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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24호] 서강 총장의 계보학

 

2005624일 재단이사회는 서강의 12대 총장으로 손병두 전()전경련 부회장을 선임한다. 그의 취임 즈음 서강의 분위기는 불안했다. 입시부정 사태, 해마다 추락하는 대외적 위신과 평가지수의 하락 등 서강의 위기론은 멈추지 않았다. 서강은 예전의 명성을 회복해야 했고 덧붙여 세계적 수준의 비전도 제시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적임자로 손 전 총장이 선택됐다. 서강 역사상 최초로 신부가 아닌 CEO 출신이었던 그는 철저한 개혁주의자였다. 그는 전경련 부회장이라는 수식어를 자신의 공약에 십분 활용했다. ‘기부금 1000억 원 모금’, ‘4년 무보수등의 파격적인 약속을 했던 그는 40여 년 동안 경영관리자로서 익혀온 체험과 노하우를 학교발전에 쏟으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가 서강에서 했던 모든 일들은 가시적인 업적 만들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2009년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실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언론에는 이미 손병두 전 서강대 총장의 KBS 이사장 내정설이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곤자가플라자, 곤자가기숙사, 파주 캠퍼스 구상 등을 비롯한 각종 상업시설 유치 계획 모두는 손 전 총장의 지시 하에 시작된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그의 불도저식 리더십은 임기 4년 내내 구성원 사이의 불신과 반목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홈플러스 입점 사태를 맞이해 정점에 달했다. 홈플러스 입점 조건으로 민간투자를 받아 개교 50주년 기념관을 세우려 했던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교 관계자는 당시 이 사업을 앞장서서 추진했던 사람은 손 전 총장과, 산학부총장을 역임했던 현 총장 유기풍 교수라며 교직원 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었지만, 총장의 눈치를 보느라 나서지 못했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기, 학내에 최초로 민자시설을 유치했던 부산대의 종합쇼핑몰 효원 굿플러스(NC백화점)’는 현재 금융권에 빌린 440여 억 원과 세입자들의 투자금 등 850억 원이 넘는 빛만을 남겼다.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봉사하겠다던 추상적이면서도 모호한 그의 말은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정치인의 단골 수사에 그쳤다는 게 학내의 주된 평가이다.

 

 

어지러운 학내 상황 속에서 손 전 총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13대 이종욱 총장이었다. 1966년 우리학교 사학과에 입학한 후 줄곧 ‘44년 서강맨으로 살아왔던 그는 서강대 사상 첫 동문 출신 총장이었다.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인문학자답게 세속적인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이 전 총장은 기부금 1,000억 원 공약을 내걸었던 손 전 총장과는 달리 단지 학교가 발전하면 기부금은 들어오게 되어 있다며 자신의 소신을 내비쳤다. () 총학생회장 고명우(철학·05)씨에 따르면 이 전 총장은 손 전 총장이 주식투자로 적립금의 상당액을 손실한 상태에서 총장직을 시작했다“K관 화장실 개보수, XJ관 열람실 리모델링 등 교내 인프라 구축을 위해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참모진 한 명 없이 나홀로 선거를 고집하던 그는 손 전 총장이 뿌려둔 미완의 약속들을 하나씩 바로잡아나갔다. 20097, 이 전 총장은 취임 직후 교내 홈플러스 입점 계약 취소 의향을 삼성테스코측에 전달했음을 밝히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캠퍼스 상업화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싼 거센 사회적 논쟁을 일견 반영한 것이다. 2010년 개교 5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금 모금 캠페인(making history)을 진행해온 것도 그의 치적 중 하나다(201343일 기준, 4786,156만원).

한편 이종욱 총장은 대학교육의 방향을 바로잡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 특별한 서강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인교육 강화 교수역량 강화 산학제도 도입 학교의 국제화 고객만족의 대학행정 구현 등이 세부 실천 항목이었다. 이는 2011년 개교 51주년을 맞이하면서 특별한 서강, VISION 2035’라는 이름으로 더욱 구체화됐다. 그리고 그의 모든 이념의 기저에는 특별한 서강이 만드는 특별한 DNA’가 전제되어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사업은 예수회 자매 대학인 조치대(上智大學)와 함께 만든 SOFEX(Sogang-Sophia Festival of Exchange)이다. 한국과 일본의 양국 학생들에게 다양한 국제교류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 대학으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1회 소펙스는 박근혜, 손학규, 신해철 등 다양한 정치·연예계 동문인사들이 모인 잔치로 시작해, 20123회를 맞이하며 연례행사로 정착됐다. 하지만 행사에 참여하는 일부 인원 이외에 일반 학생들에게도 얼마나 의미 있는 행사가 되고 있는지를 놓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이 페스티벌이 단지 연·고전을 뛰어넘고 싶은 이 전 총장의 사욕이 될지, 대한해협을 넘나드는 스포츠 문화의 장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별한 서강을 만들려는 이 전 총장의 의욕은 산학협력의 추진으로 이어졌다. 2008년부터 교육과학기술부는 5년간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orld Class University)’ 육성 사업(WCU)의 시행계획을 발표했다. 서강대는 국내 경영전문대학원으로서 유일하게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지원하는 두 개의 대형 국책 연구사업인 BK21사업과 WCU사업에 동시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WCU8250억 원을 투입해 해외 석학 유치, 첨단 분야 학과 신설로 글로벌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대대적인 사업이었다. 그러나 201012월 사업단 두 곳 모두가 퇴출당하고 만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WCU 사업 중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성과 부진이 퇴출의 주요 요인이었다. 같은 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영대 사태가 발생하면서 학교는 파문에 휩싸였다. 20105월 경영대 교수 4명이 총장에게 같은 과 교수의 횡령 사실을 제보하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결국 제보 교수들에 대한 재단 감사로 이어졌고, 제보교수들은 그 해 7월 횡령 교수를 검찰에 고발했다. 각종 일간지들의 보도를 통해 사태가 외부로 확산되자, 11월 학교 측은 횡령 교수와 그를 검찰에 고발한 제보 교수 중 한 명을 파면하고, 고발에 참여한 나머지 제보 교수 세 명을 해임시켰다. 3차까지 진행된 행정소송의 판결 결과는, 2012년 말 해고당한 교수들을 복귀시키라는 대법원의 명령으로 일단락됐다.

교내 곳곳의 잇단 잡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 총장은 자신이 내건 교육영토 확장사업인 광개토 프로젝트에 주력했다. 건축법상 용적률, 건폐율로 인해 더 이상의 건축 행위가 불가능해진 신촌캠퍼스에서 벗어나 교외로 눈을 돌린 것이다. 현재 우리학교는 2010년 남양주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제2캠퍼스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사학이 존폐위기에 놓인 현실 속에서 산학클러스터 이외의 어떤 수익으로 캠퍼스 신설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201114일자 주간동아 기사에 따르면 남양주 캠퍼스가 완성되면 국제 공동학위제 및 세계 수준의 융합대학원을 설립해 전학생 등록금·기숙사비 면제 등의 혜택까지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캠퍼스가 건립되는 사이 일반대학원 등록금은 올해도 어김없이 상승했다.

최근까지 이 전 총장이 서강의 진화를 위해 역점을 두었던 사업은 미래형 대학교육에 있다. 그는 예술과 과학기술, 인문학 통섭 교육인 Arts & Technology 학부 연계전공과 전문대학원을 설치하고, 기술경영(Management Of Technology: MOT) 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이는 분과 학문의 범주를 뛰어넘는 융합교육을 위해 추진됐지만, 높은 전문성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획된 교육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총장 임기 중 빈번했던 산학협력 차원의 교류에 비해 학내에서의 소통 노력은 소홀했다는 게 주된 평가이다. 총장 당선 이후 줄곧 총장과의 대화를 통해 대화하는 듯 보였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201012월 실시된 학교정상화를 위한 서강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설문조사는 그의 소통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재직교수 341명 중 200명이 응답한 설문에서 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잘못한다는 응답이 81.0%였다. 그런 한편, 2010G20대응민중행동의 서울국제민중회의 교내 개최 불허, 2011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의 분향소 철거 등은 그의 소통 방식이 일방적인 소통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이 전 총장은 지난 2, 4년의 임기 중 4개월을 앞두고 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같은 달 14일 사학과 동문회(회장 홍석범·75) 홈페이지에는 사학과 학생들이 이 전 총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한 사진이 올라왔다. 최병찬(사학·73)동문회 고문은 전달식에서 사학과 출신 모교 총장이 배출되면서 개교 50주년 기념으로 없어졌던 사학과 동문회가 재건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업난으로 인한 인문학 소외현상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서강의 중심에는 이 총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2013년 서강은 다시 산학 총장으로 복귀하게 됐다. 이는 대학 본연의 대학을 만들겠다던 이 전 총장의 계획이 긴 호흡으로 이어지기 힘든 서강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백미터 달리기로는 장기적인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 인문학과 전인교육을 강조했던 이 총장의 이어달리기바통이 유 총장에게도 전달될 필요성이 있다.

 

2013년 대통령을 배출한 두 번째 사학이 된 서강은 유기풍 교수의 14대 총장 선임 소식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2005, 손 전 총장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그는 지난해 교수총장임용추천위원회로부터 더욱 높은 점수를 얻었던 김정택 신부를 제치고 호선됐다. 익명을 요구한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총장 결선 투표전에서는 김정택 신부가 유기풍 교수보다 앞섰다대선 시기가 가까워지면서 박근혜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 참석하는 등의 활동을 했었다는 말을 전했다. 유 총장은 이 전 총장 시기 건립된 정하상(J)·떼이야르(TE)(201198일 준공) · 토마스모어(Thomas More, 2012514일 준공)관 준공식과 학위수여식 등에 내·외빈으로 참석하며 자주 얼굴을 비춰왔다.

2006년부터 산학부총장을 역임한 그의 키워드는 연구성과산학협력이었다. 2011년 서강소식 겨울호 인터뷰에 따르면 서강이 연구부분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양보다는 질, 그리고 융합에 있다고 전했다. 그는 더불어 “21세기는 다면적·융합적 연구의 시대이며, “서강대는 이공대의 핵심인 수학, 물리학, 생명과학, 화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화공생명공학에서 서강만이 가진 최고의 장점만을 살려야 할 것을 강조했다. 같은 인터뷰에서는 그가 산학부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외부 연구비 수주액이 해마다 상승세를 보여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2008393억 원, 2009532억 원, 2010734억 원).

 

산학부총장으로서 그의 역할은 연구성과에 그치지 않았다. 20121월 이종욱 전 총장이 헬스닭·그린텍이십일 등과 저지방 유탕면 '알통통 스마트면'의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는데, 이에 유 총장의 연구팀이 뛰어든 것이다. 일명 서강라면은 판매 수익의 일정 부분이 학교로 들어오는 구조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3월 청년광장에는 서강라면을 언급하는 몇몇 동문의 글이 올라왔다. “저지방라면(서강라면)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들린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시중에서 이를 접하긴 힘들다학교에서 물량을 일부 구매해 기념품가게나 교내 매점에서 서강라면을 판매하고 홍보효과를 도모하자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서강기술지주회사 본부장 이문규씨는 시장 반응을 위해 초기에 소량 생산했고, 반응이 좋았지만 아직까지 생산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서강라면은 기존의 저가 라면과 비슷한 수준의 단가로는 수익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생산을 중단한 상태이며, 이는 일시적인 사업 실패로 볼 수 있다. 산학협동 모델에 치중할 경우 대학 본연의 교육·연구 기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 총장이 차후 서강기술지주회사를 어떤 방식으로 꾸려나갈지 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유 총장은 선거 기간 당시 소견 발표를 통해 반값등록금 실현교수, 교직원, 대학원생 처우 개선등 학내 구성원 복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Sogang Pride: 合議實踐(합의와 실천)’이라는 슬로건 아래 예수회 교육의 사명을 실천할 전인적·봉사적·창의적 리더를 양성할 것을 다짐했다. 유 총장의 제자인 김준우(화공생명공학·박사과정)학우는 유 교수가 그의 공약대로 몸소 전인적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썼다고 술회하며, 그가 열역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일 뿐만 아니라 평소 정규 교과 과정 이외에 다른 연구들도 세심하게 소개해주시는 분이라고 전했다. 그는 더불어 공적으로는 매우 엄격하고 카리스마 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부드러운 분이라고도 밝혔다. 한편 유 총장은 총장이 되기 이전부터 페이스북을 운영하며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소통 방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면면을 염두에 둘 때, 그가 역대 총장들의 불통 리더십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소통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314일 이냐시오관 강당에서 유 총장의 취임사가 있었다. 그는 서강 가치와 패러다임 재창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창조형 학부교육, 세계수준의 창의적 연구, 행정 효율성 극대화, 재원확보와 인프라 구축을 통해 서강대를 최고의 명문사학으로 만들 것이라며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꿈의 공간, 기회의 공간, 가능성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 총장은 또한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 자신의 길을 빗대어 제가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장 낮은 곳에서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취임식 화환의 맨 첫 자리에는 민생 대통령이 되어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화환이 자리하고 있었다.

2013, 대학가에는 외부에서 영입한 ‘CEO형 총장대신 실무형 총장바람이 불고 있다. 학내 보직을 두루 거쳐 온 유 총장 역시 학교 사정을 소상하게 알고 있다는 점에서 실무형 총장에 속한다. 그러나 학교 운영은 홀로 소통이 아닌 함께 소통을 전제로 한다. 총장뿐만 아니라 학생, 교직원, 교수협의회 등 구성원 모두가 학내외 민주적 공론을 형성하고 비판의 광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유 총장에게 주어진 필연의 과제는 ‘CEO학자형, ‘실무형도 아닌, ‘대학다운 대학을 만드는 것임이 분명해졌다. 그가 진정으로 낮은 자리에서 헌신하며 서강의 행복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지 기대해 봐도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