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sggpaper dreaming marionette 2019.07.05 20:25

게임중독 논란에 대한 놀이학(Ludology) 연구자의 소심한 목소리

 

전 석 _ 숭실대학교 글로벌미디어학부 겸임교수

 

2019년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72차 세계보건기구(WTO) 총회에서 ‘게임중독(게임 과몰입, 게임 이용 장애)’에 대한 질병분류가 통과되었고, ‘6C51’이라는 코드로 정신, 행동, 신경발달 장애의 하위 질병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이루어지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대한민국은 게임중독에 대해서 민감하고 강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 우리나라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게임의 열정적인 이용자인 동시에 높은 교육열과 더불어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교육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진 않은 현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육과 게임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불행하게도 최근에는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으로 세대 갈등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극한 상황에 게임중독은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을 쉽게 치환할 수 있는 포괄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회 전반에서 게임중독에 대한 해석과 주장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게임 이용자들이 왜 그렇게 몰입하게 되는지 또는 도대체 게임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당신은 ‘게임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너구리’나 ‘갤러그’와 같은 예전 오락실 게임이나 우리나라에 선풍적인 인기였던 ‘스타크래프트’ 정도가 떠오르거나 게임이 다 비슷한 것들이라고 생각된다면, 이 논의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 결국엔 끊임없이 다른 주장을 반복하며 소비적인 논쟁만 하면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마치게 될 것이다.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게임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할 시점이다.

현재의 디지털 게임은 인류학, 역사, 문학, 디자인, 수학, 정보통신기술, 경영, 마케팅, 등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성과가 매우 복합적으로 구성된 총체적인 창작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불어 게임은 단독으로 콘텐츠이자 작품인 동시에 미디어로써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예술 장르로 치면 다원 예술로 해석할 수 있고 콘텐츠로서는 전형적인 융합형 문화 콘텐츠로 분류할 수 있다. 모든 게임이 그럴 수는 없지만 단 하나의 게임으로 거대한 규모의 산업과 문화를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파괴적인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빌보드 차트나 해외 유명 콘서트장에서 공연하는 BTS를 보고 자랑스럽다고 느끼면서도 ‘LOL 월드챔피언십’이나 ‘오버워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한국 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면 조금은 넓은 시각으로 콘텐츠 산업을 살펴보아야 한다. 2018년 상반기 국내 콘텐츠 산업의 수출에서 전체 콘텐츠 중의 62.1%가 게임 콘텐츠이다. 우리가 세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는 자랑스러운 ‘K-POP 신드롬’은 대단하지만 음악은 5.9% 정도이며, 최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광과 함께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국영화는 아쉽게도 0.8%에 불과하다. 오랫동안 게임 산업은 우리나라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해외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문화 콘텐츠 강국이 되고자 했고 몇십년 전부터 제조업과 지식산업의 특성을 비교하면서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극찬했던 대표적인 콘텐츠 산업 분야에서 가장 화려하고 경쟁력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어떤 지표로도 게임 콘텐츠 산업이다.

앞서 언급한 산업으로서 부가가치 창출 이외의 학문적 측면을 살펴보자. 초기 보드게임이나 카드 게임들이 컴퓨터의 등장 이후로 디지털 게임으로 발전하면서, 곧 게임은 회화, 문학, 연극과 같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새로운 콘텐츠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게임이 가진 상호작용성(interactivity)은 기존의 서사(Narrative) 방식이 가진 대부분의 한계와 범주를 너무 쉽게 무너뜨려 버린다. 게임은 선행되는 막(Act)이나 챕터(chapter)의 구분에 크게 한정되지 않고 스토리의 선형 구조에 의한 제한이 전혀 없었다. 게임의 서사는 이용자 선택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고 선택에 따라 같은 반복되기도 한다. 이용자가 내용의 일부가 흥미롭지 않거나 또는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생략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게임은 이용자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제작된다. 선형 스토리텔링을 가진 모든 콘텐츠가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한계점을 버튼 하나로 간단히 날려버린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서사와의 짧지만 강렬한 경쟁과 갈등을 거치고 난 후 2000년대에 들어서 게임은 점차 대형화되고 음악, 영화, 방송과 같이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확장된다. 이 시기에 게임은 쟁쟁한 경쟁자인 방송, 영화, 음악이 가진 대부분의 특성을 흡수한다. 카메라 연출 및 편집 기법을 게임 내에서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차용하고 심지어 영화감독이 직접 게임 진행 영상을 연출한다. 그리고 가수, 작곡가, 연주자들과 기획한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게임이 제작하기도 한다. 흑백화면과 환경 사운드만으로 연출되는 공포 게임부터 디바이스 진동으로 촉각적 피드백을 제공하고 카메라 추적기술을 활용해 사용자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몇몇 콘솔 게임기는 최근 등장한 4D 영화관의 효과들을 교묘하고 강렬하게 활용하고 있다. 다른 미디어에서는 몇 십년동안 고민하던 한계점이나 문제점을 간단히 해결하고 오히려 사용자에게 더 다양한 인터랙션과 피드백을 제공하고 공감각적으로 조작하기를 요구하는 게임의 진화는 사용자에게는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다. 그리고 게임 자체로 소셜미디어 역할을 수행하며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더해지면서 사용자들은 게임을 벗어나지 못하고 순식간에 몰입하게 했다.

이러한 게임의 특성은 다양한 분야에 독특한 영향을 끼친다. 예술 장르로서 비디오아트를 계승하여 등장한 미디어아트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부흥하면서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다. 많은 작가(창작자)가 공학자나 기술전문가와 함께 협업하여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창작하였고, 예술 분야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고 보다 다양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관객들은 미디어아트가 보여주는 상호작용성이나 멀티미디어적 표현을 통해 많은 흥미를 느꼈고 그와 더불어 다양한 창작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적인 펀딩과 프로젝트도 쉽게 추진되었다. 하지만 2000년 중반 이후로는 기술적 흥미로움과 창조적인 미디어의 역할을 대부분 디지털 게임에 빼앗기게 된다. 잔인하게 표현하자면 후기에 등장하는 미디어아트 작품들이 보여주는 표현 방식, 인터페이스, 창의적 연출, 몰입도, 재미, 등의 요소들이 게임상에서 더 기술적으로 유려하고 제공되었고, 표현과 연출은 더 창조적이었고 결과물의 퀄리티조차 더 높았다. 또한 상호작용성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 편의성은 비교하기조차 민망한 수준으로 격차가 켜졌다. 이제 미디어아트는 새롭거나 놀라운 것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예술작품과 디지털 게임을 1대1로 개념적 가치 비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서로 다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런 비교는 무의미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결과물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게임은 모든 측면에서 비교 우위에 있었다. 더 많은 기술과 자본이 투자되었으며, 사용자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연구개발을 통해서 제작된 것이니 당연한 것이었다. 이처럼 게임은 모든 예술,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포함해서 강력한 경쟁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단지 부가가치 창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기술적, 예술적, 디자인적 역량이 집약되어 제작되고, 기존 장르적 특장점과 미디어 확장성을 포괄적으로 융합되며 발전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세대를 뛰어넘어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게임은 전통적인 게임들을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 게임은 더 다양하고 풍부한 역사와 범주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게임은 ‘놀이’라는 인간의 문화적, 사회적 성질을 가진 행위이다. 일정 시간을 되돌려 기성세대들이 어린 시절에 운동장에서 술래잡기하면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여기저기 친구를 찾아다니는 행위나 놀이터에서 소꿉놀이하면서 아빠, 엄마의 역할을 각자 맡아서 어설프지만 열정적으로 연기를 하는 모습을 떠올리고 난 후에 현재 시점으로 돌아와 아이들이 거실에 앉아서 콘솔 게임기로 잠입 액션 장르의 게임에서 주어진 인질 구출미션을 수행하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패드를 열심히 조작하는 모습이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내에서 자신이 만든 캐릭터 직업인 치유전문가의 역할을 그룹 내에서 수행하면서 집중하는 모습이 서로 다른 행위인가?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지털 게임은 점차 모든 미디어가 가진 특성을 통합하고 완성형 콘텐츠에 가까워지면서 기존의 전통적인 놀이까지 대체하고 있다.

  

아이들의 소꿉놀이와 심즈 게임플레이 화면

 

아무런 편견 없이 앞서 언급된 두 시대의 행위를 바라보면, 전자는 현실 공간에서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놀이이고, 후자는 증강현실 공간이나 또는 가상공간에서 사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놀이이다. 본질적으로 두 활동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단지 차이점은 기술 발달과 시대 변화에 따라서 형식이 변한 것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부모 세대가 학창시절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 공중전화 앞에서 수첩에서 번호를 찾던 행동과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에서 외우지 못하는 친구의 전화번호 11자리 숫자를 알아서 연결해주는 행동으로 그냥 형식만 변한 것이다. 시대는 변화했고 그에 따라 놀이도 변화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약 누군가 수십 년 전 아이들이 온종일 운동장에서 공놀이하거나 마당에서 고무줄놀이를 한다고 해서 그것을 중독으로 생각된다고 한다면 우리는 순순히 수긍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사건들을 언급하면서 게임중독이 사용자들에게 광범위하게 발생할 수 있으며, 그것이 폭력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의 학술적 근거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해외 유수의 연구(심리학, 의학 분야) 결과와 비교하면 국내에서는 게임의 중독성과 폭력적 성향의 상관관계를 기정사실로 전제하는 연구가 다수이다. 대부분의 지표가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체로 설정되고 설문조사나 임상실험도 전제부터 불명확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공정성이나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앞으로도 게임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게임중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거나 지표를 분류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는 그렇게 명료하게 결론 내릴 수 없다. 일단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이나 행위와 달리 게임은 아무리 재미있어도 계속하면 스스로 질려서 그만두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게임이 제공하는 재미에 비해서 게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역전하는 시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임제작사는 끊임없이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고, 적당한 시기에는 결국 후속 작품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어떤 중독 원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루해져서 자발적으로 그 행위를 그만두게 만드는가? 대부분의 게임은 사용자의 몰입을 철저히 유도하도록 기획된다. 그로 인해서 실제 과몰입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과몰입 시기도 일정 시간 동안 고도로 집중하고 난 후에 피로감과 권태감에 의해 자연스럽게 게임을 현실로부터 분리하게 된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 시간차는 발생하겠지만 진지하게 게임에 집중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후 발생하는 지루함도 쉽게 이해할 것이다. 기존의 중독이란 금단 증상과 내성 증세를 기반으로 기준을 삼을 수 있지만, 게임은 금단과 내성에 대한 사례가 일정하지도 명확하지도 않다. 솔직히 어떤 중독 현상이 본인이 지루해서 자발적으로 멈출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떤 차이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게임은 유전적인 특성을 ‘순수하게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한 놀이’로부터 물려받았다. 인간에게 있어서 놀이란 일상에 쉽게 녹아들 수 있으며, 인간의 모든 행위와 공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래를 부르면서 특정 음절을 생략하는 규칙을 지키면서 놀 수 있다. 심지어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순간에도 놀이를 할 수 있다. 식사 시간에 ‘누가 빵을 얼마나 빨리 먹을 수 있는가?’ 라는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참여자 간의 세부적인 규칙(제한 시간, 빵의 개수, 등)을 정하면 그때부터는 놀이(게임)가 바로 시작된다. 이처럼 인간에게 놀이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고, 실제 생활에서 놀이란 심리적 선택이나 사고적 설정에서 장소와 시간을 제한하는 방법만으로도 즉발적으로 이루어진다. 과연 이런 놀이인 게임을 중독방지와 치료가 필요하다고 논의해야 한다면 일상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 놀이에 대해서 접근을 시작해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왜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는가?’에 대한 어려운 논의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놀이학 관점에서는 당연히 인간에게 있어 놀이는 일상으로부터 구분될 수 없다. 누구든지 한 번쯤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보도블록의 선을 밟지 않는다!’라든가, ‘상대방과 같은 단어를 동시에 이야기하면 어떤 행동을 한다!’ 등과 같은 일상 속에서 쉽게 규칙들을 세울 수 있고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만족감을 경험한다. 그것이 놀이가 습관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만약 이러한 놀이가 과도하고 중독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치유하고 통제할 것인가? 게임중독의 문제점과 질병으로 해석하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지금보다는 명확한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제시되고 있는 게임중독의 기준은 너무 빈약하다. 누구나 특정 활동으로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스스로 또는 외부에서 일정 정도의 제한과 권고는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행동들을 비정상적이거나 질병이라고 규정하고 전문가를 통해서나 법과 제도를 통해 바로잡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런 단순 명료한 결정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는지는 역사를 통해서 분명하게 알고 있다. 고대에는 희극과 연극이 젊은이를 망치는 몹쓸 존재였고, 어떤 시대에서는 바둑과 장기였다. 멀지 않은 시대에는 TV, 만화, 인터넷, 등이 모두 동일한 절차를 밟아왔다. 만약 어떤 인간의 행동이 객관적으로 비정상적이고 범죄 발생의 인과관계가 명확하다면, 그것이 쇼핑, 야식, 운동, 독서, 일, 취미, 기호식품, 등이 모두 의학적, 제도적 통제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게임에 부작용이 전혀 없거나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 존재하는지 여전히 의심스럽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상을 빈약한 근거만으로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손쉽게 내린 판단과 성급한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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