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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9호] 이방인으로 살기 : 한국에서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로 산다는 것, 프랑스에서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얼굴로 산다는 것

정지은 ENS-EHESS 통계사회학 석사과정 (M2 Sciences Sociales Parcours Quantifier en Sciences Sociales)

 

2016년 8월 25일, 프랑스에 처음으로 도착했을 때에는 이렇게 오래 프랑스에서 살아갈 것이 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어느 덧 프랑스 거주 6년 차가 되었다. Montpellier에서 어학연수 1년, Lyon에서 학사과정 3년을 지내고 파리에서 석사 1학년을 마치고 석사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리고 내년이면 드디어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 시점에서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은 생각들을 한 내가 여기서 어떻게 변해 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한국에서의 나는 누가 봐도 “한국인”이다. 전형적인 동아시아인, “한국인”의 얼굴을 가진 나는 모두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한국인일 것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당연히 대한 민국 사회에 소속된 한 사람이라고, 단 한순간도 이방인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삶을 20년 넘게 유지해왔다. 내가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은 프랑스에 도착한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해서 이방인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타자로 살아간다는 이 감각이 나의 삶과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이미지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를 비롯한 많은 유학생들이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인종차별이, 타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 고는 생각하지도 못한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다문화 사회라는 사실이, 프랑스의 국기가 자유, 평등과 박애를 뜻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정도로 현 프랑스 사회는 이민자들 에게 적대적인 사회이다. 2022년 봄에 진행될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현재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인물은 Eric Zemmour이다. 정치분야의 기자로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논객으로 등장 한 인물로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극우에서 선풍적 인 인기를 끌고 있다. Eric Zemmour은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 였으며 프랑스에 오는 모든 미성년 이민자들은 도둑이고 성폭력 가해자이고 살인자이며 이들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발언 등을 하며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현 대통령인 Emmanuel Macron과 2차 투표에서 겨룬 Marine Lepen 또한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프랑스의 손꼽히는 극우 정당인 Rassemblement National(전 Front National)의 대표인 Marine Lepen 역시 이민자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며 2022년 대선에도 출마 선언을 했다. 
  물론, 이러한 정치적 발언들의 주가 되는 이민자들은 주로 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 들이다. 이전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그리고 콩고, 세네갈, 토고 등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이민자들이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이민자들이다. 베트남 같은 동남아 시아의 인도차이나반도에 위치한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 사회에서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출신의 이민자들은 논외로 여겨진다. 우리 같은 전형적 인 아시아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태어났던 아니던 중국인이라는 하나 의 카테고리로 여겨진다. 그것이 내가 길에서 수많은 행인들의 ‘니하오’를 듣게 되는 이유이다. 작년 파리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고 국적에 대해 어떠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같은 과의 친구들이 나를 중국인일 것이다 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이유이다. 소도시에 여행을 가게 되 면 ‘저 중국인이 어떻게 이 곳에 왔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시선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반복되는 경험들이 내가 이 사회에서 타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매번 각인시킨다. 그래서 누가 파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묻는다면 나는 파리 13구의 Porte de choisy 역 부근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거나 예뻐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곳에는 아시아 인이 많기 때문이다. 파리 13구는 프랑스의 가장 큰 차이나타운 중 하나로 중국인 뿐만이 아닌 많은 아시아인이 밀집되어 있다. 내 시야 안에 나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안정감을 주는 경험이다. 내가 길을 걸을 때 특정되지 않고 ‘그 중국인’ 이 되지 않는 곳은 13구뿐이기 때문에 나는 저 장소를 참 좋아한다. 동시에 새로운 장소를 갔을 때 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피부 색을 보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아시아인의 비율은 항상 상대적으로 미미하기 때문에 백인과 비백인의 비율을 본다. 최근 파리에서 기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Metz라는 도시에 놀러 갔는데 역에서 내려서 처음 내가 한 말은 “왜이렇게 백인이 많아?” 이었다. 작년 석사를 시작하여 처음 함께 공부할 동기들을 보는 자리에서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 역시 “여기서 나 빼고 다 백인이야?” 이었다. 프랑스에서 살아오며 겪은 수많은 순간들이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만든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백인이 많이 없고 비백인이 많은 지역은 위험하다고 여기는 반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비백인이 존재 하지 않는 공간에서는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다. 

  프랑스에 와서 또 한 가지 충격받았던 일은 부처의 머리가 장식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이다. 흔히들 말하는 힙한 카페, 식당에 가거나 심지어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장식품 가게에 갔을 때 항상 있는 것이 부처의 머리이다. 개인적으로 불교는 아니지만 이 경험은 상당히 충격 적이었다. 얼마나 아시아인을 타자로 여기고 있으면 타인의 종교, 신을 이렇게 장식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장식품 가게에 있는 수많은 부처 머리상들은 나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다. 이것이 나에게만 충격이 아니었던 것인지 현재 Strasbourg에서 아트 작 업을 하고 있는 조해인씨가 이 주제로 작업을 한 바 있다.   
  Espace zen이라는 이 작업은 부처의 이미지를 장식품으로 사용하는 문화적 전유를 문제 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프랑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예수의 머리를 이용하여 화분이나 초 등의 장식품으로 만든 작업이다. 나는 이러한 부처상의 사용이 프랑스 사회에서 얼마나 아시 아인을 타자화하고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 한다. 이 충격은 내가 이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인식하게 했다. 예를 들면 K-pop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문화적 전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본인이 속하지 않은 다른 사회나 문화권의 정체성의 요소를 가져와 단순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하는 문화적 전유는 2010년에 발표된 노라조의 카레라는 곡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얼굴로 살면서 겪은 모든 것들은 한국에서 내가 전형 적인 한국인의 얼굴로 살아왔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문제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한국도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 에 거주하는 이민자들 중 많은 이들이 분명 내가 프랑스에서 겪은 타자로서의 삶을 겪고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흑인 혼혈 모델인 한현민 씨가 이 삶에 대해 미디어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과거 유행했던 미녀들의 수다나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 그램을 통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이민자들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민자들의 대한민국 사회 진입은 1980년대부터 시작 된 현상으로 2018년 한국 전체 인구의 4.9%가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을 가지지 않은 이들이 내가 프랑스에서 겪는 타자로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겪지 않고 이 경험으로 인한 슬픈 변화들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