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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암 환자들의 유튜브 투병 브이로그, 질병과 함께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금, 여기’의 이야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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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암 환자들의 유튜브 투병 브이로그, 질병과 함께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금, 여기’의 이야기

dreaming marionette 2021. 6. 29. 09:00

이 해 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수료

 

  우리는 이야기와 더불어 살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부모나 가족들이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하고,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식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인류의 욕망은 다양한 매체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에너지를 방출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활용해왔다. 입과 귀가 전부였던 구비전승 시대를 지나 책,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등장할 때마다 그에 걸맞은 이야기 방식이 매번 시도되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이야기꾼이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자, 사람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이전 시대보다 훨씬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이야기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영상 기반의 1인 미디어가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텍스트나 이미지가 아닌 실시간 동영상으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위와 같은 흐름과 맞물리며 등장한 ‘브이로그(Vlog)’는 새로운 미디어스케이프를 이끄는 영상콘텐츠로 떠올랐다. 브이로그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내용적으로는 보통의 개인이 흘러갈 뿐인 평범한 일상을 담으면서, 형식적으로는 전문적인 영상 편집과 완성도 높은 콘텐츠가 아니라는 점에서 기존의 미디어 콘텐츠와 차별점을 갖는다. 브이로거(Vlogger)들은 자신의 출퇴근 하는 모습, 집에서 요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 심지어 아무 말 없이 공부하거나 양치하고 화장을 지우는 모습 등 자기 반영적 일상생활을 셀프카메라를 통해 시청 공동체에게 자기중심적으로 보여주며, 미시 담론을 가시화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보통의 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자, 아픈 사람에 대한 편견과 사회에서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질병을 감추었던 환자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환자들이 질병에 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 예이다. 대부분 암 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은 암과 커밍아웃을 합친 ‘암밍아웃’를 선언하며, 전조 증상과 암 진단 시점, 수술과 방사선 치료 과정과 회복에 이르기까지 매일 매일 전개되는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의학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암을 조기에 치료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성과를 이루고 있으나 여전히 암은 사형 선고나 죽음으로 연결되는 사회적 인식이 만연하고, 암 진단 이후 고용상태에 변화를 겪거나 사회생활과 치료의 병행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가 많다는 점을 상기할 때, 암은 환자들에게 치부이자 약점, 입에 담기에는 금기의 주제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들이 브이로그를 통해 질병 경험을 가시화 하고 금기와 격리를 스스로 극복해가는 현상은, 언어화 되지 못했던 목소리가 복구되는 지점으로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문화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투병 브이로그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환자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고통이 의학적 기술(記述)로는 온전히 재현되지 않음을 비판하며 카메라 앞에 섰다. 과학적 용어로 점철된 의학서사에 가려져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환자들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질병 이야기를 길어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암 진단 직후 공포와 절망 속에서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인터넷에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막연한 두려움만 생길 수 있는 생존율·생존기간만 이야기한다. 의료인이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와 생로병사와 같은 건강 프로그램에서도 환자 개인의 삶에 밀착된 질병 이야기들은 권위적인 전문가들에 의해 전개되는 의학적 서사 뒤켠으로 밀려난다. 환자들은 실제 암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이겨냈는지, 수술하면 얼마나 아픈지, 수술 후에 어떻게 지냈는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암 환자가 돈은 벌 수 있는지 궁금한 게 많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질환의 이름으로 수렴될 뿐이다. 

 

  현대의학에서는 환자의 주관적인 질병 체험 이야기보다는 생의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의료인의 객관적 서사가 우위에 있다. 환자들의 주관적이며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의학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의료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이 의료인들의 비인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의학이라는 보편적 설명 체계를 개별적 인간에 적용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생략되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 환자는 말할 기회를 상실한다. 의사만이 궁금한 점을 계속적으로 질문하며 빠르게 진료 를 진행한다. 물론 환자가 의사에게 사적인 문제를 논의하기도 하지만, 치료의 진전을 위한 것일 뿐 서로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의료인들은 환자의 감정상태의 변화가 아닌 이상이 있는 몸 부분에만 임상적 시선을 둔다. 때로는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 컴퓨터 스크린만 응시한 채 데이터와 자료로 병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반면 암 환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행위는 그동안 의학서사에서는 의미를 부여받지 못했던 환자가 자신의 고유한 삶의 서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내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치료와 수술 과정을 ‘아프다’, ‘고통스럽다’ 같은 막연한 단어로 표현하지 않는다. 항암 치료 후 요일별, 주차별 달라지는 통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질병이 자신에게 미치는 모든 영향을 얼굴 표정과 어조, 제스처, 다양한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다감각적으로 묘사한다. 질병 발생의 원인, 시간에 따른 몸의 변화, 치료와 부작용으로 인한 어려움 등은 환자가 고유의 질병 경험을 체화한 언어로 풀어낸 것이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비전형적이며, 묘사 또한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다. 


  의료인들은 빠른 처방과 치료를 목적으로 질병을 환자의 몸으로부터 분리해 이해해왔고, 환자의 신체에 해를 입히는 것은 생명을 구하는 것으로 정당화되어왔다. 그러나 브이로그 속 암 환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질병을 분리하지 않는다. 질병을 싸워서 이겨야할 대상도 기피의 대상도 아닌, 몸의 일부로서 의미를 부여한다. 암을 “얘”, “이 녀석” 이라 친근하게 부르기도 하고, 암을 내 몸에서 분리해야할 존재가 아닌 “90살까지 데리고 갈 동반자”라 부르기도 하는 등 자신의 몸과 질병의 거리를 좁히고자 한다. 아픈 몸을 부정하고, 정상적인 몸과 비정상적인 몸을 분리하는 의학 서사와는 다른 방식
으로 질병을 명명하는 것이다. 질병을 자신의 삶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변형하고자 하는 시도는, 신체 뿐 아니라 자아를 복원하고 재건하는 여정으로 나아간다. 브이로거들은 암 진단 받은 후 변화한 삶에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이야기하며, 미리 유서를 써보기도 하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며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들을 이어나간다. 그들에게 질병은 삶과 현존을 끊임없이 다시 읽도록 하는 존재이다.


  이전에도 질병을 소재로 한 에세이와 환자들의 자서전들은 많이 발간되었다. 북미에서는 1970년대부터 유명인사들이 질병 경험에 대한 회고록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1993년과 1997년 사이에는 현대 질병의 지배적인 상징이었던 암에 관한 회고록이 쏟아지면서 ‘질병서사’가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하게 되었다. 투병 브이로그는 환자 개인의 삶에 밀착된 질병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과 공통분모를 가진다. 그러나 차별되는 지점 또한 존재한다. 질병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과 질병체험 수기는 저자 한 사람의 독백적 이야기로, 시작-중간-결말로 이어지는 선형적 질서와 닫힌 구조를 갖는다. 이때 독자는 이미 쓰여진 이야기를 해석하는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병 브이로그 속 환자들의 이야기는 열린 결말의 구조를 갖는다. 투병 브이로그 속 환자의 이야기를 둘러싸고 다수의 참여자가 반응과 댓글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되는 역동적인 과정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픈 몸을 매개로 무수한 개인들이 소통하면서 상호교환 속에 만들어지는 진행형의 이야기인 셈이다.


  브이로거들은 자신의 삶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반추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타인과 공유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통적인 서사에 근거를 둔 기대들을 도치시킨다. 정교한 플롯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서사적 긴장 논리를 보이지 않는다. 환자로 명명된 이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일련의 변화와 사건을 경험하면서 일종의 ‘서사적 난파’를 겪기 때문이다. 수술 한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병원을 가는 날이면 (최초 암 판정을 받았던 때가) 바로 어제 일 같아서 고통에 질서를 부여하는 시간순서의 감각을 잃고, CT 결과가 좋지 않을 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이야기가 
중구난방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브이로그 시청공동체들이 댓글과 댓글의 꼬리를 물며 끝없이 이야기 실타래를 이어나가며 난파선 복구 작업을 이어간다. 브이로거들은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다시 카메라 앞에 앉아 그동안의 댓글을 읽으며 답을 하는 식의 대화를 이어간다. 비선형적이고 비위계적인 다중형식의 이야기판이 구현됨에 따라, 정적이고 결과론적으로 존재하던 이야기는 변화무쌍하고 과정추론적인 유동체로 진화한다. 권위 있는 저자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하나의 완성물로 존재하던 질병 서사와 달리, 투병 브이로그는 이야기하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방위의 보통의 개인들에 의해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써진다. 이로써 브이로거의 이야기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이야기꾼들이 함께 쓰는 구성적 실천의 대상으로 전환되고, 브이로거와 시청공동체의 관계는 저자/독자, 또는 화자/청자라는 이분법에서 다수의 화자라는 대화적 관계로 거듭나게 된다. 

 

  투병 브이로그는 환우회와도 비교해볼 수 있다. 환우회도 환자들이 질병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심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공동체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환우회는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끼리만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닫힌 공동체이자, 환자 스스로를 질병에 귀속된 사람으로 느끼게끔 만든다. 때문에 환자들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만나 반가우면서도 평범한 일상과의 단절을 느끼기도 한다. 환우회의 다양한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끼리끼리 모인다는 폐쇄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나의 질병을 무겁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꺼려져서, 봉사나 동호회 같은 외부 활동이 중심이 되는 바람에 나의 내면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등의 이유로 많은 환자들이 환우회 가입을 망설이곤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디지털 환경으로 넘어온 이야기판에서는 질병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환우회의 경계 안에만 갇히지 않는다. 환우회나 자조집단과 달리, 브이로그에는 암 환자의 보호자들과 ‘아직’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모여든다. 그들은 서로를 ‘예비 암 환자’라고 부른다.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고,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로 갑자기 찾아올 수 있는 병이기에 자연스럽게 암을 받아들이자는 취지다. 투병 브이로그에는 질병을 몸으로 겪는 개인의 내밀한 언어가 농축되고, 때때로 친숙한 담소가 오가며,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고 퇴장하기가 반복된다. 이 이야기판에서는 각종 희귀 질병
을 앓고 있는 사람들, 기계장치에 몸을 의지해야하는 사람들, 만성질환자, 과거 질병을 앓았던 사람, 회복 중인 사람들, 보호자, 상호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은 투병 중인 브이로거를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닌, 이야기판에 모여드는 시청공동체 전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구성원들은 그 안에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이 이야기판은 환자가 자신의 질병을 말하는 개인적인 행위를 다양한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와 교차시키는 장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브이로그라는 이야기판은 저마다 고통과 취약성을 안고 있는 개인의 목소리가 수렴되는 공간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의 용기 있는 발화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판이 커질수록 브이로그는 개인의 기록이라는 형태가 아닌 공적 표현의 형태로 나아가게 되며 질병의 고립은 연결의 계기가 된다. 근대 이후 질병과 죽음의 의미는 사회적 몸으로부터 개인적 몸으로 이전되었고, 현대의 질병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가졌거나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개인의 실패와 책임으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브이로그는 질병의 개인화를 넘어 질병과 아픔에 대한 공적인 논의
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질병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아픈 사람들이 당면한 현실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질병 때문에 겪는 개인적 및 사회적 고통이 전부 해소되지도 않는다. 질병을 비정상성으로 간주하는 사회의 낙인과 냉대는 정리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만연하고, 의료 현장에서 환자가 경험하는 소외와 사회적 고립감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은 아픈 사람들이 굴하지 않고 질병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그들이 입을 열고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진정한 정치는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이게 만드는 행위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미시적 질병 경험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된 투병 브이로그는 이제 데모스(demos)적 커뮤니케이션 장(場)으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본 글은 이해수 (2021).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재조명: 암 환자들의 유튜브 투병 브이로그를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 & 문화>, 36권 1호, 229-273. DOI: 10.38196/mgc.2021.03.36.1.229 내용을 재구성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