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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69호] 피식대학 지역비하 논란으로 본 성찰적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 본문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조선희
구독자 수 300만 명의 개그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Psick Univ’(이하 피식대학)이 지역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월 11일 올라온 <경상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영양에 왓쓰유예> 영상이 문제였다. 해당 영상은 피식대학 주 출연자 세 명이 경상북도 영양군을 찾아 여행하는 내용으로, 이들이 영양군에서 보인 반응이 논란이 됐다. 그들은 영양에서 맛본 음식들을 혹평하거나 영양에 도착하고부터 줄곧 유동 인구가 없다, 노인이 많다, 볼거리·놀거리가 없다는 식의 대화를 나눴고 이를 콘텐츠로 내보냈다.
피식대학은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지더라도 코미디언들이 웃긴 콘텐츠만 갖고 있다면 언젠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단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이번 경북 영양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차가웠다. 유튜브 댓글 창엔 이들이 무례하단 평이 쏟아졌다. “앞으로 새로운 소규모 도시가면 속으로 얼마나 개무시를 할까?”, “유튜브로 잘 나가면 영세업자 까도 되나?”, “저기 사는 분들 속상해하겠다.” 등의 댓글과 함께 누리꾼들은 피식대학이 혹평한 음식점 주인들과 영양군민들을 걱정했다.
출신 지역·사투리에 내재된 위계
피식대학이 경북 영양 콘텐츠에서 지역 비하 지적을 받았으니, 이번만 잘 수습하고 넘어가면 될까. 이번 회차뿐만 아니라 해당 콘텐츠가 속한 코너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보여지는(하지만 숨겨져 있는) 불편한 위계가 있다. 논란이 일고 다소 늦은 5월 19일, 피식대학 측은 유튜브 커뮤니티에 사과문을 올렸다. “‘메이드 인 경상도’는 이용주의 지역 정체성을 소재로 한 코미디 콘텐츠입니다. 이용주 본인이 부산 사람이라고 주장함에 반해 실제 경상도인과의 대면에서 보이는 어수룩함과 위화감을 코미디로 풀어내는 게 기획의도였습니다. (중략) 문제가 되었던 영양군 편은 지역의 명소가 많음에도 한적한 지역이라는 컨셉을 강조하여 촬영했고 이에 따라 콘텐츠적인 재미를 가져오기 위해 무리한 표현들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해당 영상이 속한 코너 ‘메이드 인 경상도’는 경기도·호주 등에서 자란 이용주가 자신이 부산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컨셉이다. 부산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사투리 억양을 쓸 줄 모르는 이용주가 된소리 발음을 이용해 아무 단어를 내뱉으며 ‘경상도 사투리가 맞다’고 주장하는 데서 웃음을 자아내는 식이다. 나머지 두 출연자 정재형, 김민수는 경상도 출신이고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쓰기 때문에 그런 이용주를 타박하거나 놀리면서 웃긴 상황을 배가시킨다. 이전부터 ‘피식쇼’에서 이 같은 상황이 자주 연출됐는데, 그가 경상도 사투리라 주장하는 된소리 조어들이 쇼츠·릴스 등에서 유행어처럼 돌면서 ‘메이드 인 경상도’가 하나의 코너가 됐다.
여기서 개그의 소재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경상도 사투리를 따라 하는 서울 사람이다. (실제 이용주는 경기도 사람이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서울 사람이라고 해보자.) ‘서울공화국’이란 표현이 있을 만큼 서울과 서울이 아닌 지역의 격차가 사회문제 시 되고 있고, 서울과 다른 지역 간의 위계가 또렷해지며 서울이 아닌 곳은 ‘지방’으로 통칭되거나 균질한 하위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당연히 서울말과 사투리 사이에도 위계가 존재하는데, 이는 우리가 ‘표준어’를 무엇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어 어문 규범 표준어규정에 따르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원칙이다. 방송언어에서도 서울말이 일반적으로 쓰이며 교과서 등에서도 그러하다. 즉, 서울말이 표준, 그 외 지역 말은 비표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사람이 자신을 ‘지방’ 사람이라 주장하는 것은 핍진성이 떨어진다. 물론 핍진성이 해당 코너의 주요 웃음 포인트는 아니다. 그러나 ‘공간 위계 Spatial Hierarchy’가 출신 지역, 쓰는 말 모두에 위계를 부여하는 현실에서, 사투리를 갖고자 하는 서울 사람이 개그 소재로 놀림 받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즉, 사투리를 갖고자 하는 서울 사람이 현실에 존재하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사투리를 못 가진 것이 놀림감이 될 수 있을까. 반대로 서울말을 쓰고자 사투리를 고치는 사람은 있고, 사투리를 못 고쳐서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일어나지 않을 ‘위계의 전복’을 개그 소재로 맞닥뜨리면서, 실제로는 ‘전복되지 않을 위계’를 떠올리게 된다.
그렇다면 서울 - ‘지방’에만 위계가 있을까? 한국 사회엔 각 지역에 대한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나 이데올로기가 있다. 이는 기존 미디어와 대중문화 콘텐츠가 관성적으로 활용해 온 부분이 있으며 각 지역의 정체성이란 ‘전라도 사람은 어떠하다’, ‘경상도 사람은 어떠하다’는 식의 납작한 서사로 재현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용주는 왜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싶어 할까? 전라도, 충청도, 이북 사투리도 아닌 경상도 사투리인 이유가 무엇일까? 경상도 사투리를 네이티브처럼 쓸 수 있을 때 얻게 되는 이점이 있을까? ‘메이드 인 경상도’의 또 다른 출연자 김민수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는 울산 출신, 사투리에 엄청난 자부심을 보이는 캐릭터로 나온다. 김민수는 다른 지역에 대해 ‘울산보다 못하다’는 식의 발언을 개그로 사용한다. 또 ‘경상도 형님’이 출연하면 ‘끼리문화’를 공유하며 마초적 모습을 보인다. 이것을 개그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곱씹어 볼 만하다.
대중이 요구하는 콘텐츠의 규범
이 논란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대중들의 반응이다. 지역이란 소재를 빼놓고 보면 이 콘텐츠의 플롯은 피식대학이 어떤 공간을 찾아 솔직하게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맛없는 것을 맛없다고, 재미없는 것을 재미없다고 한 일종의 솔직 리뷰인 셈이다. 우리는 이런 진솔한 평가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내돈내산’, 영수증 리뷰가 이젠 일반화된 것도,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아이돌 맛집 해시태그(좋아하는 그룹이 맛집을 찾을 수 있도록 멤버 이름을 넣어 #OO아_여기야 #OO을_위한_맛집투어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맛집 리뷰를 올리는 팬들 사이의 문화)’가 진짜 맛집을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된 것도 그러한 심리의 반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중은 그런 솔직 리뷰를 원하지 않았다. 먼저, 지역 비하에 특히 민감했다. 피식대학은 다른 지역 – 창원, 안동, 부산, 구미, 경주 등 – 을 찾아서도 이런 저런 평가를 했다. 그런데 영양을 솔직하게 평가한 데 대해선 대중 반응이 달랐다. 다른 지역에선 웃어넘길 수 있던 평가가, 특정 지역에서는 거부된 것이다. 영양은 다른 ‘지방’에 비해 조금 더 중심에서 떨어져있고, 인구수도 1만 5천 명으로 많지 않으며, 개발이나 성장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이다. 도시가 아닌 시골이고, 노인 인구 비율도 높다. 이런 점에서 대중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다룰 때 비록 사실을 말할지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인 비하, 무례함 등도 비판 지점 중 하나였다. 이에 피식대학이 ‘300만 유튜버’라는 점을 지적하는 댓글도 많았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에 요구되는 윤리의식과 규범이 높아져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팩트라고 다 배설하면 안 됩니다”란 댓글도 공감을 얻었다. 전해선 안 될 사실이 존재하며 대중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묵직한 의미가 담겨있다. 올해 초 배우 고 이선균 씨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언론의 도 넘은 사생활 보도를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언론이 국민의 ‘모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모를 권리는 생명과학과 의료윤리 영역 등에선 이미 학술적 논의가 진전된 개념으로,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커뮤니케이션 영역에 도입할 수 있을지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와 저널리즘(또는 미디어, 정보 등)의 관계는 시민주권과 알 권리의 토대에서 세워졌다. 그러나 이를 위해 저널리즘에 부여한 사실주의, 객관성 등 규범이 민주주의에 기여하지 못하는 징후가 다수 드러나면서 기존 규범과 원칙에 대한 지지는 무너지고 있다. 이를 대체할 논리가 우리 사회에 아직 정립되지 않았을 뿐, 대중은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성찰적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며
댓글 창을 포함한 온라인 소통 공간이 혐오 표현, 막말, 비논리적 언행의 온상으로 지목받은 지 꽤 되었다. 인터넷의 순기능으로 알려진 자유로운 정보 교환과 의견 개진, 그를 통한 민주주의 강화 등은 인터넷의 역기능이 부각되면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는 한국 대중의 시민의식에 대한 상호기대감 같은 것도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피식대학 콘텐츠에 반응하는 대중에게서 우리는 우리가 공동으로 바라고 상상하는 규범과 윤리의 잔여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글은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시민에 대한 기대가 다소 사라진 필자의 대중 다시 보기 시도이기도 하다.
현재의 미디어 상황에서는 누구나 우연한 기회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알고리즘을 타거나, 레거시 미디어의 선택을 받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이 윤리와 규범을 요구하는 대상은 ‘300만 유튜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우리는 ‘성찰적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위르겐 하버마스의 커뮤니케이션론은 합리성, 합의, 상호작용, 호혜 등과 같은 계몽주의적 개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성찰적 자세. 대중의 요구도, 대중의 덕목도 여기로 수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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