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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59호] 경쟁은 음악 예능의 장르인가? 엠넷 경연 프로그램이 남긴 것

양아라 기자 

 

 경쟁은 예능 프로그램의 틀을 만드는 장르가 되었다. 1995년 개국한 음악 전문 채널인 엠넷(Mnet)은 경연 프로그램의 장르를 ‘경쟁, 음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엠넷의 대표 경연 프로그램은 2009년 당시 케이블방송 역대 최고 시청률인 7.7%를 기록했던 <슈퍼스타 케이(k)>이다. 전국 오디션을 통해 신인가수를 발굴했던 슈퍼스타 케이는 2016년까지 약 8년간 시즌제로 방영됐다. 엠넷의 경연 프로그램은 크게 힙합, 춤(댄스), 아이돌 경연 대회 등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힙합 경연 대회는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언프리티랩스타가 대표적이다. 엠넷의 최장수 힙합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2012)>는 첫 방송 이래,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쇼미더머니에서 파생된 프로그램(spin off)인 <언프리티랩스타(2015)>는 여자 래퍼들의 경쟁을 그리며, 시즌 3까지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에서 “우린 팀이 아냐. 이건 경쟁이야(We are not a team. This is competition)”라는 래퍼 제시의 말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10대 래퍼들의 경연 대회 프로그램인 <고등래퍼(2017)>는 시즌 1을 시작으로 올해 시즌 4까지 방송됐다.

 

10년을 맞이한 ‘쇼미더머니’, “이제 변할 때가 되었다”

 쇼미더머니는 언더에서 활동하는 실력 있는 래퍼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 등용문이 됐다. 특히 힙합 문화의 디스(dis) 배틀은 쇼미더머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문이자 경연의 하이라이트가 됐다. 올해 <쇼미더머니10> 미션 무대에서 선보인 곡들은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쓸기도 했다. 쇼미더머니10에서는 공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일부 심사위원의 무성의한 예선 심사 태도 논란이 일었다. 또한, 60초 비트랩 미션 중 랩을 다하지 않고 비트를 꺼달라고 말하며 욕설을 한 참가자를 합격시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프로듀서 팀 미션으로 진행된 ‘음원 미션’에서 팀 내 탈락자가 발생했다. 프로듀서 코드쿤스트(코쿤)는 “탈락자도 음원에 넣어주면 어떨지”라고 제안했고, 다른 프로듀서들도 적극 동의하며, 제작진에게 탈락자 음원 참여를 건의했다. 코쿤은 “항상 아쉬웠던 게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이 사람들이 모두가 참여한 그 감동”이라며“ 쇼미10이면 이제 변화할 때도 됐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쇼미10에서 최초로 탈락자들의 랩도 팀 음원에 포함되었다. 탈락자들이 비록 아쉽게 쇼미더머니를 떠나지만, 음악 기록인 음원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여성 댄서 크루 경쟁 ‘스우파’,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방영 초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스트릿 우먼 파이퍼(스우파, 2021)> 전에도 엠넷은 춤 경연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댄싱 나인(9)>은 2013년 시즌 1로 시작하여 2015년 시즌 3까지 방영된 춤 경연 프로그램이다. 스우파는 국내 스트릿 여성 댄서 크루의 경쟁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워스트 댄서 지목 배틀, 노 리스펙트 댄서 지목 배틀이라는 명칭과 달리 이들은 경쟁하고 싶은 사람들을 지목했다. 참가자들은 치열한 경쟁이라는 제작진의 밑그림과 달리 함께 연대하는 축제로 프로그램에 자신들의 색을 입혔다.

 

 스우파의 빛나는 무대 퍼포먼스에 따라다니는 그림자는 공정성 문제였다. 첫 번째는 배틀 공정성 논란이다. 두 댄서가 배틀을 할 때 같은 음악이 아닌 서로 다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췄다. 두 번째는 심사위원 자격 논란이다. 에스엠(SM) 기획사의 전속 안무가와 소속 아티스트가 심사위원격인 파이트 저지를 맡았다. 이들의 평가가 배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댄서가 아닌 가수에 평가가 공정한가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특히 댄서 제이 블랙 등 다른 전문 댄서들의 평가가 달랐기에 시청자들의 불만은 높아졌다. 세 번째 메가 미션, 맨 오브 우먼 미션에서 일부 팀이 댄서가 아닌 연예인을 섭외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예인을 섭외할 경우 대중 평가에서 유리할 수 있기에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한 전략이었다. 이에 프라우드먼의 리더 모니카는 “댄서끼리 배틀하는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랑 싸우는 게 웃기다. 여기서도 뒤에 서게 생겼다. 직업에 대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생각 못 하나”라고 일침을 놓았다. 공정한 투표가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됐다. 엠넷은 투표 마감일 전 모든 팀의 무대를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고 일부 팀 무대만 공개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엠넷의 경연 프로그램들은 ‘악마의 편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이는 공정한 편집, 즉 경쟁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듯한 악의적인 편집과 통편집과 같은 방송 분량 차별에 대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 방송은 퍼포먼스를 완성하기 위한 댄스 크루들의 노력과 제작진의 노고가 담겨있었다. 가수 뒤에서 춤추는 댄서가 아닌, 댄서들을 재조명하며 무대 앞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댄서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유는 단순히 우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실력 있고 춤을 사랑하는 댄서들이 많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댄서들의 실력과 개성, 춤에 대한 사랑과 열정, 끈끈한 팀워크 등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연예기획사 신인 아이돌 그룹 데뷔 통로

 엠넷 채널을 비롯해 16개의 방송 채널을 운영하는 씨제이 이엔엠(CJ E&M)은 미디어 사업, 커머스 사업, 영화사업, 음악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에는 오티티(OTT) 플랫폼인 티빙(tving)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전속 아티스트 및 서브 레이블을 확대했고, 방송 채널 엠넷과 연계한 음악 방송 프로그램 등은 음반ㆍ음원 제작 및 콘서트 사업에도 높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은 박재범 사이먼도미닉(쌈디)가 소속된 에이오엠지(AOMG), 다이나믹듀오가 소속된 아메바 컬처, 식케이와 피에치원(PH-1)이 소속된 하이어뮤직레코드,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청아가 소속된 MNH 엔터테인먼트, 에버 글로우가 소속된 위에화엔터테인먼 트코리아 등에 투자·지원·협업을 하고 있다. 엠넷의 경연 대회 프로그램은 이들 레이블 및 소속사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음악사업 전략으로서 이윤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엠넷이 주력하고 있는 경연 프로그램은 신인 아이돌 그룹 데뷔이다.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은 프로젝트형 아이돌 데뷔형,
특정 기획사 신인 아이돌 그룹 데뷔형, 아이돌 그룹 퍼포먼스 경쟁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 시작은 특정 기획사의 연습생들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와이지(YG) 엔터테인먼트는 <윈(WIN, 2013)>, <믹스 앤 매치(MIX & MATCH, 2014)>를 통해 소속사 연습생의 경쟁을 보여주며 남성 아이돌 그룹인 ‘위너’와 ‘아이콘’ 결성을 알렸다. 제이와이피(JYP)는 <식스틴(SIXTEEN, 2015)>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를, 더블킥(DOUBLE KICK) 엔터테인먼트는 <서바이벌 모모랜드를 찾아서(2016)>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 ‘모모랜드’의 결성을 알렸다. <아이랜드(I-LAND, 2020)>는 씨제이 이엔앰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3년이라는 시간동안 약 200억을 투자하여 공동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두 기업의 합작 회사인 빌리프 랩 소속의 남성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ENHYPEN)’가 결성됐다. 엠넷은 아이돌 그룹의 퍼포먼스 경연 프로그램도 선보여 왔다. 여성 그룹의 퍼포먼스 대결을 그린 <퀸덤(2019)>, 남성 아이돌들의 무대 경선을 보여준 <로드 투 킹덤(2020)>, <킹덤: 레전더리 워(2021)> 프로그램이다.

 

‘프로듀스 시리즈’ 투표 조작 사건, “모두가 패자가 되고말았다”

 엠넷의 대표적인 아이돌 경연 대회는 국민 프로듀서인 시청자들의 선택(Pick)을 받아 데뷔하는 <프로듀스> 시리즈를 들 수 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프로젝트형 아이돌’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서 데뷔 전에 연습생을 홍보하고, 신인 그룹의 팬덤을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프로듀스 101>은 연예기획사의 연습생과 일반 참가자 등 101명이 모여 경쟁하고, 시청자들의 선택으로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즌1(2016)에서 여성 그룹 ‘아이오아이(I.O.I)’, 시즌 2(2017)에서 남성 그룹 ‘워너원(Wanna One)’이 결성되어, 각각 8개월, 1년 6개월을 활동했다. 시즌3인 <프로듀스 48(2018)>은 한국 프로듀스 101과 일본 AKB48 시스템 결합하여 한일합작 여성 아이돌 그룹인 ‘아이즈원’을 결성한 프로그램이다. 아이즈원은 2년 6개월간 한일 양국에서 활동했다. 시즌 4인 <프로듀스 X 101(2019)>에서는 5년간의 활동 기간을 보장받은 엑스원(X1)이 구성됐다. 엑스원은 데뷔 앨범 초동 50만 장을 넘겼으나, 엠넷의 투표 조작 사건으로 인해 2020년 1월 6일 공식 해체됐다.

 

 경연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진정성을 훼손하고 꿈을 가진 연습생들의 데뷔 기회를 박탈하는 범죄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에 의해 처음 문제 제기가 됐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국민 프로듀서를 표방했던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와 연습생들의 노력을 기만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당 시리즈를 제작 한 안 모 피디와 김 모 씨피는 생방송 경연 투표를 조작해 순위를 임의로 바꾸고 특정 후보자를 합격시켰다. 안 씨는 2년간 연예기획사 관계자로부터 40여 회에 걸쳐 약 4,700만 상당의 유흥업소 접대를 받은 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 연습생 12명의 이름을 공개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될 수도 있었던 오디션의 결과는 참담하게도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업무방해 및 사기 등의 혐의로 각각 징역 2년, 추징금 3700여만 원과 1년 8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올해 만기출소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씨제이이엔엠에 총 1억 2000만 원 과징금을 부과했다. <아이돌 학교> 문자투표 조작 사건에 연루된 엠넷 소속 김 모 씨피는 업무방해 및 사기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아이돌 학교(2017)>는 소속사가 없는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여성 아이돌 그룹 데뷔를 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성 아이돌 그룹인 프로미스나인이 결성되었다. 투표 조작 사건 이후에도 엠넷은 아이돌 데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양산하고 있다. 올해에도 한·중·일 99명이 참가한 <걸스플래닛999: 소녀대전(2021)>이 방영되었고, 여성아이돌 그룹 케플러가 구성됐다.

 

 경연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은 심사 기준과 평가 규칙 등 경쟁의 기본적인 조건을 설정한다. 제작진의 일관된 선택과 판단은 경연 참가자들이 뛰는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기초적인 작업이다. 한쪽으로 쏠린 기울기로 참가자들의 꿈과 도전이 좌절될 수 있으며,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경기에 실망하며 떠나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제작진의 태도는 경연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경연 프로그램은 우승자와 탈락자를 나눌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시청자들과 함께 경쟁의 과정과 의미를 구성한다. 시대에 맞는 공정성 개념과 일관된 심사 기준이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