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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49호] 자기 민속지학적 접근을 통해 본 내가 <프로듀스 101>을 보는 이유_장인희

자기 민속지학적 접근을 통해 본 내가 <프로듀스 101> 보는 이유

 

사회과학대학원 언론정보학과 석사과정 장인희

 

주형일(2007)은 스스로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이유를 밝히며, 그 과정에서 스파이더맨을 좋아하게 된 배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 문화적 요인들을 다룬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자기민속지학은 개인의 경험이 사회의 일부라는 생각에서 출발하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드러내며 사회적 측면을 발견, 해석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민속지학은 주관적임과 동시에 사회적 맥락에 위치하게 된다. 연구자는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와 소통하게 되며, 이 경험을 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또한 스스로와 사회를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와 경험을 풀어놓는다는 저에서 자기민속지학의 방법은 연구자가 연구 대상인 식민지인들과 충분히 거리를 둔 채로 진행되었던 기존의 민속지학과 차별화되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민속지학은 “식민지배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에 맞서서 자신들을 재현하는 수단”이다(주형일, 2007). 자기민속지학에 관한 이러한 논의를 확장하면, 자기민속지학을 특정 문화 외부에서 충분히 거리를 둔 채 서술되는 비평에 대항하여 해당 문화의 경험을 재현하는 수단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내가 <프로듀스 101>의 열렬한 시청자가 된 이유에 대하여 서술해보고자 한다.

<프로듀스 101>은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프로듀스 101>에 대한 내 경험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가 아이돌 문화의 팬이 된 배경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2007년, 중학교 2학년 때 중국으로 가 그곳에서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이때는 한국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DVD로 제작해서 팔곤 하는데, 집에 컴퓨터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 DVD가 유일하게 한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다. 당시 한국의 드라마나 예능이 중국에서 워낙 인기가 많아 친구들과 한국 예능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좋기도 했고, 또 이것을 통해서 나 스스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곤 했다. 특히 교회에서 만나는 한국 친구들이나 중학교에 몇 없는 한국 학생들 모두 티비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시청에 임했다. 이때는 원더걸스가 한참 신드롬과 같은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이고, 예능이나 시트콤 등에서도 원더걸스가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아이돌은 자연스레 원더걸스가 되었지만, 소녀시대가 Kissing You 활동을 할 무렵부터 자신을 소녀시대의 팬으로 정체화하였다.

당시 소녀시대와 소녀시대의 팬들에 대한 인식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인터넷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소녀시대는 항상 비난의 대상이었고, 나는 그들에 맞서 열심히 변호하곤 하였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우리 소녀시대 누나들을 몰라주는 것이 속상하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온,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면서 다른 팬들과 싸우는 것이 그렇게 싫은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소녀시대 팬으로서 누군가를 옹호하고, 반대파와 싸우는 것은 중국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딱히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던 내게 강한 소속감을 선사해주었으며, 같이 열심히 싸우던 친구들과 모종의 유대감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녀시대 팬으로 열심히 활동하던 나는 2012년 대학을 가게 되는데, 마침 소녀시대도 활동이 뜸해지던 시기라 아이돌에 대한 관심은 전에 비해 다소 옅어졌다. 그래도 에이핑크나 걸스데이 등 그 시기 나름 이름을 알리게 된 아이돌에는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 아이돌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것은 2015년 초 군 생활 후반부였다. 그 당시 후임 중에 남자 아이돌 군무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를 통해 방탄소년단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엔 하는 일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여유가 있었고, 또 부대 안에서 할 것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친구와 엑소, 방탄소년단 등 여러 아이돌의 군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처음으로 남자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이때 경험이 없었으면, <프로듀스 101> 시즌2는 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역하고 나서도 군대에 있던 친구들과는 거의 매일 연락을 했으며, 주말에도 주로 그 친구들을 만났기 때문에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는 항상 중심 관심사였다. 전역한 후 2주 정도 지난 무렵 그러다가 <프로듀스 101> 시즌 1이 방영된다.

군 생활을 하던 중 처음 <프로듀스 101>의 pick me 뮤직비디오를 보았을 때, 어딘가 기이함을 느꼈던지라 <프로듀스 101>을 보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군대 친구들이 하나둘씩 <프로듀스 101>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자신이 응원하는 연습생에게 투표할 것을 부탁하면서 나도 네이버를 통해 상을 하나둘 챙겨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두 명의 연습생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김청하와 유연정이었는데, 둘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어딘가 불공평해 보고, 단순히 외적인 요소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공감도 되었고 안타까웠다. 특히나 유연정은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였음에도, 같은 곡으로 경쟁한 조의 음 이탈을 낸 보컬에게 경연에서 패배하는데, 이 모습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 후부터 나는 유연정과 김청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경연을 지켜보았으며, 그들이 데뷔하는 모습을 보며 모종의 뿌듯함과 위안을 얻었다.

이후 복학을 한 후 간간이 유튜브를 통해 방탄소년단의 안무 영상은 봤지만, 또다시 아이돌에 대해 그렇게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그러다 3학년 2학기 디자인과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디자인과 수업은 굉장한 시간과 노동을 들여야 하는 과제가 많았으며, 대부분 단순 노동이라 텔레비전을 틀어놓지 않고는 힘들었다. 이때, Mnet에서는 <프로듀스 101> 시즌2를 열심히 방영하였다. 거의 어느 시간 때에 틀어도 해당 방송을 볼 수 있었으며 그렇게 보다가 강다니엘, 김재환, 옹성우라는 친구를 발견하였다. 강다니엘의 방송 초반 모습은 소형 기획사에서 나온, 눈에는 띄지만 관심은 못 받고 데뷔와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친구였다. 하지만 굉장히 수수하고 주변에 두면 좋을 것 같은 동생 같았는데, 이런 친구가 욕심 많아 보이는 이대휘에게 밀리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김재환은 아예 소속사 없이 참가한 연습생이었는데, 소속사를 통해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춤 실력이 보컬 실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다른 연습생이 연습실을 다 떠날 동안 춤을 밤새 연습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계속 눈에서 아른거렸고, 그냥 지나치기엔 또 너무나 훌륭한 보컬 실력을 가졌었다. 옹성우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데 또 항상 유쾌하고, 자신감은 넘치지만 교만하지는 않은 주변에 있으면 좋을 친구의 모습이었다. 새벽에 과제를 하며 이들을 지켜보며 나는 이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꼈으며, 어느 순간 다른 친구들과도 이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프로듀스 101>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가가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를테면 프로그램이 재현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 정동 노동, 잔인한 경쟁 시스템에 대한 분석이 있다. 나 역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강조하는 것, 트레이너나 국민 프로듀서 대표가 강조하는 가치들을 볼 때 불편함을 느꼈으며,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계속해서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이러한 비판점 너머에 이 프로그램이 주는 묘한 위안과 만족감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램은 연습생들이 경연을 해나가는 모습을 비추며, 개별 연습생들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비단 프로그램 방영분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개별 연습생의 짧은 영상들을 노출하며, 이를 통해 개별 연습생이 어떠한 서사를 지니느냐에 따라서 승패의 당락이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 자체, 이 경연 시스템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도, 개별 연습생들이 구현하는 스토리들은 비단 비판의 대상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과정에서 연습생들의 상황에 강하게 공감하곤 한다. 이 경연은 프로그램 상황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입하자마자 직면하게 될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면에서, 특히 개개인의 스토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이 실제 우리 사회의 경쟁보다는 깔끔하거나 공정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김재환 같은 연습생은 기존 산업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연습생이었다. 이는 김재환 연습생의 비주얼 탓일 수도 있고, 아이돌 산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창법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는 산업과 기획사들에게 외면받았다. 그러나 그가 프로그램을 통해 보여준 그의 인생과 서사,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결국 데뷔에 성공하게 되었다. 이는 개인의 스토리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김재환이나 강다니엘은 프로그램이 초반부터 주목한 연습생들이 아니었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지 못했어도 개개인의 이야기가 공감을 샀던 연습생들은 결국 데뷔에 성공했기 때문에, 김재환, 강다니엘과 같은 친구들의 성공과 그들이 구현한 이야기들에 대해 단순하게 승자독식의 논리라며 비난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사후설명에 불과해 보인다. 이 친구들이 데뷔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모종의 위안을 얻었으며, 우리 사회 경쟁 논리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대안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었다. 물론 <프로듀스 101>의 경연은 매우 잔혹하고, 이 과정에서 보이는 감시는 섬뜩하지만, 어떨 땐 대통령과 같은 중요한 자리는 <프로듀스 101>과 같은 방식, 몇번의 경연을 거치고, 협업하는 모습을 보이고, 일상을 공개해 그들의 인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방식으로 뽑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편파적인 모습이 보여 지면 그 또한 숙련된 시청자들은 기가 막히게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연습생들은 나의 좋은 친구가 된다. 나는 강다니엘, 김재환, 옹성우가 나의 현실 친구라 고 착각하곤 하는데, 내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시간보다 이들을 보는 시간이 더 길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진짜 친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렵던 상황의 친구가 성공한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내가 그 길에 조금의 보탬이 되었다는 것이 상당히 만족스럽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고등학교 때 소녀시대의 팬을 하면서 느낀 점은 누군가의 팬이 되어 팬덤이라는 집단에 소속되는 것은 굉장한 소속감과 안정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프로듀스 101>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같은 연습생을 지지하는 친구들은 든든한 동료들이지만, 꼭 같은 연습생을 좋아할 필요는 없다. 그냥 함께 프로그램과 연습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강한 소속감을 느낀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열심히 시청한다. 새로 시작하는 시즌인 <프로듀스 x 101>에서도 지지할 연습생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특히 아마도 키가 작아 모든 소속사에서 배척을 당한 개인 연습생 최수한에게 관심이 간다. 물론 이 연습생이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경험은 나에게는 힘을 돋우는(Empowering) 경험이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