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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57호] ‘집 냄새 나는 사랑’을 찾아 나선 청소년들 본문
‘집 냄새 나는 사랑’을 찾아 나선 청소년들
은 성 제 신부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촉법범죄를 악용하는 청소년들의 폭력과 살인 사건들, 그와는 반대로 N번방 사건과 같이 성인들에게 이용당해 성매매를 하게 되거나 성폭력을 당하는 미성년자들 등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사회적으로 ‘청소년 문제’는 큰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가톨릭 성직자인 사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사제라면 드라마에서 봤던 검은 수단(치마 같은 옷으로 가톨릭 성직자가 입는 옷)을 입고 고풍스러운 성당 건물을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서울A지T(아지트)’라는 이름의 버스가 저의 성당입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가정 밖 청소년’들이나 거리를 배회하며 다니는 청소년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버스가 1회 나가면 30~40명 정도의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COVID-19 이전의 경우에는 1회 나가면 70~80여 명을 만났습니다) 그들 중 10명 이상은 가출을 해서 이미 ‘가출팸’이거나 부모와 갈등이 심해 가출을 경험한 적이 있는 친구들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상담도 하고, 버스가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취약시간 때 범죄예방 및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보호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집이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청소년 쉼터로 연계를 해 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오랜 가출 생활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아 의료기관 연계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들이기에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청소년들에게는 무료 노무 상담 지원도 연계해 주고 있습니다.
버스에서의 사연 하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버스를 찾아오며 상담을 받던 청소년들로부터 어느 늦은 밤 전화가 왔습니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한 명은 가정에서 아버지로부터 잦은 성추행과 성희롱으로부터 고통을 겪고 있었고, 한 명은 아버지로부터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전화 내용은 자신들이 지금 동반 자살을 하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생각나서 전화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면서요. 저희 기관 선생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를 끊지 않고 계속하면서 어딘지 알아내고 바로 갔습니다. 만나서 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수면제 3통을 갖고 있었고 아직 그 약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달래주었고 진정시킨 다음 가정으로 잘 복귀시켰습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 명은 대학에 입학해서 새내기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고, 한 명은 수험생이어서 대입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친구들은 자기 용돈 아껴서 먹을 거를 싸 들고 버스로 옵니다. 와서 선생님들을 ‘아빠’라고 부르면서 챙깁니다. 처음 버스에 왔을 때 보였던 살기가 있던 눈빛이나 독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느 청년들처럼 생기있고 발랄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을 겪더라도 ‘내 편이 되어주는 어른 한 명’만 있어도 청소년들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든든한 내 편’이자 ‘비빌 언덕 같은 곳’. 이것이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주제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28만 명의 ‘가정 밖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숙인 수는 1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가정 밖 청소년’들의 숫자가 더 많기에 사회적으로 더 관심을 갖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가출 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가정 밖 청소년’으로 쓰지만, 이 표현도 사실 충분히 정의에 맞는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떤 표현이 가장 적합하고 정의에 맞는 표현인가?’를 정하고자 꺼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청소년들 가운데 가출을 왜 하게 되는지, 그 이후 심각한 범죄에 가담하거나 피해자가 되는 일까지 겪으면서도 ‘왜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가출을 한 청소년들 중 70% 이상이 부모의 폭력, 성폭력, 무관심과 방임 등 가정 문제가 ‘가출 원인’입니다. 이러한 원인들을 봤을 때 ‘가출 청소년’이란 표현은 잘못된 표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정을 찾아 나선 청소년들’이 더 적합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껏 살고 있던 집은 이러한 청소년들에게 더 이상 집이 아니었기에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스윗 홈’을 찾기 위해 나온 청소년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버스를 몰고 위기 청소년들을 만나러 갔을 때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을 잘 설득해서 다시 가정으로 복귀를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컸으나 한명 한명 자신의 마음을 열어 어렵게 이야기하기 사직한 친구들의 삶을 들어보면 무작정 가정으로 복귀시킬 수 없는 현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였으면 과연 견딜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사연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인정하고 이 친구들의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청소년 쉼터’들로 연계를 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일단 단체생활을 하면서 규칙을 지키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성장 과정에서 제 때에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 지원을 못 받으면 정서적인 문제, 청소년 시기에 형성되어야 할 자아정체성이나 인격 형성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르면 올바른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단체 생활을 해야 하는 쉼터를 가더라도 적응을 못 하고, 다시 나와서 ‘가출팸’이나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저는 2년을 넘게 가출을 하며 지내는 여자 청소년도 버스에서 보고, 어떤 친구들은 이미 20대가 되었는데 8~9년 동안 가출을 한 남자 청소년들도 버스에서 만납니다. 그 친구들은 청소년 쉼터에서도 지내봤지만, 공동생활을 하고 규칙을 지키는 것을 힘들어하여 적응을 못 하고 스스로 나왔습니다. 결국 여기저기 쉼터들을 전전하다가 그냥 거리에서 배회하며 지내게 됩니다.
두 번째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저희가 버스에서 만나 어렵게 청소년 쉼터로 연계를 하게 되면 청소년 쉼터에서는 부모님에게 확인 전화를 해서 동의를 얻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가정에서의 갈등과 폭력과 같은 상황을 견디지 못해 탈출한 상황인데 부모님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면 청소년들은 어쩔 수 없이 입소를 거부하게 됩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부모님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는데 청소년 쉼터는 입소를 위해 이 절차를 진행해야만 합니다. 청소년들이 다시는 가기 싫은 부모님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사회의 구조입니다. 이러한 부분도 정책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가정 밖 청소년’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요? 의미를 잘 생각하면 ‘가정을 찾는 청소년’들일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찾아 나선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집’이 필요합니다.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가족의 사랑’입니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집’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집’은 영어의 ‘Home’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건물로 지어져 나의 육체적 삶을 편하게 하는 차원을 넘어서 언제든 돌아가고 싶고, 언제나 내가 평화로움과 안락함을 느끼는 그곳. 나의 모든 피로와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이자 내가 의지하고 언제나 든든한 나의 편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는 곳을 말하겠죠.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로 머물 수 있는 바로 그곳입니다.
바로 이 ‘Home’이라는 공간을 경험하지 못하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이 달라지는지를 ‘가정 밖 청소년’들을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Home=사랑이 살아있는 가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를 ‘집 냄새 나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집 냄새 나는 사랑’은 인간의 삶의 시작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가정’을 ‘가장 작은 교회’,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가장 처음 체험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그토록 ‘Home’은 중요하고도 모든 이에게 삶의 원천이 되는 ‘어떤 것’입니다. 이 ‘Home’을 갖는 것은 세상 모든 만물의 본능일 것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면서 ‘집 냄새 나는 사랑’으로 채워진 모든 존재들이 ‘나’로 성장하여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Unique’ 한 존재가 됩니다. 누구나 가슴으로 느끼고 있고, 더 느끼고 싶어 하는 ‘Home’이라는 보편성은 각 사람을 ‘나’라는 특별함으로 만들어 주고, 자아를 완성시켜 줍니다.
아울러 글을 마치면서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어려움을 겪는 많은이웃들이 있습니다. 고통받고 어려움을 겪는 많은 이웃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누군가 함께 나누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본래 제 때에, 받아야 할 사람에게 필요한 사랑을 받는다면 부족함이나 문제없이 잘 지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깁니다. 완전히 채울 수는 없더라도 다 함께 조금씩 나누고 희생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보다 아름다워지고 공동선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Home’이 됩시다. 사람의 몸은 건물이 필요하겠지만 정신과 영혼은 ‘집 냄새 나는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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