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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0호] 교사는 수업만 하는 사람일까?

서강대학교 미국문화 & 교육문화 졸업생, 고등학교 교사  손  현  지

 

학창 시절 내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수업 시간이 되면 교실에 들어와 수업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쉬이 흘려들었던 수업을 준비하기까지 얼마의 시간과 노력을 쏟았는지, 그 외 학교 경영을 위해 어떤 업무를 추가로 하는지 상상해본 적 없었다

교생 실습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맡은 업무는 수업이 전부였고, 수업 준비만으로도 매우 벅찼기 때문에 다른 일은 생각할 수 없었다. 수업이 교직 생활의 전부일 거라 단정했다. 학생들을 위해 온종일 수업을 준비하고 1차시, 2차시, 3차시 반복되는 똑같은 수업을 끝내면 오늘도 무탈하게 일과를 마쳤다며 안도했다.

 

행정업무의 무게

               학교에 처음 출근했을 때, 나는 '학생부'에 배정받아 '동아리 및 교내축제 총괄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교직 선배들에게 물어본 결과 많은 선생님이 꺼리는 업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200명이 넘는 전교생의 학생들 및 60명 남짓 되는 선생님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3월 학기 초 신입생들의 동아리 신청 기간이 되면 나는 온라인 신청 플랫폼을 마련했고, 신청 당일 밤 열한시가 넘어서 “신청이 안 돼요”, “어디서 신청하는 거예요?”, “제가 신청하고 싶은 동아리가 마감됐다고 뜨는데 그렇다면 저는 이 동아리에 가입할 수 없는 건가요?”와 같은 학생들의 불만 섞인 쪽지를 받았다. 학생들에게 일일이 대답해주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출근하면 선생님들께 전체 쪽지를 돌렸다. 전학생 동아리 등록, 동아리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 동아리 활동 일자 입력 등 수많은 이유로 전체 쪽지를 보내야 했다. 쪽지를 보내면 내 책상 위 전화기는 불이 나도록 울렸다. "뭐를 하 라고요?", "나 컴퓨터에 이게 안 뜨는데, 000 선생님께 전화해서 알아봐 줄 수 있어요?", "그때까지는 어려울 것 같은데, 급한 업무인가요?"와 같은 선생님들의 쪽지가 쇄도했다. 모든 쪽지에 답을 한 후에는 선생님들이 내가 '시킨 일'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축제 기간에는 야근을 하며 학생회 소속 학생들과 교내 축제를 준비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전례 없이 온라인으로 축제를 진행하게 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니, 인수인계도 당연히 받지 못했다. 나는 학생회 학생들과 머리를 싸매며 축제가 망하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수업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를 하다가 수업이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서 학생이 교무실로 나를 찾으러 온 적도 더러 있었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지 이런 업무에 쫓겨 수업은 하나의 소일거리로 여기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했다. 교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수업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축제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고, 모든 업무가 그렇겠지만 끝나고 나니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되면서 괜히 보람차고 뿌듯해졌다. 

시험 기간

               학창 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있는가? 정기고사 시험지는 시험 기간 한달 전부터 교과 선생님들이 피땀을 흘려 만드는 작업물이다. 아직 시험 범위 진도를 다 나가지도 못한 상황이어도 시험 문제는 미리 내야 한다. 그래야지만 적어도 몇 번, 많게는 열 댓번의 검토 과정을 거쳐 오타도 오류도 없는 완벽한 시험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 업무에 시험 문제 출제, 수업까지 병행하다 보면 학교에 있는 8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게, 눈 감았다 뜨면 퇴근 시간이 되었다. 사소한 실수로 민원이 들어오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기에 학교에 남아 눈이 빠져라 시험지를 검토했다.

               문제 출제뿐 아니라 편집까지 교사의 몫이다. 동교과 선생님들과 돌아가며 편집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편집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엄격히 정해진 틀에 맞춰 편집해야 한다. 일례로, 한 문제가 잘려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경우는 없어야 하고, 1번부터 5번까지의 보기는 짧은 것에서 긴 순으로 위치시켜야 하므로 수정 과정에서 보기의 내용이 바뀔 때마다 보기의 순서 또한 바꿔야 하는 번거로운 일도 생기는 것이다. 글꼴과 글씨 크기, 장평, 자간까지 모두 정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새벽까지 편집한 시험지의 분철날이 되면 썩 뿌듯하다. 수업을 하다가 혹여 학생들에게 시험 문제에 대한 단서가 흘러나가지 않게 조심하고, 행정업무는 평소대로 진행하며, 몇 날 며칠 동안 밤늦은 시간까지 공들여서 완성한 시험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모든 원안지를 보관하고 있다.

             시험이 끝나면 채점이 시작된다. 서술형 문제의 경우 복수 정답이 무수히 나오기 때문에 주로 동교과 선생님들이 다시 한번 모여서 채점 기준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진다. 학생들의 답안이 지나치게 창의적이면 며칠 동안 논의하는 때도 더러 있다. 몇백 명은 되는 학생들의 시험지 채점을 마감 기한 내에 마쳐야 하는 와중에도 행정업무와 수업, 생활기록부 작성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

 

 

현실은 이상과 달랐지만, 이 모든 경험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고, 발전시켰다. 교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고 바쁜 직업이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대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교직의 현실은 때론 벅찼고 때론 눈물 나게 즐거웠다. 교직에 대한 목표를 추구하고 수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교사가 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

수업과 업무에 치여 살다 한숨을 돌린 이제서야 곰곰이 생각해보면 드는 생각은, 교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전공 교과 지식뿐 아니라 학교 내 전반적인 시스템과 업무에 대해서도 미리 배우고 체험해볼 기회가 제공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전공만 열심히 공부하고 수업만 열심히 준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생전 처음 해보는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면 누구나 적잖이 당황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교직의 현실이 상상했던 것과 달라 실망하고 등을 돌리게 되는 일을 겪지 않기를 바라며, 교직의 꿈을 꾸는 청년들에게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수업 자질 외에도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지 미리 배우고 경험해볼 기회가 많이 제공되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