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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69호] 취향을 기반으로 한 관계와 문화공동체 본문
송효정 기자
문화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화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하여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의식주를 비롯해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딕 헵디지가 말했듯 문화는 유별나게도 애매한 개념이다. 여러 세기를 지나며 문화라는 단어는 다르기도 하며 수많은 의미를 얻게 되었다. 문화라는 용어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고 맥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여러 담론을 가지고 다양한 의미가 종합되어 인간이라는 집단을 설명하기도 어떤 현상을 담는 단어가 되었다. 나아가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문화가 상품으로 대량 생산, 재생산되어 대중에 의해 소비되는 것을 대중문화라 한다. 대중문화는 주류 문화라 불리기도 하는데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공유하는 문화를 뜻한다.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건즈 앤 로지스, 너바나.... 나열된 이름들을 보면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하고 추억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나열된 저것들이 대체 무엇인지 생소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돌 문화가 활발한 한국에서 K-pop을 듣지 않고 밴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밴드 문화는 아이돌의 ‘아이돌 직캠’, ‘뮤직 뱅크’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 대형 기획사에서 제작하는 뮤직비디오와 각종 프로모션과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소소하게나마 정보를 교류해 가며 홍대의 소공연장에서 공연을 즐기는 등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한다. 이들은 주류 문화에서 벗어난 활동을 하며,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그룹이다. 주류 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만큼 본인의 취향을 쉽게 주변인들과 공유하기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문화를 즐기면서도 나름의 커뮤니티를 형성해 소통한다. 커뮤니티는 온라인 카페가 될 수도 있고 동호회일 수도 있으며, 다양한 형태를 가진다. 이렇게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을 ‘취향공동체(community of taste)’라고 한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취향을 즐기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깊이 있는 교류를 나눈다. 주류를 벗어나지만, 그 속에서 그들 나름의 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딕 헵디지는 하위문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위문화는 주류문화로부터 주변부화된 것, 지배적인 가치와 윤리로부터 배격당한 것, 동시대의 지배적인 문화적 형태와는 다른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로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 “하위문화는 내부의 능동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류문화를 거부한 것이며 지배적인 가치와 윤리를 배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하위문화는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문화로 주류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치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문화라 할 수 있다. 하위문화를 즐기는 이들은 그들의 믿는 가치나 특정한 이유로 주류문화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주류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위문화는 때로는 자체적으로 하나의 장르가 되기도 한다.
그라피티를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다. 락카나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주로 공공장소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과 같은 흔적을 남기는 이 행위는 원칙적으로는 범죄로 취급되지만, 예술적 특성과 문화적 배경으로 묵인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하나의 예술로써 존중받으며 그라피티 작업을 모아 전시를 열기도 하고 여러 기업에서 그라피티 아티스트와 컬래버를 진행하기도 한다. 범죄로 볼 것인지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예술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이처럼 하위문화는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냄으로써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다.
김현정은 그의 글에서 취향공동체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 넘쳐나는 미디어와 콘텐츠를 접하고 있으나, 서서히 자신의 취향을 발견한다. 이러한 취향은 미디어 및 인터넷에 접속하는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되었으며, 21세기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이용자는 끊임없이 제공되는 콘텐츠들은 손쉽게 향유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취향공동체(Community of taste)에 속하게 된다. 콘텐츠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상생활 등 주제 다양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콘텐츠 소비자들은 자신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아간다. 공감대 형성 과정을 통해 취향공동체가 형성되면, 이에 대한 충성심과 공동체 의식이 공고히 되는 과정을 거친다. 사회에서 취향공동체는 공통의 취미를 공유하는 집단이라는 용어의 의미로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은 여러 관계로 채워져 있다. 그 관계는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한 관계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처럼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관계일 수도 있으며, 단순히 가벼운 인연에 불과한 관계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기 위한 관계는 어떨까?
최근 하루 혹은 단기간에 흥미를 체험하기 위한 ‘클래스’들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원데이클레스 수업들이 많아졌고 클래스 101(Class 101)처럼 단기 클래스를 위한 서비스도 생겨났다. 독서와 같은 취미도 혼자 하는 활동이었지만, 요즘에는 독서클럽을 만들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처럼 취향을 기반으로한 커뮤니티는 과거 ‘오타쿠’나 ‘덕후’ 등으로 불리던 마니아층의 사람들이 주로 교류와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특히 팬데믹 이후로는 다양한 소재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가 많이 생겨났다. 이들은 이전의 관계들과는 달리, 가늘고 긴 연결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취향을 기반으로한 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처럼 필수적이지만 무게감 있는 관계와는 달리 가볍게 개인의 취향을 공유하고 관련한 정보를 주고받는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무구속성’은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부담을 줄여주고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을 보다 가볍게 만들어준다. 이처럼 개인으로 즐기던 이들은 때로 집단을 이루기도 한다. 이전에는 음지에서 조용히 즐기던 덕후들이 이제는 양지로 나와 각자의 취향을 당당히 공유하고 그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다. 혼자서 즐기던 취향이 공동체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소수가 즐기는 취향이 모인 커뮤니티는 때로 작은 사회를 형성하기도 한다. 대규모 자본과 유통망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서점이 등장한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서점 주인이라는 이름보다 책방지기로 불리는 이들의 취향대로 꾸며진 작은 서점은 책방지기의 취향대로 꾸며지는 만큼 각 독립서점 별로 특화된 분야와 개성이 존재한다. 동내의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하는 독립서점은 사람들이 모여 좋아하는 책을 추천하고 책에 대한 공감을 나누며 때때로 작가와의 만남을 가지고 손님이 없는 한적한 시간에는 호스트가 정한 주제를 가지고 소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경제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대형 출판사에서는 발행하기 어려운 소규모의 서적을 발행하기도 한다. 이처럼 복합문화가 공존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한다.
최근에 취향공동체가 주목을 받는 것에는 높아진 개인주의로 인한 개인화도 있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외부 요인도 큰 역할을 했다. 소수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 다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찾게 되었고, 이는 온라인 취향공동체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취향공동체는 단순히 취미를 공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적 연결망을 확장하며, 새로운 문화와 트랜드를 만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일상 속 다양한 관계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관계가 점점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딕 헵디지, 『하위문화 : 스타일의 의미』, 현실문화연구, 1998년
김현정. (2021). 취향공동체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논의: 방탄소년단 팬덤 사례를 중심으로.한국과 국제사회,5(1), 7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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