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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18호] 중국 역사문화탐방을 다녀와서 본문
오승진 (서강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상해의 역사적 이중성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2011년 하계 중국역사문화탐방은 상해(上海), 항주(杭州), 소주(蘇州)의 세 곳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지역은 상해라고 할 수 있다. 상해는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그러나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문명을 염두에 둔다면, 상해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된 것은 200년도 안 되기 때문에 중국사를 상징하는 역사성을 갖춘 곳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근현대사에 있어 상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한국의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처음으로 세워진 곳으로 한국독립운동사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사적 장소이다. 따라서 중국역사의 긴 호흡에서 상해는 별다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지만, 근현대사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러한 상해의 특징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역사에서 가지는 상해의 역사적 이중성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역사적 이중성은 상해의 여러 모습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이번 탐방에서 느낄 수 있었다.
상해는 남송(南宋)시대 이후로도 항주와 소주보다 중요한 도시는 아니었다. 그러나 남중국의 무역활동이 활발해진 가운데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의 결과로 청과 서양열강이 남경조약을 맺으면서 상해가 서양에 개항하였다. 그 때부터 상해에 서양 각국의 조계지(租界地)가 들어서면서 상해는 일약 중국근현대사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했다. 이러한 이유로 상해는 중국에서 서양문물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 되었고 서양식 건물도 많이 들어서게 되었다. 치외법권 지역인 서양의 조계지는 처음에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상징하는 곳이었지만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 된 이후에는 그에 저항하는 제일선이 되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위치한 곳도 상해의 프랑스 조계지였다. 또한 상해는 중국공산당의 성지이기도 하다. 올해로 창당 90주년을 맞이한 중국공산당이 창당을 위해 모였던 중국공산당 제1회 전국대표대회가 바로 상해에서 열렸던 것이다. 현재 상해에서 최신식의 쇼핑가로 꼽히는 가장 인기 있는 카페촌인 신천지(新天地)에는 중국공산당 제1회 전국대표대회 회지(會址)가 있다. 프랑스 조계지였던 곳인 신천지는 가장 서구화된 거리인 동시에 중국공산당이 탄생한 곳이다.
상해는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을 상징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오랜 문화적 역량과 역사를 상징하기에는 버거운 도시이기도 하다. 상해는 중국의 근현대사에서 서양의 문물이 가장 먼저 수입된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식 사회주의가 태동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해가 가지는 이중성은 상해박물관이 상해는 배제하고, ‘중국’만을 드러내기 위한 전시 구성방식을 택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역사문화탐방에 대한 몇 가지 제안
필자는 이제 수료생이기 때문에 앞으로 참가할 기회가 없겠지만, 총학생회에서 주최하는 역사문화탐방에 대해 후배들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번 역사문화탐방의 경우 미리 답사지도를 만드는 등의 사전준비가 이전에 비해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시의성에 맞춘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둔 일정이었음에도 그러한 부분을 탐방계획에서 고려하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더불어 여행사와 현지 가이드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주제의식이 명확한 역사문화탐방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비용과 사전준비 등의 여러 문제 때문에 여행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대학원생들이 가는 탐방이면 일반적인 관광코스와는 다른 확실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또한 기본적으로는 단체로 움직이지만, 상황에 따라 개인적으로 또는 조별로 다른 일정을 짜는 것도 좋을 듯하다. 즉, 도시 간 이동 등은 단체로 움직여야겠지만 도시 내의 일정 중에는 배낭여행처럼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안전사고의 위험 등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참가한 대학원생들의 전공이 다양한 만큼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다양할 것이고, 가이드의 도움 없이 현지에서 움직이는 것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 활동이 끝난 후 저녁시간에 함께 모여 자신들이 어떤 코스로 다니면서 무엇을 봤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면 매우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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