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사회적인 것
- 파시즘
- 서강대학교
- 서강대학원 신문
- 서강대학원
- 서강대 대학원
- 비정규 교수
- 소통
- 조효원
- 논문
- AI
- 총학생회장
- 불안
- 김성윤
- 서강대학원신문
- 서강대학교 대학원
- 이명박 정권
- 서강 대학원 신문
- 서강대 대학원 신문
- 정치유머
- 메타버스
- 푸코
- 나꼼수
- 서강대학교 대학원 신문
- The Social
- 김항
- 서강 대학원
- 아감벤
- 서강대대학원
- 대학원
- Today
- Total
서강대 대학원 신문사
[170호] <컨택트>의 비선형적 시간과 언어의 매개 본문
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작학부 영화전공 강사 박영석
※ 영화 <컨택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 세계의 시간은 선형적으로 흐른다. 인간은 그 흐름을 시계를 통해 표준화하고 그에 따르며 산다. 물론 개인들에게 지각되는 시간의 속도나 기억의 선명도는 각기 다르겠지만, 흘러가버린 과거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흐릿해지며 아직 도달하지 않은 미래가 언제나 불확실성의 영역에 잠겨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언젠가 새로운 언어를 익히면서부터, 자기 머릿속에서 미래가 지각되기 시작하고 그 지각된 미래의 덩어리가 과거와 동일한 층위에서 마치 기억처럼 환기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혹은 과거도 미래도 더 이상 기억의 심층에 잠기지 않은 채 현재의 층위에 나란히 놓이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 정신 안에서 시간은 더 이상 선형적인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고, 인간의 삶의 형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 (Arrival)>(2016)는 이러한 전제 내에서 시간의 비선형성 그리고 인간의 삶의 관계에 대한 SF적 상상과 사변적 사유를 담고 있다.
<컨택트>의 주인공 ‘루이즈’(제이미 아담스 분)는 영화 말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적으로 지각하는 비선형적 사고 체계를 갖게 된다. 그 시작은 지구에 도착한 외계의 방문자인 ‘헵타포드’들과 접촉하면서부터이다. 언어학자 루이즈와 물리학자 ‘이반’(제레미 레너 분)은 외계 존재와의 접촉을 앞두고 극심한 공포를 느끼지만,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보이는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헵타포드들과 접촉한 이후에는 일종의 학문적 열정으로 헵타포트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 유리벽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고 세상과 마주하는 인터페이스의 장소이자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교육의 장소이다. 또한 나와 너를 구별짓는 분리벽이기도 하다.
루이즈는 헵타포드의 언어와 처음 접촉하는 순간부터 파편적이며 불가해한 심상이 비자발적으로 떠오르는 탓에 혼란을 겪게 된다. 그것은 기억의 이미지인데 과거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 도래한 것이다. 여기에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익히는 일이 루이즈의 정신에 큰 영향을 주고 그녀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꾸며, 그럼으로써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그녀의 정신 안에서 동시에 지각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전제가 있다.
테드 창의 원작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1998)로부터 비롯된 이러한 상상, 새롭게 습득한 언어가 사람의 사고 체계와 뇌 구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에 근간을 두고 SF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를 ‘언어 상대성 가설’이라고도 부르는데, 언어는 단순한 표현수단을 넘어서고 인간의 실세계는 언어습관의 기초 위에 세워지며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언어연구는 사람들의 사고 형식이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냉철한 패턴 법칙에 의해서 제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패턴들은 각 언어의 지각할 수 없고 복잡난해한 체계화다”(워프, 384). 한편, 발터 벤야민의 언어철학도 유사한 생각에 기반을 둔다. 벤야민에게 언어란 의사소통의 수단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내용의 전달을 지향하는 원칙”이며, 언어는 모든 정신적 전달의 직접성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전달의 매체(medium)이다(벤야민, 71-79). 이러한 언어에 대한 사유를 반영하는 SF 작품의 사례로 『바벨-17 (Babel-17)』(1966)이 있는데, 여기에서 주인공은 ‘바벨-17’이라는 이질적인 외계언어를 접한 후 시간 감각의 변화를 겪고 사고 체계는 물론 육체적인 영향까지 받는다. 심지어 바벨-17로 사고하는 다른 존재를 만나 그와 정신적인 연결을 이루어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기에 이르는데, 그것은 언어적 특징으로 인해 ‘나’와 ‘너’의 개념이 사라지고 비자발적으로 자아를 상실할 위험에 처할 만큼 위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네 인생의 이야기」와 <컨택트>에서 헵타포드의 언어를 통해 미래를 지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언어 자체가 인간의 언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헵타포드B(혹은 로고그램)라는 문자는 음성이 필요 없을 정도로 즉각적인 전달 수단이다. 우리처럼 펜과 종이나 컴퓨터 자판을 통해 무언가를 쓸 필요가 없이, 그리고 획이 단어가 되고 단어가 문장이 되는 식의 선형적인 확장의 과정이 없이, 촉수에서 빠져나오는 검은색의 유체가 순간적이고 동시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원형적 형태의 큰 틀 위에 세밀한 선들이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며, 단어와 문장을 대체하는 완전한 의미가 한 덩어리로 표현되어 있다. 이 문자를 읽을 때에도 정보를 조합하는 선형적인 순서가 없고 모든 정보를 동시에 지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선형적임은 물론이고 사실상 시간에 독립적이다.
이처럼 전적으로 이질적인 언어 체계는 역시 근본적으로 다른 사고 체계와 상응한다. 인간들이 물리적 현상을 인과론적(causal)으로 설명한다고 한다면, 헵타포드들은 목적론적(teleological)인 방식, 달리 말해 목적 지향적 방식(goal-oriented way)을 취한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헵타포드들의 사고 체계를 설명하기 위한 물리학 이론으로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Fermat's principle of least time)와 ‘변분 원리’(variational principles)를 제시한다. 가령 공기 중의 빛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가능한 경로를 고려한다면, 빛은 언제나 극치의 경로, 즉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든지 최대화하는 경로를 택한다고 한다. 최소와 최대는 어떤 수학적 속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변분 원리). 이때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헵타포드의 사고 체계의 근간이고 같은 원칙으로 언어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헵타포드는 문자를 쓸 때 최초의 획을 긋기도 전에 이미 문자의 의미 전체(헵타포드B의 그래픽 디자인 전체)가 어떻게 구성될지 동시에 안다. 그리고 세계를 다음과 같이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창, 213). 그런 의미에서 온전히 헵타포드의 언어로 사고한다면, 자기 세계를 살아가는 도중에 이미 자기 세계의 결과를, 즉 미래를 알게 된다.
<컨택트>의 종반부에 헵타포드들과 지구인들과 루이즈는 급박한 상황에 처한다. 서로 간에 온전한 소통을 이뤄내지 못하고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위협이 다가오고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루이즈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지각하고 헵타포드의 우주선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간의 접촉 공간인 유리벽이 아니라 그 너머로, 온전히 그들의 우주선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헵타포드들과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루이즈는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사고 체계와 그들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한다. 그럼으로써 미래에 대한 지각을 얻고, 그동안 자신의 정신에서 환기되던 기억들이 미래의 기억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소설에서는 이러한 지각을 얻는 순간이 서술되어 있다. “헵타포드B가 진정한 우위를 점하면서 일별의 순간이 올 때, 나는 과거와 미래를 한꺼번에 경험한다. (…) 이런 경험을 할 때 나는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창, 223). 햅타포드의 언어로 사고하는 루이즈에게 미래란 정신 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기억이다. 다시 말해 ‘과거/현재/미래’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고, 다만 ‘실행됨/실행 중/실행하게 될 것’이라는 물리적 수행성의 여부로만 구분될 뿐이다. 그렇다면 루이즈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게 된다. 루이즈는 이반과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여 딸아이 ‘한나’를 낳는데, 딸은 청소년기에 이른 죽음을 맞이한다. 루이즈는 이반과 첫 데이트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사랑에 빠지고 한나와 함께 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품고 있다. 당신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사랑하고 누구와 이별하고, 결정적으로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완전히 안다. 당신이 미래를 지각한다면, 그 미래는 정신 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이므로 아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여지란 없는가? 만약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면, 그래야 할 당위성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가 내재해 있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론의 대립 그리고 양립가능성의 문제는 오랜 시간 철학적 난제였지만, 「네 인생의 이야기」와 <컨택트>는 그 사유의 범위를 미래에 대한 예지의 문제로 확장한다. 루이즈가 미래를 정확히 지각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루이즈의 현재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삶의 궤적은 강력한 결정론의 인과율에 얽혀있다는 의미가 된다. 루이즈가 지각하는 미래는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이미 일어난 미래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루이즈는 인생의 갈림길에 도달했을 때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내릴 수 없다는 뜻인가? 대답은 “그렇다, 자유의지란 없다”가 맞다. 미래를 확실히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답이 비관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비선형적이고 동시적인 시간 관념과 사고 체계를 지닌 루이즈는 자유의지라는 가치를 초월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컨택트>에서 루이즈는 미래에 대한 지각을 얻고 인류를 구원하는 공적인 행동과 딸아이를 낳는 사적인 행동을 한다. 둘 모두 정신 안에서 이미 일어난 미래의 기억을 물리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하나는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어 줄 행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를 행복과 고통이 엇갈리는 길로 이끌 행동이다. 그럼에도 루이즈는 이 둘을 똑같이 껴안는다. 미래에 다가올 행복과 고통을 똑같이 껴안는 긍정, 이것이야말로 <컨택트>의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이다.
인용문헌
발터 벤야민, 『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 번역가의 과제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8.
벤자민 리 워프, 『언어, 사고, 그리고 실재』, 신현정 옮김, 나남, 2010.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김상훈 옮김, 엘리, 2016.
'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0호] 지하에는 분명 낭만이 있다 (0) | 2024.10.24 |
---|---|
[170호] 포노사피엔스와 인지기호학 (0) | 2024.10.24 |
[170호] 게임기업의 레벨 업을 위하여: 게임기업의 위기와 위기 대응방식의 변화 (0) | 2024.10.24 |
[170호] 안, 사이에 있다. (0) | 2024.10.24 |
[170호] 20대 여대생 다이어트 경험의 내러티브 분석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0) | 2024.10.24 |