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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1호] 그럼에도 우리가 공연을 사랑하는 것은

서강대학교 졸업생 오유민

 

인간이 걸어온 모든 시간 속, 공연은 그들과 나란히 발을 맞춰 왔다.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릴 때에도, 마주한 슬픔을 벗어나고 싶을 때에도, 그리고 헛구역질 나는 현실을 고발하고 전복할 때 에도, 공연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아주었고 종종 길을 보여주기도 했다. 

 

두 해가 넘도록 계속되었던 팬데믹의 끝이 보이는 것 같은 이 시점. 누군가에게는 기회와 성공의 시간이기도 했던 지난 2년은 공연에게는 꽤나 매정했다. 소위 ‘연극의 3요소’라고 불리는 텍스 트, 배우, 관객 중에 두 요소가 외줄 위를 걷듯 위태로웠으니 말 이다. 그렇기에 조금씩 공연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지금 이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다. 단지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다시금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연, 즉 막이 오르고, 관객 앞에 펼쳐지는 두 시간 남짓한 움직임은 그 거대한 세계의 지극한 일부이다. 공연은 쉼 없는 교감의 과정이다.

 

사진 제공 : 엠피엔컴퍼니

 

1.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들려주는 하나의 이야기

 

내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드는 생각 이 있다. ‘내 옆에서 대본을 읽고, 드릴질을 하고, 콘솔에서 Go 버튼을 누르고 있는 이 사람들을 내가 공연을 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있었을까?’ 이전에 한 공연의 백스테이지에서 뵈었던 한 스태 프분께서는 원래 전공이 전기공학이라고 하셨다. 미국 문화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일반 취업을 했다면 정말 필드에 서 만나기 힘들었을 터. 물론 회사에서도 다양한 부서들이 존재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 작곡, 디자인, 기계, 영상, 음향, 조명, 기획, 재정-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의 일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렇게 긴밀히 소통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모습은 다른 데서는 정말 찾기 힘들 것이다.


사는 곳도, 전공도, 생활 패턴도 다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장 안 울리는 악기들의 한 음, 그리고 배우의 가장 작은 움직임 에 집중하여 한 몸이 되는 모습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 일부가 되었을 때 느끼는 짜릿함은 말로 이를 수 없다. 

 

2.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공연은 끝없는 조율과 소통의 과정이다. 한 권의 책만 읽어도 수만 가지 감상과 해석이 나올 수 있는데, 한 텍스트를 살아있는 무대 위에 구현하는 과정인 공연에서는 더더욱 많은 시각과 의 견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같은 씬이라도 어느 한 사람은 배우 의 발화에, 누군가는 비극적인 음악에, 또 누군가는 이를 극적인 조 명 효과를 통해서 극대화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들을 한꺼번에 무대 위에 올린다면? 분명히 큰일이 날 것이다. 이처럼 공연을 만드는 과정은, 각기 다른 호스들에서 나오는 물의 양을 조절해가며 가장 아름다운 분수 쇼를 만드는 것 같은 소통과 조율 의 연속이다. (그 과정에서 덤으로 극에 나오는 가사나 대사를 밈 화시켜 공연진만의 인사이드 조크를 만드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뭔가 모두와 더 하나가 된 기분이랄까.)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그 과정이 항상 미소와 양보만 가득 하지는 않다. 특히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비대면 소통과 회의 가 늘면서 어려움이 배로 늘어났다. 얼굴을 마주하며 의견을 나 누었다면 그 자리에서 툭툭 털어내거나 밥 한 끼로 해결할 수 있 었을 상황들이 온라인 채널로 넘어왔을 때, 무심코 건넨 한 마디 가 상대방에게 잘못 전달된 채로 곱씹어지는 상황들이 잦아졌다. 숫자와 분석이 아닌 사람의 감정과 움직임을 통해 대화하는 분야 인 공연이기에 때때로는 아쉬운 오해가 남기도, 또 필요 이상의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래왔듯 우리는 적응했 고, 더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찾아가기 위해 나아갔다. (한국에 있는 배우가 뉴욕에 있는 안무가와 실시간으로 연습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세상이다!)

 

3. 공연과 라이브니스

 

3년 전과 오늘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바로 ‘라이브니스 (live-ness)’에 있을 것이다. 이전만 해도 ‘공연’이라는 것은 모름 지기 극장에 직접 가서 내 앞에 펼쳐지는 퍼포먼스를 즐기는 모 든 시간을 뜻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와 기술의 활용으로 이제 집에서도 뮤지컬 한 편을, 콘서트 한 회차를 뚝딱! 관람할 수 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TV 혹은 유튜브를 통한 공연 생중계가 존재했지만, 이제 공연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라이브니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필립 어슬랜더는 라이브의 전제조건으로 관객들의 능동적인 선택과 자유로운 소통을 꼽았다. 영화에서는 감독이 선택한 앵글 로만 세계를 바라봐야 하지만, 공연에서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솔로 넘버를 부르고 있을 때 화려한 큐들을 뽐내는 조명기를 보 고 있어도 되고, 뒤에서 복수에 불타오르고 있는 다른 역할의 배우에 집중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상실도 아쉬움도 잠시, 이제 공연은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전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온라인 생중계 콘서트를 관람 했는데, 내가 보고 싶은 앵글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멀티뷰 옵 션이 있어 만족했던 기억이 있다. 전체 무대를 보고 싶을 때는 풀 캠을 선택하고, 어느 한 멤버의 춤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을 때는 해당 카메라를 클릭하기만 하면 끝이다. 공연장에 있었다면 힘들 었을, 다른 관객들과의 실시간 소통으로 얻는 재미는 덤. 또 최근 <이퀄>이라는 뮤지컬은 볼류메트릭 기술을 통해 무대 위 움직이 고 노래하는 배우를 그대로 다른 공간에서 구현해, 다른 곳에서도 실시간 관람이 가능하게 하기도 했다. 이처럼 꼭 물리적인 공간에 함께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기회들이 늘어 가고 있음을 체감했다.

 

4. 그럼에도 우리가 공연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연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그 공간 안에 있는 모두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순간을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연습실과 극장 안에서 함께 하는 순간들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Zoom으로 두 달 내내 회의를 한 것보다 일주일간 함께 무대 셋업을 했을 때 훨씬 더 친 해지는 것처럼.

 

단지 두 시간 러닝타임 중에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 에서 약속된 큐를 이행하는 것이 공연의 전부가 아니다. 그 하나 의 퍼포먼스를 위해 연습실에 오고, 함께 합을 맞추고, 밥을 먹고, 무대를 세우고, 피드백과 의견을 나누고, 관객으로서 함께 호흡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바로 공연이다. 그래서 난 공연이 참 좋다. 매 순간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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