 있는데, 칸 마켓도 규모가 커요. 그래서 칸 영화제 나가는 한국 영화들을 영문으로 만드는 작업들을 해요. 그러다가 <악녀><부산행>처럼 우리가 디자인 한 영화가 영화제에 출품이 됐어요. 그러면 영문으로 해야 하는 보도 자료도 제작해야 하고, 홍보도 해야 하는 거고요. 좋은 영화나 비주얼적으로 재밌을 것 같은 영화들이 있다 하면 연락해서 먼저 하고 싶다고 제안을 하는 편이에요. 포스터 디자이너들이 좋은 작품 하고 싶잖아요. 그런데 기다린다고 그런 거 안 들어와요. 하고 싶은 거 찾아서 해야죠.

>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용순>을 봤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서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실장님께 전화를 했어요. “실장님, 이거 딱 우리 영화에요. 너무 좋아요.” 그랬더니 실장님이 그거 하기로 했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작년에는 그랬고, 곧 다음 달에 부산 가니까 또 그런 작품이 생기겠죠.

 

서강> 프로파간다는 대중이 많이 접하는 시각 디자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만큼 대중의 미감이나 안목을 높이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관련하여 지향하시는 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 저희는 한글 타이포 디자인을 새로 만들어서 꾸준히 소개하는 직업 중에 하나잖아요. 이게 되게 트렌디한 작업이거든요. 우리가 한글 타이포에 기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서체의 패키지를 만들고 싶어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알파벳 몇 십 개만 만들면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영화별로 전용 폰트도 있어요. 예를 들면 스타워즈 폰트’, ‘해리포터 폰트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한글은 모든 조합이 몇 만개에요. 영화 전용 서체를 만들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래서 좀 아쉽기는 하죠.

 

서강> 최근에는 VR이나 모바일 등을 통해 포스터를 보지 않고 미리 영화를 접하는 수단도 많아졌는데요. 이러한 영화 산업 시장의 변화에 따라 작업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도 있으신가요?

 

> 환경이 바뀐다 하더라도 포스터는 안 없어질 것 같아요. 그 포스터가 종이에 인쇄가 안 될 경우가 있을 수는 있어도 포스터 자체는 없어지지 않겠죠. 잡지나 책들도 없어진다고 했는데 안 없어졌잖아요. 결국에는 어디에 실릴 때 가장 매력적인가? 의 문제인 것 같아요. 포스터도 종이에 나올 때가 가장 매력적이니까요. (웃음) 요즘 추세가 포스터 인쇄를 잘 안 해요. 디지털 액자를 통해서 틀어주잖아요. 본인들 입장에서는 인쇄비 아낀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디자이너들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부분도 있죠.

> 나중에 멀티플렉스가 다 장악해버리면 없어질 수도 있죠. 그래도 인쇄가 없어지는 거지, 포스터 작업은 계속될 것 같아요. 디자이너들이 제일 안타까울 때가 본인이 디자인 한 것이 종이에 인쇄 될 수 없을 때, 그때가 가장 마음 아픈 거예요. 그러니까 데이터로만 있으면 언젠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꼭 종이 위에 올라가야 해요. 그게 역사와 아카이브가 중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 근데 우리가 일하면서 되게 안타까운 건 우리는 멀리 내다보고 10, 20년 후에도 기억에 남는 포스터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클라이언트들은 그런 사람이 많이 없어요. 그냥 이 시즌에 흥행만 하면 되는 거예요. “겨울에 개봉 할 거니까 따뜻하게 해주세요.”라고 하죠. 이해는 해요. 그분들은 마케터고 장사를 하셔야 하는 분들이니까, 그런데 그게 너무 부딪힐 경우에는 포스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죠. 추석 때 개봉한다고 (배우들이) 한복 입은 거 찍고요.

 

서강> 다른 회사와의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고민해 보신 적도 있나요?

 

> 사석에서 플레인아카이브, 피그말리온과 전시회 한 번 해볼까?” 이런 말들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사실 바빠서 못해요. 딱 누가 진행해서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그나마 미니 아카이북 같은 경우 unlimited edition이라는 마감일이 있어서 할 수 있었지, 마감일이 없으면 못 했어요. 그런데 이런 걸로 전시회를 열면 사람들이 많이 올까요?

 

서강> , 되게 예쁘잖아요.

 

> 봤던 건데도 그럴까요?

 

서강> 그럼요. 모나리자도 봤던 것이지만 또 보잖아요.

 

> 와 되게 적절한 비유네요.

 

서강> 포스터가 어떤 영화인지 정보를 알려주기도 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프로파간다의 포스터 작업은 그 시대의 문화를 떠올리는 지표가 되는 것 같아요. 세 분이 생각하시는 좋은 영화 포스터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무조건 예뻐야죠. 아니 예쁘다기보다는 매력적이여야 하죠. 그 영화가 보고 싶게끔 만들어줘야죠. 갖고 싶게 만들어야죠. 훔쳐가고 싶은, 그래서 방에 붙이고 싶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영화 포스터를 많이 모았어요. 초등학교 때도 맨날 극장가서 새벽에 포스터 뜯어 오고 그랬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우리가 만든 포스터 뜯어갔으면 좋겠어요.

>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포스터. 10년이 지나도 괜찮다라고 할 수 있는 포스터가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장르마다 다른 것 같아요. 뜯어가고 싶은 포스터라 하면 모든 장르가 그렇지는 않잖아요. 예를 들어 누가 공포영화 포스터를 뜯어가지는 않잖아요. (웃음) 공포영화 포스터처럼 뜯어가고 싶지는 않아도, “, 이 포스터 되게 괜찮다!”라고 말 할 수 있는 포스터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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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7.10.18 11:01

정재원 기자 agnes1026@sogang.ac.kr

 

너희들은 다시 이 광장에 나오지 않길 바랐어.”

나는 지난겨울 광장에서 J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J와 나는 오래전부터 같이 공부를 하던 사이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 난해한 철학책을 읽어보겠다고 덤볐고, 책을 사이에 둔 우리는 책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깊고 오랫동안 하게 됐다. 우리는 서로 지난 과거사, 가정사 등을 길게 펼쳐놓았고, J가 그녀 어머니의 이야기를 전한 것도 그 무렵이다. 내가 J로부터 전해 들은 그녀의 어머니는 과거 5.18 광주민주항쟁 때 그 중심인 전남대에서 가장 열심히, 선두에서 서서 민주화 운동을 하시던 분이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는 계속 최전방에서 그녀가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운동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50대 중반, 약간은 희끗한 머리에 웃음 자욱이 옅게 남은 얼굴의 그녀는 광장을 채운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J,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과 J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우리는 광화문을 빼곡히 채운 인파를 겨우 헤치며 광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말을 꺼냈다. 본인도 대학 다닐 때 함께 책 읽으며 공부했던 친구들과 지금까지 가장 친하다는 말, 너희들은 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 그래서 과거에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이 그렇게 열심히 싸웠다는 말을 남겼다.





사진 1 | 201611월의 광화문 광장

너희들은 다시 이 광장에 나오지 않기 바랐어.”

그녀는 그녀 자신에 이어 자신의 자식들까지 불의와 싸우지 않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민주화 운동에 바쳤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이상한 생경함을 느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나에게 새로운 역사가 아니다. 이미 교과서를 통해, 수많은 책들을 통해, 그 시대를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랫동안 접해온, 친숙할 수밖에 없는 역사이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전해 듣는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이상하리만치 생경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있는 내가 아닌데, 왜 유독 그날 그녀에게서 들은 그 과거는 그토록 새롭게 다가왔을까. 나는 이제까지 여성의 입으로 재현되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역사는 386 서울 명문대 남성들에 의해 쓰였고, 여전히 50대 남성들의 영역이다.

 

반쪽의 공감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활약은 눈부시다. 출간 7개월 만에 판매 부수 10만 부를 찍으며 상반기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82년생 김지영>‘82년에 태어나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육아 우울증을 겪고 있는김지영의 이야기이다. 동시에 요즘을 살고 있는 대다수 여성의 이야기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선풍적 인기는 아마도 김지영의 삶에서 자신의 삶을 보는듯한 기시감을 느끼는 여성들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연극으로 각색되기도 하고, 영화화가 진행 중이기도 하며, <SBS 스페셜>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세상의 절반 이야기편은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의 삶을 모았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텔레비전 속에 모인 삶들 속에서 또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아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던 날, 나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던 우리 엄마처럼.

사진 2 | <SBS스페셜> “82년생 김지영 세상의 절반 이야기예고편 중

82년생 지영씨 중 한 명은 어린 남자아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낳으며 하던 일을 잠시 그만뒀다가,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시간 맞춰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는 회사에서부터 집까지 구두를 신고 전력 질주를 한다. 양손에는 서류와 노트북을 한 아름 안고,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을 때는 발을 구르며 시계를 확인한다. 62년생인 우리 엄마는 82년생 지영씨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기 자신도 아이들 키울 때, 뛰어다니는 습관이 생겼다면서, 그때 구두를 신고 뛰다 넘어져 생긴 오래된 상처들을 되짚는다. 62년생 우리 엄마와 82년생 지영씨 사이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사실이 슬펐다. 두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20년의 세월 동안, 여성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아니 변화하긴 했는지 생각하니 조금은 아득해지기도 했다.

동시에 나는 나 자신이 <82년생 김지영>에 반쪽짜리 공감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서툰 공감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며, 오래 생각했다. 여성주의 학자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학생이든 아니든 젊은 여성들은 이 남성 지배적 사회에서 가장 대우받은 집단이다. 우리는 여성들을 급진화시키는 인생의 쓴맛을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임금노동자가 되어 여성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알고, 결혼이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아이들을 키우며 혼자서 책임을 도맡고, 아직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큰 짐으로 다가오는 노년의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젊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현상을 지적한다. 나 역시 이런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는지, 소설 속 지영이 임신 상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을 비꼬는 여대생의 모습이 내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는지 의심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반쪽짜리 공감의 이유는 아마도, 내가 엄마라는 정체성을 겪어보지 못했으며 동시에 나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 엄마, 그리고 딸로 정체화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내 삶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공부하는 연구자로 정체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혁명가의 엄마, 아내 혹은 딸

 

여성주의 학자 전희경은 그의 저서 <오빠는 필요 없다>에서 876월 민주항쟁 이후, 90년대 사회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한다. 전희경은 90학번에서 96학번, 열여섯 명의 여성 활동가를 심층 면접 방식으로 만나 사회운동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전희경은 책의 도입부에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사회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 계기를 묻는데 그 대답이 매우 인상적이다. 다수의 여성 활동가들이 그 이유를 재미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회에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전희경은 이러한 동기에 주목하여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것의 의미를 짚어낸다. 전희경은 문승숙을 인용하며,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많은 시민이 집단적 열기가 넘치는 대규모 집회나 행진에 직접 참여하면서 이전까지 노동자, 주부, 회사원, 학생이던 개인들이 시민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 집회에 참여하는 경험은 국가의 동원 대상에서 권리를 지닌 주체로 변화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성들의 사회운동 참여도 해석할 수 있는데, 집회의 참여는 여성들에게 그들이 사적인 장에 유폐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공적 주체가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여성들 자신이 어머니, 주부, 딸이라는 사적 영역에 속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국가와 관계 맺는 시민이 된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주체성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진흙탕 싸움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운동 참여는 보다 다층적인 의미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전희경의 책에서 이어지듯, 여성들이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상대는 독재 정권, 혹은 비민주, 민족주의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그것들에 더해 가부장제와도 싸워야만 했다. 더군다나 가부장제는 독재정권과 다르게 선명한 을 상정할 수 없게 한다. 가부장제는 여성으로 하여금 의 피아 구분이 불가능한 진흙탕 싸움, 더 무겁고 어려운 싸움으로 이끌었다. 남성적, 가부장적 사회운동 영역 안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여성들의 인정욕구는 자신의 여성성을 본인 스스로 적극 부정하게 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자신이 다른 여성의 적이 되게 하기도 했다. 또한, 모두가 존경하는 남성 선배가 다른 의미에서 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인권, 민주주의, 인간해방 등의 대의를 말하는 사회운동의 영역에 속해 도리어 가부장제의 질서에 의해 억압되어 대의와 자신의 삶 사이의 괴리를 겪어야만 했다. 여성이 주류 사회 운동 속에서 정치적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 남성 권력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아주 깊게 개입했고, 그 권력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부장제 사회운동의 구도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혁명가, 투사들의 상처를 안아주거나, 옥바라지를 해주는 어머니, 아내의 역할에 국한되었다. 여성들은 혁명가의 자리에 서기보다는, 혁명가의 아내, 혁명의 보조자 역할에 가둬졌다. 전희경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 분업은 단순한 역할 분담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별 분업은 공적 주체로서의 남성을 기준으로 하여 남성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비가시화된 노동으로서 보살핌과 가사노동이라는 여성적 노동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위계적 체제라는 것이다. 즉 여성의 노동은 남성이 존재할 때만 의미가 있게 되며, 여성은 노동하면 할수록 평가 절하되는 구조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너라는 거울

 

전희경은 여성주의 문화연구나 방법론 연구에서 서사를 일련의 경험에 대한 선택과 배제를 통해 과거를 특정한 방식으로 배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구성적이며 힘의 구조라는 것을 밝혀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과거의 구성은 현재 힘의 구조에 의해 이루어지고, 따라서 과거는 정치적 관심에 따라 계속해서 다시 쓰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건 현재를 살았던 여성들은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절반의 여성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명숙 제주 올레 이사장은 최근 <영초언니>라는 자전적 에시이집을 발간했다. 서명숙은 대학 시절 함께 자취하던 천영초를 사회적 모순에 눈을 뜨게 해준 사회적 스승이었다고 회고한다. 서명숙에 따르면 천영초는 1970년대 고려대 운동권의 상징적 인물이며, 고려대 역사상 가장 큰 집회를 이끈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가장 앞장선 인물이고, 여성들의 학습운동조직을 이끈 인물이다. 서명숙은 지금 많은 남성 정치인들이 소위 운동권 팔이를 하며 먹고 살지만, 영초언니는 완벽하게 잊혔다는 것이 슬퍼 영초언니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한다.

사진 3 | 허정숙·주세죽·고명자(왼쪽부터) [한겨레출판 제공]

영초언니의 시간에서 조금 더 과거로 올라가면, 조선희 전 씨네 21 편집장이 최근 출간한 소설 <세 여자>의 주세숙, 허정숙, 고명자를 만날 수 있다. 소설 <세 여자>는 일제 강점기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세 여자의 삶을 다룬다. 주세숙은 남로당 총책 박헌영의 부인이었고, 허정숙은 나중에 북한 정권의 사법상과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으며, 고명자는 박헌영의 동지인 공산주의 활동가 김단야의 연인이었다. 소설 <세 여자>는 철저한 고증과 상상력을 교차시켜, 세 여자가 역사를 통과하는 과정 그리고 역사 속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희는 1925년 고명자, 주세숙, 허정숙 세 여자가 단발머리를 하고 청계천으로 짐작되는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진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전한다. 아마도 조선희는 단발머리에 맨발로 바로 선 신여성들을 보며 그들을 역사 속에서 복원해 당당히 위치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을는지도 모른다. 이 사진은 책 표지로 사용되었다.

역사 속에서 영웅적인 역할을 한 여성들의 삶을 복원한 <영초언니>, <세 여자>와 달리 여성주의학자 김은하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자괴감에 사로잡힌 활동가들이 자전적으로 적어낸 후일담 소설을 분석했다. 특히 김은하는 후일담 소설이 주로 남성 작가의 서사로 구성되었음을 지적하며, 학생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여성 작가들의 자기 고백을 분석하고 그 존재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김은하에 따르면 후일담 소설은 80년대 혁명 세대들의 치욕적 현존에 관한 자기 고백적 보고서로서, 90년대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와 수적으로도 상당할 뿐 아니라, 장르문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일정한 관습을 공유한다. 386세대의 후일담 소설이라 하면, 김영하, 김영현, 김소진 등 남성 작가들이 주로 언급되는데, 이는 386세대의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이 청년-남성 지식인 주도의 변혁운동으로 기억되어 왔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은하는 여성 386세대가 자전적으로 기록한 후일담 소설은 혁명이 좌절된 뒤 비로소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별에 눈뜬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소환의 형식이 되면서 성별화된 기억의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 여성 386 세대는 고백적, 체험적인 젠더 서사를 보여줌으로써, 지난 날의 자신을 반추하며 현재의 좌절한 자기를 응시하는 후일담의 글쓰기가 여성의 젠더 체험과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잊혀졌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대한 망각’, 바꿔 말하면 선택적 기억은 여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여성들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세상의 일과 의무의 절반을 수행했고, 역사에서 능동적인 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인류 발전 과정에서 단지 주변적인공헌만을 한 존재들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남성 역사가들이 가부장적 가치들을 근거로 해서 내린 선택적 기억입니다. 여성들은 항상 역사 속에서 살았고, 역사 속에서 활동했으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여성사는 잃어버린 절반을 재구성하고 여성들을 능동적인 동인으로 사건의 중심부에 위치시키는 임무를 떠맡았습니다.

거다 러너(Gerda Lerner), <왜 여성사인가>, 149

거다 러너는 뒤이어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지워진 소수자들이 여성 뿐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 역사에서 지워진 소수자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적었다. 왜 여성사인가를 묻는 질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역사 속에서 세상의 절반을 복원하는 일이며 동시에 권력에 의해 기억하기를 선택받지 못한 소수자들의 역사 역시 복원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겨울 <문라이트>라는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 남을 해프닝 이후 돌아간 상이기에, 그 해프닝이 수상 소감보다 더 주목 받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흑인이면서 성소수자인 주인공 샤이론의 삶을 고요하게 따라간 영화 <문라이트>의 감독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크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비추는 거울 따위는 이 세상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 우리는 당신을 우리를 더 많이 보여지도록 할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 상은 당신을 위한 거에요.”

내가 나 자신으로 정체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이라는 거울이 필요하다. 미디어든 역사에서든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만나보지 못한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 당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기에 한 명의 시민이 되고 싶은 여성들에게도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사의 분기점에서 한 명의 시민, 한 명의 혁명가 자리에 섰던 여성의 삶은 그들에게 거울이 되기도, 위로가 되기도 할 것이다.

62년생 우리 엄마와 82년생 지영씨 사이에 깊은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사실 슬픈 일이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을 사이에 두고도 서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두 세대 사이에 슬픈 공감대 위에 문제의식이 생겨나고, 그 공감의 고리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끊기 위해 우리 사회가, 우리 모두가 공들여 노력해야 한다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상상력을 싹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태어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궁금하고, 내가 속한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상을 공부하고 싶고, 또 그 속에서 내 두 발로 설 자리를 찾는 나는, 나의 거울을 찾아 켜켜이 먼지 덮인 역사 속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여성들을 찾았다. 그리고 나는 나 이전의 많은 여성들이 나와 같은 작업을 오랜 시간 해오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들을 거울삼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2017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이런 나에게 공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들을 비추는 맑은 거울이 사방에 즐비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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