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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20호] 등재지 제도 폐지 이후 학계에 불어닥친 침묵의 봄 본문
등재지 제도 폐지 이후 학계에 불어 닥친 침묵의 봄
교과부의 학술지 평가 개선 방안 발표 이후 너무나 조용한 4개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우수 학술지 가능한 지 치열한 토론 필요해
조성호 기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 부설연구소인 법학연구소에서 1999년부터 발간한 학술지 「서강법학연구」는 2010년 6월 제12권 1호를 마지막으로 자체폐간 되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에 대한 국정감사를 통해 학술지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교과부와 연구재단은 2010년 10월 말부터 서강대 로스쿨에 조사팀을 보내 실태조사를 벌였으나 학교 측은 자료제출을 거부하였다. 결국 두 달여 뒤 학술지는 자체폐간 되고 법학연구소장도 보직에서 물러났다. 서강대를 계기로 전국 대학의 로스쿨 20곳에서 발행하는 21종의 등재·등재후보지가 조사를 받게 되어 그 중 7종은 등재 취소, 5종은 경고, 9종은 주의 조치가 결정되었다. 그 후 연구 실적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 해당 학술지에는 논문 투고가 급감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었다.
‘로스쿨 학술지 파동’ 이후 한국 학계의 현 주소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보도가 이어졌다. 2011년 4월 20일과 21일, 그리고 5월 19일 동아일보는 기획기사를 통해 학계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연구재단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당시의 분석은 학계에서 생산되는 논문의 질적 향상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술지 등재 제도’(이하 등재 제도)에 따른 현행 학술지 등급의 실효성 자체를 문제 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중앙일보가 2011년 8월 21일 단독 입수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술지 평가제도 개선안’은 한국 학계의 지각변동을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등재(및 후보)지의 논문 심사와 관리 실태를 조사한 결과 7종이 퇴출되고 40종이 경고 조치되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 7일 교과부는 개선안을 공식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교과부가 배포한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학문 연구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제도 정비 방안의 골자는 1998년부터 시행된 등재 제도의 폐기라 할 수 있다. 정부 산하의 연구재단에 의한 학술지 평가를 학계의 자율평가 체제로 전환하고, 소수의 우수한 학술지를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학계의 혼란을 막기 위해 등재 제도는 3년간의 이행 기간을 거쳐 2014년 12월 말에 폐지될 예정이다. 당장 올해부터 등재(및 후보)지 신규선정은 중단되었다. 교과부는 등재 제도 실시 후 급격히 증가한 학술지 중 2012년에 10개, 2013년에 15개, 2014년에 20개의 우수 학술지를 선정해 매년 1억5000만원씩 5년간 지원할 예정이다. 이러한 정책 전환에 대한 자문을 위해 2011년 1월에 구성된 학술진흥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왕상한(서강대 법학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논문의 양으로 평가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며 “질적 평가로 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교수들 ‘실적 쌓기용’ 학술지 등재제도 없앤다>, 동아일보, 2011년 12월 8일).
등재 제도의 폐지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한 공청회에서 왕 교수는 등재 제도의 문제점으로 ‘학술성 훼손’, ‘학술지의 하향평준화’, ‘평가집행 및 결과적용의 어려움’ 등을 근거로 꼽았다. 그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정부가 학술지의 세분화를 조장하고 난립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학술지 평가지표가 대부분 형식적인데다 규제적 속성이 강해 깊이 있는 연구보다 오히려 ‘단타 연구’를 장려한다고 지적했다. 또 평가집행에 대해서도 “기관 편이의 평가제도가 평가를 준비하는 학술단체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여 ‘일탈행위’를 촉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학술성 훼손하는 평가제도 폐지하자”>, 교수신문, 2011년 8월 29일). 그러나 그 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재춘(영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재 제도를 대신할 어떤 제도도 평가주체와 평가기준, 선발방식, 지원예산 및 성과에 대한 평가방식 등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술지 평가가 결국 등급화의 문제라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모(母)학회에 위탁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교과부의 공식발표 이후 지난 4개월여 동안 학계의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학계 차원의 개선 노력이나 치열한 논쟁 같은 ‘위기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혹자는 자율화 방안의 근본적인 장벽이 연구자들의 무관심과 편법 우선의 관행이라고 지적하며 학술지 편집위원장 협의회 설립을 제안했다(<학회 자율성 회복의 기회다>, 교수신문, 2011년 12월 19일). 또 다른 이는 정부의 정책이 학문 생태계의 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인용지수 같은 ‘논문식 글쓰기’ 위주의 평가 외에 다양한 평가항목의 마련이 필요함을 역설했다(<인문학 생태계 획일화는 안 된다>, 교수신문, 2012년 1월 2일). 지난 2월,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가 주관한 토론회에서는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부족한 정책이 지적되면서 기존 제도의 소규모 유지 또는 제도 폐기의 속도조절이 거론되기도 했다(<“학술지 등재 제도 점진적 축소를”>, 교수신문, 2012년 2월 13일).
그간 연구재단의 관리로 오히려 학문의 몰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 한국 학계의 현실이다(고부응, 「문화과학」, 2012년 봄호, 262-271쪽). 이런 상황에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단칼에 무 자르듯이 제도 하나 없애면 학술지의 질적 향상과 학계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낙관적 예측은 지나치게 단순한 정책적 접근이 아닐까? 학술지의 부실한 관리를 엄중히 꾸짖는 연구재단 역시 비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3년간 445억 날린 한국연구재단>, 중앙일보, 2011년 10월 18일). 2009년 6월 출범 이후 이사장들의 임기가 1년을 못 넘기는 연구재단에 한국 학문의 미래를 맡기는 게 못내 불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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