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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9호]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의 의미

 정선희 작가

 

 2021년 공인중개사 자격증 필기시험 응시생은 40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1 )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 규모가 대략 50만 명가량이라고 하니, 제2의 수능이라 불릴 만한 수치이다. 대부분은 이런 세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시험 응시생 증가 배경에는 심각한 취업난과 부동산값의 폭등이 있다는 진단부터, 자격증을 따더라도 월세조차 내기 힘든 것이 개업 공인중개사의 현실이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있다. 마냥 부정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런 분석들은 기존의 기사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으니, 나는 내 경험을 곁들여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공인중개사 관련 공부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누구든 한 번쯤 관심을 둘만 하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생각은 올해 여름,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받으며 시작되었다.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다루는 내용을 만화와 스토리로 구성하여, 초심자인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단행본으로 제작하려 한다는 기획이었다. 각 과목의 필진이 원고를 작성하면, 그 원고를 스토리로 재구성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작가로 일하며 여러 가지 글을 써왔고, 스토리 구성은 그중에 서도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여차하면 겸사겸사 공부한 내용으로 자격증까지 따면 좋겠다는 희망찬 꿈까지 꾸면서 말이다.


 문장을 구어체로 바꾸기만 하면 되는 쉬운 작업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전문가가 작성한 원고를 바탕으로 하기에, 그저 스토리로 잘 풀어내는 데만 집중하면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 책의 본질은 수험서이기 때문이었다.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되, 시험에 출제되는 정확한 단어와 표현은 꼭 들어가야 했다. 이야기로 엮어내기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꼭 필요한 내용을 생략할 수 없었다. 스토리 구성에 치중한 나머지 정확한 내용을 왜곡하는 것도 피해야 했다. 그러니 무엇이 꼭 필요한 내용이며 무엇이 정확한 표현인지 알아야 했고, 이를 가리기 위해서는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했다.


 문제는 공인중개사 시험 내용이 너무나 낯설고 복잡하다는 점이었다. 흔히 해당 학문 안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쓰임을 제대로 알아야, 그 학문을 이해하고 탐독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여름 내내 뼈저리게 느꼈다. 분명히 같은 한글인데, 스스로 한자어도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어쩜 책 속의 문장들은 하나같이 단박에 뜻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뿐인지. 특히나 민법에서 판례를 다룰 땐, 몇 번이고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기이한 현상까지 겪었다. 이에 더해, 절대적인 분량이 매우 방대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부동산학 개론, 민법 및 민사특별법, 공인중개사 법령 및 중개 실무, 부동산 공법, 그리고 부동산 공시법/부동산 세법까지. 당시 1차 과목을 작업하고 있었으니 그중 절반만 공부하면 되었지만, 그 역시 절대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 나는 수험생이 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떤 날엔 스토리 자체를 구성하는 시간보다, 수험서를 들여다본 시간이 더 길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던 중, 문득 아연함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인지한 뒤에 찾아온 일종의 공포감이었다. 공인중개사는 다양한 중개 물을 담당하지만, 그 업무의 핵심은 토지와 건물을 비롯한 부동산의 중개이다. 이때, 부동산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중에 ‘주(住)’, 더 나아가 ‘식(食)’과도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하지만 부동산과 관련한 나의 지식이 턱없이 얕기만 했다. 나는 근저당이 설정된 매물은 피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당과 근저당의 차이가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요소가 있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거리에 걸린 점유권을 행사한다는 플래카드를 수없이 보아왔지만,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건물주가 되어 책방을 차리고 작업실을 두고 싶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도, 지상권에 대해서는 하얗게 모르고 있었다. 살면서 부동산을 종종 방문하고 직접 계약도 했지만, 그때의 내가 그 계약서의 내용을 절반이나 이해했던 건지 의문이었다. 본인만 너무 무지했던 일일까 싶어 부끄럽지만, 나와 비슷한 독자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윽고 무지의 상태를 조금씩 벗어나니, 새로운 지식과 더불어 시야도 넓어졌다. 소소하게는 원고 작업 속도도 빨라졌고, 부동산 관련 뉴스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서는 여러 결정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내릴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갑자기 오피스텔 투자를 권유받은 부모님에게 나름대로 조언을 해드릴 수 있었고, 업무상 계약서를 작성할 때도 더욱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다. 잠시 이사를 고민하며 매물을 둘러볼 때도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곤 했다. 덤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다. 부모님의 지인께서 은퇴 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다가 며칠 만에 몸살이 나셨다는 이야기에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알고 지내던 개업공인중개사님이 평소보다 더욱 전문적이고 멋진 여성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격언과 ‘모르는 게 약’이라는 속담 중 무엇이 맞는지 늘 갈등하지만, 역시나 아는 것이 힘인 모양이었다.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 자격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나이와 학벌, 성별과 학력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 지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공인중개사 관련 내용은 어떠한 사회적 조건과 관계없이 누구나 익힐 수 있고, 또 알아야만 한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 할지라도 부동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토지와 건물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수이며, 이는 미래의 환경이 바뀔지라도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안타깝게도 부동산은 유한하며 늘어나지 않는 유한성과 부증성을 특징으로 하여, 늘 희소한 대상이다. 따라서, 부동산에 관한 전문성을 갖춘다면, 한정된 삶의 공간을 유용하게 운용할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공인중개사 시험 응시생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현 세태를 마냥 어둡게 바라보지는 않는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기 마련이며, 응시생은 모두 각자의 응시 사유와 합격 여부를 넘어선, 무언가 또 다른 힘을 얻어 가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자체를 권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다만, 관련 내용이 생각 보다 훨씬 더 우리의 삶과 밀접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한 번쯤 관심을 두면 좋은 자산이 되리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끝으로, 관련 내용을 가볍게 일독할 수 있는 <만화로 쉽게 이해하는 공인중개사 에듀윌 공인툰 1권>을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