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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1호] 애자일의 삶

 

서강대학교 졸업생 탁 재 인

 

외국에서 개발자로 일을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배움의 끝이 없다고 느낀다. 학부시절에도 문과 전공과 이과 전공을 동시에 공부하는 연계 전공자이었기에 두 배, 세 배로 공부해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 스택들은 개발되고 출시된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업무 외에도 개인적으로 많은 양의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런 끝이 없음에 무력함을 느낄 때면 애자일을 생각하곤 한다. 애자일은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뿐이 아니다. 삶의 방식일 수 있다.

 

애자일 선언서(Agile Manifesto)란, 개발과 함께 피드백을 받아 유동적이고 즉각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는 엔지니어링 방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수립한 후 개발을 시작하는 기존의 폭포수(Waterfall) 방법론은 지나친 프로세스, 플래닝, 마이크로 매니징 등의 문제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여 실제로 효율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애자일이 만들어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수평성과 유연성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며 역동성을 특히나 많이 요구하는 미국의 IT 기업들에 자리 잡아 애자일은 하나의 조직문화가 되었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애자일에 대한 친숙도가 채용 우대 조건으로 기술될 정도로 보편화되었다.

 

애자일을 삶 속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일상 속의 불안을 에너지화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포모(Fear of Missing Out) 증후군만 보더라도 현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많은 정도의 불안을 느끼며 사는 지 알 수 있다. 이제는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소셜 미디어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누군가가 누리는 어떤 것에서부터의 소외, 고립과 도태되는 것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을 끌어안고 산다. 그런 포모증후군 덕에 모두가 벼락치기 주식을 하고 인플루언서가 되려는 등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산더미같은 불안 속에 산다. 이런 시대적 산물로 인해 MZ세대는 ‘N잡러’라는 숙명을 떠안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N개의 일들을 습관처럼 폭포수 방법으로 ‘개발’하려 하기 때문에 불안이 긍정적 에너지가 되지 못하고 무기력함과 번아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애자일을 삶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그 N개의 불안을 감당 가능한 단위로 나누어 일단 시작한 뒤, 조금씩 정복하며 계획을 보완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수십 년간 폭포수 방식으로 서비스를 기획하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온 기업이 하루아침에 애자일한 조직이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듯, 수십 년간 철저한 폭포수 방식으로 교육을 받아온 우리도 그 관성을 싸우기가 쉽지 않다.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할 때 본능적으로 연간, 분기, 월 단위의 완벽한 스케줄을 세우고 그것의 요구사항들과 세부사항들을 열거해 대응하는 액션 플랜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게 완벽한 세분화를 끝낸 후 순차적으로 계획들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그런 프로세스를 좇다 보면 스케줄과 목표에 차질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 틀에 어떻게든 자신을 끼워 넣을지 고민할 뿐, 처음부터 계획하는 방식을 새롭게 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목표를 향해가는 자신보다 쌓여가는 To-do 리스트가 중심이 되어 스트레스와 불안에 압도되어 결국 제시간을 맞추지 못하거나,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많은 경우 둘 다의 결과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경험들이 지속되다 보면 불안이 우리의 삶을 다루게 된다. 불안이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된다.

 

애자일하다는 것은 애초에 요구사항(Specification)이 바뀜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완벽한 단일 계획을 세우게 되지도 않고 뜻대로 되지 않음에서 느끼는 좌절감도 관리할 수 있다. 계속해서 수정하고 맞춰 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민첩하고 첨예한 삶을 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퇴사하고 유튜버가 될 것이다든가 주식을 시작할 것이라는 극심한 포모증후군을 앓다가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아직 적절한 콘텐츠 주제가 없어서, 혹은 완벽한 대본이나 조명, 카메라가 구비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한다. 본인이 만들어 놓은 폭포수 계획에 따르면 편집 능력을 숙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와 절차가 필요하고 그 기준에 비해서 지금의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준비된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일단 감당 가능한 범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하는 것, 완벽한 계획이 성립되지 않아도 되는 것, 순차적으로 실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애자일한 삶이다. 지금 성공한 유투버들도 결코 모든 것들이 구비되고 1년 치의 완벽한 계획이 뜻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계정부터 만들고 보자. 핸드폰에 있는 영상들이라도 찍어 올려 보자.추후에 피드백을 통해 좀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어가도 늦지 않다.

 

물론 시작만 한다고 애자일한 것은 아니다. 애자일의 핵심가치는 지속가능성이다. 지속적이고 계속적인 실행, 피드백, 보완을 통한 개발을 위해 많은 조직들은 스크럼(Scrum)이라는 애자일 프레임워크를 도입했다. 스크럼이란 짧은 주기인 한 스프린트(sprint) 동안 달성할 수 있는 태스크를 계획하고 이를 개발 및 리뷰한 후 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스프린트는 보통 2주를 넘지 않은 기간으로 정하기를 권고한다. 핵심은 달성할 수 있는 태스크를 정하는 것과 그런 작은 단위의 증분(increment)을 쌓는다는 것, 그리고 회고를 통해 다음 스프린트 기간이나 태스크의 양, 개발 방법 등을 계속해서 수정 및 보완을 반복(iteration) 하는 것이다.

 

가령 모두의 인생 숙제인 운동이라는 프로젝트를 나는 스크럼을 통해 유지 보수하고 있다. 그렇기에 언제까지 어떤 몸이 되겠다든가 어느 정도의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전형적인 폭포수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이런 접근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간 단위인 2주라는 스프린트 안에 달성할 수 있는 태스크들을 정한다. 지난 스프린트 회고에 의해 4번의 러닝과 3번의 홈트레이닝과 1회의 등산이라는 적절한 양과 강도의 태스크를 만들 수 있겠다. 어떤 절대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이 스프린트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스프린트를 반복함에 따라 근육량이나 체력이라는 결과물이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다. 다음 스프린트의 방식은 매번 바뀔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냐,라는 프로세스에 집착하지 말자. 지속 가능한 운동을 하는 건강한 삶에 집중하자. 만일 6개월 후에 바디프로필을 찍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라면 매달 어느 정도를 감량해야 하고 매일 몇 시간의 운동을 해야 한다는 틀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유동적이지 않은 프로세스와 스케줄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초래하고 거대한 목표가 주는 불안이 압도하게 된다. 그런 최종적인 목표는 주로 삶의 다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도 지속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이룸과 동시에 당연하게도 끝남을 목표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 애자일이란, 2주 동안 할 수 있는 운동들에 집중하고 그 증분이 쌓여 24번의 스프린트가 반복된 6개월이 지나면 바디프로필을 찍어도 될 몸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내가 이루고 싶은 N잡 중 하나는 작가이다. 몇 년 째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지만 좀처럼 글을 쓰지 못 한 이유는 엄청난 영감, 대단한 통찰력과 유려한 표현력이 완벽한 삼박자를 이루어 탄탄한 인물 설정과 감동적인 기승전결을 가진 글이 자연히 써질 어느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오늘 한 문단을 일단 쓰는게 중요하다. 그것을 알기에 이 글도 애자일하게 썼다. 매일 조금씩 쓰고 수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나는 개발자이기 전에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또 산을 타는 사람이며, 틱톡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더 이상 하나의 잡으로 자신을 정의할 수 없다. 그런 모든 개별 프로젝트들이 애자일하게 운영되면서 나라는 하나의 인간을 만든다. 각각에 대해서 폭포수 목표를 정했더라면 무한한 태스크의 늪에 갇혀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비전공자로서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스스로의 실력과 넘어야 할 산더미같은 코딩 공부의 끝없음에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계속해서 준비가 완벽하다고 느껴질 오지 않을 미래의 어느 날로 지원을 미루다가 영원히 개발자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산악인으로서 올라야 할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과 줄어들지 않는 앞으로 정상까지 남은 몇십 킬로미터에 집중했다면 북한산, 설악산, 한라산과 후지산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딛는 작은 한 걸음만 생각하자. 오늘도 개발자로서 코드 한 줄을 써 내려가고 또 한명의 작가로서 한 문단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더라. 우리가 감당할 수 있고 컨트롤 할 수 있는 단위로 쪼개어 정복하는 연습이 불안을 에너지화하는 것의 핵심이다. 그 동력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구축해 나아가는 것이 애자일한 삶이다. 해야 하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 세대여, 불안을 도전의 원동력 삼아 민첩한 삶을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