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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09호] 근대 국가의 계보학자, 푸코

서동진(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


최근 우리는 새로운 푸코의 목소리를 경청하게 되었다.그것은 새로운 푸코의 초상과 함께 도착하였다. 그 푸코는 근대 정치 이성(합리성)의 분석가로서의 푸코이다. 이 때의 푸코는 에피스테메의 고고학자로부터 자아의 심미적 윤리의 전도사로서의 푸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한 인물처럼 보인다. 그것은 흔히 일군의 푸코 연구자들을 통해‘통치성’이론가로 특권화되기까지 한 푸코이다. 푸코는 이른바 통치성이란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근대 정치 이성의 대표적인 유형이라고 할 자유주의를 분석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작성하는 일이었다.푸코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자유주의 세미나 3부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세미나를 연속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세미나에서 이뤄진 강의와 대화가 묶여,『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영토, 안전, 인구』,그리고『생정치의 탄생』이란 제목으로 공간되었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이전과 이후의 푸코를 잇는 새로운 연결고리를 가지게 되었고, 근대 정치의 조건을 사유했던 희귀한 이론가로서의 푸코와 해후할 수 있게 되었다.

통치성과 근대 국가의 계보학

이 시기 푸코의 작업을 요약하는 개념을 꼽자면 이는 단연 통치성(governmentality)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근대 정치 이성(합리성)의 형성과 변모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개념적 탐침임엔 분명하지만 이는 완결적이고 정합적인‘이론’이라기보다는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을 위한 이론적 도구라고 보아야 옳다. 저 유명한 기율적 권력이란 모델을 제시했던『감시와 처벌』을 출간하고『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란 이름으로 묶인 세미나가 진행될 때까지 푸코는 권력에 대한‘바깥으로부터의 사고’에 충실하였다. 그것은 주권(혹은 권리)과 법이란 관점에서 권력을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리바이어던의 모델)과 거리를 두는 한편 권력의 기원적인 중심으로서 경제를 가정하고 계급지배란 관점에서 사고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었다. 이로부터 그는 18세기를 전후하여 서유럽사회는 시민의 권리를 성문화, 조직화하는 법률적인 코드와 사회적 신체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훈육 메커니즘을 결합시킨,‘주권적 권력과 훈육적 권력의 복합체’를 통해 지배되었다 주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관점은 그가 부정하려던 권력 모델을 단순히 전도시킨 것이란 점에서 상당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통치(성)이란 개념에 도달하는『영토, 안전, 인구』에 이르면서 푸코는 이런 과거의 권력 모델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통치는 권력의 세 가지 형태의 계기 가운데 하나로 파악될 때 효과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푸코는 지배, 권력의 게임 그리고 통치를 구분하면서 그가 분석하려고 했던 미시적 차원의 권력 작용을 권력 게임이라 부르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권력 관계와 제도를 지배라 하면서 그 사이에 통치를 놓는다. 통치란 간단히 말해 행동방식 혹은 행실에 대한 통솔(conduct of conduct)을 통해 권력이 작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차원을 통해 생산된다. 하나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주체화이다. 먼저 지식과 권력은 권력이 행사되고 작용하는 표면, 즉 그 대상을 구성하고 그 대상에 권력이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장치, 절차,계산의 형식 등을 두루 망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는 근대 사회의 통치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테크놀로지로서 안전기구, 그것이 작용하는 대상으로서 생물학적인 종으로서 다시 말해 생명을 가지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 보장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간 종(種)(인구), 그리고 이를 매개하는 지식 형태로서 정치경제학을 꼽는다.

다음으로 통치성은 주체화의 원리란 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푸코는 이에 큰 관심을 기울였는데,‘통치하다는 것’이 가리키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상당한 분석을 할애하였고, 그 결과가 히브리적인 전통에서 비롯되어 중세의 기독교적 서구를 경유하고 다시 근대 국가에서 통치란 형태로 변용된‘사목권력’에 대한 분석이다. 사목권력이란 군주와 신민이란 관계를 목자-양떼란 관계와 결합시키면서 개인, 가족, 공동체같은 다양한 삶의 현실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푸코는 사목권력이 훗날 국가에 의한 통치, 그가 정치적 통치, 혹은 줄여 그냥 통치라고 부를, 국가를 통한 권력의 작용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자유주의 통치성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으로의 이행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푸코는 근대 권력을 (군) 주권적 통치성에 대응하는 법률-사법적 체계, 기율 메커니즘 그리고 안전기구로 구성된 것으로 분석한다. 법률- 사법적 체계는 법적 코드를 통해 확정된 허용과 금지의 이분법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기율 메커니즘은 특정한 성향이나 기질, 행위 습관, 신체적 특성을 가진 인간형을 생산하고 이를 감시, 진단, 교정하는 광범위한 기술과 결합시키면서 작용하는 권력 형태이다. 반면 안전기구는 문제가 되는 현상을 개연적 사건들 속에 끼워놓고 이를 비용의 계산속에서 평가하고 대응시킨다. 금지와 제재, 감시와 기율이란 방식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평균치를 산정하고 그 반경 안에서 인구-시민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근대 권력의 지배적 형태인 자유주의적 통치성은 역사적인 변화를 겪는다. 푸코가 신자유주의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런 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역사라는 관점에 바탕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푸코가『영토, 안전, 인구』이후에 진행한『생정치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 푸코는 제3공화국, 나치즘의 등장을 전후로 하여 독일에서 등장한 프라이부르크 학파, 질서자유주의자로 불리기도 하는 초기의 신자유주의와 우리가 흔히 시카고학파라고 부르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분석한다. 신자유주의는 기존의 자유주의의 ‘실패’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새로운 통치성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 놓인 거리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을 사회적 신체의 지형학이란 렌즈를 통해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통치성의 특징은 경제적 삶의 세계와 거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사회(적인 것)’를 고안하고 이를 국가가 상대해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자연화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질서란 관점에서 사회를 통해 시장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구상하며 국가가 그런 사회 형성의 책임을 가진다고 보았다. 반면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미국발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삶의 세계는 물론 교육, 보건, 복지와 같은 종래 사회적 삶의 세계로 생각되었던 영역을 기업화하고 주체를 기업가적 주체 혹은 기업가적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개인, 집단, 조직, 사회체로 주체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와 사회 사이에 놓인 거리는 사라진다.

푸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 놓인 도약점

흥미롭게도 푸코는 지금 우회한 채 도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푸코를 읽어야 하며 이것이 유용함을 주장할 때 우리가 마주하는 푸코는 회피할 수 없는 부정적인 준거점으로서의 푸코이다. 이를테면 발리바르가 해방, 변혁 그리고 인륜성의 정치로 근대 정치의 세 가지 성분을 말할 때, 푸코는 변혁의 정치를 사유한 사상가로 마르크스와 맞먹는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랑시에르의『불화』에서도 푸코는 역시 음화처럼 존재한다. 그가 민주주의를 행정관리(police)로부터 분리하고 본연의 정치라 부를 수 있을 것의 정체성을 세공하려고 할 때 근대 국가의 통치화를 분석한 푸코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이는 바디우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네그리의 푸코와는 완연 다르다. 제국의 생정치적 생산을 분석하기 위해 참조된 푸코는 긍정적인 푸코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참조점으로 서의 푸코가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이때의 푸코는 오류의 푸코가 아니라 외려 정치적 사유의 한계라는 지점에서 있는 이론가로서의 푸코일 것이다. 착취와 예속을 넘어서는 해방의 정치를 사유하기 위해 우리는 푸코가 제공한 근대 정치의 조건에 대한 분석을 피할 수 없고 또 그 위에서 도약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정치의 조건을 반성하는 일을 경유하지 않은 채 정치를 재발명한다는 것이 어렵다면, 당연히 푸코는 참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