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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8호] 우리가 놓치고 있던 서울의 건축이야기

우리가 놓치고 있던 서울의 건축이야기
- 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건축물, 꿈마루 -

하스스튜디오 대표 김현정

 

Photo by 정선우

 

멋진 건축이란 무엇인가?

 

‘서울에 가볼 만한 멋진 건축물을 추천해주세요’ ‘우리나라에는 외국처럼 멋진 건축물이 많이 없지 않나?’
우리나라 건축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건축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많이 듣게 되는 질문들이 있다. 이 질문들의 중심에는 ‘멋진 건축’이라는 근본적인 단어가 늘 고심하게 만든다. 과연 멋진 건축물이란 무엇일까?

 

처음에는 디자인이 근사하고 독특한 건축물이 멋진 건축물이 라고 생각했다. 건축물이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진다면, 그 건 축물이 멋지다고 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건축은 아름다운 외관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의 생활을 담는 그릇이기에 공간의 사용성과 기능성, 그리고 지역의 역사와 환경 등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는 건축이 일반적인 예술과는 다른 분야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멋진 건축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수많은 건축물 주변과 그 속, 공간에서 삶을 살아간다. 건축은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공간은 누구에게나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다. 그 공간 속에서는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은 공간을 지나온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기억과 추억이 깃들게 된다. 때문에 건축 은 설계자가 의도했건 안 했건에 상관없이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생활, 주변의 역사와 문화, 환경이 깃든 시간 속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서서히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건축을 알아가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 그 사람의 겉모습을 넘어서 지나온 시간 속 살아온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멋진 면모를 느끼게 된다. 멋진 건축이란 결국 시간과 이야기가 건축물의 공간 속에 쌓일 때 그 멋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시간의 흔적이 쌓인 건축물의 사연

 

우리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소풍이나 사생대회의 장소로 인기가 좋았던 공원이 있다. 이름조차 어린이를 위한 공원인, 광진구의 어린이대공원. 옛 기억을 반기는 기와지붕의 어린이대공원의 정문으로 들어와 분수대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나무 사이로 ‘꿈마루’라는 조그만 이름이 새겨진 길쭉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보인다. 많은 시간의 흔적을 담은 듯한 외관을 담쟁이덩굴로 감싸고, 자신의 거친 골조를 감추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이 뭔가 범상치 않다.

 

꿈마루는 건축 여행을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해줄 만큼 공간 자체에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다. 건물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시간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음이 느껴진다. 어딘가 비어있고, 낡은 재료들과 새로운 재료가 어우러진 것이 오래된 건물을 일부 수선한 건축물인가 싶지만, 사실 무려 세 번이나 변신을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복원 건축물이다. 한 마디로 사연이 많은 건축물인 것이다.

 

2010년, 서울시는 어린이대공원 관리사무소로 쓰던 ‘교양관’ 건물을 전부 철거하고 새로 짓기로 한다. 그런데 당시 최광빈 서울시 국장이 건물의 원래 도면을 보다가 건물의 형태와 구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되어 조성룡 건축가에게 자문을 부탁한다. 조성룡 건축가는 당시 정수장 시설을 재활용한 서울의 대표적인 재생 건축으로 이슈가 된 선유도 공원을 설계한 건축가이다. 교양관 건물은 원래 공원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건물이 너무 커서 남는 공간을 전시와 세미나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덕지 덕지 마감재를 붙여 원래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어 있었다. 그런데 건물 도면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이 숨어있음을 발견한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수직과 수평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범상치 않은 이 건물의 원형은, 1970년대 한국 건축을 대표했던 1세대 건축가 나상진(1923~1973)의 우리나라 최초 서울 컨트리 클럽 하우스 작품이었던 것이다. 사라져가는 한국 근현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의미 있는 건물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잊혀지고 사라진 시간을 되찾은 건축물, 꿈마루

 

원래 어린이대공원 자리는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비인 순명황후 민 씨의 능을 모신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능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이 자리에 일본인 관리와 사업가들을 위한 골프장이 조성된다. 그리고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이 된다.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골프장이 대공원으로 바뀌면서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교양관으로 변형되어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서울시에서는 고민에 빠졌다. 건물을 새로 짓기로 결정이 내려졌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임을 알게 된 이상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조성룡 건축가의 의견을 받아들여 건물을 부수지 않고 원형을 살리는 방법을 결정한다. 잊혀지고 사라질 뻔한 우리나라 근 현대의 역사를 담은 건축물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기존 새 건물 건축팀에 조성룡 건축가와 최춘웅 건축가가 합류하면서 건물 복원이 시작된다. 무려 40여 년의 세월에 걸친 선, 후배 건축가들의 합작이 이루어진다.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두 건축가는 걷어 내고 비워내는 방법을 제안한다. 이렇게 건물을 뒤덮고 있던 겹을 걷어내고 건물의 원래 모습이 드러났다. 건물에 담긴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원래의 콘크리트 기둥 구조뿐만 아니라 교양관 시절의 흔적인 내부의 시멘트벽도 남겨 놓았다. 새 사무실의 공간을 커다란 구조 안에 집어넣는 ‘건물 안의 건물’로 구현하고, 지붕을 덜어낸 예전 샤워실 공간은 나무를 심어 시민을 위한 야외 쉼터로 조성 한다. 안전상의 문제가 있는 곡선의 경사 진입로는 꽃을 심어 화단으로 살리고, 유리 없는 철골 프레임으로 클럽하우스의 로비 공간이 상상되는 입구를 재현했다. 

 

 

우리와 함께 살아 온 시간을 이야기하다

 

이렇게 꿈마루는 역사와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겉치장을 하지 않은 멋진 건축물로 다시 살아났다. 꿈마루의 내부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탁 트인 기하학의 요소의 구조체가 교차하는 담백한 공간이 되었다. 내부의 경사로를 올라 주변을 돌아보면 내부인지 외부인지 알 수 없는 이 공간 속에 세 겹의 시간의 공기가 느껴진다. 골프장의 시간, 교양관의 시간, 그리고 지금의 꿈마루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은 없어질 뻔한 나상진이라는 건축가 의 손길도 함께 되살려낸 공간이기도 하다.

 

벽과 슬래브를 철거하고 뜯겨 나간 거친 흔적, 울퉁불퉁한 콘크 리트의 마감, 이러한 거친 질감과 어울리는 붉은 벽돌. 그리고 거대한 수평, 수직 구조가 이루는 볼륨감과 그림자가 만들어 내는 음영효과. 시간에 따라 녹슬어가는 내후성 강판과 철판과 목재의 자연스러움. 꿈마루는 어린이대공원의 푸르른 자연 속에서 지금의 시간마저 세월 의 이야기로 기록하며 우리와 함께 멋지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어떤 건물이든 세월이 쌓이면서 시간을 살아온 이야기를 갖게 된다. 그 이야기는 건물에 깃든 모든 사람의 추억과 흔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급변하는 흐름에 따라가기에 바빠 건축이 가진 이야기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새로운 건축으로 덧씌우고 있다. 그렇기에 꿈마루 의 재탄생은 이러한 시대에 더욱 의미가 있다. 외형적으로 근사한 건물을 새로 짓는 것만이 아닌, 이야기를 찾아 다시 숨결을 불어 넣는 방법 또한 멋진 건축이 만들어지는 방법임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Photo by 정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