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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165호] 치킨, 더 이상 서민 간식이 아닌

[출처: 게티이미지]

 

장 혜 연 기자

 

어렸을 적 생각이 난다. 은빛 포일로 감싸진 채 모락모락 새어 나 오는 맛있는 냄새와 온기. 노란 고무줄로 두어 번 감싸 놓았지만, 큼직한 닭다리 때문에 포장지 겉면으로 붉은 양념이 새어 나오는 모습이 생각난다. 달짝지근한 소스를 흠뻑 머금은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아직 식지 않은 기름이 입안으로 터져 나와 인상을 찡그리며 먹을 때의 행복감이 생각난다. 치킨 배달을 시키면 치킨집 사장님이 직접 오토바이를 끌고 와 전해 주던 그때. 그때의 기대감을 생각하며 치킨을 시 키려 할 때, 이전과는 사뭇 다른 가격에 놀라곤 한다. 

 

치킨은 본래 닭고기를 원료로 밀가루를 묻혀 튀긴 요리인 ‘프라이드치킨’의 줄임말이다. 우리나 라에 치킨이 들어오게 된 경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대체로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 이후 주한미군을 통해 유입되었다는 설과 재래시장의 ‘시장 통닭’에서 시작되었다는 두 가지 가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치킨이 언 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1961년 처음으로 명동에서 풍기던 고소한 전기구이 통닭 냄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1963년 영양사료(복합사료) 공장의 등장으로 인해 대량생산 체제가 시작됨에 따라 집에서 키우는 닭을 큰 솥에 삶아 먹는 형태를 벗어나 ‘취향 따라 맛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전기구이 통닭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기름에 튀긴 치킨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1977년 국내 최초의 치킨 프랜차 이즈인 림스치킨이 신세계백화점에 문을 열었다. 림스치킨은 국내 최 초로 닭을 조각내어 밀가루 등을 묻혀 기름에 튀기는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후, 1979년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롯데리아에서 조각 치킨을 판매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며 크고 작은 치 킨 프랜차이즈가 생겨났다. 주목할 점은 1980년대에 들어서며 치킨업 계의 큰 별인 ‘양념치킨’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양념치킨은 1981년 페리카나 치킨이 물엿과 고추장을 베이스로 만든 양념에 튀겨낸 치킨을 버무린 형태로 선보였다. 양념치킨은 활발해진 치킨 시장에 박차를 가 하며 매콤 달콤한 맛으로 토속화되어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후 멕시칸 치킨(1986), 처갓집 양념통닭(1988), 멕시카나(1989) 등 수많은 프랜차이즈 치킨업체가 등장하며 치킨은 한국인의 소울푸드(soul food)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치킨은 세계화의 물결 속 문화콘텐츠 강국 식문화로서의 면 모를 뽐내기도 한다. 2014년 전지현과 김수현 주연의 TV 드라마 ‘별에 서 온 그대(별 그대)’가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며 극 중 주인공이 좋아하 는 음식인 ‘치맥’이 예상치 못한 호기를 누렸다. 즉, K-드라마, K-pop을 필두로 한 K-food의 확장이다.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 원이 베이징과 방콕, 뉴욕, 파리 등 해외 주요 도시 17곳의 주민 8,500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외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한식은 ‘한국식 치킨’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0년 농식품부가 해외 16개 도시에서 동일한 내용의 조사를 시행했을 때, 외국인이 자주 먹는 한식 1위는 ‘김치’였으며, ‘치킨’은 3위에 그쳤다. 그러나 몇 년 사이에 한국식 치킨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문화, 콘텐츠 파워가 강력해지며 치킨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시장 상황이 긍정적일까?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다. 치킨 시장 내에선 불꽃 튀기는 경쟁으로 인해 치킨을 위한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치킨 은 그 대중성과 유명세로 인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라 는 인식이 존재한다. 우스갯소리로 문과와 이과 중 어느 분야를 선택해도 결국 종착지는 치킨집이며, 이공계 박사도 결국 치킨집이라는 밈 (meme)이 떠돌기도 한다. 이러한 밈은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는 측면 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치킨집이 창업하기 좋은 아이템이며 실제로 치킨 가맹점을 사업으로 선택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회 현상 의 방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출처: 너는 내일부터 치킨집 사장이다/ 위너스북]

 

‘기-승-전-치킨집’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성공 여부가 미디어를 통한 반복적인 브랜드 노출을 통한 인지도 형성에 달려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가맹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치킨 사 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국토연구원은 지난 20년간 치킨집 폐업률은 78.2%라고 밝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2 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에 따르면, 실제로 코로나19 기간인 2021년 외 식 브랜드 가맹점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과 비교하여 약 24% 증가했다. 그중 치킨 가맹점 수는 2만 9천373개로 13.6%의 높은 증가 추세를 보였다. 치킨의 세부 업종별 가맹점당 평균 매출액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였을 때 –2.2% 하락하여, 비대면 배달 상황이라는 코로 나 특수를 누렸음에도 과열과 경쟁으로 인해 치킨 시장이 녹록지 않음 을 알 수 있다.

 

이에 일부 치킨업계는 23년 4월, 매출액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 교촌치킨 운영사인 교촌에프앤비는 인기 메뉴인 허니콤보 가격을 기존 2만 원에서 2만 3천 원으로, 교촌 오리지널은 1만 6천 원에서 1만 9천 원으로 인상했다. 3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의 배달료를 감안하면 약 3만 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셈이다. 교촌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시작으로, 네네치킨, 처갓집양념 치킨, 페리카나 등 일부 가맹점이 앞 다투어 배달앱에서 가격을 인상했다. 국민 간식인 치킨 가격을 앞장서 끌어올리고 있다는 인식 탓에,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교촌에프앤비의 지난해 매출은 4,989억 원, 영업이익은 29억 원이었다. 매출은 4,935억 원을 기록한 전년 대비 1.1%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280억 원에서 89.8% 급감한 수치이다. 경쟁사인 bhc의 경우 영업이익 1,418억, 매출 5,075억 원 수준이었으며 BBQ 매출은 4,188억 원, 영업이익 641억 원으로 전년보다 상승한 수치였다. 지난 2021년 11월에도 제품 가격을 올린 교촌이 영업 이익 손실을 선제적 가격 인상으로 대처하자 부정적 여론이 형 정 된 것이다. 

 

물론 치킨뿐만 아니라 밀가루, 식품, 외식 관련한 물 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원자재 수급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은행 경제전망 설명회에서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1.4%, 물가상승률 3.5%로 전망하였다. 정부는 물 가안정을 위한 식품업계와의 간담회에서 물가안정을 위한 업계의 협조를 요구했다. 이에 이마트 24, GS25, 세븐일레븐, CU와 같은 유통업계와 식품업 계가 가격 인상을 철회하거나 동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정부의 요청에도 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이유로 교촌은 가맹점 수익구조 악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아 이러니하게도 가맹점 수익구조가 악화된 교촌의 지난해 가 맹점 폐업률은 ‘제로’에 가깝다. 2021년 같은 해 기준으로 bhc 점포 219개가 폐업한 것과는 비교되는 수치이다. 가맹점 수익구조 가 악화됐다는 교촌 측의 설명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내실 있는 ‘프랜 차이즈 4 대장(교촌, 본죽,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에 속한다.

 

이제는 똑똑한 소비자와의 타협점을 찾을 때이다. 본사 배 불리기 식의 판매구조가 아닌 프랜차이즈 가맹주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과 도한 홍보비, 가맹비, 본사 물품 판매 형식으로 가맹점을 착취하기보 다는, 가맹점과 본사 그리고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인류애적인 공 생이 필요하다. 냉동육과 냉장육 선택을 옵션에 넣어 3천 원가량의 가격 차이를 둔다든지, 가격 인상 이후 비난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할인쿠폰을 활용하는 등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대처는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트렌드에 맞춰 대중을 호도하는 방식이 아닌 상생이라는 명확한 목적, 그리고 공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정성 있는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자는 족발, 보쌈, 치킨 등 맛있는 배달 음식으로 가득했다. 책자 뒷면에 자석이 붙어 있어, 냉장고에 붙여놓거나 서랍장 안에 최신 음식 책 자를 모아놓았다. 배고프지 않아도 혹은 시켜 먹을 생각이 없어도 혹 시나 책자 안에 들어있는 쿠폰을 사용할 일이 있을까 싶어 버리지 않았다. 그러다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배달 음식이 먹고 싶을 때 엄마에 게 사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없어져 버린 줄만 알았던 추 억의 배달 책자가 최근 다시 생겨났다는 소식이 놀랍기도, 슬프기도 하다. 고객과 본사라는 고래 싸움에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애꿎은 자영업자의 등만 터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 앱을 켜고 치킨을 주문할 때, 치킨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노다. 맛과 향뿐만 아니라 어렸을 적 치킨을 먹으면서 느낀 행복감이 떠오 른다. 추억이 떠오르는 동시에 그 시절의 가격과 외식 소비문화도 함께 떠오르며 현재와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치킨 가격 3만 원 시대, 치 킨은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국민 간식이 아니게 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 치킨전(정은정, 따비, 2014)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이기중(https://folkency.nfm.go.kr/ topic/detail/8102)

 

K-치킨, 한류 열풍타고 세계로…BBQ·교촌·bhc, 해외 진출 박차 / Viewer (2022.10.23.)

http://www.theviewers.co.kr/View.aspx?No=2573805

 

치킨집 3만 개 육박, 이보다 더 많은 '이것' / SBS Biz (2023.3.27.)

https://biz.sbs.co.kr/article/2000011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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