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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2호]문화기고. 조각난 단상들: 재난, 계급, 그리고 예술_김아영

(사진=드라마'킹덤'포스터/넷플리스)

(사진=예술의전당 삭온스크린/예술의전당)

 

(사진=검진을 받고 있는 콜센터 빌딩 거주자들/한겨레)

김아영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코로나 19라는 비상 재난사태는 예술과 일상을 모두 바꿔나가고 있다.

 

1.

우연한 사고이자 불운의 시기다. 그 누구도 앞날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의 세계적인 재난 상황은 현실 세계를 극도의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영화관은 문을 연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텅 비었고, 상반기 공연을 준비 중이었던 연극, 뮤지컬도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상당수의 미술관이 휴관을 선언한 가운데 본의 아니게 휴업 상태를 맞이하게 된 수십만 프리랜서는 생계 걱정에 놓였다. 음식점, 숙박업을 비롯한 주요 서비스업이 상인들과 공장 가동이 멈춘 기업주들은 외환위기보다 더한 불황 같다고 입을 모은다. 예기치 못했던 돌발변수로 인해 노력한 만큼의 성취에 이르지 못하고, 일상적인 삶은 파괴됐다. 

2.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온라인 문화 소비가 생활표준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모든 것을 집에서 해결하는 ‘집콕족’이 되어 넷플릭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무한 반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프라인 공연에 집중했던 국공립 공연장과 단체도 온라인 공연에 부쩍 힘을 쓰고 있다. 예술의전당의 공연예술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 세종문화회관의 ‘내 손안의 극장’,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내 손안의 콘서트’, 국립극장의 창극 모두가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다.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콘서트홀은 기간을 한정해 웹사이트를 무료로 열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빈 국립오페라단도 영상을 무료로 제공한다. 돋보일 것 없었던 ‘방구석’이라는 수식어는 유행이 됐다.

 

 

3.

넷플릭스 속 <킹덤>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위화감 없이 겹쳐진다.1) 의문의 역병이 퍼져 나라 전체를 위협하는 조선시대 풍경에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신음하는 오늘이 담겨 있다. 특히 주목하는 장면은 좀비와 맞닥뜨려 공포에 휩싸인 관리들이 "상것들이 양반을 공격한다"라고 외치는 부분이다. 역병은 병들고 가난한 백성을 가장 먼저 덮친다. 백성들은 굶주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감염된 인육을 먹고 좀비가 되어 양반들을 공격한다.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도망갈 방도만 찾는 양반과 고위 관료들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먹을 것을 가득히 챙겨 향연을 즐긴다. “사농공상의 계급이 확실한 시기의 사회 시대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은희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4.

재난은 평등한가? 영화 속 좀비가 오늘날의 취약계층과 오버랩될 때 질문은 고개를 든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벡(Beck, 1986/1997)2)은 원칙적으로 위험의 분배가 모두에게 공평하다고 주장했지만, 가장 큰 위험은 사회적 권력 관계에서 배재된 노동계급과 하층계급에 전가된다.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보험사 콜센터의 집단감염 사례는 안전한 재택근무가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이야기일 뿐임을 상기시켜 준다. 학교가 휴교해도 매일 출근해야 하는 중소 하청기업의 파견직과 비정규직은 위험의 외주화를 떠안는다. 일주일에 마스크 한 장으로 버티는 요양보호사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몇 시간씩 줄 설 필요 없는 공직자나 정치인보다 위험에 취약하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감염 예방법이 더 깊은 고립으로 시련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재난은 똑같이 발생하지만, 경험하는 위기의 경중은 계층에 따라 다르다. “좀비가 되고서야 비로소 양반과 상놈의 구분 없이 평등해진다는 신분제의 역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는 <킹덤>이 정치물로서 지니는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다. <킹덤>이 보여준 좀비 아포칼립스는 계급 특수적인 오늘날의 위험 사회를 보여주는 묵시록적 경고다.

 

5.

소비의 비대면화는 기대이자 공포다. 넷은 여전히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만들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그 위험성에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재난 상황에서 넷 소사이어티가 우리 삶의 가장 유력한 준거집단이 되고, 일상이 영위되는 주요한 생활근거일 수밖에 없다면, 그런 기대와 공포는 그 자체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전망과 직결된다. 우리는 지금 온라인을 통해 콘텐츠를 즐기고, 각종 공연 실황을 접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지친 맘을 위로받는다. 사방에서 홈 엔터테인먼트의 급성장세를 예측하면서 위기로 인해 달라질 일상과 그 속에서 발견할 기회에 대한 이야기들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하지만 인터넷 소비만을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데 그쳐서는 곤란하다. 사이버-감상은 오프라인에 존재하는 리얼-감상이 뒷받침되었을 때 힘을 발휘한다. 물론 리얼-감상이 사이버-감상으로 옮겨졌다고 해서 아우라(Aura)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아우라는 창작자와 관객이 리얼로 만나, 삶의 현장의 맥락에 재배치됐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연극이나 뮤지컬, 대중가수의 콘서트를 실황 중계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보는 것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행위예술은 어떤가. 창작자가 겸손한 자세로 나서면 관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관객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작품도 많다. 온라인 기반의 예술 활동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 할지라도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예산과, 시스템, 전문인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는 예전과 같은 예술활동을 하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땀 흘려 준비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뒤따르리라는 인과율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문화예술인들의 생존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사이버-감상이라는 지각변동을 가로막거나 거스를 수는 없을지라도 변화의 방향만큼은 분명하게 분별해내야 한다. 

 

6.

재난은 반복되고 불평등은 꼬리를 문다. 향후 팬데믹 재난 상황이 구조화된 계층불평등과 어떻게 교차하며 변형되고 심화되는지를 분석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때의 극장과 공연장, 전시장 등의 운영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모두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객석 간격과 동선은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설정해야 하는가. 모든 외부활동이 차단되면 관객과 대면하며 활동했던 예술가들은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가. 당장 무료로 풀리기 시작한 온라인 공연 중계는 언제까지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가. 여기에 돈을 매긴다면 합리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 

7.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오면 이 모든 악몽이 끝날 것입니다.” <킹덤> 속 서비가 말한 희망의 대사는 결국 끝까지 서로의 곁에 남아 있던 이들의 몫이었다. 각자도생의 끝에서 타인과 접촉을 경계해야 하는 현 사태는 역으로 우리 자신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른 사람과 연결된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다른 이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다리를 끊어버리고 탈출한 이들은 몰살당한다. 반면 함께 힘 합쳐 출구를 모색하는 이들은 그만큼 오래 버틴다. 재난의 희망은 타인에게 굳게 문을 닫아버리는 단절적 소외가 아닌, 문을 열어 서로 구하려 드는 숭고한 헌신에서 다가온다.”3) 우연한 사고이자 불운의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은 여기에 있다.

 


 1) <킹덤>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넷플릭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이자 사극 좀비물로 주목 받은 영화다. 지난 3월13일 새로운 시즌이 공개되자마자 한국뿐 아니라 태국, 싱가포르 등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콘텐츠’ 1위를 기록했다.

 2) Beck, U. (1986). Risikogesellschaft :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ne. 홍성태(역) (1997). ≪위험사회ᐨ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 새물결. 

 3) 김선영(2020. 3. 18). [톺아보기]역병이 드러낸 시대의 모순. <아시아경제>. URL: https://www.asiae.co.kr/article/2020031820114408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