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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69호] 소녀 이미지 범람의 시대, 식인 소녀들의 새로운 이야기: 영화 <로우> 본문
프리랜서 에디터 임규리
*본 글은 영화 <로우>의 주요 스토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녀 이미지 상품화와 소비의 정점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 <로우>
현대 사회에서 ‘소녀’의 이미지는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상품화되어 소비되고 있다. 그 핵심은 허상의 주체성을 가진 신비화다. 대중문화 매체는 우리가 소녀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발랄하고 귀엽지만 미성숙하고 불안하며, 반항적이어도 그것이 한때의 치기이며, 비밀스럽고 환상적인 존재. 여성학자 조혜영은 21세기 ‘소녀들’을 자율적·창조적으로 문화 형성에 참여하는 걸 파워(girl power)의 주체이자 그들 스스로를 상품화하며 평가의 대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존재라고 보았다. 현대 대중문화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미지 상품인 ‘소녀’는 사회적 시선의 모순이 폭발하는 곳이며 그 논의에서 정작 소녀가 배제되는 곳이기도 하다.
줄리아 듀코나우 감독의 영화 <로우(Raw)>(2016)는 그러한 소녀 이미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이다. <로우>는 ‘소녀’와 ‘식인’의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로우>는 식인 행위와 관계있는 육체, 그중에서도 ‘소녀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감독의 말에 따르면, 외모나 다이어트와 같은 기존 소녀의 육체에 대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로우>에서는 자신의 육체에서 소외되었던 소녀가 육체를 집어삼키는 ‘식인 소녀’가 되어 반격한다. 우리가 흔히 소비하는 연약하고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에 겹쳐지는 끔찍하고 반인륜적인 식인이라는 행동은 심각한 모순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 조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러한 반응은 사회가 소녀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소녀가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전제가 식인 소녀의 존재를 충격적이고 모순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식인 행위의 전복성과 스플래터 이매지네이션
그렇다면 왜 하필 식인일까? 식인 행위는 정복과 지배의 이데올로기와 뿌리 깊게 연결되어 있다. 아메리카 정복 초기에 유럽인들에 의해 유포되었던 식인종 담론은 유럽인들에게는 잔인한 정복과 노예화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했고, 원주민들에게는 그들의 ‘야만성’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함으로써 쉽게 문명 앞에 피정복자로 무릎을 꿇게 했다. 철저한 목적을 가지고 서술된 식인과 식인종에 대한 묘사는 역사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가르기 위한 보이지 않는 선이 되었다. 그 뿌리 깊은 문제점을 파악한 브라질 모더니스트들은 ‘식인종 선언’을 통해 “식인에 대한 혐오 자체가 이미 유럽 중심주의적인 바에야 오히려 식인을 축하하며 정체성화 하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도덕적 판단을 떠나, 애초에 식인종 담론을 끌고 온 지배자들의 논리를 반박하겠다는 태도다.
이는 스크린에서 나타나는 바바라 크리드의 ‘여성괴물’의 이미지와도 연결해 볼 수 있다. <로우>의 주인공인 식인 소녀들은 여성괴물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한다. 여성괴물은 오랫동안 타자화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로우>의 주인공인 식인 소녀들은 그러한 괴물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며 주체가 되고, 사회가 은폐하려는 것을 역으로 터트리고 분출시킨다. 이는 브라질 모더니스트들의 식인종 선언과도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로우>에서 드러나는 소녀들의 식인 행위는 도덕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문제가 아닌, 은폐와 폐색의 시대를 돌파하는 전복적 이데올로기, 스플래터 이매지네이션(splatter imagination. 긍정적인 의미의 피투성이 상상력을 말한다. 일본 와세다 대학교 문학부 교수인 다카하시 도시오가 만들어낸 개념이다)이 된다.
영화 <로우>에서 나오는 소녀들의 식인 행위는 스플래터 이매지네이션의 결정체다. 호러라는 장르적 요소로도 식인이 등장하지만, 그것보다는 식인과 깊게 연관된 육체에 대한 논의, 소녀의 육체가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에서 재현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더 담겨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식인 소녀들은 자신이 지배 이데올로기로 인해 여성괴물로 타자화된다는 사실을 역이용하여 전복적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식인 소녀들이 가진 전복적 이데올로기의 힘은 현대 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소녀 이미지의 모순과 불합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가장 ‘야만적인’ 행동으로 여겨지며 용납되지 않는 식인 행위를 통해 소녀들은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이중 잣대의 폭력과 짙은 혐오감이 식인보다 훨씬 잔인하고 모순적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이미지 상품으로서의 신비화된 소녀는 사라지고,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야만적’이고 ‘괴물’ 같은 소녀가 주인공의 자리를 차지한다. 소녀들의 식인 행위는 자신들의 육체가 사회가 아닌 자신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표명하는 행위다.
21세기 대중문화에서 활발하게 소비되는 신체 이미지 벗어나기
<로우>에서 저스틴은 처음에 사회가 기대하는 ‘소녀’처럼 모든 부당함을 견디며 복종하는 ‘순결한 처녀’로 그려진다. 저스틴이 자신의 식인 본능을 발견하고 자신의 성욕과 식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소녀의 도덕성은 평가의 대상이 된다. 경배의 대상이었던 소녀는 순식간에 경멸과 심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는 그러한 소녀 이미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로우>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잔혹한 모습은 식인 행위보다 더 끔찍하고 부당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사회적 터부인 식인 행위는 오히려 소녀들의 본능이자 탈출구, 부당한 힘에 맞서는 반동의 힘이 된다. 그러한 힘은 문제의 본질을 피해 가는 억지스러운 걸 파워를 보여주는 대신 소녀의 불안함과 나약함, 욕망의 표출을 그로테스크한 과잉의 이미지로 드러냄으로써 신비화를 거부한다. 소녀들은 부당함에 대한 불안과 분노로 머리카락을 뜯어먹고 토하며, 자신들을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회 앞에서 남자처럼 서서 오줌을 싸며 낄낄거리고, 교통사고를 가장해서 사람들을 살해하고 인육을 먹으며, 성욕과 분노를 살을 뜯어 먹고 피를 흘리는 것으로 표출한다.
저스틴이 스스로가 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그리고 도덕적인 평가를 거부하는 강력한 괴물인 알렉스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에서 관객들은 불안감과 동시에 해방감을 느낀다. 불안은 저스틴이 기존 사회에서 어긋나는 존재가 되리라는 것, 그리고 식인이라는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소녀들에게 가하는 억압과 폭력에 견줄만한 강력한 반동의 힘, 식인 본능의 무차별적이고 근원적이며 강력한 힘을 발견함으로써 해방감 또한 느끼게 된다. 다카하시 도시오는 이러한 호러 영화, 고어 영화가 주는 해방감과 자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애써 보지 않으려 하면서 멀리하는 각종 터부나 구조 등으로부터의 해방감인 동시에, 보지 않으려고 했던 그것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해방감입니다.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이 피투성이 생명 탄생과도 거리가 먼 정신적·신체적인 ‘붕괴’나 피가 낭자한 죽음이라 해도, 아니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더 말이죠.”
<로우>에서는 소녀들의 괴물성에 도덕적 잣대를 대는 훨씬 더 폭력적이고 잔인한 사회를 그려낸다. 부당함에 침묵하고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던 저스틴은 그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채식을 강요하는 엄격한 부모의 명령과 끔찍할 정도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수의대학의 신입생 신고식, 그것을 눈감아 주는 데다 자신의 능력을 폄하하는 교수, 자신을 잘난척하는 괴짜로 취급하며 따돌리는 동기들 앞에서 저스틴은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스틴이 식인 본능이 자신의 언니인 알렉스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전개는 사회가 원하는 소녀의 이미지와 대중의 도덕적 심판을 거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알렉스는 손가락이 잘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수의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의 손가락을 먹어버린 저스틴에게 미쳐버리지 않고 ‘제대로’ 식인을 하는 법을 알려준다. 또한 알렉스는 자신의 살인과 식인 행위에 도덕적 양해를 구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으며, 저스틴이 자신처럼 식인 본능을 인정하고 더 솔직해지길 바란다. 오히려 알렉스는 저스틴이 자신과 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반가워한다. 영화 <진저 스냅>에서 브리짓이 ‘정의의 편’에 서서 늑대인간으로 변한 언니 진저를 처단한 것과는 달리, 저스틴은 자신의 친구를 먹어버린 알렉스를 이해하는 것으로 사회에서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소녀의 순수함을 강요받는 현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알렉스가 감옥에 가면서 식인 소녀는 거부된다. 저스틴과 알렉스의 아버지는 알렉스가 원래는 ‘사랑스러운 공주님’이었다고 포장하고, 저스틴은 마지막까지 알렉스와 달리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 딸이 된다. 질문은 관객에게 남겨지지만, 관객은 이미 소녀들의 식인 본능이 억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소녀들이 사랑스러운 공주님이 아니며, 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로우>는 또다시 은폐에 대한 식인 소녀들의 폭로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화가 된다.
[참고문헌 및 자료]
저자 김은하 외 9명, 조혜영 엮음, 『소녀들: K-pop, 스크린, 광장』, 여이연, 2017.
다카하시 도시오, 『호러국가 일본: 무너져가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스플래터 이매지네이션』, 김재원·정수윤·최혜수 역, b, 2012.
바바라 크리드, 『여성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손희정 역, 여이연, 2017.
임호준, 「한스 스타덴의 『진실한 이야기』(1554)에 대한 상이한 관점의 영화적 재현: <내 프랑스인은 얼마나 맛있었나>(1971)와 <한스 스타덴>(1999)」, 『이베로아메리카硏究』 제24권 3호,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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