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고

[160호] 문이과 통합, 그 이후 수학의 변화

유보경 (수학학원 종사자)

 

  “수학”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어려웠지만 대학을 위해 포기할 수 없던 과목,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던 과목, 혹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본 적 없는 과목… 

 

  이 질문을 듣기 전까지 독자 분들의 절반 이상은 수학을 까마득한 기억 뒷편에 넣어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호불호 강한 수학 과목이 요즘 학교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대입 수학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변화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필자는 현재 강서구 소재의 수학학원에서 강사 겸 부원장으로 근무하며, 학생들과 함께 입시 최전방에 있습니다. 수능 수학영역 은 A형/B형으로 분류되었다가 다시 가형/나형으로 분류되며 다양하게 변해왔고, 특히 2015 개정교육과정은 문/이과 통합을 필두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 문/이과 통합 첫 해, 과목 선택권을 갖게 된 학생들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문/이과 통합학제가 시작되면서, 2020년 당시 고2 학생들은 처음으로 과목 선택권을 갖게 되 었습니다. 학생들이 가져온 과목 신청서에는 수학 뿐만 아니라 영 어, 국어, 탐구 선택 과목들까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처음 엔 대학생처럼 본인이 고른 과목을 학습할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목에 대한 이해도가 부 족한 상태에서 1년 간 배울 과목을 정해야 한다는 부담과 혼란은 불가피했습니다. [경제수학], [수학과제탐구], [실용 수학] 등  선 과목의 경우에는, 과목명으로 배울 내용을 유추하여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고민이 무색하게, 일부 진로 선택 과목의 학습내용은 과목명과 차이가 컸습니다. 함께 공부했던 양천구의 7개 고등학교와 강서구의 6개 고등학교를 통틀어 13개의 학교 중 2개의 학교를 제외하고는, 진로 선택과목인 [수학과제탐구] 시간에 수1·수2 수능특강을 풀 습니다. 다른 두 학교 역시 수능특강을 풀기는 하였으나, 수학자를 소개하거나 수학 관련 서적 독후감 쓰기, 수학 문제를 이용한 방탈출 게임 만들기 등의 수업이 병행되었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수1·수2 수능특강 문제풀이가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본인이 관심 있는 수학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탐구하며 수학탐구능력을 기르게 한다는 진로선택과목으로써의 취지는 대부분 지키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선택과목을 고른지 3년째 되는 올해, [경제수학]을 제외한 진로선택과목에서는 수능대비 문제풀이가 진행된다는 점을 미리 공지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2. 문과 학생들을 울리는 문/이과 단일형 시험지

 

  필자가 양천구 소재의 학원에서 수업하던 때에, 학생들이 소속된 7개의 학교 중 3곳은 수학 과목에서 수준별 수업을(이하 상·중· 하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하여, 상반에는 대부분 이과 학생들이 배정되었고, 하반으로 갈수록 문과 학생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상반은 모의고사 4점 난이도의 심화 문제를, 하반은 교과서 속 기본 개념 문제만 다룰 정도로 학습 난이도 차이가 굉장히 컸지만, 이과 학생들은 구분할 변별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험은 어려운 난이도의 단일형으로 출제되었습니다. 

 

  수준별 수업을 하지 않는 학교들은 수업의 편의를 위해 수학 선택 과목이 같은 학생들을 같은 반으로 분류했습니다. 문과 학생들은 대부분 [확률과 통계(이하 확통)], 이과 학생들은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문과/이과 구분은 없어졌 으나 문과반/ 이과반이라는 비공식적 구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학습 과정은 문/이과가 나뉘어졌던 과거와 유사한 반면, 상대평 가인 시험은 단일형으로 통합되면서 문과생들의 수학 내신 등급이 낮아지고, 이과생들의 등급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진학사 DB 분석 결과, 문/이과 통합 학제가 시작된 이후 두 계열 간의 내신 등급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은 단연 수학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단일형 수학 시험지로 문과생들의 내신등급은 떨어졌지만, 대입에서는 교차지원이 자유로운 이과생들과 겨루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3. 미적분&기하 선택율 증가와 신중함 필요

 

  수능 수학영역에 선택과목 도입이 확정된 날부터, 과목 간의 유불리 문제는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수학영역 30문제 중, 공통문항 22문제는 고2 과정인 [수1,수2]에서 출제되며, 나머지 8 문제는 [확통], [미적분], [기하] 중 학생이 선택한 한 과목에서 출제됩니다. 작년 3월 모의고사에서 [확통]을 선택한 학생은 수험생의 60.5%,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한 학생은 39.5%였습니다. 문/이과 비율이 약 7:3이었던 이전과 비교하면 이과 수학(미적분,기하)을 선택한 학생이 대폭 증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하는 것이 표준점수 획득에 유리하다는 과목간 유불리 논란으로 [미적분]과 [기하] 선택률은 점점 증가했고, 2022학년도 수능에서 [미적분]과 [기하] 선택률은 48.3%라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학생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수능 수학 1등급의 94.4%가 [미적분]또는 [기하] 선택자라는 발표였습니다. 이 비율을 보고 [확통] 선택을 주저하는 학생들이 지금도 꽤나 많습니다. 94.4%는 분명 놀랄 정도로 높은 비율입니다. 하지만, 1등급의 이유를 선택과목에 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입니다. [미적분] 또는 [기하]를 선택해서 1등급이 나온 것이 아니라, 공통 문항인 22문항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들의 이과 수학 선택비율이 높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과목간 유불리는 동일한 점수 를 받았을 때에 [미적분]과 [기하]가 더 높은 표준점수로 환산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최상위 문과 학생들의 경우, 정시에서 수학 반영 비율이 높은 것을 고려하여 [미적분]을 응시하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미적분]과 [확통]의 학습량과 난이도를 비교했을 때, [미적분]에서 동일한 점수를 얻으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능 수학영역의 73%는 공통문항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여론에 휩쓸리기보다는 자신이 더 잘 볼 수 있는 선택 과목을 빠르게 정한 후, 공통출제 범위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 수학은 대입에서 가장 큰 무기

 

  문/이과 통합과 단일형 수학 시험은 대학 진학에 있어 수학을 잘 하는 학생에게 철저히 유리합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인문계 모집에서도 수학 반영비율을 매우 높게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2학년도 수능 정시모집에서 서울대는 인문&자연계열 모두 수학 반영률을 40%로 제시했고, 연대 33.3%, 고대 36.4%, 서강대 43.4%, 성균관대 40%로 상위 5개 대학의 수학 반영률 평균은 38%에 다다릅니다. 

 

  2022학년도 대입모집은 이 점을 이용한 자연계 학생들의 교차지원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울대 인문계열 지원자의 25%가 자연계 학생이었을 정도로, 이과학생들이 인문계 상위권 대학으로 대거 교차지원을 한 것입니다. 우선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한 후에, 원하는 전공으로 복수 전공이나 전과를 하겠다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습 니다. 기계공학을 공부하고 싶다던 학생이 상위권 대학 진학을 위해 원했던 전공을 뒷전에 두고, 영문학과로 진학하는 등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이 전략이 통한다는 것은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올해 3월 초에 발표된 ‘학생부 종합전형 공통 평가요소 및 항목 개선 연구’에 따라, 2024학년도 대학입시부터는 평가요소였던 “전공적합성”이 “진로 역량”으로 변경됩니다. 희망 전공의 맞춤형 학습을 했는지 평가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진로 탐색 활동과 경험을 중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의 인문 계열 지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변화로 느껴집니다. 

 

  문/이과 통합형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던 15 교육과정개정안은 수학을 대입에서 가장 큰 무기로 만들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문/이 과 구분이 사라진 현재, 계열별 유불리를 따지기보다는 수학 실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위 이과 학생들의 문과 침공이 있기는 해도, 인문계열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다수는 여전히 [확통] 선택자이며, 수학을 잘하는 인문계열 지원자는 큰 점수적 이점을 갖게 됩니다. 수학이라는 매력적인 과목이 문과생의 약점, 혹은 이과생의 무기로 치부되기보다는 문/이과 통합형 인재 양성의 첫 관문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