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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1호] 두 길을 걷는 시간: 엄마이자 대학원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본문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박지혜
배우기를 다시 결심한 날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엄마다.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방송사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왔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몸담았던 분야와 관련된 강의를 했다. 하지만 강의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내가 전하는 지식이 너무 얕고 단편적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붙들렸다. 아이를 키우며 ‘배움’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그렇게 대학원에 첫발을 디뎠다. 내가 걸어온 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통해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었다. 석사 과정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박사 과정은 전혀 다른 도전이었다. 아이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을 부족하게 느끼진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런 고민 속에서 긴 시간을 망설였지만, 결국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결심이 참 다행이었다. 박사 과정에서 배운 것들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했고, 더 나아가 아이에게도 더 넓은 관점과 깊이를 전해줄 수 있었다.
두 세계 사이에서
엄마로서의 삶과 대학원생으로서의 삶은 그 자체로 큰 도전이었다. 시간표를 짤 때도 양육과 겹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아침에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어떤 날은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정을 포함해야 했다. 아이가 엄마 없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저녁이면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는 것이 하루의 마무리였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바빴다.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만 해도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 속에서 연구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논문 한 줄도 못 썼다는 생각에 조급함이 몰려왔다. 잠들기 전, 머릿속에서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떠돌며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가장 힘든 건 끊어진 맥락을 잇는 일이었다. 논문을 쓰기 위해 몰입했다가도 며칠 동안 손을 못 대는 경우가 잦았다. 다시 시작하려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때가 많았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막막함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아이가 건네준 작은 응원은 예상치 못한 빛이었다. 한 번은 색연필로 “파이팅!”이라고 쓴 그림을 내밀었다. 그 순간, 바쁘다는 이유로 예민하게 굴었던 내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로서의 역할은 대학원 생활에 끈기를 더해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아이 덕분이었다.
내려놓음이 준 자유
대학원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초반에는 스스로를 몰아세웠지만, 결국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늘 잘하고 싶었기에 더욱 그랬다.
바쁜 날에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밀린 집안일은 때로 뒤로 미뤄두었다. 아프면 무리하지 않고 쉬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이런 선택들이 큰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로서 완벽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건강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 관리는 단지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일을 먼저 선택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내려놓는 데 있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균형을 되찾아 주는 힘이 되었다.
배움의 무게, 그리고 함께 걷는 사람들
대학원 생활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교수님들의 강의에서 얻는 깊이 있는 통찰, 학우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공감과 연대는 내게 큰 영감이 되었다.
학우들 중에는 첫 직업과 생계를 고민하며 미래를 불안 속에서 준비하는 이들도 있었고, 자취 생활의 고단함과 직장 생활의 무게를 함께 견디며 연구를 이어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감당하는 무게는 달랐지만, 모두가 자신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길잡이
박사 과정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학문적 성취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때로는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닫아버리게 된다.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한 일이 아니기에, 더욱더 탐구하고 이해해야 할 영역이라고 느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만이 아니라, 이제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으면서 소통의 방식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 그리고 인공지능 간의 소통이 중요해질 시대에, 연구를 통해 사회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아이에게도 길잡이가 되었으면 한다. 완벽하지 못해도,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맸더라도, 결국 다시 한 걸음 내디뎠던 내 모습이 아이에게 작은 용기가 되길 바란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연구를 위한 시간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조율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걸어가는 하루하루가 복잡하고 고단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 안에도 감사할 순간들이 있다.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지금의 자리,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이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큰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고, 미래가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분주한 시간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 일이야말로 소중하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완벽하게 해내려는 마음보다는, 내가 가진 시간과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고 싶다.
삶이 비록 쉽지는 않더라도, 지금 이 길 위에서 느끼는 작은 기쁨과 배움이 나를 조금씩 성장하게 한다. 자족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모든 여정에서 가장 큰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이 같은 고민 속에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로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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