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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67호] 겨울 독서

 

[출처: pixabay]

북규

https://in.naver.com/gngn3660

 

안녕하세요. 저는 도서 전문 인플루언서 북규이자 독서 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천홍규)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에게 책이란 하나의 두꺼운 배게 같았고 정말 가지기 싫었던 취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렇게 책과 동반하며 삶을 살아가게 된 이유를 묻자면여러가지 이유 중 대표적으로 하나가 있습니다. 아마도 몇 년 전에 있 던 나태함과 각박한 삶에서 구출 받고 싶어 책에 다가갔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막상 생각해 보면 그런 사소한 도전 덕분에 지금의 제 삶으로 변화할 수 있었고 한층 더 발전될 수 있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늘 책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그렇다 보니 책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고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레 제 행동마저 조심성을 심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시집을 읽으면서 동시에 시를 쓰곤 합니다. 뿐더러 열망하는 공모를 집착하여 달성하기를 희망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독서의 즐거움]

하나의 책을 펼침과 동시에 닫히기까지 그 속에 열차선이 있다고 가정 한다면 나의 감정은 분화구처럼 치솟는 분노, 심해까지 치닫는 슬픔, 푸른 초원에 해맑은 안락함, 큰 나무 아래 그늘에서 쉬는 아늑함, 붉은 노을이 주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따듯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있다. 이런 것을 나는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즐겁다고 해서 마냥 웃거나 헤프게 짓는 미소라고 정의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생 각한다. 반대로 독서의 심심함은 존재할까. 물론 존재한다. 나에게 맞지 않거나. 내용 자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거나 등이 있다. 충분히 심심할 수 있다. 읽어 가야 할 길들이 가파른 언덕이 많아서 쉽게 넘어질 것이 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다 중간에 포기하거나 거리를 두진 않았다. 그런 심심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책이 주는 즐거움이고 끈기와 자 신을 향한 테스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오기가 생겨 끝까지 읽어 나갔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향한 성취감을 표현했고 잇따라 블로그에 작성할 인상 깊었던 장면과 총평에 빠짐없이 내가 느꼈던 감정과 솔직한 나의 평가를 적었었다.

독서의 즐거움

요즘 들어 시집을 자주 읽고 있다. 시집에는 늘 풍기는 감정들의 냄새가 담겨 있다. 각 개인의 작가 특성들과 필력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들이 있기에 오히려 그걸 발견하고 해석할 때마다 그 감칠맛들이 좋았다. 소설에서 받는 즐거움도 있다. 에세이와 산문에서는 더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나는 에세이보다 산문 책을 더 선호한다. 에세이와 산문을 두고 비교를 해보았을 때 위로받고 싶은 한 권의 책과 위로를 해줘야 할 것만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얼핏 보면 차이점이 모서리처럼 보인다. 그리고 두 권이 주는 즐거움 또 한 다르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그간 힘들었던 나의 연약해진 마음이 허물을 벗어 다시 단단해지는 과정을 밟을 수 있고 또 어쩌면 에세이의 힘을빌려 힘들어 하는 영혼을 구원해줄 수 있다. 반대로 산문을 읽다보면 이 작가가 어떻게 삶을 경험해왔고 그 경험들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깨달았는지와 크고 작은 미련과 후회 그리고 꼭 기억해야만 하는 추억들이 담겨있다. 작가들의 산문은 그렇다. 울부짖음과 회개가 보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감정들을 느끼게 된 것과 해석할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독서의 즐거움이다. 소설 또한 즐거운 쾌락의 늪이 다. 나는 소설의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나의 열 손가락은 기대에 빠져 있다. 이번엔 나를 어떻게 슬퍼해 주지/이번엔 나를 어떻게 분노하게 해 주지/이번엔 나를 어떻게 통쾌하게 해주지라고 책의 겉면 표지들이 빤히 나를 쳐다보는것만 같았다. 그렇게 책의 입을 벌려 글이라는 이빨을 읽으면 그때부터 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독서에 빠지게 된다. 그 래서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 무서우면서 한편으론 빠져나올 수 없는 조그만 어항 같기도 하다.

 

[겨울에 어울리는 책]

겨울에 어울리는 책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한강 작가의 작별을 알리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많은 눈물과 긴박함 그리고 애절함과 처절함 더 나아가 눈물, 한탄, 그리움, 이별 조금 더 가서 영원을 느꼈다.

 

블로그에 적었던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한다.

 

“녹아 가는 그녀는 전화를 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동생에게 평소에 길게 통화하지 않은 그녀는 오늘따라 질문을 한다. 아픈 곳 이 있으면 병원 가라... 자신이 부모인 마냥 잔소리를 늘어뜨린다. 남동생과는 어색하다. 작은 트러블이 있어서 누나인 그녀가 죄책감 을품고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행동하는 순서 중 하나이다. 이 부분을 잘 알기에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해내려 하는지 보인다. 슬프다. 슬픔 그 자체다. (P43-44를 보고 느낀 점)”

 

라고 나는 말했다. 사람이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주변 지인들에게 사과한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에 나쁜 마음을 먹은 그녀가 너무 비통해 보였고 그 누구보다 슬픔 속 어느 해류에 떠내려가 는 하나의 나뭇잎이라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총평까지 작성했다.

“역시 한강 작가다운 글이 보인다. 인간이라는 생물을 가만히 놔두지 않은 채 자신의 개성껏 차원을 이동하듯 정상적 인간을 손질한다. 사람을 눈사람으로 표현하는 걸 뒤로 미루고, 『작별』의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슬픔도 공존하겠지만 오히려 가슴을 죄여 오는 맛이 있었다.

현규 씨는 왜 녹아 가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잡지 않았을까... 문득 떠오른다. 순순히 아픈 그녀가 더 이상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서일까... 아니면 그녀가 녹아 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은 걸 눈치껏 알 기에 가만히 있었던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현수는 그녀에게 코트를 건네주었으면 안 되었다.

여기서 더 문제는 아들이다. 성장기가 지나고 예비 고등학생인 아 들은 무심하게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면 아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단언컨대 슬플 수밖에 없다고 치부한다. 성인이 될수록 부모와 어색해지는건 대한 민국 평균일 수 있다. 그걸 염두에 두고 아들은 ‘사랑해’ 한 마디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가까스로 뒤를 돌아보았다. - 본문 중’ 마지막을 이루는 말 이다. 이 한 문장이 많은 해석을 일으킨다. 눈이 완전히 녹아 전에 있던 자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라면 녹고는 물이 되어 돌아본 것인 가. 나는 전자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 중 해피 엔딩으 로 끝나는 소설은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약간 희망을 품는 해석으로 마 무리하려 한다,”

라고 나는 말했다. 불과 작년 3월에 읽었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소설의 생생함은 그 무엇의 선명한 색깔보다 더욱 깊었다. 만약 조금 더 겨울에 가까운 날에 읽었더라면 그해의 겨울에서 나는 벗어나 지 못한 채 슬픈 사체로 살다 햇빛에 깨어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겨울에 어울리는 책이고 한강 작가를 좋아하시거나 겨울에 소설을 꼭 읽 어 보고 싶다면 극구 이 책을 추천한다. 절대적으로 가볍게 읽으면 안 되는 소설이고 절대적으로 만만하게 시작해야 할 소설이 아니다. 겨울 이라고 해서 상대적으로 추우니깐 맑고 따듯한 책을 소개해 주는 것보 다 더 차갑고, 더 냉랭하며 더 겨울을 직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그 소설을, 책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