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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23호] 응답하라 8090!

dreaming marionette 2013. 1. 8. 14:45

응답하라 8090!

김아영, 이해수, 김하늘 기자

70,80년대의 체적을 지나 대중문화가 만개한 90년대 후반은 뭐니 뭐니 해도 아이돌의 시대다. 스타의 손짓 한 번에 쓰러지고, 목 놓아 우는 등 헐리웃 액션을 마다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와 열어 보는 서랍 속에는 볼수록 가슴 뭉클해지는 물건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내뿜는다. 어디 그 뿐인가. ‘돌청진’에서부터 ‘등골브레이커’까지 각 시대를 주름잡던 패션 아이템들은 즐거운 회고의 대상이다. 아! 이 모든 것들을 소환해보고 싶은 것은 정녕 우리들만의 생각일까.

 

 

아이돌 문화의 태동, H.O.T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와도 같았던 H.O.T.와 젝스키스. 이 양대 산맥이 무수한 소녀팬들을 양분했지만, 현재까지 전승되는 아이돌 문화의 본격적인 태동은 H.O.T.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얀 풍선을 드날리며 과감한 영역표시로 우월감을 과시하던 소녀들. 그들에게 H.O.T를 제외한 다른 가수에 빠져 있는 아이들은 계몽돼야 할 무지몽매한 백성, 즉 불가촉천민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H.O.T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뉘었다. 때론 이들은 젝스키스 팬들로부터 ‘에쵸티’, ‘핫’으로 불리는 수모를 겪어야 했지만, ‘10대들의 승리(High Five Of Teenager)’라는 이름은 왕좌의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학교 앞 서점과 문구점에서 쏟아지는 각종 하이틴 잡지와 스티커, 노트, 엽서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만약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물건들을 사들였다면 엄마에게 등짝을 맞았으리라.) 이뿐만이 아니다. 광풍처럼 휘몰아친 H.O.T 특수효과는 HOT 음료수, HOT 향수, HOT 미미인형, 급기야 3D 입체영화까지 강타했다. 그러나 98년, 이들 앞에 새로운 국면이 찾아온다. 10대일 수 없는, '20대 H.O.T'의 시험무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3집은 (어설픈 자작곡이 9곡이나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 3개월 만에 1백 6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1집과 2집에 이어 밀리언셀러에 올라섰다. H.O.T의 음악적 역량을 평가하는 일은 여전히 난해한 일이지만, 90년대 후반 우리 가요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임이 확인된 것은 분명하다. 서태지의 공백으로 선택한 불가피한 대체제가 아닌, 진정한 골수팬들을 만들어 낸 10대들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음이탈의 본좌, Y2K

 

 

 

1999년에서 2000년으로 가는 세기 말,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3인조 남성그룹이 등장했다. 바로 한일합작밴드 Y2K다. 아직도 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연관검색어는 ‘삑사리’. 혹시 기억하는가.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발라드를 부르던 중 발생한 그 초대형 음이탈 말이다. 당시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쌍둥이 형 유이치는 “미아내~(미안해)”라는 외마디 비명으로 민망함을 조속히 처리했다. Y2K는 데뷔 이래 3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돌연 해체를 선언한다. 이후 마츠오 형제는 2007년 그룹 스완키 덩크로 데뷔한 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동생들의 어설픈 한국어 실력과 음이탈까지 감싸줘야 했던 네모 미남 재근오빠는 뮤지컬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라고. 신화 속의 미소년 ‘아도니스’가 팬클럽 이름이었던 Y2K. 그들은 밀레니엄의 왕자님이었음에 틀림없다.

 

‘태사자 인 더 하우스, Uh!’, 태사자


 

얼마 전 종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제작발표회가 있던 날 출연배우 은지원은 보고 싶은 아이돌 그룹으로 태사자를 꼽았다. 아이돌이 그리워하는 아이돌, NRG와 쌍벽을 이루던 남성 4인조 댄스 그룹 태사자를 생각하면 아직도 기억나는 가사 한 줄이 있다. “아~예 태사자 인 더 하우스 (어!)” 바로 이 대목에서 철천지 원수였던 '에쵸티팬'과 '젝스키스팬'들은 하나가 되었다. 80년대 출생한 소녀들을 일치단결 시키는 신비의 주문, ‘도(道)’는 그런 노래였다. 한편 H.O.T, 핑클 등 글로벌 네이밍의 아성을 마다한 태사자(太四子)는 ‘네 명의 큰 남자들’로 진정한 오리엔탈리즘의 색채를 보여주었다. 허당 이미지를 내보였던 천(天) 김형준, 영득이라는 본명도 잊게 만든 미모의 풍(風) 김영민, 랩 좀 한다던 우(雨) 이동윤과 운(雲) 박준석까지. 유노윤호, 믹키유천 이전에 호를 선점한 아이돌이라 하겠다. 뻣뻣한 댄스로 ‘전봇대’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리드싱어 김영민은 2006년 가수와 연기자 겸업을 선언했지만 재기에는 실패했다. 같은 해 김형준은 모델출신 여자친구와 쇼핑몰을 개업해 한 해 6억 원의 매출을 올린 사장이 됐다. 한편 2008년 미국에서 극비리에 결혼을 했던 이동윤은 4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는 가슴 아픈 사실. 2PM, 비스트가 대세인 오늘날, 우리 8090세대에게 지고지순한 몰입의 순간이 찾아오지 않음은 그 때 그 시절의 강력한 추억 때문이 아닐까.

 

소녀들의 필수품 누드다이어리

 

 

어린 시절의 다이어리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1)비닐류 표지로 되어있다. 2)똑딱이 단추가 붙어 있다. ‘다이어리’ 라는 말이 무색하게 글을 쓰는 건 맨 뒷장 프로필 혹은 친구 주소록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무언가 적지 않아도, 문구점에 들러서 빼 놓지 않고 사 모으던 다이어리 속지. 속지 뿐 아니라 좋아하는 아이돌 엽서를 펀치로 구멍을 뚫어 다이어리에 끼워 두었다. 친구들과 속지를 교환하느라 여러 번 끼웠다 뺐다 등으로 인해 많이 구겨지고 그림이 벗겨지기도 했지만 교환의 횟수는 인기의 척도였다. 용도와 크기를 불문하고 무조건 빵빵하게 채우기 위해 다이어리 속지를 모으는 데 열을 올렸는데, 다이어리가 터지는 경지에 이른 친구들은 “아, 어떡해.” 말 하면서도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눈물이 방울방울 전설의 만화들

 

 

 

어릴 적 어렴풋이 떠오르는 추억의 만화들, 얼마나 기억할까? 웨딩피치, 세일러문, 뾰로롱 꼬마마녀, 천사소녀 네티, 베르사유의 장미, 슈퍼 그랑죠, 통키, 슛돌이 등은 8090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숭배 했을 법한 만화 주인공들이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의미가 짙은 만화들이 있었다.

생태주의를 다루는 만화, <출동! 지구특공대>. 땅, 불, 바람, 물 마음을 상징하는 지구의 다섯 대륙에서 모인 각각의 다섯 명의 학생들이 각자 개인 적으로 특화된 초능력을 사용하다가 모두가 모이면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만화이다. 다섯 개의 반지가 모이면 드디어 히어로인 캡틴플래닛이 등장하는데, 사실 그의 능력은 반지의 그것과 비교하면 초라할 만큼이나 별 쓸모가 없다. 그는 환경을 파괴하는 적들을 상대로 싸우는데, 오염 물질에 치명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 준다.

머털도사 인기에 빛을 발하지 못한 만화, <흙꼭두장군>. -그러나 매년 설문조사에서 다시 보고 싶은 만화 1위로 꼽힌다.- 한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2012년 전 건설된 왕릉이 발견된다. 도굴꾼으로부터 왕릉을 홀로 지켜오던 수문장 흙꼭두장군이 열두 살 빈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고려 공민왕릉의 역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만화는 흙꼭두장군과 빈수의 우정, 심장병이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도굴에 합류하는 아버지의 부정(夫情) 등 한국적 정서가 녹아든 여러 사연이 얽혀들어 높은 몰입감을 부여하고 있다. 흙꼭두장군의 달구지의 왼쪽 바퀴가 닳아 없어지자 자신의 지우개를 조각해 달아주던 빈수의 모습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 못한 기억이 난다. 감동과 눈물을 넘어 당시 한국의 도굴꾼의 문제를 지적하고, 사적지의 무분별한 발굴을 비판한다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환기시켰던 만화다.

 

DIY액세서리, 감각적인 나만의 아이템

 

 

 

‘국민가방'으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추억의 이스트팩과 잔스포츠 가방. 지퍼 끝에는 늘 각종 열쇠고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리 모양의 캔 뚜껑을 모으거나 물에 삶아 부피가 줄어들은 요구르트 병 등이 대표적이다. -고리를 끼우기 위해 송곳을 불에 달궈서 요구르트병 입구에 구멍을 내는 작업은 신중함을 요했다.- 남는 운동화 끈으로는 엮어 스쿠비두(Scoubidou)를 만들기도 했다. 이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운동화 끈은 형광 고무 끈으로 진화했는데, 시작은 늘 어려워서 문구점 아주머니와 부모님께서 3층까지 쌓아주시곤 했다. 운동화를 사면 하나씩 사은품으로 주던 열쇠고리. 나이키부터 아식스, 프로스펙스, 미즈노, 죠다쉬, 슈퍼카미트, 위크엔드 등 다양한 브랜드의 스포츠화 열쇠고리는 운동화만큼이나 갖고 싶었던 선물이었다.

 

다시 보고픈 꺼벙이와 친구들

 

 


 

인터넷이 미처 이 땅에 도착하지 않았던 90년대 초반까지, 그 무렵의 10대들은 각종 책과 함께 자랐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20권의 책으로 출시됐던 대교출판사의 만화일기 시리즈. 꺼벙이를 주축으로 따옥이, 돌배, 팔방이, 얄숙이, 꾸러기 등 전 권의 캐릭터들이 사랑을 받았다. 당시 어린이권장도서에서 235만부라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책장에는 친지들이 모이면 언제든지 꺼낼 수 있는 빨간책이 꽂혀있었다. 우리의 눈을 마비 시켰던 ‘월리를 찾아라’. 커다란 안경, 호리호리한 몸매, 빨간색 줄무늬 셔츠 차림에 4계절 내내 털모자를 쓰고 있던 월리를 기억한다. 여러 명이 모여 월리를 먼저 찾기 위해 책 한권을 둘러싸고 옥신각신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미스터케이(Mr.케이)’에 들어있는 콩콩이 입체 편지지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쓴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8090년 세대! ‘엠알케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는 것은 ‘Mr.’를 왜 ‘미스터’라 읽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짧은 영어실력의 반증이다. 청소년용 무가지였던 ‘마니또’은 이 달의 신곡, 가요 순위, 가사 등이 수록되어있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음원을 다운로드 할 수 없었던 시절, 전화 700-9872를 통해 음악도 듣고, 국내외 스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인기남이 되기 위해서는 유행하는 몇 개쯤의 시리즈와 삼행기를 꿰고 있어야 했다. 배우 최불암 특유의 ‘파하~’ 웃음소리와 함께 말장난과 허무개그로 난무하는 ‘최불암 시리즈’는 다년간 다져진 연기로 근엄한 아버지상을 대표했던 그의 이미지를 깨뜨리는데 일조했다. 이는 금융위기라는 시대적 상황과 기성새대를 조롱하는 유머 시리즈들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것이 고전 유머 학계의 정설이다. 현재 ‘버전 업’된 그의 소식도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 올라오고, 어플도 만들어졌지만 미니북 한 장 한 장 아껴 읽던 그 당시의 감수성을 대신할 수 없다. 90년대를 강타했던 수많은 유머 시리즈는 시들어가지만, 앞으로도 그들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80년대, 자유를 향한 저항의 날갯짓

 

 

이전까지의 암울한 역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80년대는 눈에 띄게 자유롭고 당돌한 이미지가 인기를 끌었다. 꽤나 보수적이던 우리나라 패션 역사로 보아서는 가히 파격적이라 볼 만하다. 머리카락을 어찌나 잘게 볶았던지 마치 사자처럼 부풀린 일명 ‘미스코리아 머리’는 이 시대 도발적인 여성의 상징이었다. 김완선 머리에 게슴츠레하게 뜬 눈이면 그것이 섹시인줄 알던 시절이다. 돌청진(스톤워시드 진)에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형광색 티셔츠, 가을바람에 어울리는, 어깨 뽕이 잔뜩 들어간 바바리는 보기만 해도 무거울 지경이다. 여기에 민해경의 미니스커트도 빠뜨리면 섭섭하다. 김완선이 특유의 신비스러움과 섹시한 분위기로 인기를 끌어 그녀의 패션이 주목 받기 시작했다면, 이 시기의 민해경은 적극적이고 활달한 여성의 상징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쌍두마차라고 볼 수 있겠다.

이 후 영화 ‘비트’는 97년도 개봉작이지만 80년대 후반의 패션 스타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존심으로 한껏 띄운 닭벼슬 같은 앞머리와 헐렁하고 색 바랜 청자켓, 밑단이 좁아지는 바지를 입고, 빅뱅 하이탑 운동화의 시초격인 발목까지 오는 리복 운동화를 신는다면 ‘당신도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었다. 비슷비슷하고 고만고만한 스타일 중에도 물 건너온 gap이나 polo의 맨투맨 티셔츠를 입었다면 있는 집 자식 대접을 받기도 했다. 수입품이 경제력을 대변하던 때였으니 오죽하랴. 남자들은 한쪽 눈을 반쯤 가린 앞머리와 반항적인 눈빛으로 시대의 반항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야 뭘 좀 안다하는 오빠였고, 언니들은 꼭 윤기 나는 젤로 고정시킨 닭벼슬 앞머리를 누가 높이 띄우나 경쟁을 했다. 그러나 무서운 언니보다 더 높이 띄우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80년대에는 스타일의 다양성은 그리 보장받지 못했다. 쫄티에 청자켓을 입으면 그만이었고, 스타일 연출의 성공 유무를 좌우하는 것은 그저 눈빛에 달려 있다. 우수에 차 있거나, 반항적이거나.

 

90년대, 남과 북의 패션피플

 

 


90년대 후반 패션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남과 북의 편 가르기가 아닐까 싶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의 패션스타일은 남과 북으로 갈렸다. 강의 남쪽은 미국 세미힙합이. 북쪽은 복고풍이 유행을 했으니 말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이제와 인기를 끌었지만 이때부터 강남과 강북의 지역적 분위기 차이가 두드러졌다고 볼 수 있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 나가보면 힙합바지로 바닥을 쓸고 다니는 언니들과 깻잎을 이마에 돌돌 말은 언니들 사이의 신경전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머리끄덩이 잡는 싸움만 나지 않았을 뿐 분위기는 매우 팽팽했다.


우리들의 학창시절, 옷 좀 입는다는 친구 녀석들이 하나 둘씩 매고 온 이스트팩과 잔스포츠는 어느새 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예전에는 외국에 사는 친척이 있는 경우에만 공수할 수 있었던 이 미국 애들 책가방은 그 인기에 힘입어 우리나라 백화점에 입점했다. 엄마를 졸라 가방을 사러 백화점에 가기라도 하면 같은 학교 학생들 서넛은 마주칠 정도였으니 그 인기가 대단했다. 요즘 학생들이 노스페이스 패딩으로 계급을 나누듯 이 가방에도 소심한 계급 나누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가방 바닥에 가죽이 깔려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여부였다. 이렇게 똑같은 교복에 똑같은 가방을 매는 학생들 중 유행이 앞서는 친구들은 닥터마틴에 폴로 쫄쫄이 양말을 신어 스타일을 완성했다. 물론 나중에는 이마저도 교복패션의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다. 좋아하던 남학생의 이스트팩 앞주머니에 삐져나온 이어폰도 떠오른다.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SONY 휴대용 CD플레이어로 클래식 음악을 들을 것 같던, 남몰래 좋아했던 같은 반 남자 아이. 알고 보니 일본판 슬램덩크 마니아였지만, 그 애가 슬램덩크 주제곡을 직접 녹음해 선물한 카세트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었다. 그 애는 서태웅의 광팬이었는데.

 

2000년대, 편한 듯 튀게

 

 

2000년대 초반, 번화가를 수놓은 불꽃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화려한 원색의 아디다스 져지에 곱게 수 놓아진 불꽃 문양으로 후끈 달아올랐는데, 그거 하나 사 입겠다고 성인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TV를 틀면 연예인들도 저마다 각기각색의 져지를 입었고, 거리 또한 아디다스의 물결이었다. 외출하면 나와 똑같은 져지를 입은 사람 두셋은 마주쳤다. 아디다스 일반 매장은 색이 별로 예쁘지 않다고 친구를 따라 당시엔 하나 뿐이었던 압구정 아디다스 오리지널 매장을 찾아, 열심히 모아 둔 용돈을 탈탈 털어 져지 한 벌을 장만했다. 그렇게 사고도 아까워 입지는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던 기억도 있으니, 져지 사랑 참 유난했다. 누군가는 이 져지와 함께 트레이닝 세트를, 여성들은 치마를 입기도 했지만, 여기에 어울리는 국민 바지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리바이스 엔지니어드 진이다. 엔지니어드 진은 독특한 재봉선과 소재로 인해 단기 유행 아이템이 될 만한 가능성이 농후했으나, 예상을 뒤엎고 2000년대 중반까지도 사랑을 받았던 제품. 리바이스 501이 리바이스의 스테디셀러로 리바이스 '청바지의 역사'를 보여준다면, 엔지니어드 진은 2000년대 초중반의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단편적인 '패션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행을 이끄는 건 패션 피플도, 대학생도 아닌 중고등학생이다. 이들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브랜드의 흥행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돌던 노쓰페이스 패딩점퍼 계급에 대한 글은 엄청난 공감을 얻으며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내 자식이 남들에게 뒤처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부모님의 마음과 그들의 계급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고픈 그 나이대 아이들의 허세에 신이 난건 아웃도어 브랜드 뿐이다. 일명 ‘등골브레이커’는 이제 유행의 정점을 찍다 못해 마치 학생들의 교복처럼 느껴져, 중고딩이 아닌 우리는 추워도 노쓰 패딩은 어쩐지 민망스러워 입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추워도 부르지 못하는 이름, 노쓰페이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