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32호] 베트남 동계학술탐방, 살아남은 자들의 몫: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본문

기고

[132호] 베트남 동계학술탐방, 살아남은 자들의 몫: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dreaming marionette 2015. 4. 17. 14:16

동계학술탐방 - 베트남 



살아남은 자들의 몫 :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대성 _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나의 삶이 죽음으로 끝난다하여 끝날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 세계에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그칠까. 지루한 시간을 무얼 하며 견뎌야 하는지가 고민이어서, 대학원에서 절반 값으로 여행 시켜준다기에 학술탐방을 지원했다. 그런데 베트남인들이 작은 돈에 절절 매며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모습에서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고 여행 다니는 내내 흔들렸다. 도무지 살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 이 세계에 머무를 이유가 없는데 악 쓰며 버티는 사람들. 날마다 존재 이유를 되물었다.

     피곤한 질문에 한껏 지친 상태에서 학술탐방보고서를 써야했다. 열 쪽 넘는 글을 써야했기에 없는 의미도 만들어내야 했고, 쉬운 방책으로써 베트남의 다낭 지역을 소설의 공간으로 한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을 집었다. 없는 의미를 만드는 작업은 실로 능동적인 독서를 내게 요구했고, 내가 그토록 제쳐뒀던 삶과 죽음의 문제를 복잡한 인간 관계망을 통해 풀어낸 작가의 세계에 부닥치게 했다. 


     탐방보고서의 첫 번째 장은 글의 전제였는데, 베트남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모든 과거와 결별”하면서 ‘불확실한 삶’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정황을 적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장에서는 충격적 외상을 대면한 인물들이 각기 얼마나 다르게 반응했는가를 대비하여 정리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안정적인 과거나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기에 예측할 수 없는 심연으로 빠져들었고, 가만히 있다가 이대로 죽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살아내든지 하는 선택 앞에 다다른 것이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죽어버렸다면 소설에서의 서사가 그렇듯 삶 역시 불가능해진다. 유치할 수도 있으나 내게는 가장 절실했기에, 왜 살아야 하는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몫이란, 책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우선 이런 질문을 최초로 떠올리게 했던 대화 장면이 있다. 민족해방전선의 주요 활동가인 탄은 이제 막 활동하기 시작한 팜 민에게 혁명가로서의 삶을 선택하기를 극단적으로 요구한다. 반대로 팜 민은 탄과 같은 군인이 흔히 그렇듯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 속에 인간을 향한 애정을 버려두고 신념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누가 옳으냐는 전적으로 틀린 질문이었고, 죽음의 불안을 자기 삶으로 끌어들이는 힘은 얼마만큼의 강도를 필요로 하는가 하는 질문만이 부표처럼 흔들렸다.  


“탄이 자기에게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를 향하여 부르짖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고, 그는 온갖 생각을 모두 한 곳으로 몰고 간다고 생각되었다.”


     팜 민이 탄의 말을 들으며 생각하기를, 탄이야말로 죽음의 불안을 강렬하게 느끼고 따라서 더 악착같이 불안을 막아내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은 물론이고 참전한 여러 나라들에게까지 확실해 보이는 삶을 불확실하게 만들었고, 확실한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의미를 찾아 메워야 하는 주체로서 자기를 정립하게끔 이끈 것이다.   


“이 집의 가장은 나란 말야.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온갖 짓을 다하구 있어. 나는 너희들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킬 책임이 있단 말야.”


     팜 민의 형인 팜 꾸엔 소령은 흔히 말하는 매국노일 수 있으나, 결국 그도 가족의 생존을 위해 식민화의 토착민 조력자 역할을 맡고 있다. 형제 간 갈등, 민족 간 갈등은 생존이라는 범주 안에 뒤섞인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서로를 증오하고 반목하기보다 전쟁으로 인한 갑작스런 사태에 자기 몫의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자세를 먼저 자각했을 때, 나아가 이 책임에 대해 후회할 기회라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 우리는 너희들이 던져준 몇 푼에 팔려 왔다. 그러나 이건 분명히 알아둬라. 그 병사는 방금 너희 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시작된 작전지역에서 살아나왔다. 너희들 대신에 갔다 왔다. 너희들이 압수하고 돌려주지 않는 것은 바로 블러드 머니다.”



1972년 7월 6일 베트남 Quang Tri 남쪽도시 La Vang, (출처: The Atlantic Photo, Michel Laurent/AP).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베트남의 한 교회 (편집자주)



     안영규의 부르짖음이 작가의 증언으로 들린다. 베트남전에 참전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베트남에서 미국의 문화에 완전히 융화되지는 않았으며, 죽음의 냄새를 상품으로 포장하고 있는 다낭의 역사적 맥락을 복합적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소설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어느 한쪽을 비난하지 않는다. 제국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국토와 민족의 파괴가 심화된 지역이 여럿 있고 또 그 문화적 후유증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후유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나 자신이 얼마나 이 세계에 개입되어 있는지를 의식하는 데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블러드 머니’라는 신조어는 소설 속 인물 안영규가, 작가 황석영이, 그리고 독자인 내가 자본주의 세계 안에 이미 살아가고 있다는 징표이고, 그만큼 죽지 않기 위해 목숨 걸어 살아가는 자기를 위로하는 보상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에는 피가 섞여 있다는 뼈저린 현실 인식이 미군의 전쟁 보고서를 통해서 보다 냉철하게 제시된다. 


“우리들 대부분은 적의 전투부대와 조우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렇게 안 된 것입니다. 처음 우리는 몇 사람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느새 우리는 닥치는 대로 사격하고 있는 자신들을 깨달았습니다. 일종의 정신착란에 가까웠습니다. 모두가 총을 쏘고 있었지요. 마을에 들어서자 지휘계통은 무너지고 모두들 이상한 열기에 싸였습니다.”


     데니스 콘티의 발언은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미군의 불안감을 대표한다. 미국이 아무리 ‘자유세계의 방패’임을 자처했을지라도 실제로는 베트남의 자유를 빼앗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었기에, 미국식 정당성은 내부에 심각한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블러드 머니’라는 이면을 아무리 은폐하려고 해도, 최소한의 윤리 감각을 상실해버리는 순간에 그들은 결국 ‘정신착란’ 상태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 팜 민, 팜 꾸엔, 탄, 안영규, 데니스 콘티 등 ― 베트남 전쟁이라는 커다란 외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활을 하나씩 쟁취해나가는 자들의 몫”을 상기시켰고, 자본주의 세계를 어떻게 책임지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이들은 세계를 외부에 내버려두지 않았으며, 자기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쳤다. 끝내는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달리 던지고 있었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 몇 푼을 벌기 위한 모든 행동에는 피가 묻어있고, 피의 냄새를 맡기를 거부하는 만큼 정신 착란을 겪게 되며, 따라서 최소한의 윤리 감각을 잃지 않으려 애써야 한다는 것이다. 

     다낭을 탐방하며 흔들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까.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그러한 가치를 어떻게든 빼앗으려는 전쟁 속에 이미 내가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을까. 싼 값에 여행한다는 생각, 그리고 이 생각 때문에 더 싼 값에 베트남의 물건을 사들이려 했던 행동들이 최소한의 윤리 감각을 건드렸을까. 아직까지는 내게도 후회할 만한 기회가 남아있는 걸까. 얼마 남지 않은 인간다움을 송두리째 빼앗으려하는 세계에 관해 이 더러운 전쟁의 이면을 마주할 용기가 남아 있을까. 세계를 바꾸겠다는 거대한 이상보다는, 이 세계 안에 살아남은 자로서 책임을 인정하고 새로운 연대를 구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들은 내게만 해당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