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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8호] 다른 호텔이 팬데믹으로 무너질 때, 캡슐호텔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다른 호텔이 팬데믹으로 무너질 때, 캡슐호텔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더캡슐 대표 정승호

 

독자 여러분은 혼자 여행하신 적 있으신가요? 나 홀로 여행할 때 숙소는 어떤 곳으로 정하시나요? 호텔에 방을 예약하자 하니 1박에 최소 5만 원 이상이라 가격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곳을 찾자 하니 찜질방처럼 불편한 공간뿐… 적당한 가격에 혼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죠.

 

저는 2015년부터 서울 동대문 지역에 작은 게스트하우스 두 곳을 운영해왔습니다. 운영하는 동안 2인 객실인 트윈베드 룸과 더블베드 룸보다, 혼자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미토리 객실을 찾는 나 홀로 여행자가 많다는 데이터를 발견했고, 혼자 다니는 여행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를 목격했죠. 이렇게 직접 운영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2017년부터 1인 여행자를 위한 공간-캡슐호텔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만 의존해서 캡슐호텔을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혼자 여행하는 1인 여행자의 수는 2019년 전체 여행자의 34%에 달했고, 그들이 숙박에 사용하는 비용은 2016년 57달러에서 2019년 43달러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습니다. 즉 ‘혼자서’ 다니면서 ‘저렴하게’ 머무를 수 있는 숙박 옵션을 찾는 여행자가 늘어나고 있었고, 여기에 적합한 솔루션은 ‘캡슐호텔’이라고 판단한 것이었죠.

 

캡슐호텔의 개념은 1960년대 일본에서 ‘야근/회식으로 귀가가 늦어진 직장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출발했습니다. 그 이후 약 50년 동안 일본의 독특한 숙박 문화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2010년대 들어 홍콩, 말레이시아, 벨기에, 러시아, 호주, 중국 등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가며 캡슐호텔의 확산은 전 세계적인 추세였지요. Forbes 지에서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밀레니얼 세대 여행자의 증가’를 꼽았습니다. 모바일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추구하고, 숙박에 비용을 적게 사용하면서도 자기만의 공간을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여행 시장의 주요 소비 계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한국에서 캡슐호텔을 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직 캡슐호텔의 불모지였기에 직접 기획부터 캡슐 침대 설계, 제작, 그리고 영업 허가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해내야 했죠. 하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2019년 개업한 캡슐호텔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우리 스스로 놀랄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조식도, 부대시설도, 부가 서비스도 전부 덜어내고, 1인당 2만 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오로지 ‘혼자’ ‘잠만 자는’ 효율적인 숙박시설. 서울 한복판의 저렴한 캡슐호텔은 여행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숙박 예약 플랫폼인 부킹닷컴에서 10점 만점에 8.6점으로 명동 롯*호텔이나 플라*호텔과 비슷한 수준의 평점을 보여주었고, 2019년 오픈 첫 해 동안 평균 객실 가동률 87%로 연일 만실을 기록했습니다.

 

성공적인 첫해를 보내고 본격적인 캡슐호텔의 확장을 계획하며 맞이한 2020년.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COVID-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가 전 세계의 여행 업계를 강타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캡슐호텔은 성공적으로 생존해냈습니다. 매주 레슨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 동대문에서 도매 의류를 구매하러 온 지방의 옷 가게 주인, 면접을 보러 서울에 방문한 취준생과 같이, ‘관광 여 행’이 아닌 ‘업무 여행’을 목적으로 한 여행자들이 우리 캡슐호텔 객실을 채웠습니다. 본 칼럼의 첫 문장에서 여러분에게 던졌던 질문- “나 홀로 여행할 때 숙소는 어떤 곳으로 정하는가” -에 캡슐호텔은 훌륭한 대안 숙소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팬데믹 시기, 외국 인 여행객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60% 이상의 객실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죠. 라*다, 토요*인, 베니*아 등 서울 시내에 난립하던 3성급 비즈니스 호텔들이 휴업하고, 심지어 폐업 후 철거까지 하고 있는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의 캡슐호텔은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저는 우리 더캡슐의 캡슐호텔이 생존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소비의 개인화, 시장의 양극화, 그리고 수요의 세분화를 꼽고 싶습니다. 물론 여기에 운도 상당 부분 작용했겠죠.

 

첫 번째로 개인 소비자, 1인 소비자의 증가가 가장 거시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1인 여행자의 비율 외에도, 1인 소비 시장은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1인 가구는 이제 전체 가구수의 30%를 차지하고 있고, 그들의 소비력은 2010년 6조 원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12조 원까지 2배로 증가했죠. 혼자서 방문하는 1인 사용자들을 위해 타인과 분리된 ‘나만의 공간’을 제공하는 캡슐호텔은 적절한 솔루션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모든 분야의 산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비의 양극화 현상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백화점 명품 매출이 45% 성장했고, 편의점 매출은 6% 성장했지만, 준 대규모 점포는 10% 감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외식업에서도 유명 맛집은 거리두기가 무색하게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고, 간편식/HMR/밀키트 시장은 2배 이상 커졌지만, 보편적인 프랜차이즈나 로컬 식당은 이제 배달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가 됐죠. 숙박 시설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1박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초호화 호텔이나 연일 매진을 보였지만, 애매한 3성급의 비즈니스 호텔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죠. 이런 양극화된 시장에서 우리 캡슐호텔은 초저가, 고효율, 가성비의 관점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요인으로는 수요의 세분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용어조차 구식으로 느낄 만큼, 오늘날의 소비자는 셀 수 없이 세분화된 시장을 개인별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도시에 거주하는 20-30대 직장인’과 같이 크게 고객 세그먼트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먹방 영상을 보며 스트레스 풀고, 평일에는 식사를 귀찮거나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자주 간편식으로 때우지만 주말에는 맛집 여러 군데를 방문하는 직장인’과 같이 고객의 행동 패턴과 페르소나 자체에 집중하는 식이죠. 하지만 숙박 시장-특히 호텔 시장은, 그동안 고객의 관점보다는 철저히 자본의 관점, 부동산 개발의 논리에 따라 찍어내기 방식으로 난립해 왔습니다. 적당히 교통이 편한 지역에, 적당히 맛있는 식당에, 적당한 객실과 서비스만 제공하면 장사가 되던 시대였죠. 그렇게 양산형 비즈니스 호텔이 난립하던 시장에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고, 명확한 타깃이나 특색이 없던 경쟁자는 모두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캡 슐호텔은 ‘서울에 업무/일정상 목적으로 방문해서 저렴한 1박 숙박이 필요한데, 서비스나 식사는 필요 없고 나만의 분리된 공간에서 편안 하게 쉬기만 하면 되는 20-30대 학생 및 직장인’이라는 틈새 고객층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요구를 명확하게 충족할 수 있는 캡슐호텔을 서울에 방문할 때마다 선택했고, 팬데믹 기간 중 전체 예약의 무려 43%가 재방문 고객들의 예약이었습니다. 시장을 세분화해 명확한 타깃 소비자가 존재한 것이, 매출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주었던 것이죠.

 

팬데믹 기간 성공적으로 생존한 우리 더캡슐은, 직접 경험을 통해 ‘캡슐 공간을 선호하는 1인 소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단순히 1인 여행자를 위한 숙소로서 ‘캡슐호텔’을 넘어, 우리가 가진 본질적인 경쟁력인 ‘캡슐 공간’, 즉 공간 그 자체를 제품화하고 있죠. 그 일환으로 국내 처음으로 만들어낸 완전 조립식 모듈화된 캡슐 침대와 IoT(사물인터넷 Internet of Things) 예약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가 원격으로 예약하고 휴식에 최적화된 ‘스마트 1인 캡슐 공간’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프로젝트로서, 2021년 7월 오픈한 포항공대 벤처밸리 공유 오피스 내에 수면 공간으로 설치되어 성황리에 운영 중이죠. 현재 다수의 업무 공간 및 기숙사, 숙직 공간과 협의를 진행 중이며, 이후에는 가정용으로 설치할 수 있는 캡슐 모듈, 야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캠핑용 캡슐 개발도 계획 중입니다.

 

 

우리 더캡슐이 팬데믹의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고객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오는 손님들이 늘어나는 데이터를 발견하고, 실제로 통계 데이터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그저 그런 특색 없는 숙박업 영업자였을지도 모르죠. 아직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말입니다.

 

어떤 사업을 하든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행동에 민감 하게 반응하고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결론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