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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59호] 문학관과 문학논문 사이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김 예 람

 

들어가며
아침마다 산책하는 부용산 자락에는 보한재 신숙주 선생의 묘가 있다. 산비탈을 내려오면 지금으로 50년 전 한글학회에서 세운 사적비가 듬 직하다. 국어국문학과에 속한 나는 사적비에 새겨진 문장들 가운데에 서도 선생이 한글로 표시하는 운서를 편찬하기 위해 요동에 유배되어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에게 참고사항을 묻고자 수천 리 먼 길 요 동을 왕복하기를 열세 차례에 이르렀다는 문장을 골라 읽는다. 이 문 장으로 산책을 마치는 나는 학자로서의 선생의 성실성 앞에 숙연해지 고 그날 하루 다시 책상에 붙박일 동기 하나를 가지런히 간직하는 것 이다. 이러한 습관의 연장으로 대학원생이라는 분에 겨운 호사일지, 분에 맞을 검소일지 모를 취미로 겨를이 있을 때면 국어국문학과 연 결지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그렇게 발견한 곳이 ‘문학 관’이었고, 이 글은 2021년 내가 다녀온 문학관들에 대한 ‘관람기’다.

 

한국현대문학관, 목포문학관, 이상의 집, 김수영문학관
‘한국현대문학관’은 동서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한국 최초의 근·현대종합문학관으로 동국대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최초’와 ‘종 합’이라는 수식에 알맞게 전시는 기본적인 한국 근·현대문학사 이해 위에서 작가, 작품들의 문학사적 좌표를 파악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있 다. 그리고 문학관 한편에는 설립자인 수필가 전숙희 선생의 기념실이 마련되어 있다.
  종합문학관이 아닌 문학관은 문학관이 소재한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들을 갈무리하는 원리로 구성된다. ‘목포문학관’이 단적인 예인데 목포문학관은 목포 출신 소설가 박화성, 문학평론가 김현, 극작가 김우진, 차범석 관을 전시하여 명실상부한 지역문학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독 작가에 집중한 문학관으로는 ‘이상의 집’과 ‘김수영문학관’이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이상의 집은 그가 양자로 입적한 백 부의 집터였던 종로구 통인동 154-10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함초롬한 이 공간은 이상이 기생 금홍과 경영했던 다방 제비를 재해석했다고 한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서면 이상의 대표작 「날개」(『조광』, 1936.9) 속 주인공의 시점을 건축적으로 구현해놓았는데, 그곳에서 보이는 서울 풍경을 중심으로 우리 근·현대작가들이 정신적, 물질적 조건으로 삼았을 일제 식민지기 경성의 유적들을 역추적해보는 산책 의 시작점으로 삼기에 알맞다.
  ‘김수영문학관’은 서울 도봉구 연산군 묘, 정의공주 묘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시인의 문학관으로서 시 낭송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 이채 외에도 김수영의 작고 이후 우리 문화가 이룬 김수영 시에 관한 이해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도록 김수영을 연구주제로 한 석· 박사학위논문을 배치하여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고, 1981년 제정되어 줄곧 시상하고 있는 김수영문학상의 수상작들도 마련하였다. 한 작가 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에는 그 작가에 관한 연구와 해석을 살펴보는 일도 마찬가지로 소중함을 김수영문학관은 ‘공간적으로’ 일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한국 근대기 미술인과 문학인들의 상호 교류와 실제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상호 교섭의 양상에 주목한 실험적인 전시로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전시 이다. 주목할 점은 미술관 전시의 자문으로 문학연구자인 조영복 광운대 교수, 공성수 경기대 교수, 오영식 근대서지연구소장이 참여하였다는 점이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실은 ‘지상(紙上)의 미술관’이었다. 실제로 한국 근대소설은 신문 매체를 기반으로 하여 문학인의 소설과 미술인의 삽화가 결합한 형태로 연재되었는데 이 전시실에서는 당시 의 신문연재본들을 발굴, 복원, 선별함으로써 당대의 독자가 ‘그림’과 ‘글’을 오가며 경험했을 역동적인 미학적 체험을 고스란히 2021년 관 람자에게도 제공하고 있다. 미술에 일가견이 있지만, 문학에는 문외한 인 누군가라면 노수현, 이상범, 안석주, 정현웅, 이승만, 김규택이 신문 연재소설 삽화가들의 이름으로 열거되는 한가득한 그림들을 보고 눈 이 회동그래질법하다. 특히 이 전시실은 공성수 교수의 2014년 서강 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의 선구적인 작업에 힘입고 있고, 소설과 삽화 연구라는 최근 국문학계의 연구 동향을 시의적절하게 반 영하고 있다.

 

한국근대문학관 <인천 문학기행 : 인천, 이야기가 되다>, 화성 지역문학관 <화성 문학에 길을 묻다 : 상실과 회복>
기존의 종합문학관과 지역문학관이 한국 근·현대문학의 개괄적 이 해와 지역 문인들과 그들의 작품의 이해에 주목하였다면, 최근 문학관 들의 흐름은 그 대상을 한국 근·현대문학 텍스트 ‘전체’로 확장하여 텍스트 속에서 그 지역이 어떻게 재현되면서 고유한 문학적, 문화적 의미를 확보해왔는지에 관한 탐색으로 심화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 인천 한국근대문학관과 화성 지역문학관이다.
  한국현대문학관과 마찬가지로 종합문학관인 ‘인천 한국근대문 학관’은 본관의 상설전시와 1899년 미쓰이 물산 인천지점 건물을 개축 한 기획전시관의 <인천 문학기행 : 인천, 이야기가 되다>로 이루어 진다. 본관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전사(前史)인 근대계몽기부터 해방 기까지(1894~1948년)의 작가, 작품들의 자세한 설명은 물론 대중 문학, 한국 근대문학 속 인천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복간본 (復刊本) 체험, 키오스크, 문학 콘텐츠 다운로드 코너, 문학 애니메이션 극장 등도 겸비한 가장 현대적이라 할 수 있는 종합문학관이다. 눈에 띄 었던 점은 염상섭의 「만세전」(고려공사, 1924)의 주인공 이인화의 여 로(旅路)를 지도를 활용하여 영상화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방식의 문 학적 접근이 관람자들에게 가져다줄 우리 문학에의 동기부여는 충분 하다고 할 수 있다. 기획전시관은 인천이 개항 도시, 국제항구, 코즈모 폴리턴 공간이라는 인식 위에서 한국 근·현대문학 텍스트 전반에 서 인천이라는 이야기-공간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꼼꼼히 밝히 고 있다.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 『혈의 누』(광학서포, 1907)에서부터 염상섭, 이광수, 채만식, 강경애, 김말봉, 현덕, 오정희, 조세희 그리고 최근의 백수린까지 작가들이 이야기를 발생시키는 공간으로서 인천을 이해했 던 다양한 스펙트럼과 수준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사와 분석에 기반을 두어 한국근대문학관이 완성해낸 인천 문학 지도(literary map)가 우리 문학 이해에 새로운 차원을 부여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올해 노작홍사용문학관 안에 개관한 ‘화성 지역문학 관’은 첫 기획전시로 <화성 문학에 길을 묻다 : 상실과 회복>을 열었다. 화성시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신도시 개발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격변을 겪은 도시이다. 따라서 이 전시는 한국 근·현대문학에 형상화된 화성의 과거상 혹은 뿌리 를 추적하는 문학적 기억 작업을 통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자 한 다. 무엇보다 전시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한 점이 빛났는데 동탄, 발안, 송산, 서신, 우정으로 지역을 촘촘히 구분하고, 이문구의 『우리 동네』 (1977~81), 송기원의 「다시 월문리에서」(1984, 창작과비평사) 등의 화성 문학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가며
올해 내가 다녀온 문학관들의 수가 일곱을 헤아린다는 것은 그만큼 문학관 관람이 즐거웠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학관이 선사하는 즐거움 의 정체는 관람객에게 일방적으로 문학적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민들이 교양으로 가진 배경지식을 다각적으로 확장시키면 서 능동적인 체험을 격려하는 방식 덕분이다. 현대소설 전공자인 내가 누린 개인적인 즐거움을 설명한다면 문학관의 구성과 배치의 원리는 문학을 연구하며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문학사 서술, 개별 작가론, 작품론, 그리고 수용미학적 개념 등과 무관하지 않기에 나의 문학적 관점과 문학관의 그것을 비교하는 즐거움이 하나였고, 국어국문학과 에서 작성하는 석·박사학위논문과 학술지 논문이 문학관과 연계되고 문학 텍스트가 문학 콘텐츠로 전용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 움이 또 하나였다. 물론 문학논문이 사회에서 응용된다는 것이 곧바로 학술적 가치를 보증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문학관과 문학논문 사이’ 를 오가는 생생한 경험은 분명 ‘문학관 관람의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