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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0호] 차별을 만드는 말들, 변화를 위한 차별금지법 본문
차별금지법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이었다. 1997년 3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DJ는 ‘지역·성·학력 등 모든 차별을 없애고 오직 능력과 인격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수 있도록 하자’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내걸었다. 그는 색깔론과 호남 혐오에 맞선 민주화 운동가였고, 서울대·사법시험 출신 기득권이 즐비한 정치권에서 살아남은 상고 출신의 비법조인이었다. 여성운동 중심에 있던 배우자 이희호 씨의 영향까지 고려하면 DJ가 차별금지법을 얼마나 간절하게 원했을까 싶다.
차별금지법은 DJ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가 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 했다. 그러자 성적지향·병력·학력 등 7가지 사유에 대해 개신교와 재계를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7가지 사유가 빠졌고 그 외에도 실효성 있는 조치들도 빠졌다.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사람들에게도 외면받은 채 17대 국회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차별금지법에 여러 차별적 조건이 달려있으니 사실상 차별금지법으로 보기 어려웠다.
국회에 차별금지법을 제대로 처음 발의한 이는 2008년 1월28일 당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다. 대표발의자인 노 의원을 포함해 차별금지법안에 이름을 올린 의원은 10명이었다. 이들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던 진심’을 의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차별적 요소를 품고 있다. 다음은 제2조(정의) 제1항 내용이다.
“장애”란 장·단기간 혹은 일시적으로 발생한 신체적·정신적 손상, 기능상실, 질병 등이 사회적 태도나 문화적, 물리적 장벽으로 인하여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가져오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부분이 문제일까? 해당 법안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상 장애의 개념과 다르게 ‘질병 등’을 장애의 원인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며 “질병은 병력에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애’를 정의하면서 ‘질병’을 포함한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노회찬의 의도치 않은 ‘차별담은법’
장애는 치료가 필요한 질병과 구분해야
장애와 질병을 구분하는 일은 장애 차별인식을 버리는 첫 단계다. 장애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인정’해야 하지만 질병은 의학적으로 정상 범위를 정하고 그 바깥에 있는 상태를 열등한 상태로 규정한다. 즉 장애는 그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만 질병은 일시적이다. 물론 요즘 질병권 운동이 확산되면서 장애와 질병을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영역이 있고 ‘질병 완치가 가능한가’란 질문을 던져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장애를 ‘극복’하거나 ‘치료’할 대상으로 보는 인식은 전형적인 장애 차별이다.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가 지난 2018년 평창 동계 패럴림픽 당시 10대 일간지를 모니터링한 뒤 스포츠 보도에서 피해야 할 사항을 정리했다. ‘소아마비를 딛고’처럼 ‘장애 극복’을 강조하거나 장애와 질병을 동일시 하는 경우 등을 규정했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자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여전히 장애와 질병을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권 감수성’은 ‘감성’뿐 아니라 ‘관점’과 ‘지식’까지 갖춰야 하는 고차원의 능력이다. 마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 대통령께선 후보 시절 비장애인을 ‘정상인’,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표현해 논란이 됐다. 장애를 비정상으로 보고 대상화하는 ‘관점’이라서다. 또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쓰다듬어 비판을 받았다. 안내견을 함부로 만져선 안 된다는 ‘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장애인차별구제소송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장애 차별 발언을 한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소송은 지난 2021년 4월에 장애인들이 제기했다. “내 편만 챙기는 외눈박이 대통령”이라는 발언을 한 곽상도 전 의원은 1심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외눈박이’는 자연 상태에서 1만6000분의 1 확률로 발생하는 기형으로 한쪽 눈만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가상 개체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가상 개체’라는 주장은 자의적이고 편협한 해석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외눈박이’를 “한쪽 눈이 먼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한쪽을 실명한 사람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이 자신을 ‘가상 개체’로 취급하면서 부정적인 맥락에 위치시킨 것이다. 많은 차별이 이러한 이유로 발생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 쉽게 무시한다.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이 나왔는데 사과하지 않고, 소송이 제기되자 마치 상대를 없는 존재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조태용·김은혜 의원은 법원에 ‘정신분열’과 ‘꿀 먹은 벙어리’가 ‘관용구처럼 사용된다’고 해명했다. 정신장애와 언어장애를 부정적인 뜻으로 비유해 문제를 삼았는데 ‘그동안 자주 쓰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집단적 조현병’이란 표현을 쓴 허은아 의원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주장했다.
1심 법원은 해당 발언들이 부적절하다면서도 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만약 배상책임을 물으면 정치적 의견 표현이나 자유로운 토론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만 보면 국회의원들이 장애인들에게 잘못은 했지만 처벌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으로 처벌하진 않겠다는 건가. 2심도 국회의원들이 이겼다.
실질적으로 법원에서 ‘면책특권’을 인정받은 허 의원이 다시 장애 차별 발언을 뱉었다. 지난 7월3일 다른 당 의원들을 향해 “다 정신 나간 것 아닌가”라며 “치료를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틀 뒤 정신장애인들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발언이 장애 비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에서는 허 의원이 2021년 했던 차별발언을 소환했다. 이처럼 차별과 혐오는 무지를 통해 생산되는데 제도권에서 제재받지 않으면 재생산되고 확산된다.
상대 당 의원을 향해 ‘정신이 나갔다’, ‘미쳤다’ 등 정신장애 관련 표현으로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람이 곧 정신장애인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대다수 정신장애인은 남에게 피해주는 언행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쪽에 가깝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 제목도 있듯이 차별은 선의로 해결되지 않는다. 별생각 없이 쓰는 ‘반팔티’는 팔이 반이란 뜻이므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이다. ‘반팔’에 대응하는 말인 ‘반다리’라는 말을 쓰지 않듯 ‘반바지’에 대응하는 ‘반소매티’를 쓰는 게 정확하다. 비슷하게 ‘외발자전거’나 ‘두발자전거’보다는 ‘외바퀴(한바퀴) 자전거’나 ‘두바퀴 자전거’가 더 정확하고, 불필요한 논란도 없앨 수 있다.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말인 ‘벙어리’와 관련한 속담이나 관용어는 꽤 많다.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꿀 먹은 벙어리’, ‘벙어리가 서방질을 해도 제 속이 있다’, ‘벙어리 두 몫 떠든다’, ‘벙어리 마음 벙어리도 모른다’, ‘벙어리 냉가슴’ 등은 실제 ‘벙어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를 비유한 말이다. 음성언어가 아니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할까? 비장애인 관점에서 본 편견이다. 필담, 수어통역, 문자통역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장애인들도 의사를 나타내며 살아간다.
차별표현 비판은 표현의 자유 침해?
표현의 자유는 누구에게 필요한가?
요즘 이러한 담론에 대해 ‘과도한 PC(정치적 올바름)주의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차별할 의도도 없었는데 굳이 차별표현으로 낙인찍는 것이 진짜 차별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표현의 자유’가 과연 누구의 권리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권·자유 등 인류 보편적 가치로 여겨지는 권리들은 사실 상대적 약자에게 필요하다. 이미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이들에게 특권을 주려고 만든 권리가 아니다. 제때 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심지어 편의점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장애인(이동권 약자)에게 표현할 자유는 생존만큼 절실하다.
차별을 지적하기만 해도 마치 ‘디스토피아나 전체주의 사회를 만드는 사람’ 취급하는 반박도 과도하다. 차별표현을 썼다고 형사처벌을 하거나 추방하자고 주장한 적도 없다. 법에서 차별표현을 규정한다고 해결될 수도 없다. 비슷한 표현으로 우회해 계속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생산해낼 수 있어서다. 차별표현을 대체한다고 곧바로 차별과 혐오가 사라지는 사회가 오지도 않는다. 대부분 차별표현은 차별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경우가 많다.
차별·혐오표현에 대한 대체(대항) 표현을 고민하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차별받는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공론장에 반영하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DJ가 주장했던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안과 입법 시도는 의미가 있다.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성찰하면서 나은 세상을 고민해보는 일은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이 얼마나 소통하는지, 그 척도이기도 하다. 22대 국회에서 중단된 차별금지법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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