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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호] 20대 여대생 다이어트 경험의 내러티브 분석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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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호] 20대 여대생 다이어트 경험의 내러티브 분석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compeeu 2024. 10. 24. 17:00

 

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김경보

<출처: pixabay>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다이어트는 성별과 연령을 뛰어넘어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일종의 신념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특히 디지털 세상에서 놀라운 편집 기술을 통과한 훌륭한 남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자주 노출되는 현재 미디어 환경은 이러한 맹목적 다이어트 추구 성향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좋은 신체조건을 가지는 것이 권력처럼 여겨지고, 자기관리라는 명목 아래 매력적인 몸을 갖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여겨지는 사회. 새해 계획 중 하나에 반드시 체중 감량이 포함되며, 최상의 몸을 보여주는 프로필 사진을 찍고 만인에게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 이러한 분위기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미디어의 영향력에 민감하고, 외모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인지하며, 표준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는 20대 여자 대학생들의 실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기 위해, 내러티브 분석을 실시해 보았다.

 

 이 연구의 결과에서도 일부 드러났지만, 개인의 욕구, 문화적인 트렌드 그리고 사회적 압력의 교집합이 만들어낸 외모지상주의적인 ‘다이어트’ 접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산업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숙명을 지닌다. 인간의 내면에 생성되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문제 해결을 위한 충동을 일으키고, 욕구의 해소 방안 중 손쉽고 강력한 자본주의적 방식은 바로 소비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흐름은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과 이를 배경으로 태어난 신종 유명인, 즉 일반인-연예인의 경계에 있는 인플루언서의 활약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최근 몇 년간 인플루언서 마케팅, 공동구매 등 새로운 경로를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 수용자가 시장의 소비자로 연결되는 메커니즘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잘 알려져 있듯, 전통 미디어가 우세하던 시절, 기존 연예인들은 일방향성이 두드러진 대중매체를 통해 이름을 알렸으며, 많은 경우 노출 최소화를 통한 신비주의 전략을 활용하면서 제한된 광고를 통해 정해진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대중들은 아름답게 가공된 이미지를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소비하였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브랜드 이미지와 결합하여 상품 구매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왔다. 반면, 현재의 인플루언서들이 대중에게 소구하는 방식은 근본부터 다르다. 소셜 네트워크의 특징을 십분 살려 실시간으로 모든 것을 노출하고, 자신의 일상적 행동, 일상적 소비, 일상적 생각들을 컨텐츠로 제작 송출하게 되었다. 이들은 반복되는 온라인 접촉 기회를 통해 점차 인간적 친밀감과 유대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구독자, 혹은 추종자들과 강한 유대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신비로움보다는 친근감을, 환상적인 이미지보다는 실질적 정보와 공감을, 우월함보다는 동질감을 중시하는 이 새로운 관계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나 내 마음대로 방해 없이 접근 가능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는 현실에서 시공간을 공유하는 친구나 가족과 비교해 봐도 관계 시작이나 유지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나 장벽이 더 낮다는 상당한 장점이 있다. 또한 구독자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소위 쌍방향적 소통과 피드백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존 스타에 대한 일방적 팬심을 키우던 시절과 달리 인플루언서의 빠른 피드백 수용이나 댓글 등 직접적 반응을 접하며 감정적 만족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유명인들이 가지던 덕목인 거리감, 환상, 신비로움이 아니라 가식 없는 솔직 담백함과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진솔함으로 소구하는 인플루언서들은 독특한 정체성, 즉 괴리감이나 벽이 높지는 않지만, 어딘가 현실과 약간은 동떨어진 매력적인 삶을 살아가는 포지션을 추구하게 된다. 이들에게 동경과 공감을 동시에 보내는 대중들은 자신을 팬이라기보다는 “친구”이자 일종의 “랜선 서포터”로서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인플루언서들이 온라인에서 이렇게 불특정 다수를 규합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는 현상은 대중들의 사회적 욕구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1인 가구의 증가나 개인주의적 라이프 스타일의 유행이 개인들의 공간적 분리 독립을 가속할지언정, 분리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정서적 연결을 원하며, 자신과의 코드가 맞는 누군가를 찾고, 그에게서 정보를 얻고, 배우고, 때로는 동경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구참여자들의 다이어트에 관련된 내러티브를 살펴보는 과정에서도, 온라인상에서 얻는 인플루언서와의 관계를 통한 양상이 자신의 다이어트 진행 과정의 여러 선택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다이어트, 외모 관리, 운동 등의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때로는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하며, 팔로워의 관심과 반응을 통해 네트워크를 통한 권력을 형성해 나간다. 한편,  구독자 혹은 팔로워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심리적 부담 없이 원하는 만큼의 친밀감과 신뢰를 쌓을 수 있고, 동시에 내가 원하지 않으면 불편함 없이 언제든 관계 중지가 가능하다는 통제권에 바탕을 둔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다양한 매력과 정보를 제공해 줄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과 코드가 맞으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애정과 자본을 투자하거나 관련된 소비를 하기도 한다. 서로가 니즈를 충족하며 고유의 상호작용 패턴을 형성해 나가면서, 일종의 친밀함과 신뢰 그리고 동경이 어우러진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혹은 그 일환으로 모방 행동, 특히 모방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사회인지이론이 이야기하듯 인간에게는 모방 학습이 가능한 특성이 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자연스럽게 정보 제공자의 생활방식과 패턴, 소비 습관의 모방 욕구로 이어지기 쉬운 것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플루언서에 대한 모방 욕구가 개인이 가진 다이어트의 동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이어트를 사회적인 의무로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집단의 경우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나 마르고 예쁜 외모를 가진 인플루언서를 팔로우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으며, 이들이 시도하는 불건강한 생활 패턴 혹은 위험한 건강 행동(예:음주, 체중 감량용 약품 소비, 의학적 시술 등)까지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고 있었다. 동시에, 이들은 인플루언서에게 관심을 보이고, 탐색하고, 동경하고, 이들이 보여주는 제품들을 검색하지만 정작 신뢰도나 친밀도는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모순적인 측면도 보여주었다. 이 집단에 속한 참가자들은 대부분 미디어에서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이미지를 원했다. 즉 자기 몸을 돌보거나 건강을 강화하는 목적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객관화되어 평가되는 신체를 바꾸는 데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여러 번의 다이어트 시도와 반복된 실패를 경험한 경우가 많았고, 상습적인 좌절감에 취약해짐과 동시에 욕구(식욕)의 탈억제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는 특성을 보였는데, 이런 이유로 마른 몸매의 인플루언서가 누리는 화려하고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는 심리가 작동하는 듯했다. 동시에, 이들은 심리적인 불편을 해소하고자 인플루언서를 통해 알게 된 약물 복용이나 극심한 절식 등 건강 위험 행동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았고, 경계심도 높지 않았다. 한편, 이들과 다른 행동 양상을 보이는 소수의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상당히 건강한 방식으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의 수집과 활용 차원에서 인플루언서를 고르고, 운동이나 식생활 개선 등에 관심이 있다고 답해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은 소비한 컨텐츠에 대한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추천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그 사실을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구매한 제품으로는 일반 식품, 운동 기구, 운동복 등의 상품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본 연구를 통해 밝혀낸 점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대 여자 대학생들이 소셜 네트워크와 인플루언서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이어트라는 테마를 어떻게 자기 삶에 의미 있는 요소로 내재화하고 있는지 살펴본 결과, 개인의 다이어트에 대한 접근 및 신념에 따라 그 과정에 큰 차이가 나타남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외적 동기에 반응하는 집단들은 인플루언서에 대한 환상, 탈억제, 낮은 신뢰감과 친밀감, 신뢰에 의한 소비 연계성 부정, 위험한 건강행동 시도 등의 특징을 보이지만, 내적 동기에 기초한 집단들은 상대적으로 기존 소비자 심리 연구들이 주장한 대로 미디어 반복 노출을 통한 친밀감, 신뢰 관계 형성, 소비와 재소비, 신뢰 강화라는 메커니즘을 지지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또한 소비 결과로 신뢰와 유대감이 강화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조언을 참고하여 반복 구매할 의향이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플루언서에 대한 신뢰나 친근감을 낮게 평가하며 다이어트 관련 제품에 대한 정보만을 얻는 외적 동기 집단의 왜곡된 신체 인식의 위험성을 논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체중 조절, 몸매 관리에 관련된 소비는 자신에 대한 불만, 위급함, 불안감, 압박감 등이 불편감이 바탕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특히 외적 동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경계심 없는 위험 행동을 유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역설적으로, 다이어트에 관련된 좌절과 환상,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절식도, 약품 구매도, 인플루언서 모방도 아닌, 몸을 바라보는 근본적 관념의 변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