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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0호] 안, 사이에 있다. 본문
서강대학교 일반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박사수료 호규현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다. 다양성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른 특성”(Jones, Dovidio & Vietze. 2013)을 의미한다. 정보가 쉴새없이 빠르게 오가는 현대 미디어 환경과 탈근대주의의 접합은 우리를 다양성의 시대로 이끌었다. 사실, 다양성은 시대를 막론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특성 중 하나다. 매일 완전히 똑같은 일상을 보내며 자란 쌍둥이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둘의 생각, 감정, 행동에는 서로 다른 점이 없을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비현실적인 상상을 해봐도 그 둘을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얘기하긴 어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름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국인은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 자연스러움을 자신이 허락하는 테두리 안에서만 허용한다. 다수의 한국 남성이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갈망하듯이, 필리핀 가사관리사에게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논의되듯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보장 시위를 대중교통 밖에서 하라는 시민의 말처럼 자신에게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다름을 허락한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과의 울타리를 세우고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좋은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누군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에 포함되는 사람과 배제되는 사람을 구분짓는 경계는 무엇일까? 자신과 다른 타자를 대하는 방식을 다루는 논의의 중심에는 퀴어(Queer)가 있다. 퀴어는 ‘이상한’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 성소수자를 모욕적으로 부르는 말이었으나, 근대 활동가, 연구자, 예술가 등의 적극적인 전유로 성소수자를 일컫는 말이 됐다(애너매리 야고스, 2012). 퀴어는 단순히 성소수자를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퀴어는 전통적인 범주와 사회적으로 형성된 규범성을 교란하는 정체성이다. 왜 서로 다른 성별 간의 사랑만이 법적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가? 성별은 생물학적인 근거를 벗어나 규정될 수 없는가? 퀴어는 이런 질문들을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타자의 근원에 관심 갖도록 돕는다. 따라서, 퀴어에 대한 사유는 다양성의 시대에 적응하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 글은 필자가 진행했던 연구를 바탕으로 퀴어와 미디어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첫 번째는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퀴어에 대한 내용으로, 퀴어문화축제 언론보도 텍스트 분석을 적용한 연구를 소개했다. 두 번째는 당사자들의 미디어를 통한 사회적 관계 맺기에 관한 내용으로, 남성 동성애자가 사회적 관계와 관련하여 소셜미디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용함에 따른 영향은 무엇인지 파악한 연구다.
1) 미디어 안에 있다 : 퀴어문화축제 언론보도의 구조적 토픽 모델링 분석
실버스톤(Silverstone)은 미디어가 주류 사회와 동떨어진 사람들을 타자화되도록 매개한다고 제안했다(Silverstone, 2002). 자선단체의 흔한 광고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 사회의 미디어는 삶의 고통을 받는 이들을 동정의 대상이나 구경거리로 재현하며 비인간화한다는 것이다. 매개된 타자는 미디어를 통해 부여되는 속성에 저항하거나 순응하며 타자화를 재생산할 위험에 놓인다. 미디어 안에서 퀴어가 어떻게 재현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개된 타자’에 대한 논의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언론은 대중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로이며, 퀴어문화축제는 성소수자의 상징적 축제로서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연구는 퀴어문화축제 언론보도의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는 퀴어문화축제를 다룬 2000년부터 2023년까지 4,191건의 언론보도를 구조적 토픽 모델링(Structural Topic Modeling, 이하 STM)을 적용하여 진행됐으며, 퀴어문화축제 언론보도의 주제가 무엇으로 도출되는지, 시기에 따라 언론보도 주제는 어떠한 양상을 보이는지 두 가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분석 결과, 언론보도의 주제는 10가지로 도출됐으며, 크게 ‘축제 관련 주제’, ‘성소수자 관련 주제’로 구분됐다. 축제 관련 주제는 지역퀴어문화축제, 행사 개최 장소, 행사 현장, 영화제 등이었고 성소수자 관련 주제는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관련 정책/법, 반동성애와 기독교, 정치인 발언, 미디어와 성소수자 등이 있었다. 특정 주제는 시기에 따라 언론보도 주제로 나타날 확률이 급증하였는데, 대체로 사건/사고가 있는 경우였다.
이 연구의 중요한 결과는 퀴어문화축제 언론보도가 성소수자 언론보도에서 나타났던 것처럼(강신재, 이윤석, 조화순, 2019), ‘찬성/반대’, ‘저항/혐오’라는 이분법적이고 협소한 프레임 안에서 다뤄졌다는 것이다. 퀴어문화축제는 당사자들이 공적 공간을 영토화하고 상징적 의례를 실천함으로써, ‘시스젠더 이성애’라는 규범성에 도전하는 현장이다(조수미, 2019). 이러한 퀴어적 담론에 언론은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가져왔으며, 퀴어문화축제를 찬성/반대의 논쟁적인 주제로 전락시켜 타자화에 일조했다.
2) 미디어 사이에 있다 : 남성 동성애자의 소셜미디어 인식과 이용에 관한 탐색적 연구
‘자만추’라는 말이 있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의 줄임말로 인위적인 방법으로 연애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과 연애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연애가 아니라도 사람은 학교, 직장, 동호회 같은 자신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만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진 않는다. 부르디외(Bourdieu, 2018)는 개인의 가용한 사회적 관계를 ‘사회자본’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했으며, 사회자본의 형성은 구성원이 처해있는 맥락과 접합되기 때문에 격차가 발생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혐오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전원근, 2015), 다른 당사자를 ‘자만추’하면서 사회자본을 형성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따라서, 성소수자들은 일부 공간을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교류해왔는데, 이러한 방식은 온라인 공간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이서진, 2007). 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여 당사자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주목하여 이 연구는 남성 동성애자의 소셜미디어 인식, 이용에 따른 영향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연구는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병행한 혼합연구 방법으로 진행됐다. 스스로를 남성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8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뒤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140건의 응답을 분석하였다. 연구목적은 남성 동성애자가 당사자들의 사회적 관계에서 소셜미디어(SNS, 인터넷 커뮤니티, 데이팅앱)를 어떠한 기능, 의미, 역할로 인식하는지 확인하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함으로써 사회 자본, 온라인 사회적지지, 외로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인터뷰 분석 결과, 남성 동성애자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은 다른 당사자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 인식되며, 지지감과 안정감을 얻을 수도 있었지만 외로움에 대해서는 복잡한 관계가 있었다. 설문조사 응답을 분석한 결과, 당사자 간 관계를 목적으로 이용되는 소셜 미디어 중 SNS 이용량 만이 사회적 지지와 사회자본에 정적인 영향이 있었고, 나머지 모든 경우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이 연구의 중요한 결과는 ‘자만추’가 어려운 퀴어 당사자 사이의 관계에 미디어가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는지 살펴보았다는 점이다. 특히, 다른 소셜 미디어에 비해 SNS는 당사자 사이의 관계를 형성/유지하고 긍정적 영향을 제시하는 주요한 경로였다. 이러한 결과는 SNS는 자기(self)를 바탕으로 소통하는 기능들을 제공하고, 이용자가 익명성을 조절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론
두 연구를 통해 미디어 안에서 재현되는 퀴어문화축제는 ‘퀴어’의 의미를 외부자의 프레임에 의해 지워지기 쉽고, 미디어 사이에서 당사자들은 ‘신원이 보장된 익명성’이라는 아이러니한 환경에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미디어는 내부와 그 사이에서 퀴어성(Queerness)과 복잡한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지면 밖에서 글을 읽는 당신에게 퀴어란 어떤 존재일까? 더 넓은 범주에서 생각해보자. 당신은 당신과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왔는가? 개인적으로는 타인을 이해하지 않아도 존중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타인을 오롯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존중은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서로가 더 존중받고 다양성이 실천되는 사회가 오길 희망한다.
참고문헌
강신재, 이윤석, 조화순. (2019). 한국사회의 매체 정파성과 성소수자 담론 텍스트 분석. 정보사회와 미디어, 20(2), 145-174.
애너매리 야고스. (2012.07.23.) 퀴어이론입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이서진. (2007). 게이 남성의 장소 형성-종로구 낙원동을 사례로. 지리학논총 (Journal of Geography), 49, 23-44.
전원근. (2015). 1980 년대 『선데이서울』 에 나타난 동성애담론과 남성 동성애자들의 경험. 젠더와 문화, 8(2), 139-170.
조수미. (2019). 퀴어문화축제 공간의 상징과 의례. 한국문화인류학, 52(3), 209-272.
주유선. (2022).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복지행정논총, 26(1), 1-24.
Bourdieu, P. (2018). The forms of capital. In The sociology of economic life (pp. 78-92). Routledge.
Jones, J. M., Dovidio, J. F., & Vietze, D. L. (2013). The psychology of diversity: Beyond prejudice and racism. John Wiley & Sons.
Silverstone, R. (2002). Complicity and collusion in the mediation of everyday life. New literary history, 33(4), 76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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