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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57호] 차원이 다른 경험의 무대, 메타버스 본문
차원이 다른 경험의 무대, 메타버스
이 동 은 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
최근 들어 나는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방문하고 있다. 이유인즉슨 메타버스 시대를 맞이하여 전국 도처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과 더불어 발달하게 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시 안내 시스템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원격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람객의 각종 데이터를 축적하여 의미 있는 활용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한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실감미디어 콘텐츠로 재탄생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장품들을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하여 아카이빙하려는 계획도 실행 중이다. 물성이 강조되어왔던 미술 작품이나 전시품들도 이제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저장될 태세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변화의 길목을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함께 지원하고 있다.
이런 시도를 하고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 전부를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이들 중 몇 군데를 방문하고 담당자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지금까지 잘 유지해오던 박물관과 미술관을 왜 지금, 디지털화하려는 것일까? 이런 시도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과연 그런 변화가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하물며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하는 관람객의 요구가 반영된 것인가? 단순하게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는 답은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이런 변화와 질문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만 해당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육, 도시, 쇼핑,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물론이고, 금융이나 일반 기업들까지 모두 자신들의 일부 혹은 전체를 디지털화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디지털 가상세계로 현실의 것들을 이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사실상 이미 초중고를 비롯한 수많은 대학 교육은 온라인에서 진행 중이다. 그것이 줌(zoom)과 같은 실시간 쌍방향의 수업 형태이든 아니면 녹화 동영상을 시청하는 인터넷 강의의 형태이든 말이다. 대면이 필수적인 요소 중의 하나였던 연극과 뮤지컬, 공연들 역시 온택트로 진행 중이다.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와 같은 글로벌한 가수의 대형 공연뿐 아니라 극단 고래의 <10년 동안에>와 같은 작은 공연들까지도 ‘구르미’와 같은 실시간 화상통신 기술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재탄생되고 있다. 기업에서도 온택트 근무가 한창이다. 그야말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메타버스(metaverse)의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하지만 또다시 생각해보자. 이런 변화는 정말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 것일까? 이런 변화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진짜는 무엇인가?
디지털 트윈 기술이나 메타버스의 개념은 사실 새롭게 등장한 개념은 아니다. 물론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문명의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하는 비대면, 비접촉 방식의 시대로 전환하게 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코로나 19 이전과는 너무나도 비교되는 빠른 속도로, 그리고 적극적인 태도로 이 기술들을 도입하고 구체화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야말로 SF 소설과 영화 속에서 만나던 미래의 모습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온택트를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기술들은 코로나 19의 문제적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갑자기 등장한 개념들은 아니다.
디지털 트윈 기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위키백과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에서 주창한 개념이라고 한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의 공간에 현실의 그것과 동일한 사물, 혹은 세계를 그대로 만들어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을 미리 테스트해보는 기술이다. 사용자들의 다양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여러 상황에 대한 모의적으로 실험해 봄으로써 실제 상황을 예견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야말로 실제의 상황을 간소화하거나 부분적으로 모형화하여 실험하고 테스트해보는 기존의 시뮬레이션 성격을 이어받았다.
반면 현실 세계를 디지털 세계에서 확장시키는 개념인 메타버스는 문학에서부터 등장한 개념이다. 1992년 닐 스티븐슨은 <스노 크래시>라는 소설 속에서 이 개념을 처음 등장시켰다. 이 책은 현실 세계에서는 임대창고에 살고 있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비싼 집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공 히로가 제한된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블랙선으로 가다가 낯선 사내에게 스노 크래쉬를 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2006년도에는 미국 미래 가속화 연구재단(ASP: 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에서 ‘제 1회 메타버스 로드맵 Summit’을 개최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다양한 가상세계 기술들과 그 활용 사례들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디지털 기술은 기술중심주의의 사고가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적인 측면에서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봐야 한다는 논의가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도 2000년대 초반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새롭게 등장한 세계가 바로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이다. 나는 <세컨드라이프>를 우리 현실 세계에 등장한 최초의 메타버스 세계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2021년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주목하는 메타버스의 미래를 잘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컨드라이프>의 경험을 면밀히 되짚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2007년 당시 약 2년 반 동안 <세컨드라이프>를 한국에서 어떻게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주도했던 사람으로서 말이다.
<세컨드라이프>는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영향을 받아 2004년에 출시한 온라인 가상세계이다. 일반적인 디지털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을 하라’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세계라는 점이다. 원래 게임은 ‘공주를 구하라’거나 ‘악당을 물리쳐라’라는 식의 미션 중심의 목적 지향적인 세계이다. 하지만 <세컨드라이프>는 목적이 없는 생활형 가상세계로 출발했다. 사용자들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수많은 일들을 모두 <세컨드라이프>에서 그대로 할 수 있었다. 집을 짓고, 친구를 사귀고, 함께 영화도 보고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IBM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세컨드라이프>에 둥지를 틀고 전 세계 신입사원 교육을 시작했다. 대학들은 가상의 대학을 건설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미국의 조지아 미술관과 캘리포니아의 Tech Museum 역시 <세컨드라이프> 내에 가상뮤지엄을 건립했다.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차세대 디지털 유통망으로서의 가상세계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서 말이다. 다른 사용자가 꾸며놓은 지역을 방문해서 구경하는 것은 그야말로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였다. 현실이 사용자의 First Life라면 이 세계는 사용자들의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실험해보고 살아갈 수 있는 Second Life의 세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분홍빛 미래를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컨드라이프>는 몇 년 안에 자취를 감췄다. 원인에 대한 수많은 분석들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 실패의 원인을 ‘차원이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지 못했음에서 찾는다. 무슨 말일까. 사람들은 처음 가상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그 세계의 새로움으로 흥미를 느끼고, 낯설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종의 스펙터클을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스펙터클은 영원하지 않다. 익숙해지면 이내 사라지는 것이 스펙터클이다. 현실의 미술관을 꼭 닮은 쌍둥이 미술관을 가상의 공간에 만든다고 생각해보자. 일종의 디지털 트윈이다. 그 디테일함에 사용자들은 놀라겠지만 이내 시들해진다.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경험의 층위를 디지털 트윈의 세계, 혹은 메타버스의 세계에서 그대로 똑같이 할 수 있게 한다면 그 세계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해서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혹은 체험하면서는 얻기에는 한계가 있는 어떤 경험들을 설계하고 기획할 때 가상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그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술관과 박물관 이외의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여 메타버스 세계로 들어가고 있는 모든 서비스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 않다면 코로나 19가 종식되고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들 앞에 던져진 메타버스의 세계는 <세컨드라이프>의 거품처럼 금세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인 메타버스 세계에서의 경험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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