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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120호] 여전히 반복되는 교수들의 성폭력

dreaming marionette 2012. 4. 10. 21:27

여전히 반복되는 교수들의 성폭력

고려대 대학원생들의 성폭력 피해 주장으로 다시금 주목받아

가해교수에게 관대한 제도부터 개선해야

 

조성호 기자

 

 

   지난 319, 고려대학교에 붙은 하나의 대자보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성폭력과 착취를 일삼는 H교수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글에서 해당 대학의 대학원 총학생회가 폭로한 사실은, 한 대학의 특수성을 넘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관계의 적나라한 실태라 할 수 있다(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홈페이지 참고). 1주일 후, 2차 대자보는 가해교수에 의한 학생들의 2차 피해를 우려하며 학교 측의 조속한 대응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악재가 대학에서 다뤄진 그간의 관례에 비춰보면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고려대 의대생들의 성폭력 사건만 하더라도, 학교 측은 사건 발생 후 4개월이 지난 뒤에야 가해학생들에게 출교처분을 내렸고 이후 전개된 소송에서 가해학생들이 상고하여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러나 학생 사이에 발생한 성폭력에 비해, 교수와 학생(특히 여성 대학원생) 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은 남성이라는 권력뿐 아니라 교수라는 지위 및 대학이라는 집단의 권력이 동시에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게 사실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10대 성폭력 사건>으로 서울대 사건(1993)을 꼽았다(여성신문, 201148). 가해교수에 맞선 조교가 6년간의 소송 끝에 승소한 이 사건은 교수 권력에 대한 경각심을 공론화함으로써 성폭행 관련법을 제정하는 데 기여하였다. 서울대 외에 거명된 나머지 대학은 동국대와 서강대이다. 정부 유관기관과 학교 측이 진상규명과 처벌과정에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서강대 영상대학원의 K교수(재직 중)는 사건이 발생한 200110월 이후 해를 넘겨서야 징계(정직 3개월)와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2003년 복직 후 2차 가해로 결국 그 해 8월 해임되었다. 또 서강대 국문과 H교수는 20035월 학부생에게 성폭력을 가해 같은 해 7월에 파면되었다. 하지만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이하 재심위)는 징계수위를 낮춰 K교수와 H교수에게 각각 정직 3개월과 파면취소를 결정했다(<서강대 김 교수 사건, 서로 다른 두개의 시각>, 오마이뉴스, 2003123).

   애초 재심위가 가해교수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곳은 아니었다. 재심위는 1991년에 제정된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법의 목적은 교원에 대한 예우와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을 강화함으로써 교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육 발전을 도모하는 것(1)”이다. 그런데 2005년에 개정된 법에 따라 재심위의 명칭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로 바뀌었다. 재심위가 교원의 권리구제가 아닌 징계를 위한 기관으로 인식된 데다 대학교원 재임용 거부에 대한 심사가 주요 업무로 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교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마련된 제도가 범법행위를 저지른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식으로 악용된다는 점이다. 학칙에 의한 징계처분에 반발해 복직이나 징계취소를 도모하는 사례들이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뒤집기, 이매진, 2011; <성폭력 교수들이 돌아온다고?>, 한겨레신문, 2004129; 김김보연, <대학강단에 성폭력을 허()하라?>, 월간말 213, 2004, 108-111).

   결국 대학 내 성() 관련 사건의 본질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 구조이다(<성추행 교수는 두려울 게 없다?>, 미디어오늘, 2010928; <대학원생 우린 여전히 지도교수의 노비”>, 경향신문, 2012112). 특히 여성 대학원생은 그러한 권력관계에서 더더욱 자유롭지 못하다. 대학 내에 성폭력 학칙이 제정되고 학내 상담기관이 생겨난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그리고 더 교묘하게 성폭력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의 낮은 의식 수준뿐만 아니라 법적 구속력의 결여 그리고 주변인들의 방관까지,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문제는 단지 어느 한 측면의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를 피해자의 위치로 둔갑시키고 진짜 피해자를 외면하는 부조리한 제도라 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엄연히 다른삶을 살고 있을 뿐 아니라(<술자리 폭력 대처 설명서>, 한겨레신문, 201242) 끊임없이 다른삶을 살도록 종용받고 있다. 그리고 대학원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