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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0호] ‘쉬운 언어’란 무엇인가? 본문
서강대학교 유럽문화학과 독일문화트랙 교수 김형민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회문화 공동체에는 소위 ‘언어 약자(sprachlich Schwacher)’로 분류되는 사회 구성원이 존재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언어 약자는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 질병, 고령, 치매 등의 다양하면서도 이질적인 원인으로 인해 언어 텍스트(문어 텍스트와 구어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다문화시대를 맞이한 오늘날 ‘언어 약자’라는 개념은 좁은 의미에서의 언어 약자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권으로부터 삶의 터전을 옮겨와 이주 수용국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 하는 이주민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이와 같은 언어 약자는 특정 사회문화 공동체에서 -‘비언어 약자(nicht-sprachlich Schwacher)’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특히 공공 영역의 언어 텍스트를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초래된 생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넘어 사회적 편견과 차별과 혐오, 심지어 부당한 사회적 불이익과 불평등을 당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언어 약자가 ‘일반 언어’로 쓰인 공공 영역의 언어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해 알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공공 정보로의 접근에서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배제된다는 점이다.
언어 약자가 겪는 의사소통 장벽을 허물고 가능한 한 많은 언어 약자에게 ‘장벽 없는 의사소통(barrierefreie Kommunikation)’의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제안된 사회문화적 언어 변이형이 있다. 독일의 예를 들어보면, 그와 같은 사회문화적 언어 변이형이 바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이다. 다시 말해, ‘쉬운 언어’는 학습 장애나 타 언어권으로부터의 이주로 인해 낮은 문해력을 가진 이들이 사회문화 공동체의 통용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련의 개발 및 검증 과정을 거쳐 재구성된 언어 변이형이다. 그래서 ‘쉬운 언어’는 언어 약자가 언어 텍스트의 이해를 극대화하도록 인위적으로 재구성된 사회문화적 언어 변이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은 공공의 목적을 위한 각종 문서를 ‘일반 언어 버전’과 ‘쉬운 언어 버전’으로 함께 제작하여 공포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쉬운 언어 보급’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독일 연방노동사회부가 발간한 <쉬운 언어. 하나의 지침서 Leichte Sprache. Ein Ratgeber> 표지(왼쪽), 지침서 내에는 쉬운 언어 예시와 함께 쉬운 언어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오른쪽). 출처=독일 연방노동사회부
Das ist mein Traum : Dass ich die Briefe vom Amt lesen kann, ohne dass mir erst jemand erklären muss, was da drin stehen tut. Wenn die Sätze so lang sind, dann ist das für mich zu schwer. Dann habe ich schon gar keine Lust mehr, weiter zu lesen. Aber wenn die Sätze kurz sind, und die Schrift ist schön groß, dann kann ich das auch gut lesen. (Josef Ströbl, 58, Experte in eigener Sache, Prüfer für Leichte Sprache) |
나의 꿈은 이것입니다 : 관청에서 온 편지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 안에 뭐가 쓰여 있는지. 문장이 너무 길면, 그건 저에게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계속 읽는 행위를 말이죠. 하지만 문장이 짧으면, 그리고 글씨가 크고 예쁘면 저도 그것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요제프 스트뢰블, 58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전문가’, 쉬운 언어 심사관) |
독일의 연방노동사회부는 2014년 다국적 등록 협회인 ‘쉬운 언어 네트워크 등록 협회(Verein Netzwerk Sprache e.V.)’와 협력하여 126쪽 분량의 <쉬운 언어. 하나의 지침서 Leichte Sprache. Ein Ratgeber>를 발간하여 보급했다. 이 독일어 사용 지침서는 언어 약자가 사회의 여러 영역, 특히 공공 영역에서 의사소통과 정보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도록 독일어 텍스트를 작성할 시 염두에 두어야 할 50개의 사용 규칙 대부분을 ‘나쁜 예’와 ‘좋은 예’로 나눠 구체적이고 명시적으로 제시한다. 쉬운 언어. 하나의 지침서를 관통하여 흐르는 사유의 핵심은 언어 약자의 ‘쉬운 언어 이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언어 약자의 ‘쉬운 독일어 이해’이다.
2006년 12월 13일 제61차 국제연합 총회에서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이 채택되었다. 「장애인권리협약」의 근간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의 기초 위에서 교육, 문화, 정치, 경제 등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의 ‘차별 없는 사회적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장벽 허물기’가 필수적이다.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절차와 과정은 전적으로 언어를 통해 구축되어 진행된다. 그런데 언어 약자에게 ‘어려운 언어(Schwere Sprache)’는 그들의 알 권리를 방해하고, 그들의 정보 접근권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쉬운 언어’는 언어 약자에게 알 권리, 정보 접근권을 보호하고 보장함으로써, 자기 결정권과 사회정치적 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쉬운 언어’는 결국 언어 약자가 사회문화 공동체 안에서 합당하게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의 권리, 즉 인권을 지켜주는 장치인 셈이다.
사회 구성원의 사회정치적 참여가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사회 구성원의 사회정치적 참여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 중 하나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의 상황은 항상 밝지만은 않다. ‘비언어 약자’에 비해 언어 약자의 사회정치적 참여는 현저하게 저조하다. 언어 약자의 저조한 사회정치적 참여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공공 영역에서의 정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되기 때문이다. ‘쉬운 언어’는 언어 약자에게 알 권리와 정보 접근권을 완전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보장할 실질적인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이를 통해 언어 약자는 정보 접근성을 개선하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의 의사소통 빈도를 증대하며, 자기 결정권을 확대하고, 사회정치적 참여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쉬운 언어는 ‘언어 민주주의(sprachliche Demokratie)’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conditio sine qua non)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도 독일의 ‘쉬운 언어’와 견줄만한 사회문화적 언어 변이형이 있다. 그 언어 변이형이 바로 ‘쉬운 공공언어’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한국어 연구 기관인 국립국어원의 공공언어과는 2022년 12월에 151쪽 분량의 <개정판 한눈에 알아보는 공공언어 바로 쓰기>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서는 ‘공공언어’라는 개념이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공공언어는 “공공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이며, 넓은 의미에서의 공공언어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모든 언어”이다. 그리고 공공언어가 갖춰야 할 요건은 표기 및 표현의 정확성을 포괄하는 ‘정확성’과 공공성, 정보성, 용이성을 포괄하는 ‘소통성’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종합하면,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사회문화적 언어 변이형으로서의 ‘쉬운 공공언어’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공공의 정보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정확한 한국어 표현이다.
독일의 ‘쉬운 언어’와 대한민국의 ‘쉬운 공공언어’는 ‘쉬운 언어의 이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서로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두 사회문화적 언어 변이형은 목표 집단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독일의 ‘쉬운 언어’는 학습장애인, 독일어가 서툰 이주민 등과 같은 언어 약자를 목표 집단으로 삼는다. 그에 반해 대한민국의 ‘쉬운 공공언어’는 언어 약자가 아닌,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일반 국민을 목표 집단으로 정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한국어가 서툰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한국어 텍스트를 이해하기 힘든 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언어 약자를 목표 집단으로 겨냥한 사회문화적 변이형으로서의 ‘쉬운 한국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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