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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57호] ‘소셜믹스’, 사는(buy)게 아니라 사는(live) 곳으로 본문
“경제사회적 수준이 다른 계층을 한 지역에 섞여 살게 하는 사회적 실험”
옥 기 원 한겨레 사회부 기자
소셜믹스(social mix)는 영국과 미국에서 도심의 슬럼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행된 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전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단지 내 분양세대와 임대세대를 함께 조성한 혼합주택단지를 일컫는 고유명사가 됐다. 사는 지역과 아파트 단지 울타리로 구분되던 계층의 격차를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룰 목적으로 도입된 소셜믹스가 갈등으로 병들고 있다. 소셜믹스 단지 내 분양주민과 임차주민 간 첨예한 갈등부터 재건축 과정에서 소셜믹스화를 막기 위한 조합 이기주의까지... 2021년 현재 소셜믹스는 서울지역 부동산 시장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울타리 밖에서 안으로.. 소셜믹스는 진화 중
우리나라의 첫 공식 소셜믹스 단지는 2007년 전후 서울 장지·발산·은평 지구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2003년 공공임대주택 10만호 공급 계획을 발표하며 ‘혼합단지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운 결과다. 산업화 성장을 이룬 1990년도 이후 정부 기관이 추진한 ‘도시개발아파트 사업’을 소셜믹스의 시작 단계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강변정비사업으로 새로 생긴 폐천 부지에 도시개발공사가 조성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단지이다. 다양한 도시 노동자 계층을 위한 아파트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한 울타리 사이로 영구임대아파트(4, 5, 7, 8단지)와 분양아파트(1, 2, 3, 6단지, 가양 우성, 경동대림)가 함께 들어섰는데, 빈곤층과 중산층이 섞여 사는 느슨한 의미의 소셜믹스가 추친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양단지 맞은편 영구임대아파트는 차별과 슬럼화로 외딴섬처럼 소외됐다. 본격적인 소셜믹스 정책은 이런 저소득층만 거주하는 공공임대아파트 단지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 단지 안에 분양동과 임대동이 섞인 소셜믹스 단지가 등장했다. 한 단지 안에 1동~7동까지는 분양동, 8동~10동까지는 임대동을 함께 조정하는 방식이다. 관리의 용의함을 위해 분양동과 임대동을 각각 한 곳에 모아서 건축하면서 자연스럽게 분양과 임대간 구별짓기가 가능해졌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ㄱ단지를 비롯한 다수의 소셜믹스 아파트들은 임대동을 소음이 심한 도로 주변에 건축비용이 적게 드는 형태의 복도식으로 짓고, 분양동은 공원을 마주 보는 한적한 장소에 통로식으로 집중 배치하고 있었다. 서울 성북구 ㄴ아파트의 경우 분양과 임대동의 출입구를 따로 하고, 분양동은 100단, 임대동은 200단위 동명을 사용해 구분했다. 서울 영등포구 ㄷ아파트는 “서로가 불편하다”며 분양동 노인정과 임대동 노인정을 따로 만들었다. 정책의 당위성을 앞세워 아무 준비 없이 다양한 계층을 한 곳에 모으는 데만 급급한 사이 분양과 임대 사이 차별은 고착화되었다.
2010년 이후 한 동에 분양과 임대를 섞는 진화된 형태의 소셜믹스 단지가 등장했다. 한 통로엔 분양세대를 옆 통로는
임대세대를 배치하는 식이다. 정책 추진자는 분양과 임대세대 간 물리적 거리를 좁히면 관계가 개선될 거로 예상했다고 한다. 예상은 빗나갔다. 서울혼합주택임차인연합회와 함께 소셜믹스에 사는 주민들을 조사한 결과 물리적 거리가 좁을수록 갈등과 차별이 더 빈번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초구 ㄹ단지 임대세대들은 “분양 통로의 청소·관리는 잘 되는 반면 임대 통로는 청소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용역업체를 선정할 권한이 있는 분양세대 눈치만 보는 탓에 ‘청소 차별’까지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로 간 인사도 하지 않고 “임대세대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는 비난을 직접 들었다는 주민도 있었다.
소셜믹스 정책에 대한 공감대와 서로에 대한 인식 개선 없이 물리적 거리만 좁힌다고 해결된 문제가 아니었다. 분양세대에게 소셜믹스 아파트는 값이 올라야 할 ‘투자 대상’이었고, 임대세대엔 저렴한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며 오래 살고 싶은 임대아파트였다. 집값이 오를 경우, 분양세대는 웃지만, 임대료와 관리비도 함께 올라 임대세대는 운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경제 논리 속에 분양과 임대세대는 각각 다른 소셜믹스를 생각하고 있다.
소셜믹스 속 갈등과 차별
2020년 말 기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가 관리하는 340여 개 소셜믹스 단지에 총 26만 가구가 살고 있다.
이 가운데 19만 가구가 분양이고 7만 가구는 임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33개 단지) 등도 소셜믹스 단지를 관리하지만, 서울에 비해 규모가 작고 집값·소득 격차가 크지 않아 분양과 임대단지 사이 갈등이 적은 편이다. 서울과 일부 수도권과 같이 지역 간 집값 편차가 큰 지역을 중심으로 조성된 소셜믹스는 집값이 높은 지역일수록 분양과 임대 세대 간 갈등이 더 첨예하게 나타난다.
서울혼합주택임차인연합회와 함께 임차인대표회의가 구성된 서울지역 소셜믹스 단지 52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 2016년〜2020년까지 단지에서 발생한 갈등 민원은 163건에 달했다. 한 단지에 분양과 임대간 3건 이상의 분쟁이 발생한 셈이다. 소송으로 치달은 분쟁도 10건이 넘었다. 임차인 대표회의가 존재하는 단지에서만 갈등이 표면화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해당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가장 빈번한 갈등은 관리비나 잡수익 사용에서 발생했다. 조사 대상 단지 52곳 가운데 49곳에서 분쟁을 겪고 있었다. 관리비나 재활용품 판매 등으로 발생하는 잡수익은 전체 구성원의 수입이지만 사용·집행 권한은 분양세대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다. 현행법상 소유주가 아닌 임차인은 입주자대표회의 대표가 될 수 없고, 해당 수익을 집행할 권한도 없다. 임대세대가 아파트 운영에 참여할 권한을 배제하는 문제로 분쟁을 겪는 단지는 20여 곳이었고, 임대세대에게 관리비 사용 내역 등을 공개하지 않아 법적 갈등을 빚은 단지도 37곳이나 됐다. 갈등의 양상은 각각 다양했지만, 대부분 분양세대가 임대세대를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데서 발생한 문제라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분양세대와 임대세대를 간 유기적 결합에 필요한 법적, 제도적 정비를 소홀히 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으로
갈등의 이면에는 집주인인 분양세대와 임차인인 임대세대 간 욕망의 충돌이 내재해있다. 집값 인상을 바라는 분양세대는 임대세대를 “아파트 가치를 떨어뜨리는 암적인 존재”로 봤고, 싼 관리비(임대료)가 중요한 임차세대는 분양세대를 “집값을 올리기 위해 관리비를 마음대로 쓰는 독재자”라고 비판하고 있었다. 빚내서 산 집값이 오르는 것이 재산 증식의 가장 큰 꿈인 우리나라의 인식 상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한 소셜믹스는 정책추진자만의 바람일 수도 있었다.
최근 서울지역 재건축 추진 단지들에서 이런 ‘동상이몽’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최근 서울시 송파구의 아시아선수촌 단지 소유자들은 재건축 과정에서 용적률을 높여주는 대신 1~2인 가구의 ‘임대주택’을 배치하겠다는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소셜믹스 단지가 될 경우 주변 단지보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논리인데, 이런 정책 추진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강남 재건축의 바로미터인 대치동 ㅁ아파트도 소셜믹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로 재건축 승인이 늦어지고 있다. 진정한 소셜믹스를 위한 법 제도의 개선뿐만 아니라 아파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한 지점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더 적극적인 소셜믹스 정책 추진과 함께 단지 내 공동대표회의를 의무화하는 방식 등의 제도 개선을 병행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도시연구소 등 단체들은 소셜믹스에 반대하는 재건축 단지들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많은 수의 소셜믹스 단지를 조성해 제도를 일반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강남 등 일부 지역에만 예외를 둘 경우, 정책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조성된 소셜믹스 단지 내에서 분양과 임대 세대 간 통합을 제도화하고 임대세대에도 권한을 주는 제도 정비도
요구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아파트 실생활에 관련된 결정은 실거주자가 해야 하는데도 법·제도상 모든 의사결정은 소유자만 할 수 있게 제한돼 있다. 소유주에게 집중된 불균형한 법·제도가 갈등의 원인”이라며 “‘집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정부 기조에 맞게 분양과 임대세대가 서로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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