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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57호] 지구는 생명의 '공동의 집' 본문
장지혜(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불이야!”
집에 불이 난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불을 끄기 위해 고군분투할 것이고 누군가는 도망가기에 급급할 것이다. 어쩌면 그냥 손 놓고 지켜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집을 지구라고 생각해보자. 지구는 인간과 생명이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공동의 집이다.
집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를 떠올릴 수 있다. 한때 인터넷 상에서 떠돌던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은 직장인 및 학생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으며 장기간 집을 떠나면서 느끼는 노스텔지어적 의미에서 나아가 ‘이미 집에 있지만 더 격렬하게 집에 가고 싶다’는 ‘집에 가고 싶다 증후군(Homesickness syndrome)’으로까지 회자되어 웃음을 자아냈다.
사전적 의미의 집 또한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으로 정의한다. 즉, 집은 의, 식과 함께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우리가 가고 싶은 곳,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의 속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집다운 집에 살고 있는가?
54일이라는 유례없는 장마, 연이은 태풍과 한파, 폭설, 그리고 코로나 19라는 신종바이러스의 출몰까지 작년 한 해만 하여도 우리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재해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긴 장마로 발생한 산사태, 침수 피해나 농사의 어려움, 더위 혹은 추위를 이기지 못한 죽음. 반지하 혹은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은 침수, 곰팡이, 피부질환 같은 다양한 주거문제와 질환을 겪고 계속해서 더 살기 힘든 상황에 노출될 뿐이다. 분명 집이 우리를 지켜 줄 것 같았는데, 어림도 없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원주민, 유색 인종, 저소득 공동체, 해수면 상승 등 기후 영향으로 식량과 물 접근성이 부족한 국가,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의 최전선에 놓인 섬나라도 많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는 모두가 똑같이 직면한 문제이지만 지역이나 국가, 소득, 연령에 따라 그 영향이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기후불평등은 세대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점점 더 빠른 주기로 심화된 형태로 다가올 텐데, 현재의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는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지금과 아주 다른 형태일 것이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만 봐도 우리에게는 많은 위협이 예상되고 있다.
2019년,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결석 시위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각국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기후위기비상행동이 결성되고 각기 활동하던 단체들이 모여 함께 논하고 행동하고 연대하고 있다. 기성세대보다 미래를 살아갈 세대들에게 기후변화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기에, 이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적어도 기후위기 때문에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것이 절망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활동가들은 연행을 무릅쓰고 더욱 절실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는 더 이상 다가오는 미래의 위기가 아닌 이미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이다. 지금 지구에서는 불이 나고 있다. 불은 한 번 나면 점점 커지고 걷잡을 수도 없으며 원래의 상태로 복원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경제 성장과 효율성만을 바라보는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고 내가 살기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뜸하다.
누군가 환경문제에 왜 관심을 갖는지를 물어본다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의 공간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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