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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9호]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박 선 영 (한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출처: pixel

 2020년 3월 팬데믹이 선언된 직후 지방자치단체장 연합회는 결의서를 발표하여 소년원에 있는 청소년들을 석방할 것, 소년원으로의 신규 유입을 제한할 것, 소년원에서 교육을 계속할 방법을 강구할 것, 면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할 것, 보호관찰 대상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것 등을 관계 기관에 공개적으로 촉구하였다. 2020년 5월에는 국회의원 19명도 유사한 내용의 성명서를 통해 관련 기관의 답변을 요구하였다. 민간단체 연합은 법무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코로나 19로 인해 소년원생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에 대해 대응 조치를 마련하라고 촉구하였으며 소년원생들이 집에 전화를 할 수 있도록 전화카드를 제공하였고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소년원생들에게 편지를 쓸 것을 독려하였다. 언론매체들도 가족 방문이 금지되고, 소년원생들이 방에서 숙제만 하는 상황은 악몽이라고 표현하며 코로나 19 상황에서 소년원생 처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관련 정부 기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하였다(박선영, 2021).

 우리나라 상황이 아니다. 미국과 영국의 정치인들과 언론인, 시민들의 이야기다. 연일 청소년들의 비행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면서 “촉법 소년”이라서 처벌받지 않는다는 부정확한 보도로 비행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우리나라 언론과는 상반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의 시민과 정치인들은 우리가 그토록 반감을 가지고 있는 비행 청소년들에게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외치고 있다. “안돼, 돌아가. 바꿔줄 수 없어”라고 소년 법정에 선 비행 청소년에게 호통을 치고 “부모님 아이들에게 신경 좀 쓰세요”라고 호통치는 “호통 판사” 천종호 판사가 2013년에 저술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를 읽어보면, 도대체 이 말 안 듣고 말썽 피우는 막돼먹은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왜 미안한지 잘 알 수 있다.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아동과 청소년을 잘 양육하고 가르치고 보호해야 할 어른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아동·청소년을 방임하고 학대하고 노동 착취하고 성 착취하고 있다. 부정직하고 부도덕한 모습을 부끄럼 없이 보여주면서도 아동·청소년들에겐 똑바로 살라고 엄포를 주고 있다.

- 6%의 법칙
범죄학에서는 6%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있다. 즉, 전체 범죄자의 6% 만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강력 범죄자, 만성적 범죄자이며 94%는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시민이다(Wolfgang et al., 1990).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발생한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비행 청소년 숫자는 64,152명으로 전체 범죄의 4.3%를 차지한다(경찰청, 2021). 비행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는 절도(26.5%), 사기(14.4%), 기타범죄 (10.9%), 폭행(9.4%). 폭력행위 등(7.8%), 성 풍속 범죄(3.4%) 순이며 강력처벌이 요구되는 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을 포함하는 강력범죄는 2.9%였다. 범죄경력을 살펴보면 성인의 경우에는 재범자가 더 많은 반면 소년 사범의 경우에는 반대로 57.7%는 범죄를 처음 저지른 초범이었으며 33.1%는 재범자였다.


- 범죄의 탄생: 부모와 가정
 연구를 통해 분석된 비행 청소년들의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낮은 자존감, 높은 분노와 공격성, 잘못된 의사소통 능력, 낮은 사회성, 공감능력 결여, 낮은 준법정신, 경제관 결여, 낮은 자기통제력, 낮은 유대감, 낮은 지능, 높은 일상적 긴장, 위험적 생활태도, 잦은 가출, 학업중단, 가난, 부모와의 낮은 유대감, 부모의 아동학대 등이다(이유진, 2020). 한 개인의 삶을 추적조사하는 30년간의 종단연구를 실시한 Glueck 부부는 아버지의 훈육, 엄마의 관리감독, 아버지의 애정, 어머니의 애정, 가족의 응집력 등에 문제가 생겼을 때 청소년들이 비행에 빠지고 비행을 중단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제시하였다(Gluek & Gluek, 1974). 영국에서 실시된 캠브리지 연구(The Cambridge Study)는 소년 411명에 대해 40년을 추적조사 한 종단연구이며,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을 부모의 형편없는 양육과 부모의 범죄라고 분석하였다(Farrington et al., 2006). 미국에서 실시된 피츠버그 청소년 연구(The Pittsburgh Youth Study)에서도 1,517명의 청소년에 대한 30년 추적조사 결과, 영국 연구와 동일하게 부모의 잘못된 양육과 부모의 범죄, 가족의 범죄가 한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는 결과를 제시하였다(Loeber et al., 2012). Moffitt(2009) 역시 뉴질랜드 종단연구 분석을 통해 대부분의 비행 청소년들이 청소년기에 모방과 반항으로 일탈과 비행을 저지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숙을 경험하고 친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비행을 그만둔다고 분석하였다. 반면에 청소년기에 탈비행을 하지 못하고 평생에 거쳐 범법행 위를 하는 청소년들의 특징으로는 뇌신경학적 손상, 부모의 학대, 부 모와의 낮은 애착감을 주된 원인으로 분석하였다. 특히 부모/보호자의 학대와 방임, 갈등으로 시작된 청소년들의 가출은 이른바 “탈출”로 일컬어지며, 가정 밖 청소년(가출 청소년)들은 생존을 위해 절도, 사기(중고물건 거래), 성매매, 강도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윤철경 외, 2020).



- 소년법 폐지는 불가하다
소년법은 특별법이다. 형법에 위배되는 행동인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의 연령이 10세 이상 19세 미만인 경우, 심리적 발달, 신체적(뇌) 발달과 사회화가 진행되는 이른바 미성숙한 단계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질 수 없다는 것이며, 올바른 지도와 가르침을 통해 충분히 개선의 여지가 있는 발달단계의 아동·청소년인 것이다(김성돈, 2012). 문명화된 모든 국가는 특별법인 소년법을 가지고 있다. 소년법을 폐지한다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신체와 심리가 성인과 동일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는 아동·청소년에게 성인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허용하고 요구해야 한다. 아동· 청소년은 술과 담배를 할 수 있으며 투표권도 주어져야 한다. 소년 법을 폐지한다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 을 비준한 국가로서 한국은 협약을 위반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한국의 5-6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를 보내왔는데, 가장 많은 권고를 받은 분야는 바로 “소년 사법”이었으며 형사처벌 연령을 14세에서 13세로 낮추지 말 것을 포함 하여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구금시설을 갖출 것 등의 14개 권고안이었다.


- 형사처벌 연령은 낮출 수 없다
소년법에 근거해 10세 이상 19세 미만의 소년사범은 기본적으로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 보호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범죄소년” 가운데 그 죄질이 심각한 경우(살인, 강도, 강간, 방화, 누적된 비행)에는 전과기록이 남는, 어른과 동일한 처분인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다. 성인의 경우에도 전과기록은 취업이나 사회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며 타인은 물론 자신을 낙인찍는, 처벌의 의도치 않은 결과(unintended consequence)를 초래하고 있다. 살날이 산날보다 많이 남은 10대 청소년에게 전과기록을 남기는 형사처분이 얼마나 범죄억제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은 가운데 미국에서 실시된 다수의 메타분석에서는 형사처분은 범죄억제에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하고, 교육적, 복지적, 개별 맞춤형 처우가 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이유진, 2020).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미국과 캐나다의 많은 주에서는 우리나라와는 반대로 형사 처벌 연령을 기존의 14세에서 15세~16세로 상향 조정하였다(박선영, 2021). 참고로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비행 유형에 상관없이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 보호처분을 받으며 수강명령, 사회봉사, 보호 관찰 등의 사회 내 처분을 받기도 하지만 외부와 단절된 시설인 소년원에서 6개월~ 2년간 수용되는 9호와 10호 처분도 받을 수 있다. “처벌받지 않는 촉법소년”이라고 떠들어대며 언론은 피해자와 시민을 약 올리고 있지만, 소년원생들은 폐쇄된 구금시설에서 엄격한 규칙하에 가족과 떨어져 단체생활을 하는 소년원을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치루는 “혹독한 처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 국가가 부모다, Child First, Juvenile Second
소년사법의 기본 사상은 “국친사상(Parens Patriae)”로 국가가 부모가 되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김성돈, 2012). 부모는 내 자식이 못되고 난폭하다고 비난만 할게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폭력적이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세상 속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가르침이 아닌 무관심과 방임과 폭력에 이 아이들이 소리없이 병들어가며 분노를 키우고 있는건 아닌지, 그 이유를 찾아내서 내 자식이 폭력과 거짓말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보살피고 도와주는 것이 부모와 국가의 의무이다. 영국과 캐나다는 소년사법의 기본 원칙을 “Child First, Juvenile Second(아동이 첫째, 비행이 둘째)”로 규정하고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여 비행 청소년에 대해 온 사회가 부모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박선영, 2021). 이제는 우리사회도 미래의 주역인 비행 청소년에게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고 고백하며 그들에게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어 주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