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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1호] 연결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석사 졸업생 김으뜸

 

2022년 5월, 대한민국엔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중에는 러시아 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으로 인해 경유 가격이 급등하는 사건 이 있었으며, 또 20대 대통령 취임과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집무실 이 이전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 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가 아닐까 싶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가 코로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마치 코로나 이 전의 삶을 사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이 생겼다. 가게들은 제한 없 이 영업을 하게 되어 한국은 다시 잠들지 않는 도시가 되었으 며, 그에 맞게 거리에도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 다. 조금씩이지만 우리는 다시 코로나 유행 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시작 했다. 하지만 집에서 회사나, 학교로 가는 것만큼은 코로나 시대 의 비대면 즉 언택트(Untact) 시대에 머물고자 하는 듯 보인다. 


언택트 시대는 이미 준비된 시대였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 연결이 가능한 5G 네트워크와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다양한 디바이스의 발전과 보급은 언택트 시대를 살아가기에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효율성을 비롯한 몇 가지 이유로 시행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 시대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로 인한 규제 가 풀린 지금도 언택트 삶을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실제로 혁신을 외치는 구글이나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서는 코로나 이전부터 언택트 업무는 조금씩 시행되기 시작한 문화였 으며, 금융혁신을 외치는 은행들 역시 핀테크(fintech)를 외치며 언택트 시대에 맞는 변화에 발을 맞추고 있다. 교육 역시 이전부 터 홈스쿨링(Home Schooling)과 같은 제도를 통해 학교에 가지 않아도 교육이 가능하다는 사례를 증명한 바 있다. 다만 천천히 진행된 언택트 문화에 코로나가 기름을 붓는 격이 됐을 뿐, 어린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미래의 모습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촌지 문화라 든가, 체벌 문화와 같은 악·폐습이 남아 있었다. 실수와 잘못 에 있어 인과관계를 따지기보다는 회초리나 손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것이 적어도 내가 살던 작은 세상에서는 보편적인 해 결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다행이었던 점은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국민 교육 헌장을 외우며 암기력을 검증받는 식의 교육 대신 변 화하는 미래에 대한 교육이 주를 이루었다. 지금에는 그 모습을 찾 기 힘든 엄청난 크기의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를 넣어 컴퓨터를 배웠고, 그다음 해에는 CD를 넣어 ABC송을 듣고 따라 부르는 등 돌이켜 보면 우습지만, 당시에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때 그리던 미래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휴가 행선지는 우주가 되었으며,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하고, 모든 일은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린 나에게는 허무맹랑하기 그지 없던 내용들. 그리고 나는 지금 그런 허무맹랑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성인이 되기까지 20년. 그사이 내가 살던 세상은 너무나도 변해 버렸다. 버스를 탈 때 더 이상 토큰을 내지 않아도 되었고, 집 전화를 사용해도 인터넷이 끊기지 않게 되었고, 돈을 송금하기 위해 은행에 가지 않게 되었다. 또 영화를 예매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영화관에 가서 표를 미리 사놓지 않아도 됐다. 이제는 스마 트폰 하나만 있으며 위에 나열한 것은 물론 다양한 일을 손쉽게 할 수 있는, 하나로 연결된 IoT(Internet of Things) 시대가 도래했다.

 

IoT 시대에는 Mp3도 App이 되었고, 카메라도 App이 되었다. 책도 App이 되었고, 은행이나 백화점도 App이 되었다. 기술은 우리 주위에 많은 것들의 이름을 App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혼자 백화점에서 옷을 사지 못하는 사람도, 배달 전화를 하지 못 하는 사람도, 길을 잘 찾지 못하는 사람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 으면 뭐든지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모든 일을 자립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 이라 칭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에게 편리함을 선사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진보된 기술로 인한 혜택 을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이렌 오더로 줄 서지 않고 커피를 받을 수 있으며, 비디오 대여점에 가지 않더라도 흘러간 영화 나 드라마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손 하나만 까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기에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어떤 영화가 재미있는지 묻지 않아도 인터 넷 후기나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통해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 받을 수 있고, 기사님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를 하지 않아도 택시는 알아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행한다. 나는 분명 모든 것이 연결된 시대에 살고 있다. 반면에 참 많은 것이 단절된 느낌을 더러 받는다. 이제는 옆집에 누가 살고, 윗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게 되었고, 주변 지인을 만나려고 하기보다는 메신저 를 통해 안부를 묻는 정도로 관계를 이어 나간다. 

 

발전하고 진화하는 모든 기술은 공익, 즉 모두가 편리함 삶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일보하였다. 모든 것이 과거보다 편리해 지고, 풍요로워진 현재를 면밀히 보면 ‘나’는 있지만 어디에도 ‘너’ 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손 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화면에 갇혀 살아가는 느낌이 간혹 들곤 한다. 양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우리는 좌우에 있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 마냥 살아간다. 

 

기술의 발전은 불가피한 영역이다. 5G 네트워크의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 환경으로 인해 지금 연구 중에 있는 많은 기술 이 상용화가 되고, 스페이스X가 우주에 몇 번 더 간다면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과거에 그리던 미래 사회에 살아갈 것이다. 다만 잊지 않았으면 한다.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친구와 만날 수 있던 그때를, 집 열쇠가 없어 옆집에서 부모님이 오시길 기다리던 때를, 길을 가다 목이 마르면 근처 가게에서 물을 마시 던 때를, 작은 스마트폰으로 연결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더 끈끈 하게 연결된 세상을 말이다.

 

간편하게 살 수 있는 기술이 우리의 관계도 간편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